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15
한자 義烈祠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29번길 11-33[동남리 산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23년연표보기 - 의열사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71년 - 의열사비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월 8일연표보기 - 의열사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의열사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의열사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의열사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29번길 11-33[동남리 산3]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홍가신|이존오|정택뢰|황일호|성충|흥수|계백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200㎝[높이]|58㎝[너비]|39㎝[두께]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의열사의 건립과 제향 인물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석.

[개설]

의열사비(義烈祠碑)의열사(義烈祠)의 건립 과정과 의열사에 제향하는 인물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비이다. 의열사는 1575년(선조 8) 부여현감 홍가신(洪可臣)이 건립한 사당이며, 1578년(선조 11) 사액받았다. 의열사에서는 부여 지역 출신인 백제의 3충신, 고려의 이존오(李存吾), 조선의 정택뢰(鄭澤雷), 황일호(黃一皓)를 제향하였는데, 관련 내용을 의열사비에 새겨 놓았다. 의열사비는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건립 경위]

의열사비는 1723년(경종 3) 충청남도 부여군 용정리 망월산에 세웠는데, 비문은 정호(鄭澔)가 찬하고 이간(李柬)이 썼으며, 이현지가 새겼다. 1971년 의열사를 이건할 때 의열사비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위치]

의열사비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29번길 11-33[동남리 산3] 의열사 왼쪽에 있다.

[형태]

의열사비는 높이 200㎝, 너비 58㎝, 두께 39㎝이다.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형태이다. 대좌의 윗면에는 간략한 복련(覆蓮)이 음각되어 있으며, 네 모서리는 반전하고 있다. 대좌 위에 세워진 비신은 화강암으로 각 모서리를 깎았으며, 비문은 4면에 걸쳐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우진각 지붕의 형태인데 처마의 반전이 있다.

[금석문]

의열사비 비문에는 홍가신이 1575년(선조 8) 지역 출신이었던 백제 충신 성충(成忠)·흥수(興首)·계백(階伯)과 고려 시대 신돈을 탄핵하다 쫓겨난 충신 이존오의 충의가 후세에 전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의열사를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광해군 연간 정택뢰를 배향하고, 인조 때의 지사 황일호를 추가로 배향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서체는 해서체로 되어 있으며 현재 탁본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의열사비의열사의 건립 경위와 사우에 배향된 인물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비석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 시대 부여 지역 출신의 충신을 배향하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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