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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마을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2002년 2월 4일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마을에서 나경수가 조사하였고, 제보자는 이 마을에 사는 박명우(남, 80세)이다. 귀성마을의 유래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그 중 하나는 귀성마을이 옛날부터 항상 고기가 많이 잡혀서 황금리로 불렸으나, 어느 해부턴가 마을 위로 남극노인성이 비추면서 장수마을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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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임회면에 있는 여귀산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 선녀가 가야금을 타는 ‘옥녀탄금형’의 산세여서 귀성마을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모두 똑똑하다는 이야기 구조로, 민간에서 전해지는 풍수설화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 2002년 2월 4일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마을에서 그 마을의 김상천(남, 72세), 박유홍(남, 67세), 박명우(남, 80세)가 구연하였다. 귀한 여자 산이라는 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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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오봉산에 얽힌 이야기. 오봉산의 지명 유래와, 일제강점기 때 강제노역으로 만든 산 정상의 도리장에 얽힌 이야기이다. 2002년 2월 4일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마을에서 그 마을에 사는 박명우(남, 80세), 김정화(남, 62세)가 구연하였다. 오봉산은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오봉산이라고 불렀다. 오봉산에는 돌로 쌓은 도리장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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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는 굴포방조제 축조담.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고산 윤선도(尹善道)가 임회면 굴포리에 와 있을 때였다. 윤선도는 굴포원둑(굴포방조제)을 축조하여 백동 앞 갯벌을 농토로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원둑에서 100m 거리에 있는 ‘짹벌’과 연결하려고만 하면 무너지고, 또 쌓으면 다시 무너지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선도가 원둑에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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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탈상바위는 임회면 팽목항의 난부리해안에 있는데, 조도로 들어가는 배가 풍랑으로 뜨지 못하자 상주가 이 바위 위에 올라가서 탈상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부모 탈상을 하기 위해 조도로 가던 상주가, 풍랑으로 선로가 두절되자 바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이곳 팽목항에서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바람이 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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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강개머리라고 불렀으나 그 유래는 알 수 없고, 음과 뜻에 맞추어서 강계(江界)로 바꾸었다고 한다. 1720년 경 최초로 신안주씨가 정착하였고, 그 후 밀양박씨·김해김씨·청주한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에 여귀산(女貴山)[458.7m], 북쪽에 봉호산(峰虎山)[191.1m]이 있으며, 동쪽과 동남쪽으로는 남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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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의 전통 세습무계. 전라남도 진도의 무계 가운데 강씨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집안으로 무계 간 혼인에서 높은 빈도를 나타낸다.『전라도읍지』「진도군읍지」(1899년)편에 강천복(姜天福)·천소사(千召史) 부부는 무계라 명시하여 효행으로 진도의 인물 일곱 명 가운데 포함되었다. 강천복 집안 출신 인물로는 진도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강준섭(姜準燮, 1933년생)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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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고방리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에 삼별초군이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예전의 지명은 고방(古方)이었다고 하나, 석교리(石橋里) 동쪽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방(高方)이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창녕조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1895년 석교리에서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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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고방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석교중학교에서 고방리 방향으로 400m쯤 가다 우측 산길로 접어들어 300m 정도 가면 6기의 고인돌이 군집해 있었다. 또한 석교중학교 정문 앞 50m 지점 농로 옆에도 1기의 고인돌이 있었다. 이곳에 있었던 고인돌은 농지정리 과정에서 모두 유실되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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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원래 고산리의 명칭은 고산(鼓山)이었다고 한다. 고산은 옥녀가 가야금을 타기 위한 북을 의미하였으나 조선 시대부터 미화하여 고산(高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500년 경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에 살던 경주이씨 10대손 이현민의 아들이 고산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우리·매정리와 함께 고정리로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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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한 법정리.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한 법정리로서 중매리, 길우리, 고산리, 매정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고산리의 ‘고’자(字)와 매정리의 ‘정’자(字)를 따서 고정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우리, 고산리, 매정리를 병합하여 고정리라 하여 임회면에 편입하였다.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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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고정리 중매마을에 있는 옹기요지.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서 석교리로 가는 18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중매마을이 나온다. 중매마을 입구의 버스 정류장 맞은편 밭에 임회면 고정리 옹기요지가 있었다고 한다. 옹기요지 주변에는 옹기편과 더불어 도지미, 요벽편 등이 산재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모두 유실되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해방 후까지 옹기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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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정치인. 본관은 현풍(玄風). 1900년 5월 14일에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신동마을에서 아버지 곽안조(郭安祚)와 어머니 백충심(白忠心)의 5남 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목포상업학교(2회)를 졸업하였다. 임회면 면장과 제2대 전라남도 의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0년간 임회면 면장을 지내면서 도로, 저수지 건설 등 지역 발전에 많은 공을 세웠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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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민주적 태도로 더불어 사는 학생(도덕), 깊이 생각하고 마음껏 표현하는 어린이(창의), 소질을 계발하여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개척), 몸이 튼튼하고 마음씨가 고운 어린이(건강),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애호하는 어린이(가치 창조)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35년 3월 31일 석교심상소학교 부설 죽림간이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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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장구포리와 고산리 사이에 제방을 축조함으로써 넓은 옥토가 형성되어 광전(光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700년 경 함양박씨 박대승이 하미리에서 처음으로 들어왔고, 1730년경 전주이씨·진주하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항리·장구포리·하미리와 함께 삼막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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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광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광전 고인돌군은 두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는데 가군에 6기, 나군에 12기 등 모두 18기의 고인돌이 있다. 가군 고인돌은 삼막리에서 염태리로 가는 도로변의 광전리 입구 민묘 주위에 있고, 나군 고인돌은 삼막산 서쪽 사면과 이욱태씨 소유의 밭에 흩어져 있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했을 때 새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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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구불구불한 고랑동네라는 의미에서 굽은실이라 하였으며, 구분실(九分實)은 굽은실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 한다. 1550년경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에 살던 신안주씨 22세 주번(朱藩)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가 198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교리에서 분리되었다. 구분실리는 희여산[296m]에서 부용산[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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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구분실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석교리에서 봉상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 120m 지점에 고인돌이 있다. 이곳은 여귀산에서 봉상리 쪽으로 길게 이어져 내려온 지맥의 서쪽 경사면에 해당하는 곳으로 ‘배나무골들’이라 불린다. 고인돌은 봉상리에 거주하는 이병익씨 소유 밭에 5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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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구암사 입구의 자연석 위에 있는 입불. 석불 앞에 새로운 배례석을 놓았으며 상호는 불상이라기보다는 장승과 같은 해학을 풍기는 모습이다. 눈은 둥글고 툭 튀어나와 왕방울 눈을 하고 있으며, 코는 뭉툭하고 입은 작고 웃는 모습이다. 귀는 아주 작게 형식적으로 처리하였으며, 머리는 민머리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보이나 그 윤곽이 확실하지 않으며, 두 손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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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373번지에 있는 국악 관련 기관. 국립남도국악원은 국립국악원의 소속기관으로서 유서 깊은 남도의 예술문화를 향유하고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전속공연단인 남도국악단의 국악공연은 물론 일반인들의 국악연수, 국악체험과 국악 연구를 위한 국악 관련 국가 음악기관이다. 국악 전문연수와 공연을 통한 국악 보급 활동 및 국악을 통한 건전한 여가문화 선도와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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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는 나루. 예전 중선(中船)이 다니던 시절에는 조기잡이 배들이 많이 출항하였으며, 굴포항은 1978년 6월 14일 지방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굴포나루는 진도군 임회면 남부의 굴포리와 짝별리 사이 만입부에 위치하고 있다. 굴포나루 남동쪽에는 보물섬 소동이 일어났던 죽도(竹島)가 위치한다. 