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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중촌 마을에 있는, 1921년 김남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치암(痴庵) 김남현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시기 삼호 지역에서 한학(漢學)을 가르쳤다. 1921년에 김남현이 죽자 제자들을 중심으로 김남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치암 김 선생 유적비(痴庵金先生遺蹟碑)를 세웠다. 김남현 유적비는 삼호읍 산호리 중촌 마을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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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우산정 마을에 있는, 1927년 면장 김동훈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예전에는 우산정 마을 앞에 저수지가 없어서 농사철에는 물이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고 한다. 김동훈 시혜비(金東勳 施惠碑)는 면장 김동훈(金東勳)이 마을에 저수지를 쌓아 주었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그 은혜를 기리기 위해 1927년에 세운 것이다. 김동훈 시혜비는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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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모정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김병교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병교(金炳喬)[1801~1876]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공기(公器)이다. 김이장(金履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태순(泰淳)이고, 아버지는 이조 판서 김교근(金敎根)이며, 어머니는 오재선(吳載選)의 딸이다. 김병교는 1851년(철종 2)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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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효자비. 김상순(金商順)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김병희(金秉喜)의 아들이고 백촌 김문기의 후손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김상순의 효성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칭찬하며 지역 유림들이 효자비를 세웠다. 김상순 효자비(金商順 孝子碑)는 1925년에 건립되었다.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천해 마을에 있다. 김상순 효자비는 갓석과 지대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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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는, 1868년 김시혁이 백성을 구제한 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김시혁(金時爀)은 본관이 김해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며 진사(進士)이다. 김시혁은 유순한 성격을 가졌고 부모를 잘 섬겼으며, 백성을 구제하고 폐단을 개혁하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김시혁 제민 불망비(金時爀 濟民 不忘碑)가 있는 신송 마을은 윗마을인 구송 마을과 함께 송간(松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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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에 있는 김윤창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윤창 영세 송덕비(金潤昌 永世 頌德碑)는 윤대열 영세 송덕비(尹碓烈 永世 頌德碑)와 비슷한 시기에 전주영장(全州營將) 김윤창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선주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 앞 지방도 821호선 오른편에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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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우정 마을에 있는, 1886년 김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정(金正)의 본관은 광산(光山), 휘(諱)는 자진(子進), 호(號)는 수산정(首山亭)이다. 고려 시대 문신인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1290]의 6세손이다. 김정 유허비(金正 遺墟碑)는 1866년에 수산정 김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김정 유허비는 신북면 갈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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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11월 4일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 지서에 보안 주임 경위 김준병 등의 주력 부대와 완도·진도에서 진주한 경찰 약 30명, 의경, 청년 단체 등 6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각 시군에서 집합된 북한군 100여 명이 지서를 습격할 목적으로 기습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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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덕화리에 있는, 1933년 김준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준형 청덕 불망비(金俊炯 淸德 不忘碑)는 1933년 김준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영암군 소작인들이 건립하였다. 김준형 청덕 불망비는 영암군 도포면 덕화리에 있는 면소재지에서 도포 초등학교 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길가에 세워져 있다. 크기는 높이 143㎝, 너비 40㎝, 두께 20㎝이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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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우산정 마을에 있는, 1932년 참봉 김태빈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참봉(參奉) 김태빈(金台彬)은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밭을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짓게 하고, 세를 감해 줌은 물론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김태빈 자혜 기념비(金台彬 慈惠 記念碑)는 소작인 일동이 김태빈을 기리기 위해 1932년에 세운 기념비이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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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리 덕진교에 있는, 1813년 덕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813년(순조 13)에 마을 사람들이 덕진의 업을 기리기 위하여 덕진교 북쪽에 덕진교비(德津橋碑)를 건립하였다. 또한 덕진교비는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津之碑)’로도 불린다. 덕진교에 대한 설화에 따르면, 덕진교 주변 마을에서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강에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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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세워진 수미 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한 비. 도갑사 수미 왕사비(道岬寺 守眉 王師碑)는 1633년에 영암군의 도갑사에 세워진 비석으로 조선 세조 대 왕사(王師)를 지낸 묘각 화상(妙覺和尙) 수미(守眉)의 행적과 도갑사 중창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세조 대 흥불 정책의 상징적 인물인 수미와 왕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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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 마을에 있는 현대 순교비. 동구림리 구림 순교비(東鳩林里 鳩林 殉敎碑)는 6·25 전쟁 당시 희생된 기독교인 82명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50년 6·25 전쟁의 발발과 함께 전라남도 영암 지역도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1950년 10월 4일 영암까지 내려온 북한군은 먼저 행정권과 치안권을 장악하고, 읍내 교회당을 방화하거나 파괴하였다. 