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02
한자 趙愼-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덕림로 367[점상리 산168-1]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 시기/일시 1734년 - 조신의묘 비석 재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조신의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조신의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조신의묘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조신의묘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덕림로 367[점상리 산168-1]지도보기
성격 능묘
관련 인물 조신
봉분 크기/묘역 면적 높이 200㎝, 너비 72㎝, 두께 42㎝[묘비]
소유자 종중
관리자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점상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조신의 묘.

[개설]

조신의묘는 고려 말에 회양부사를 지낸 문신 조신(趙愼)의 묘이다. 조신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본명은 조사렴(趙思廉)이다. 1368년(공민왕 17) 조신의 형 조사공이 신돈을 살해하려는 모의를 꾸미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자 조사렴은 ‘조신’으로 이름을 바꾸고 부여 지역에 은거하였다. 조신부여 임천면(林川面)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이색·정몽주 등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태종 이방원을 가르쳤다고 하며, 태종은 조신의 사후 무학대사를 보내 묏자리를 잡게 하고, 수묘군을 보내 조신의묘를 관리하게 하였다. 조신은 정3품 통훈대부로 추증되고, 후손 역시 관직에 등용되었다. 조신의묘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위치]

조신의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덕림로 367[점상리 산168-1]에 있다.

[변천]

조신의묘 묘비는 8대손 조속(趙涑)이 흩어진 기록을 모은 것을 7대손 조박(趙璞)이 짓고, 충청감사에 재임 중이던 조형(趙珩)이 썼다.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7세기 중엽에 묘비를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세월이 지나 글자를 판별할 수 없게 되자 10대손 조현명이 1734년 10월 다시 세웠는데, 이때는 조최수(趙最壽)가 글을 짓고, 조현명이 글씨를 썼다.

[형태]

조신의묘 봉분 앞쪽 좌우에는 2개의 묘비가 배치되어 있다. 하나는 17세기 중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하나는 1734년 세워졌다. 왼쪽의 오래된 묘비는 사각형의 대좌에 비신을 세운 형태인데, 비신의 머리 부분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오른쪽의 묘비는 2중의 사각형의 대좌 위에 오석의 비신을 세우고, 위에 팔작지붕의 지붕돌을 올린 구조이다. 묘비는 높이 200㎝, 너비 72㎝, 두께 42㎝ 규모이다.

[금석문]

조신의묘 왼쪽 묘비에는 ‘고려국 봉상대부 회양부사 조공휘신지묘(高麗國 奉常大夫 淮陽府使 趙公諱愼之墓)’라고 쓰여 있으며, 뒷면에도 명문이 있으나 선명하지는 않다. 마지막 부분에 7대손 조박이 짓고, 조형이 썼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중엽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묘비는 전면에 ‘고려 봉상대부 회양도호부사(高麗 奉常大夫 淮陽都護府使)’라고 새겨져 있으며, 측면과 후면에는 비문을 작성하게 된 경위와 조신의 생애와 가족 관계, 후손 등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현황]

조신의묘는 봉분 앞에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상과 향로석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봉분의 좌우로 두 개의 비석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앞에는 좌우에 장명석, 석인상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신의묘는 부여 지역에 은거한 조신의 생애 및 활동을 알 수 있는 문화재로 가치가 높다. 특히 두 개의 묘비가 남아 있어 묘비의 건립 경위 등이 구체적으로 파악되며, 시기별 묘비 형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