굴포나루를 나서면 구자도와 조도면의 독거도(獨巨島) 등으로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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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서 매년 모시는 동제의 제당.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마을 제사인 당제를 모셔왔다. 그러나 2005년부터는 모시지 않는다. 당제를 모실 때 사용하는 제당을 이곳에서는 당집이라고 부르는데, 당집은 본래 두 곳이었으나 현재는 하나만 남아 있다. 당집 앞에 세워진 굴포신당유적비(掘浦神堂遺蹟碑)에서는 당을 짓고 당제를 지내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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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굴개 또는 굴포라 하였다. 1896년 굴포에서 남선리가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남선리를 병합하여 굴포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굴포리는 연대산[148.8m]과 소산[154m] 사이의 만입된 곳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이자 양항이다. 굴포리는 임회면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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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는 방조제. 굴포방조제는 1660년대 후반 윤선도(尹善道)[1587~1674]가 처음으로 막았다고 한다. 현재의 방조제는 1940년에 다시 축조하여 1946년 준공된 것이다. 굴포방조제 안의 간척지는 백동들이 되었다. 백동들을 농경지로 활용하기 위해 1942년 백동저수지를 축조할 때 이곳에 살던 20여 가구가 현재의 백동리 위로 이주하였다. 굴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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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황금리’라고 불리었으나 그 후 귀한 땅이라 귀(貴)자를 따고 길성(吉星)에서 성을 따서 귀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600년경 밀양박씨가 해남군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귀성리에는 총 59세대에 129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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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귀성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상만리에서 도로를 따라 국립남도국악원 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귀성리에 진입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귀성리 쪽으로 가다 보면 내리막길에 ‘팬래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이 유적은 팬래골 일대에 위치한다.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평행침선문과 물결무늬 등이 시문된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이곳은 여귀산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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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높다 하여 깃우(깃대)라고 불리다 길우가 되었다고 한다. 1538년 제주도에서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로 들어온 남양홍씨 홍태원의 아들 홍귀연이 길우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산리·매정리와 함께 고정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길우리는 배후에 발달한 저산성 산지의 북쪽 완경사면에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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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정치인. 제헌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다가 국회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진행 중 납북된 정치인이다. 1916년 9월 28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명슬리 상미마을에서 아버지 김천순(金天淳)과 어머니 김사단(金沙丹)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목포일보 편집장, 대한노총 목포지부 간사로 활동하다가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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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군인. 육군사관학교 7기 출신으로 육군39사단장, 2관구 사령관을 역임하고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군인이다. 1927년 9월 20일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 남선마을에서 아버지 김장배(金長培)와 어머니 박승심(朴承心)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 7기로 졸업하여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보병학교와 육군대학, 미국육군참모대학을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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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우산(牛山)이다. 1938년 7월 13일에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명슬리 상미마을에서 아버지 김병안(金秉安)과 어머니 조순심(曺淳心)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2년 조선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이후 진도공론사를 설립하여 사장으로 일해 오면서 『월간진도』 발행 겸 편집인, 전남일보 기자, 진도여자중학교 교사 등으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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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사회활동가. 1916년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에서 나정균과 박옥금의 사이에서 독자로 출생하여 석교리로 이거 후 평생을 살았다. 석교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8년 진도군 임회면 의용단장과 의용소방대장을 맡아 지역을 위해 일했으며, 1960년대부터는 석교초등학교 및 석교중학교의 사친회장과 기성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2년에 진도의 서부지역에 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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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설치한 조선 전기의 수군진. 전라수영(全羅水營)은 영산강 하류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왜구를 방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조정에서는 1423년(세종 14) 전라수영을 목포(木浦)로 옮겼다. 그리고 목포의 병선은 황원(黃原)의 남면 주량(周梁)[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수영의 병선 3,4척을 매달 윤번으로 진도의 서쪽 소가포(所可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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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임회면 남동리에서 백동리로 넘어가는 동령재 좌우 논밭에 3기가 흩어져 있다. 남동리 고인돌군은 1968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남해안 도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그 후 1979년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와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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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남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활터. 임회면 남동리 사대(射臺)는 남동마을 주민들에 의해 사장(射場:활터)으로 구전되어 왔다. 고지도에 의하면 임회면 남동리 사대는 선소 북서쪽의 가장 안쪽의 해안가에 표기되어 있고,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었다.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사대는 (재)전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시굴·조사되었다. 조사결과 70×90㎝ 규모로, 깊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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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 남동리에서 동령개로 넘어가는 약 1㎞ 지점, 도로 좌측에 1기의 선돌이 있다. 1979년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지표조사 시에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그 후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재조사하였다. 현재의 상태는 밑부분이 지표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으나, 현 높이는 90㎝, 최대 폭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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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남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선소. 1872년 『남도진여지도(南桃鎭輿地圖)』에 의하면 선소는 ‘전선건물소(戰船建物所)’로 표기되어 있어, 배의 출입과 건조 및 수리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진도 남도진성 앞 홍교에서 서쪽으로 약 400m 정도 들어가면 석축시설이 드러나 있다. 이곳은 남망산[119m]의 북쪽 사면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바다와 연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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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남쪽에 위치하는 남밖다리에 있는 동네라 하여 남동이라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 조선 시대 남도포영이 있었으므로 남도개·남도포·남도·남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850년 경 평산신씨가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이후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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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공원. 임회면 남쪽의 남밖다리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남동리(南洞里)라 하였으며, 남동소공원은 남동리에 있는 공원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2004년 5월부터 10월까지 국가지정 사적 제127호인 진도 남도진성 주위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건립한 공원이다. 진도대교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임회면 남동리 방향으로 가다 18번 국도에서 갈라진 비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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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896년 굴포리에서 분리되면서, 임회면의 남단에 있으며 산수가 아름다우므로 남선리(南仙里)라 하였다. 또한 도를 닦는 절이 있어 절골이라 부르다 쩍골로 불리기도 한다. 1800년 경 밀양박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850년 경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896년 굴포리에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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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 남선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 남선마을 동제는 ‘당제’ 또는 ‘당지‘라고 하며, 정월 대보름날 오후 6시경부터 지낸다. 예전에는 정월 초사흗날에 지냈는데, 초사흗날에 지낼 때는 정월 초하루부터 3일 동안 금기를 지켰으나 지금은 보름날 하루만 금기를 지킨다고 한다. 20여년 전까지는 큰마을 뒷산 바위 밑에 있는 제장에서 기우제도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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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477-1에 있는 미술관. 남진미술관은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河南鎬)가 개인 재산으로 세운 사설 미술관이다. 남진(南辰)이라는 이름은 미술관 주인의 이름인 하남호의 가운데 자인 ‘남’자와 부인 이름의 ‘진’자를 합하여 지은 것이다. 주인의 호(號)를 본떠 ‘장전(長田)의 집’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손재형의 제자인 서예가 하남호가 옛 집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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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산의 형세를 연(蓮)으로 보아 연동(蓮洞)이라 하였다. 