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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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에 있는, 1892년 민영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민영준 영세불망비(閔泳駿 永世不忘碑)는 1892년 7월에 경리사 민영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에 민치린 영세불망비(閔致麟 永世不忘碑), 민정○ 청덕 활민비(閔正□ 淸德 活民碑)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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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1899년 민영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민영철 불망비(閔永喆 不忘碑)는 1899년에 관찰사 민영철(閔永喆)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민영철 불망비는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면사무소 입구 왼쪽 화단에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38㎝, 너비 43㎝, 두께 20㎝이다. 비석에는 ‘관찰사 민 공 영철 영세불망비(觀察使閔公永喆永世不忘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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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자비. 민재식(閔宰植)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흥 민씨(驪興閔氏) 종족들과 지역 유림들이 민재식을 기리기 위해 민재식 효자비(閔宰植 孝子碑)를 건립하였다. 민재식 효자비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진년 3월 한자헌대부 장예원 경원 임 규장각 학사 종하 민경호 근찬(戊辰年 三月 澣資憲大夫 掌禮院 卿原 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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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개항기의 순찰사 민정○의 청덕 활민비. 민정○ 청덕 활민비(閔正○ 淸德 活民碑)는 1892년 7월에 순찰사(巡察使) 민정○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에 민치린 영세불망비(閔致麟 永世不忘碑), 민영준 영세불망비(閔永駿 永世不忘碑)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2㎝, 너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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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민치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민치린(閔致麟)[1818~?]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달(士達)로, 1844년(헌종 10)에 갑진(甲辰)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 3위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민치린 영세불망비(閔致麟 永世不忘碑)는 ‘영암 아천리 민 후 치린 영세불망비’로도 불린다. 민치린 영세불망비는 1877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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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현대 애국 순절비. 박규상(朴奎相)은 1893년 1월 21일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 1919년 4월 10일에 발생한 영암 지역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0년 1월 25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박규상 애국 순절비(朴奎相 愛國 殉節碑)는 이를 추모하기 위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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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조선 후기 문신 박동열(朴東說)[1564~1622]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열지(悅之), 호는 남곽(南郭)과 봉촌(鳳村)이다. 박조년(朴兆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 박소(朴紹)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박응복(朴應福)이며, 어머니는 증 좌승지 임구령(林九齡)의 딸이다. 동생이 박동량(朴東亮)이다. 1608년(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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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금대 마을에 있는, 1934년 박복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복규 자선 기념비(朴栿圭 慈善 紀念碑)는 1934년 4월에 농은(農隱) 박복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금정면 일대 소작인들이 세웠다. 박복규 자선 기념비는 영암군 금정면 면소재지에서 나주시 세지면으로 가는 국도 23번 부근에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5㎝, 너비 52㎝이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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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1937년 박봉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봉규 자선 불망비(朴奉圭 慈善 不忘碑)는 1937년 6월에 박봉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의 경계에서 안노리 도로변 버스 정류장 옆으로 이동하여 박칠봉 시혜 불망비(朴七奉 施惠 不忘碑)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36㎝, 너비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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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목사 박중규의 선정비. 박중규 선정비(朴重圭 善政碑)는 목사(牧使) 박중규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 입구에 박천보 청덕 불망비(朴天輔淸德不忘碑)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12㎝, 너비 37㎝이다.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목사 박 후 중규 선정비(牧使朴侯重圭善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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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면장 박천보의 불망비. 박천보(朴天輔)는 밀의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금정면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면장으로 있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박천보 청덕 불망비(朴天輔 淸德 不忘碑)는 1909년 5월에 금정면 주민들이 면장 박천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의 마을 회관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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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참봉 박칠봉의 시혜 불망비. 박칠봉 시혜 불망비(朴七奉 施惠 不忘碑)는 참봉(參奉) 박칠봉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박칠봉 시혜 불망비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의 경계에 박봉규 자선 불망비(朴奉圭 慈善 不忘碑)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00㎝, 너비 45㎝이다. 비석에는 ‘박 참봉 칠봉 시혜 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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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신재철의 유허비. 송암(松菴) 신재철(愼在哲)[1803~1872]은 강원 감사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9세손으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문하에 종유(從遊)하였고, 만년에는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熙)[1791~1867]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장헌주(張憲周)·기우만(奇宇萬) 등과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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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에 있는, 1938년 신치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신치운 불망비(申致雲 不忘碑)는 영암의 천도교 교구장을 역임하였던 신치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38년에 신도들이 세운 것이다. 비문은 조상현(趙庠鉉)이 지었다. 신치운 불망비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 둔덕 마을 새마을 창고 옆에 있다. 