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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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𢢝 |
영어음역 | Gwon Su |
이칭/별칭 | 자성(子誠),반곡(盤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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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656년 |
몰년 | 1718년 |
본관 | 안동 |
대표관직 | 사간 |
[정의]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성(子誠), 호는 반곡(盤谷). 권겹(權韐)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전(權佺)이며, 아버지는 집의를 지낸 권양(權讓)이다. 어머니는 홍사도(洪思道)의 딸이다. 권수는 권속(權謖)에게 입양되었다. 아들은 권적이며, 딸은 현감 김지경에게 출가하였다.
[활동사항]
권수는 1679년(숙종 5) 진사가 되고, 1692년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그 뒤 성균관전적, 형조좌랑을 거쳐 헌납에 오르고, 1701년 지평이었을 때 군비의 강화와 국가의 재정을 충실히 할 것을 건의하였으며, 왕자들의 원찰(願刹)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 있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703년 장령이 되고 1706년 사간을 거쳐 동래부사에 이르렀다. 이때 외국과 서신을 교환하는 가운데 어휘(御諱, 임금의 이름)를 잘못 쓴 일로 탄핵을 받았다. 1708년 홍문록(弘文錄)에 등록되었으며 1712년 향리에 물러나 있으면서 선대 세종의 선정과 학문적 열의를 본받아 선정을 베풀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집의가 되었으며 1714년 사간이 되었다.
[묘소]
원래는 금산군 진산면에 묘소를 마련하였다가 1719년 4월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로 옮겨 부인 이씨(李氏)와 합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아들 권적이 강화부유수가 되었을 때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