연동 안에는 외연동과 내연동의 두 마을이 있었는데, 내연동은 연동의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152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880년경 밀양박씨가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내연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제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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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입향조인 선씨가 바다 건너에서 보니 거북이가 물 위에서 노는 것 같다 하여 동구지(動龜地)라 했으며, 동구지의 안쪽을 안동구지라 했다고 한다. 동구리(洞口里)는 동구지에서 유래하였다. 1820년 경 선씨가 전라북도 진안에서 완도로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동구리에 정착하였다. 처음에는 안동구지의 돌샘 근처로 들어왔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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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99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회면 죽림리에서 동헌리가 분리되었다. 대학봉[190m]에서 봉호산[191.1m]으로 이어지는 산릉과 여귀산[458.7m]에서 봉호산[191.1m]으로 이어지는 산릉으로 둘러싸여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하였다. 동헌리는 임회면 동쪽에 위치한다. 서남쪽으로는 강계리와 접하고 있다. 18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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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고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앞에 매화나무가 많았으며 바닷물이 매화나무 있는 곳까지 닿는다 하여 매착개[梅着浦]로 불리다 매차개로 변했다. 그 후 매화나무 옆에 정자를 지었다 하여 매정리(梅亭里)라 부르게 되었다. 1500년 경 경주이씨 이제현의 10대손인 이순의 셋째 아들이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에서 매정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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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는 ‘매시리’, ‘매스레’로 부르다가 매가 미로 변하였다. 그리고 마을 위치에 따라 상미·중미·하미로 구분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는 큰 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형체가 매화꽃 형국을 이루어 매시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명슬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상미리와 중미리를 병합하여 명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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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의 부친으로도 유명한 박덕인은 1827년경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138번지에서 세습무계 박헌영(朴憲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집안의 가업인 무업에 종사한 것으로 간주되며, 김해김씨와 결혼했다가 진원박씨와 재혼한 족보의 내용이 있다. 그러나 박씨 부인이 50여 세에 또 죽자 무업을 파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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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박칠만은 본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 202번지에서 아버지 박송암과 어머니 김용덕의 자녀로 출생하였다. 1947년 호적편제에 의해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로 본적이 변경되면서 호적에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574번지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집안사람 중에 국악동호인이나 기능인은 없다. 부인 김여심과의 사이에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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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몽항전을 이끈 삼별초의 장수 배중손을 기리기 위한 사당. 고려 1270년(원종 11)에 몽고 침략에 대항하여 거병한 삼별초 항쟁의 지도자 배중손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제향일은 6월 15일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임회면 굴포리 마을에는 당(堂)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는 농악을 연주하고 배중손 장군과 삼별초군, 고산 윤선도 제를 모시는 전통이 있었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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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백야동과 신동리의 이름을 따서 백동리라 하였다. 1450년 경 인천채씨가 처음으로 들어왔고, 1700년 경 청주한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야동·만세동·신동리를 백동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시켰다. 백동리는 희여산[26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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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신동마을 연대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연대지.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연대지는 신동마을 북동쪽 100m 지점 연대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상굴포와 짝별 사이에 내만 된 해안이 형성되어 있고 북동쪽으로는 상망거리(相望距離) 내에 여귀산봉수대가 위치한다. 이 여귀산 정상에서는 주로 북쪽 해안이 잘 조망된다. 연대는 정상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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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풍수지리상 봉상리의 지형이 봉황의 날개에 해당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1450년경 입향조인 정씨가 봉상리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1573년경에는 신안주씨 22세손 주보(朱寶)가 봉상리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 후 1800년경 진주하씨 하윤위가 임회면 하미리에서 봉상리로 옮겨와 살면서 현재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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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 봉상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석교리에서 송정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다 보면 봉상마을이 있다. 유적은 봉상마을의 서쪽 구릉에 위치한다. 유물은 구릉의 정상부와 북쪽 경사지에서 집중적으로 수습되었는데, 적갈색연질토기와 겹아가리토기의 아가리 등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여귀산에서 봉상리 마을로 이어지는 지맥의 낮은 구릉에 해당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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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뱀재 밑이 되며, 산의 모양과 산세가 뱀을 닮았다 하여 배암골, 뱀재, 뱀골, 사령, 사동(巳洞)이라 하였다. 1700년 초 김해김씨 김인석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전에도 구씨·안씨·강씨 등이 살았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폐동리를 병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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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사령리 사동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십일시리에서 매정리 쪽으로 약 1.5㎞ 정도 가면 사동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입구에서 100m 정도 마을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길 우측과 야산 서쪽 도로와 접하는 경사면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 시 새로이 발견된 유적이다. 길 우측 논두렁과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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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막리는 삼막봉 밑이 되므로 ‘삼막골’ 또는 ‘삼막’이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광전리, 선항리, 하미리, 장구포리를 병합하여 삼막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삼막봉(三幕峰)[258m]에서 내려온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산록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되어 있으며 그 아래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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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옛날에 마방역이 있던 마을로 상마(上馬)라 하였으며, 상만리(上萬里)는 상마에서 유래하였다. 1440년 경 경주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550년 경 밀양박씨·전주이씨 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귀성리·중만리를 병합하여 상만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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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인돌은 상만리 마을 내 민가에 위치하는데, 상만리는 여귀산의 지맥인 안산의 남동쪽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상만리 마을회관 오른쪽에 동복오씨 사우로 올라가는 길이 있으며,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중간쯤에 강문수씨 가옥이 있다. 가옥 안쪽 담장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대형 석재가 있다. 하부구조나 받침돌은 현재 담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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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675번지에 있는 옛 절터. 상만사는 원래 상만사(上萬寺)였다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전하는 기록은 없다. 상만사지에 있던 절 이름은 한동안 만흥사(萬興寺)라고 불려오다가 현재는 구암사(鳩岩寺)로 불린다. 태고종에 등록되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로 등록된 상만리 오층석탑이 상만사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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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예전에 명슬리는 매시리·매스레로 불렀다. 후에 매가 미로 변하였고, 미시리의 위쪽에 위치한다 하여 상미리(上彌里)라 부르게 되었다. 1400년경 방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705년경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미리와 함께 명슬리로 병합되어 임회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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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산의 형세를 연꽃으로 보아 연동(蓮洞)이라 하였다. 연동 내에 외연동과 내연동의 두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외연동(外蓮洞)이 상연리(上蓮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67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850년경 도강김씨가 전라북도 무안군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상연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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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을 중심으로 한 관광권역. 서망관광권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팽목항, 서망항, 서망해수욕장, 진도 남도진성, 백동 무궁화동산, 남진미술관, 상만 비자나무 등을 주요 관광 자원으로 한다. 서망관광권은 진도군에서 관내 관광지를 소개할 때 사용하는 지리적 권역의 하나이다. 서망(西望)이란 명칭은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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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원래 명칭은 서망(鼠望)으로,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후에 마을 이름에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를 쓰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마을의 위치가 서쪽이니 발음이 같은 서(西)로 바꾸어 서망(西望)이 되었다 한다. 175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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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서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서망리 고인돌군은 두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가군에 17기, 나군에 20여 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으나 나군의 경우 심하게 파손되어 자연석과의 구분이 모호한 것들이 많다. 