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 진주 강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41
한자 長蝦里 晉州 姜氏 集姓村
이칭/별칭 장정마을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진주 강씨 집성촌.

[명칭 유래]

진주 강씨(晉州 姜氏) 집성촌인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長蝦里)는 조선 시대 임천군 남산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 때 장정리(長亭里)·후포리(後浦里)·탑리(搭里)·하곡리(蝦谷里) 일부를 병합하면서 장정리의 ‘장’ 자와 하곡리의 ‘하’ 자를 따서 장하리라 하였다.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로 개설되었다.

장하리는 고려 시대까지는 군사적 성격이 강한 지역이었다. 장하리의 옛 지명인 장정(長亭)의 ‘정(亭)’자가 들어간 곳은 대개 군대 주둔지였으며, 강 건너 파진산(破陣山)의 명칭에서도 군사적 성격이 드러난다. 장하리장정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장하리로 통합된 장정리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진주 강씨의 시조는 고구려의 병마원수 강이식(姜以式)이다. 진주 강씨는 5개 파로 나뉘어졌는데, 그중 부여 지역에는 고려 전기의 병부상서 강민첨(姜民瞻)[963~1021]을 중시조 1세로 하고 조선 중종 대에 좌부승지를 지낸 강경서(姜景敍)[1443~1510]를 파조로 하는 은열공파(殷烈公派) 후손들이 정착하였다. 17세기 중엽 강치손(姜致蓀)[?~?]이 호란(胡亂)을 피해 외가가 있는 장하리에 정착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장하리에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일설에는 강치손의 손자 강맹종(姜孟宗)를 입향조로 보기도 하는데, 강맹종이 장하리에 세거하고 있던 신창 맹씨(新昌 孟氏)와 혼인하면서 정착한 이후 진주 강씨가 신창 맹씨의 경제적 기반을 흡수하였다고 한다.

18세기 이후 집성촌인 장하리가 번성하였는데, 장하리는 종족 마을의 유지를 위하여 종회(宗會)와 가규(家規)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중반에는 상황리·하황리 풍양 조씨장하리 진주 강씨의 친목 모임인 강호동지회(江湖同志會)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자연환경]

장하리 진주 강씨 집성촌의 가옥들은 태성산을 배후 산지로 하여 동쪽 산록 10~20m 고도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금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 앞 충적지를 걸고 기름지다는 의미의 검신들이라고 부른다. 부여읍에서 규암나루를 거쳐 S자 곡선으로 흐르는 금강 변에 장하리가 있다.

[현황]

1980년 부여군 『통계연보』에 따르면 부여군의 진주 강씨는 총 103호에 인구 624명으로 확인되었고, 2000년 『부여통계연보』에 따르면 총 93호에 인구 288명으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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