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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395
한자 泗沘
이칭/별칭 소부리(所夫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지도보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538년 - 백제 사비 천도
폐지 시기/일시 660년연표보기 - 사비 폐지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 왕도 지명.

[개설]

사비(泗沘)는 소부리(所夫里)에서 연원하며, 성왕이 538년(성왕 16)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함으로써 백제의 왕도가 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으로 사비성이 함락된 후 당나라가 사비도성에 백제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신라가 671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所夫里州)를 두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사비의 지명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소부리가 ‘ᄉᆡᄇᆞᆯ’로 서야벌(徐耶伐)과 같은 뜻의 동경(東京)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설과, 사비가 소(所)와 같은 어형이고 부리(夫里)가 읍(邑)을 뜻하는 것으로 ‘수읍(首邑)’의 의미를 갖는다는 설이 있다.

특히 ‘-부리’는 마한 지명의 ‘-비리(卑離)’에 어원이 있는데, 소부리의 원초지명은 부여군 초촌면의 초촌(草村)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초촌 지역의 주민들이 부여읍 일대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선주거지의 원지명인 ‘초촌’을 근간으로 하여 ‘소부리’라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봄에 도읍을 사비[다른 이름은 소부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하였다”라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왕력 편 성왕 조에는 “무오년에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남부여라고 불렀다”, 그리고 권2 기이편 남부여·전백제 조에는 “백제 성왕 16년 무오 봄에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하였다”, “지명은 소부리이고 사비는 지금의 고성진(古省津)이며, 소부리는 부여의 별호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내용]

백제는 538년 왕도로서의 한계 때문에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였다. 475년 고구려의 침략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임을 당하자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당시 천도는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적이 강하였기 때문에 협소하지만 방어에 유리한 웅진을 선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웅진은 왕도로서 필요한 기반 시설을 마련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협소하였다. 이에 성왕은 동성왕과 무령왕 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538년에 사비로 천도한 것이다.

그런데 사비로의 천도는 이미 동성왕 대부터 계획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동성왕이 490년(동성왕 12)과 501년(동성왕 23) 3차례에 걸쳐 사비 지역으로 전렵을 나갔던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동성왕이 501년 사비의 서쪽 벌판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백가가 보낸 자객의 공격으로 상해를 입어 사망함으로써 사비로의 천도는 무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왕사비를 천도지로 택한 배경은 사비 지역이 갖는 지리적 조건, 즉 방어상의 편리함과 넓은 미개발지, 금강을 통한 대외적인 교류에 유리함 때문이다. 성왕이 천도를 위하여 사비도성을 조영하기 시작한 것은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대통(大通)’명 인장와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다. ‘대통’은 중국 양나라의 연호인데, 527~528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성왕은 즉위한 이후 사비로의 천도를 계획하여 추진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왕성의 배후산성으로서 부소산성을 비롯하여 나성 등을 축조하고, 주변에 산성을 두어 관방 체계를 완비하였다. 그리고 도성 내부는 5부 5방으로 구획하여 계획적인 도성제를 마련하고, 왕궁을 포함한 중앙 행정 관서, 의례 공간으로 종묘와 불교 사원, 귀족과 백성들의 생활 공간, 시장 등을 두었다.

사비에 대한 용례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사비원(泗沘原)’·‘사비동원(泗沘東原)’·‘사비서원(泗沘西原)’·‘사비지궁(泗沘之宮)’·‘사비하(泗沘河)’ 등이 보이고, 『삼국유사』 왕력 조와 기이편 남부여·전백제 조에 ‘사자(泗泚)’·‘사자하(泗泚河)’ 등이 있다. 그리고 후대 기록에서도 ‘사비’와 ‘사자’가 혼용되어 기록되고 있는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그런데 ‘사비’의 어원이 ‘소부리’라는 점에서 ‘사자(泗泚)’는 ‘사비(泗沘)’의 오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변천]

백제는 538년(성왕 16) 웅진에서 사비로 왕도를 옮겼다. 660년 나당군이 사비성을 점령한 뒤 당나라가 백제도호부를 설치하여 통치하려고 하였으나 661년 백제도호부가 폐지되었다. 이후 웅진도독부 단일 체제로 하여 7주 51현을 설치하였고, 웅진도호부를 웅진에서 사비로 이주시켜 운영하였다. 671년 신라는 소부리주를 설치하였고, 686년(신문왕 6)에 군으로 바꾸었다. 경덕왕 때인 757년 부여군(扶餘郡)으로 바꾸어 웅주(熊州) 관할 아래 두었고, 석산(石山)·열성(悅城)의 두 현을 예속시켰다.

[의의와 평가]

사비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왕도였으며, 정연한 조방제가 적용된 최초의 계획 도시였다. 당시 조성되었던 왕도 관련 시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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