가군 고인돌은 팽목에서 서망리 마을로 들어가는 오른쪽 밭에 있고, 나군 고인돌은 서망리 마을 좌·우측 밭과 민가에 흩어져 있다. 1979년 전남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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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서망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 서망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공동으로 제를 올린다. 마을사람들은 이 제를 ‘당제’라고 하는데, 원래는 정월 초사흗날에 지냈으나 2000년 이후부터 정월 보름에 지낸다. 정월 초사흗날에 지낼 때는 정월 초하루부터 3일 동안 금기를 지켰으나 지금은 보름날 하루만 가린다. 제를 지내는 시간은 아침 7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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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서망리에 있는 국가어항. 국가어항은 이용 범위로 보아 전국적 어업 근거지이다. 국가어항의 지정 요건은 현지 어선의 수가 80척 이상이고, 그 합계 총 톤수가 200톤 이상인 항구·포구이다. 외래 어선이 연간 100척 이상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항포·포구 및 도서에 위치하여 기상 악화 시 대피항의 기능을 해야 한다. 어획고는 연간 1,000톤 이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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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서망리에 있는 해수욕장. 서망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가 고와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이용하기에 적당하다. 주변 바다는 청정해역으로 어족 자원이 풍부해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서망해수욕장은 서망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임회면 남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팽목항과 서망항 중간 만입부에 자리한다. 18번 국도에서 갈라진 2차선 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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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예전에 돌다리가 있었다고 하여 독다리, 돌도리라 하다가 석교리(石橋里)라 하였다. 1780년 경 남평문씨가 처음 들어왔으며, 이후 밀양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석리·고방리를 병합하여 석교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군 조례 제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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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석교리 고인돌군은 두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가군 고인돌은 석교리 석교중학교에서 동쪽 고방리로 가는 농로를 따라 400m 정도 가서 오른쪽 산길로 가면 6기가 군집해 있다. 나군 고인돌은 석교리에서 봉상리로 향하는 도로의 좌우측에 있다. 석교리 고인돌은 1968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남해안 도서 지역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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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전인적인 성장의 바탕 위에 스스로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자주인), 기초·기본 학력을 충실히 갖춘 실력 있는 사람(실력인), 민주시민의 자질함양과 항상 봉사하는 사람(도덕인), 창의력을 발휘하여 미래 사회를 선도하는 사람(창조인), 심신이 단련되고 정서가 순화된 건강한 사람(건강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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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참되게 슬기롭게 튼튼하게’라는 교훈 아래, 착하고 곧은 마음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학습 방법을 익혀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살려 자기 재주를 기르는 어린이,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하는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0년 11월 15일 석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고, 193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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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분교. ‘참되게 슬기롭게 튼튼하게’라는 교훈 아래, 착하고 곧은 마음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학습 방법을 익혀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살려 자기 재주를 기르는 어린이,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하는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46년 10월 1일 용등공립국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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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분교. 착하고 곧은 마음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학습 방법을 익혀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살려 자기 재주를 기르는 어린이,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26년 11월 30일 석교국민학교 죽림간이학교로 개교하였고, 1949년 11월 28일 죽림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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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학이 사는 곳이라 하여 선학(仙鶴)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 지형이 마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산항(蒜項)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400년경 김해김씨가 선항리의 비옥한 토지와 학이 사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 후 제주양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전리·하미리·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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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선항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진도읍에서 임회면으로 향하는 18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선항마을이 나온다. 유적은 선항마을의 북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삼막봉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선항마을 뒷산(190m)의 서쪽 경사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마을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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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정리와 함께 병합하여 봉상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희여산[269m] 질매봉[258m]-연대봉[148.8m]-여귀산[458.7m]으로 이어지는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 입지한다. 취락은 이들 산지의 남서쪽 완경사면에 위치한다. 송월리 남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송곡제(松谷堤)는 송월리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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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송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송정리 마을에서 상만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다 보면 길 왼쪽에 송월리가 자리 잡고 있다. 송월리 고인돌은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했을 때 새로 발견된 유적이다. 송월리에 산재하고 있는 고인돌 가운데 2기가 받침돌을 괴고 있어 기반식(남방식, 바둑판식) 고인돌의 형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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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 송월마을에 있는 청동기에서 고려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봉상리에서 상만리로 가다 보면 송정마을을 지나 도로 왼쪽으로 평지가 펼쳐지는데, 이곳에 청동기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산포되어 있다. 이곳은 마을주민들이 ‘간대들’이라 부르는 곳으로, 여귀산에서 뻗어내린 지맥과 지맥 사이의 곡간지에 해당한다. 유물산포지에는 파괴된 고인돌의 덮개돌들이 산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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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송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송정리 고인돌군은 두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가군 고인돌은 송정리 마을 앞 논과 논두렁에 20여 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송정리에서 ‘돌막고개’로 100m 정도 올라가면 우측 민묘 바로 위에 고인돌 1기가 있으며, ‘돌팍고개’ 정상 이길홍씨 소유 밭에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고인돌 1기가 있다. 나군 고인돌은 송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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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오른쪽에 노송이 울창한데서 송정리(松亭里)가 유래되었다 한다. 1500년대에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희여산[269m]-월출산[110m]-질매봉[258m]-연대봉[148.8m]-여귀산[458.7m]으로 이어지는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 입지한다. 취락은 이들 산지의 동쪽 완경사면에 위치한다. 송강제(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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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신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송정마을에서 신동간 길을 따라 왼쪽 200m 지점 김현숙 씨 소유의 밭에 고인돌 1기가 있다. 경지 정리 전에는 2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한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했을 때 발견되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 아래쪽이 지표 아래에 묻혀 있어 받침돌의 유무 등 형식을 확인할 수 없으며, 아래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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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동리(新洞里)라 하였다. 1700년경 황씨가 의신면 금갑리에서 임회면 신동리로 들어왔으며, 1750년경 진주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야동·만세동과 함께 백동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연대산[148.8m] 남서쪽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신동리 배후의 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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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십일시리(十日市里)는 십일 간격으로 시장이 서는 장터에서 유래하였다. 1890년 경 밀양손씨 손화삼이 임회면 연동리에서 십일시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가 1943년 십일시리로 분리되었다. 십일시리는, 임회면과 지산면 주민들이 물자와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서는 곳이다. 처음에는 10일에만 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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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위치한 정기시장. 십일시는 열흘마다 장이 서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열흘마다 한번씩 10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섰으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5일장으로 변하였다. 진도군에는 이미 끝자리가 5일인 날에 서는 오일장이 있었고, 인근 장시와의 장날 중복을 피하기 위해 5·10장이 아닌 4·10장으로 선다. 4일보다는 10일이 큰 장날로 그 규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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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산. 여귀산은 전라남도 진도군 남동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세의 규모도 커서 임회면 동북부를 거의 덮고 있다. 임회천의 발원지이며, 18번 국도가 남쪽 산록을 지난다. 진도군 임회면 용산리 용호마을에서 보면 산의 모습이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녀처럼 보인다고 한다. 여귀산은 그저 평범하게 보이지만 오르면 산록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식생이 무척 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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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의 여귀산에 있는 봉수대의 터.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정세를 중앙에 알리던 제도였다. 조선시대 봉수는 전라도에 43개가 있었는데 진도에만 여귀산, 굴포, 삼당산, 첨찰산 등 다섯 곳이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진도의 경계에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알 수 있다. 삼당산봉수와 굴포봉수는 여귀산의 보조봉수로서 여귀산봉수에 연락했고, 여귀산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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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에 연못이 있었으므로 연못골·연동이라 하였다는 설과 산의 형세를 연(蓮)으로 보아 연동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팽목리를 병합하여 연동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희여산[269m]에서 제등[122m]으로 이어지는 산릉과 희여산[269m]에서 한복산[23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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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죽림사지에서 북쪽으로 50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절터. 영흥사는 1930년경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절터는 높이 1.2~1.5m의 석축 위에 동서 25m, 남북 15m의 평지가 있다. 이곳이 절터라면 작은 암자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 앞에 1962년에 세운 「영흥사창건주김남옥대선사비(永興寺創建主金南玉大禪師碑)」(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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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800년 경 광산이씨 이종달과 진주강씨 강극세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호구리·도장리와 함께 용호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여귀산[458.7m]에서 분기한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입지한다. 산록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되었다. 용산제(龍山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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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한 법정리. 용산리와 호구리의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호구리·용산리·도장리를 병합하여 용호리라 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여귀산[458.7m]에서 분기한 산릉을 배후 산지로 하고 있다. 용호리는 산릉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남쪽에는 용산제(龍山堤), 남서쪽에는 호구제(虎口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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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정치인.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송암(松巖). 1918년에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서 아버지 이기표(李基表)와 어머니 임옥심(林玉心)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4년 4월 26일에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45년에 일본 메이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제6대, 제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국회의원 재임 시 ‘자본시장육성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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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면(面). 임회면은 법정리 13개, 행정리 37개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로는 석교리(石橋里)·삼막리(三幕里)·용호리(龍虎里)·고정리(高亭里)·사령리(巳嶺里)·명슬리(鳴瑟里)·봉상리(鳳翔里)·상만리(上萬里)·죽림리(竹林里)·백동리(白洞里)·굴포리(屈浦里)·남동리(南洞里)·연동리(蓮洞里)가 속해 있다. 또한 임회면에는 유인도 1개와 무인도 10개가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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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있는 민속놀이 전수관. 임회면 민속놀이 전수관은 인간문화재였던 고 장성천(임회면장 역임) 선생이 1970년대에 십일시 우시장 도축 건물을 개조해 전수관으로 운영하면서 설립되었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 산86-5번지에 있다. 현재 임회면 민속놀이 전수관에서는 진도북놀이와 남도민요 등을 전수하고 있으며, 임회면 석교리 박영수씨가 관리를 맡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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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의 전체 경지면적은 논이 22.2㏊, 밭이 23.4㏊로 총 45.6㏊이다. 그리고 임야가 222.2㏊이다. 십일시마을 내에 포함된 경지면적은 적으나 농업종사자가 많은 이유는 소포만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실제로 십일시마을 거주자의 다수가 소포만 간척지에 농지를 소유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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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십일시마을에는 총 3개의 다리가 있다. 가장 중요한 다리는 십일시교로 1932년 진팽선(珍彭線)에 놓였다. 연장 36m, 교폭 6m의 혼응토조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한동안 십일시마을과 진도읍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1994년에 새로 건설된 다리는 본래 다리가 있던 곳에서 약간 옆으로 이동하여, 연장 30m, 교폭 10.5m로 개축되었다. 또다른 다리는 홍수가 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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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이루어진 조사에 의하면, 십일시마을의 취업자는 총 275명이었다. 취업자 가운데 남자는 131명, 여자는 144명이었다. 농업,임업,수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27명으로 남자가 50명, 여자가 77명이었다. 전기,가스,수도,위생시설 서비스업 종사자는 53명으로, 남자가 30명, 여자가 23명이었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79명으로, 남자가 36명, 여자가 4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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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상가번영회와 시장연합회 등이 결성되어 활동을 했으나, 상가번영회는 1990년 이전에 해체되었고, 시장연합회는 활동을 중지했다. 농업인은 있으나, 작목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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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수원의 공급이다. 십일시마을에는 저수지가 없다. 이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농사와 관련한 물을 간척지의 중간에 흐르는 담수와 수장동 저수지에서 공급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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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장옥:간척사업을 통해 현재의 장터[석교리 245-1번지]가 개설된 것은 1964년 10월 1일이었다. 부지면적은 2,937㎡이고, 매장면적은 396㎡이다. 이때 시장 내의 상설점포수는 12개였으나, 현재에는 3곳만 영업하고 있다. 장터의 장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상인과 소비자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상가:영업 중인 상설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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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십일시마을에 형성된 장시는 10일에 한 번씩 열렸으나 장시가 번성하면서 4일에도 장이 열린다. 장이 번성한 이유는 임회면과 지산면, 조도면 사람들이 주로 이 시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곳 주변 사람들에게 진도읍시장은 거리가 멀뿐더러 교통도 불편했다. 따라서 외부에서 상인들이 많이 들어왔고, 우시장도 크게 번성하여 시장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로 우시장이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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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 석교리는 본래 진도군 임이면(臨二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돌다리가 있다고 하여 독다리, 또는 석교로 불렸다. 『호구총수』(1789)에는 석교리가 임회면(臨淮面)에 속하며, 상석교리(上石橋里)와 하석교리(下石橋里)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석교의 지명과 관련된 석교장(石橋場)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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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터[시장]:새장터가 형성되기 이전의 장터로, 새장터가 생기면서 구장터로 부르고 있다. 현재도 새장터와 함께 4일과 10일에 장이 선다. 콧대바위[산]:봉화산을 달리 이렇게도 부른다. 봉화산의 정상에 바위무더기가 있는데, 바위를 아우른 산의 형상이 사람의 콧대처럼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다. 봉화산[산]:십일시마을 서쪽에 있는 산으로, 학교까끔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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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장터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그러므로 마을사람들에게는 장이 서는 4일(4일, 14일, 24일)과 10일(10일, 20일, 30일)이 가장 활기있는 날이다. 따라서 일년이나 한달을 주기로 움직이는 여느 마을과는 달리 장이 서는 4일과 10일을 주기로 순환되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일장과 십일장 중에서 역사가 더 오래된 십일장이 현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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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이엉얹기 지금은 초가집이 없지만 1960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래서 이달에는 이엉얹기가 중요한 세시행사였다. 볏짚을 엮어서 마람을 엮어 새로 지붕을 얹는 것이다. 십일시장터의 장옥도 1960년대 이전에는 초가였다고 한다. 지붕을 개량한 연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제보자를 만날 수는 없었으나, 대부분의 연로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슬라브로 된 장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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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시제모시기 10월에는 각 문중별로 시제를 모신다. 제각이 있는 문중에서는 제각에서 모시지만 그렇지 않은 문중에서는 큰집에서 시제를 모신다. -메주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짚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운다. ⑶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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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동계 매년 12월 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에서는 일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또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은 이날 동계회원으로 가입한다. 십일시마을에서는 1943년부터 작성한 동계 문서가 전해오고 있다. ⑵ 세시풍속 -동지 이날 팥죽을 쑤어먹는다. 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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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장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⑶ 생업력 이달에 대파와 월동배추, 봄동을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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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설날(음력 1월 1일) 설날에는 차례를 지낸다. 십일시마을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 12시가 넘어서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고 설날 이른 아침에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다. 차례상을 차리는 시간은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차례음식은 일반 기제사와 같은데 메 대신 떡국을 올린다는 점이 다르다. 일부 집안에서는 메와 떡국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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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하리드리날 옛날에는 이날 아침에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 아침 집안에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비책으로 아이들이 앞에서 왼새끼로 꼬은 새끼줄을 끌고 가면 뒤따르는 아이들이 “뱀땔자, 뱀땔자.” 하면서 새끼줄을 쳤다고 한다. 또 이날에 손끄스럼이 일어나지 마라고 콩을 볶아먹었다고 한다. 하드렛날 먹는 칡은 약이 된다고 하여 이날 칡을 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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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부녀회나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봄에 여행을 가기도 한다. ⑵ 세시풍속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이날 흰나비를 보면 그해에 상자(喪者)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청명,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⑶생업력 4월 15일경 대파를 심는다. 조생종 벼의 경우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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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경로잔치 십일시마을에서는 2년에 한 번씩 경로잔치를 했으나 3년 전부터 중단하고, 5월 8일 어버이날 경로당에서 간단히 다과를 준비해서 노인들을 대접하고 있다. 이때 들어가는 비용은 마을기금에서 충당한다. 마을기금은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운상계에서 ‘천돈’ 명목으로 받은 것을 적립한 것이다. ⑵ 세시풍속 -4월 초파일 불교신자들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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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단오날 이날 익모초, 쑥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리면 약이 된다고 하였다. ⑶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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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유두 유두는 ‘노는 날’ 이라고 하여 밀개떡,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이날은 도랑신네가 일년농사를 결정하는 날이어서 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었으나 지금은 유두를 쇠는 집이 없다고 한다. -복날 삼복에는 시집간 딸들이 복달음을 하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을 찾기도 했다. ⑶ 생업력 이달에는 벼의 생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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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면민체육대회 8월 15일 근경에 면에서 주관하는 면민체육대회가 개최된다. 면민체육대회에는 임회면 사람들이 참여하여 축구, 배구, 달리기, 씨름 등 운동경기를 벌인다. 마을행사는 아니지만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단합심을 키우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⑵ 세시풍속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는데, 백중장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십일시장의 장터가 미어질 정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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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추석노래자랑 십일시마을은 임회면의 중심지로서 추석날 저녁에 개최되는 추석노래자랑에는 마을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마을청년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199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인기가수를 초청할 정도로 성대하게 열렸다. 1990년대 후반에 중단되었으나 2005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명절을 찾아 고향을 찾은 임회면 사람들이 함께 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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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총회(동계) 십일시리는 동계와 마을총회가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동계의 정기회의가 곧 마을총회인 것이다. 동계는 1926년에 마을 경조사를 함께 치르기 위해 처음 결성되었으나, 기록은 1947년부터 남아 있다. 각지의 상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십일시시장으로 모여들었고, 이들 가운데 나정순외 53명이 동계를 조직했다. 동계의 회칙 중에 시대적 흐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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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석교초등학교를 다닌다. 석교초등학교는 1919년 11월 15일에 석교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했다. 1909년에 개교한 진도초등학교에 이어 진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학교이다. 십일시마을에는 1964년 12월 19일에 설립된 석교중학교가 있으며, 1982년 3월 10일에 설립한 석교고등학교가 있다. 많은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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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명으로 배구동우회를 결성하여 종종 배구를 하고 있다. 한때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당구장이 폐업을 할 만큼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윷놀이는 명절 때나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가끔 이루어진다. 2005년에 게이트볼경기장이 완성되었으나,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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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인근 주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출신지역별로 계를 하고 있다. ‘지산면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 남자 11명, 여자 10명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데, 남자계는 1990년대 중반에 조직되었고, 여자계는 2001년에 조직되었다. 이 계의 결성목적은 친목도모와 목돈마련, 경조사 챙기기 등이다. 남자는 일년에 한 번, 여자는 두 달에 한 번 모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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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현재의 시장터는 1962~1963년경 지산면과 임회면 사람들이 부역으로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그전의 시장터는 현재 상가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시장터의 면적을 넓히기 위해 제방을 쌓은 것이다. 새롭게 장터가 마련되면서 시장이 크게 번성했는데, 마을에 텔레비전이 보급될 무렵인 1970년대 중반에는 시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많아 걸어다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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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1890년경 밀양손씨 손화삼이 임회면 연동에서 거주하다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성씨는 밀양박씨, 김해김씨, 경주이씨, 전주이씨 등이고, 이외에 강씨와 장씨, 최씨가 있다. 밀양박씨가 전체 성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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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면소재지이기 때문에 다섯 군데의 의약시설이 있다. 병원시설로는 임회보건지소가 있고, 1990년대 초에 개원한 그린의원과 2005년에 개원한 전남의원이 있다. 약국으로 매정약국과 구분실한약국이 있다. 진도군에 있는 총 11개의 약국 가운데 2개가 십일시마을에 있다는 점과, 진도읍 이외에 개원한 총 5개의 병원 가운데 2개가 십일시마을에 있다는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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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면 십일시마을은 석교리에 포함된 행정리의 하나이다. 석교리는 십일시, 고방, 석교, 구분실을 포함한 법정리의 명칭이다. 따라서 석교리라는 명칭은 때로는 행정리로, 때로는 법정리로 사용되고 있다. 십일시마을은 임회면의 중심지이자, 면소재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1968년에는 106가구였으나, 2005년에는 188가구로 가구수가 늘어났다. 일반적인 농촌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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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리에는 본래 4개의 교회가 있었으나, 현재는 석교중앙교회, 임회제일교회, 제칠일안식일석교교회가 있다. 십일시마을에는 석교중앙교회가 위치해 있다. 교회는 많지만 기독교인은 많지 않다. 천주교회인 석교 공소가 1985년 10월에 신축, 축성되었으나 지산면과 통폐합되었다. 유교와 관련한 석교리의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밀양박씨 휘식 36위가 안치된 모충사(慕忠祠)와 밀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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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6 그룹의 친구관계가 있다. 친분이 돈독한 사람끼리 모이는데, 나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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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에는 수대를 거주한 토박이가 거의 없다. 오랫동안 거주했던 사람들도 2~3대에 불과하다. 장사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십일시마을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 내에서 혈연 혹은 친척관계가 그다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끼리 계를 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마을에서 형제계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약 20가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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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진도군 내에서 이루어졌는데, 특히 지산면과 임회면이 많다. 포구를 끼고 있어 조도면 사람과의 결혼이 다수 성사되었다. 해남사람과의 결혼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가까운 인근 지역 거주자끼리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지역과의 결혼이 금지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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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진도군 서남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석교리의 한 마을로, 절대적 위치는 남위 34도 24분 38초와 동경 126도 11분 29초 지점(마을회관)에 해당한다. 임회면과 지산면의 경계지점으로 임회면에서는 서쪽의 중앙지점이고, 동쪽의 지산면에서는 서쪽 끝 경계지점에 위치한다. 십일시마을은 진도군에서 남쪽 팽목항으로 이어지는 18국도를 따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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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발달하면서 진도 역시 광주, 목포 등 도시와의 연결이 편리해졌다. 이와 함께 농수산물은 대도시로 직접 출하되고, 유통업자들이 자가용을 이용해 생활필수품을 소비자의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면서 장시의 기능이 현저히 쇠퇴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군 단위의 농수산물집하장은 소량 다품목 생산에 의존하는 영세한 소농의 생산물을 공동 출하하고, 규격 상품화를 촉진하며, 생산자의 조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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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군거본능에 따라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주거지 선택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토지로부터 보장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주농업이 가능한가의 여부일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의 조건으로 지리,생리(生利),인심,산수를 들고 있는데, 생리가 바로 정주농업의 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땅이 기름져야 하고, 다음으로 배와 수레, 사람과 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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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시장은 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영역(market), 또는 그러한 상호작용이 행해지는 장소(marketplace)를 말한다.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하는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시장은 저자, 장시, 장문, 장터, 장, 시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기시장을 장시라고 지칭한 경우가 많았으며, 지방에 있는 시장은 향시라고 하였다. 장시란 시장 중에서 일주일이나 순(旬, 열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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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지역 물품을 상호 교환하는 장시는 과거 한때 지역의 중추적인 중심 역할을 했으며, 장날은 인근지역 사람들의 잔칫날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장시는 양적, 질적으로 쇠퇴를 거듭했다. 장시가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요인으로는 소득 증대, 교통,통신의 발달, 대중매체의 확산, 농산물 및 공산품 유통구조의 변화 등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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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있는 임회면 관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진도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진도읍], 6개 면[고군면, 군내면, 의신면, 임회면, 조도면, 지산면] 중 임회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임회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임일면과 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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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일대의 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 백제 때는 매구리현(買仇里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제도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첨탐현(瞻耽縣)으로 개칭되면서 뇌산군(牢山郡)[嘉興縣]의 영현이 되었다. 첨탐현(瞻耽縣)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임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임회현은 폐현되어 진도현에 합해졌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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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장구포리에 위치했던 나루. 1975년 소포방조제가 축조되기 전까지는 바닷물이 임회면 십일시리까지 드나들었다. 썰물 때도 지금의 조류지 정도의 개용이 임회면과 지산면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장구포 원둑 끝머리에서 앵무리까지 나룻배가 다녔다. 소포만을 막기 전에는 길이가 긴 포구였기 때문에 장구포(長久浦)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 뒷산이 장고와 같이 생겨 장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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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있는 행정리. 장구포를 처음에는 ‘새터’라고 하다가 그 뒤에 하늘의 덕이 있다는 의미로 ‘천덕리’라고 하였으며, 소포만을 막기 전 긴 포구를 이루었다 하여 ‘장구포’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 뒷산이 장고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장고포’라 불리다가 와전되어 ‘장구포’라고도 한다. 1850년경 진도군 군내면에서 김해김씨가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그 뒤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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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장성천은 20세 때부터 북놀이 가락과 장구, 아쟁, 판소리 등을 배웠다. 한편, 행정공무원으로 출발하여 면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1987년 8월 25일에 「진도 북놀이」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면서 예능보유자 지정을 받았다. 취미로 시작한 국악활동이 말년에는 전공이 된 셈이다. 장성천은 1984년부터 「진도 북놀이」보존회를 만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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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실 종기약을 개발한 조선 말기의 한의사. 본관은 신안. 호는 수계당(壽溪堂). 신안주씨 진도 입도조는 주수(朱壽)이고, 임회면 구분실리 입도조는 그의 둘째아들 주번(朱藩)이다. 주경신은 주번의 11세손이며, 1863년에 진도군 임회면 구분실리에서 태어났다. 주경신은 진도에서 살기가 어려워 타관에 나가 품을 팔다가 명의를 만나 종기에 잘 듣는 고약 비법을 익혀 고향에 돌아와 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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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속해있는 섬. 시누대가 자생하여 죽도(竹島)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섬의 남동해안에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섬 중앙에 해발 66m의 봉우리가 있다. 굴포항에서 2.7㎞ 떨어져 있으며, 가장 가까운 섬은 구자도로 6.7㎞ 거리에 있다. 임회면 굴포등대에서 조망이 가능하며, 교통수단은 소규모 어선이다. 1가구가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 생활권은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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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예전에는 죽림리 지역이 속에 깊숙이 있다하여 ‘속동’이라 칭하였는데 ‘죽림’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는 비봉귀소(飛鳳歸巢)라는 명당에서 연유하였다고 하는데, 예부터로 봉은 죽실(竹實)을 먹는다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며, 봉치라는 재의 이름도 있다. 1350년경 나주임씨가 정착한 것이 시초라 전해지며, 이후 김해김씨와 전주이씨 등이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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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죽림초등학교 정문 앞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 의하여 새로 발견되었다. 덮개돌이 도로공사로 인해 거의 매몰되거나 이동이 이루어져 확실한 형식을 알 수 없다. 또한 받침돌의 유무도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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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터. 이 절터에서 죽림사라고 단정할 만한 유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구전과 ‘죽림(竹林)’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보아 이곳의 절터를 죽림사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죽림사는 고려시대 때 창건했다고 전하며『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절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지만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마을 뒤 북서쪽으로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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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어촌 체험 마을. 죽림어촌체험마을이 자리한 죽림의 이름은 예부터 대나무 숲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지금은 인근 탑립·강계·동헌·죽림 마을을 통합하여 ‘죽림리’라고 부른다. 이 마을은 해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으며, 바닷물이 빠지길 기다려 물 따라 조개도 잡고 개막이[개매기]로 숭어 등 고기잡이 재미도 느껴볼 수 있어 갯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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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저수지. 1996년 임회면에 있는 여귀산 동남쪽 기슭을 막아 축조했다. 둑길이 170m, 둑높이가 26.5m로 진도에서 가장 높다 진도행 버스를 타고 진도읍에서 내려 봉암을 지나는 용산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여귀산이다. 여귀산 동남쪽에 죽림저수지가 위치한다. 저수지 바로 위에 죽림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저수지를 이용하는 논의 면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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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竹林里)에 있는 해수욕장. 죽림해수욕장은 죽림마을에 있는 해수욕장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죽림마을은 깊은 만(灣)에 위치하여 속동이라 하였는데, 후에 죽림으로 변하였다 한다. 죽림해수욕장은 과거에는 모래사장이 부드럽고 경사가 완만하여 해수욕장으로 적합한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러나 모래가 대규모로 채취되고 해안도로 및 방파제 등이 건설되면서 모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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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행정리. 1200년경 백씨가 시거하였으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군사훈련장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540년경 진주강씨가 입촌하여 현재 11대에 이르고 있으며, 1630년경 동복오씨가 입촌하였다. 본래 중만리가 속하 상만리는 진도군 임이면의 지역으로서 만흥 위가 되므로 웃만흥 또는 상만흥, 상만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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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중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송정리에서 상만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100m 정도 가면 길 왼쪽 밭에 3기의 고인돌이 있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다. 덮개돌이 이동되거나 지표 아래에 매몰되어 있어 확실한 형식을 알 수 없다. 배열 상태는 일정하지 않으며, 덮개돌의 방향은 동서 방향이다. 고인돌의 전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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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중만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귀성리에서 서쪽 도로를 따라 1.5㎞ 정도 가면 중만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 두 곳의 유물산포지가 있다. 이 마을 새마을회관 앞 경작지가 유물산포지①이고, 유물산포지① 남쪽으로는 ‘개넘어골’이 있다. 송정리에서 상만리로 가는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중만마을에 진입하기 앞서 길 왼쪽으로 밭이 펼쳐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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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고정리에 있는 행정리. 중매라는 지명은 쟁매[錚山]가 징매로 변하고 징매가 중매로 고정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웃마을 고산에서 북[鼓]을 치면 이 마을에서는 징[錚]으로 응하였다고 한다. 1600년경 진주하씨 하천경이 임회면 삼막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매리가 속한 고정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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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명슬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에서 위치가 중간에 있어 중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1400년경 김해김씨와 창녕조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미리, 중미리를 병합하고 명슬리라 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대곡산[236m], 삼막봉[258m], 대학봉[190m], 봉호산[19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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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석성. 진도 남도진성 자리는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향하기 직전까지 마지막 항전을 벌였던 유적지로서 진도 남도진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의 진도 남도진성은 조선시대에 재축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1964년 6월 10일에 사적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남동리를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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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비자나무. 비자나무는 구과목 주목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서 나무껍질은 청회색을 띠고 매끄럽다. 고목이 되면 껍질이 얇게 세로로 벗겨지며, 어린 가지는 녹색이다. 잎은 두텁고 광택을 내며 끝이 날카롭다. 잎사귀가 한자 ‘비(非)’자처럼 생겨서 비자(榧子)나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및 남부지방의 산지 계곡사이나, 수직적으로 해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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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의향 예향 맥 잇기 실천과 공동체의식 함양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애국인), 부모님과 어른을 공경하고 기본 생활습관을 갖추며 창의적인 사고력을 지닌 사람(예절인),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기초·기본 학력을 갖추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지닌 사람(실력인), 과학기술의 기초를 다지고 정보능력을 길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탐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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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진도 남도진성의 남문 밖에 세워진 2개의 다리. 쌍운교와 단운교는 진도 남도진성의 남문 밖을 흐르는 개울인 세운천을 건너는 2개의 무지개다리이다. 진도 남도진성은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고와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쌍운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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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구암사 대웅전 앞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석탑의 각 부분의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원래 현재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3㎞ 떨어진 탑리라는 마을에 세워져 있던 것을 14~15세기 무렵에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 석탑은 전체 높이가 3.8m이며 지대석 위에 2중 기단이 있고 그 위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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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석교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백목련. 백목련은 학명이 Magnolia Denudata Desr이다. 목련과 목련속의 식물로 중국이 원산지이고 흔히 목련이라 불리는 낙엽 교목이다. 진도 석교리 백목련은 관상수로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217호(2002년 11월 27일)로 지정되어 있다. 고생대 식물로, 높이 약 15m, 나무껍질은 잿빛을 띤 흰색이며 어린 가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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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진도 해역의 항로 표지를 관리하는 사무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635-5번지 서망항 경내에 7층 빌딩의 진도항로표지사무소가 들어서 있다. 진도, 완도, 강진, 해남(화원면 제외) 등의 관내 항로 표지를 관리하고 항해 중인 선박에 항행(航行)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30억 원을 투입하여 2004년에 건립하였다. 관리하는 항로시설은 181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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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는 자연석 바위.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 서편 해안에 있는 144고지에 있는 너럭바위로 효심이 깃들었다고 전해진다. 옛날에 부모의 탈상을 위하여 조도로 돌아가는 상주가 있었다. 파도로 인하여 배가 두절되자 배를 기다리다 지쳐서 하는 수 없이 이 바위에 올랐다. 바위에 올라 조도 쪽을 향하여 소주일배로 망곡요배(望哭遙拜)하여 탈상을 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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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탑립리에 위치한 공원. 본래 이곳은 탑리(塔里)에 속하였는데, 탑리에 사는 장수가 상만리(上萬里)에 사는 장수와의 씨름에 져서 탑을 빼앗겼다는 전설이 전한다. 여귀산(女貴山) 아래 유명한 약수터가 있고 탑립관광농원이 생기자 많은 사람들이 탑립리를 찾았다. 그러자 2001년 죽림리에 사는 주문명 씨 등이 생활보호대상자 근로사업으로 탑공원을 조성하였다. 여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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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관광농원. 탑립관광농원은 1996년에 설립되었으며, 진도군 관내에 존재했던 5개 관광농원 중 유일하게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탑립관광농원은 탑립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탑립마을의 주산인 여귀산(女貴山)[457m]의 좌우에 두 개의 돌탑이 있어 ‘탑립’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진도읍에서 임회면 방향으로 가면 여귀산이 나오는데, 탑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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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행정리. 여귀산(女貴山)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는데 상만리로 옮겼다는 설이 있으며, 예전에 탑이 있어서 ‘탑립’으로 불렸다고 한다. 1600년경 해남군에 살던 김해김씨가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좋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립리가 속한 죽림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대숲이 많으므로 죽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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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에 있는 나루터. 진도군의 육지와 조도를 연결하는 진도 제일의 나루터이다. 15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는 생활권이 목포와 진도로 나뉘어져 있다. 진도군에 속한 조도면 사람들은 진도군을 자주 드나들어야 했으므로 팽목나루는 진도군과 조도를 통하는 관문 나루로 이용되었다. 팽목나루에서 12㎞ 거리에 있는 하조도로 건너 다시 30여 개 섬으로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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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는 행정리. 예전에는 ‘팽목구미’라 하여 나무가 울창한 바닷가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 뒤 구미라는 말이 탈락되고 ‘팽목’으로 정착되었다. 일설에는 팽목리에 속한 도리섬에 오래 전에 팽나무가 많이 있어서 팽목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1600년경 김해김씨가 시거하였고, 이후에 전주이씨가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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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 팽목마을에 있는 유물산포지. 진도군 임회면 서망마을에서 상연동으로 가다보면 팽목마을에 이른다. 유적은 이 마을의 동북쪽에 있는 ‘집건너들’이라는 계단식 밭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쪽으로 흐르는 한복산 지맥의 서쪽 사면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 유물산포지에서는 선사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그물추와 자연유가 흐르는 도기편,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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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와 지산면 마사리 사이에 위치한 방조제. 팽목방조제는 팽목리에 있는 방조제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팽목리는 예전에 팽목구미라는 나무가 울창한 바닷가 마을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팽목리에 속해 있는 도리섬에 팽나무가 많이 있어 팽목(彭木)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1966년 임회면 팽목리와 지산면 마사리 사이의 간척지를 개발하기 위하여 축조하였다. 간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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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에 있는 항구. 팽목항은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로, 현재 항만법에 의한 연안항으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는 목포에서 팽목을 걸쳐 제주도를 연결하는 항구였으며, 현재는 진도 근해에 있는 섬, 특히 팽목과 조도를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지 역할을 하고 있다. 팽목항은 1996년 12월 해양수산부에 연안항 지정신청을 내어 1998년 2월 해양수산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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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있는 행정리. 명슬의 아랫부분에 있어 하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1400년경 진양하씨가 진도읍에서 이주하여 시거한 뒤 경주이씨, 함양박씨가 입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미리가 속한 하미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삼막봉 밑이 되므로 삼막골 또는 삼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항리, 하미리를 병합하여 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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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하미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하미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에 마을 공동의 제를 모시는데 이를 ‘거리제(거러지)’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새벽 1시이다. 못 먹고 죽은 귀신들, 객사한 귀신들, 떠돌이 귀신들 등 온갖 잡귀의 원혼을 달래고 마을의 평안을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 이 마을 동제는 20여 년 전에 한 차례 중단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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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에 있는 행정리. 1350년 경 길우마을 뒤 웡꿀(원동)에 진주하씨가 입촌하였으나 터가 협소하여 1400년경에 진주하씨 21대손 하윤상이 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구리가 속한 용호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산리, 도장리와 함께 호구리를 병합하여 용산과 호구의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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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호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광석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호구리 광구리 쪽으로 10기의 고인돌이 남-북 1열로 배치되어 있다. 1968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남해안 도서 지역의 고고학적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그 후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재조사되었다. 고인돌 2기에서 받침돌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기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