신치운 불망비의 규모는 높이 127㎝, 너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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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 장수 마을에 있는, 군수 신홍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문화 유적 분포 지도』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이전 신홍균(申洪均)이 영암 군수(郡守)로 재임해 있을 때 장수 마을에 빈집이 많이 있는데도 세금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빈집에 부과된 세금이 마을 주민에게까지 연대 부담을 지우자 마을 주민들이 세금을 면해 줄 것을 청하는 편지를 군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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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1899년 영암 군수 심상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심상호(沈相瑚)는 1898년(고종 35) 4월 영암 군수로 부임하였으며, 2년 뒤인 1900년에 면직되었다. 부임하던 동안 심상호는 부세(賦稅)와 방물(方物)을 지연시킨다는 이유로 중앙으로부터 계속적인 압박을 받았다. 그 결과 1900년에는 감봉 조처를 받기도 하였으며, 끝내 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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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을묘왜란 때 의병장 양달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양달사(梁達泗)[1518~1555]의 자는 도원(道源)이고 호는 남암(南岩)이며,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감역(監役) 양흥효(梁興孝)의 증손이며, 주부(主簿) 양승조(梁承祖)의 아들이다. 삼종숙(三從叔)인 양팽손(梁彭孫)의 문인이다. 제주 주부(濟州主簿)를 지낸 양승조와 청주 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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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는 승려 도선과 수미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 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 國師·守眉 禪師碑)는 1653년에 전라남도 도갑사에 세워졌다. 통일 신라 때 승려인 도선 국사와 조선 시대 승려 수미 왕사의 행적과 더불어 비의 건립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귀부의 사선문(斜線紋)과 비신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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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동무리에 있는 현대 3·1 운동 기념비. 영암 지역의 3·1 운동은 1919년 영암읍에 거주하던 조극환(曺克煥) 등이 중심이 되어 거사를 준비하고, 4월 10일 실행에 옮겼다. 약 1천여 명의 지역민들이 회사정(會社亭) 광장에 모였으며,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 만세를 부르며 거리 행진에 나섰다. 이 날의 시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25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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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석비. 영암 정원명 석비(靈巖 貞元銘 石碑)는 1965년경 군서면 서구림리에 거주하는 최정호가 집 근처 논에서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내용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1987년 영암군 문화 공보실에 근무하는 박정웅의 조사로 통일 신라 시기인 786년에 건립된 비석임이 밝혀졌다. 이후 몇몇 연구자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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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영암 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의 역대 영암 군수 공적비. 조선 시대 지방관은 이임(移任)하면 선정비를 세우는 게 관례로 되어 있었다. 선정비, 불망비, 영세불망비 등의 이름으로 세워졌는데, 재료는 철비나 석비, 형태는 호패형이거나 비갓을 갖추는 경우도 있었다. 영암 향교 공적비군(靈巖 鄕校 功績碑群)은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에 이르기까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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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영암 향교에 있는 조선 시대의 하마비. 하마비(下馬碑)는 궁궐이나 능원, 성균관, 향교 등 국가의 존엄을 상징하는 곳에서 예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려서 지나가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건립되었다. 향교(鄕校)는 공자와 동국 18현 등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므로 하마비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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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현대 순교비. 영암읍 교회 순교비(靈巖邑 敎會 殉敎碑)는 영암읍 교회 교인 24명이 6·25 전쟁 당시 처형당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순교비이다. 영암읍 교회는 1917년 당시 목포 선교부에서 사역을 하던 맹현리 선교사가 설립하였다. 이후 영암에서 모교회가 되었고, 맹현리 선교사가 당회장으로 재직하였다. 영암읍 교회는 6·25 전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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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는 조선 전기 매향비. 영암 채지리 매향비(靈巖 採芝里 埋香碑)는 자연석에 음각된 금석문 자료로서 1992년에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거주하는 최금섭의 제보로 알려졌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은 채 글자를 새겨 넣어서 글자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매향 기록은 비의 전면에만 새겨져 있는데 비문의 내용은 대체로 매향 의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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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은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경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오경리(吳慶履)[1813~1893]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화(仲和), 호는 소포(素圃)이다. 아버지는 이조 참판 오재익(吳在翼)이며,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로 박정채(朴挺采)의 딸이다. 오경리는 1849년(헌종 15)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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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현대 효자비. 유공신(柳公信)[1579~1655]은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호는 송계(松溪)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사친곡(思親曲)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유공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96년에 모산리에 효열각을 세우고 분수동[현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와운리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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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에 있는 개항기 관찰사 윤대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윤대열 영세 송덕비(尹碓烈 永世 頌德碑)는 도포 지역에 거주하던 선주들이 관찰사(觀察使) 윤대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01년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 앞 지방도 821호선 오른편에 서 있다. 크기는 높이 127㎝, 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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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열부 나주 나씨의 행적비. 나주 나씨(羅州 羅氏)는 통정대부 나도현(羅燾炫)의 딸이자 경주 이씨 이경우(李絅雨)의 부인이다. 조선 고종 대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출가한 후에는 남편을 공경하고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다. 또한 순한 말과 바른 행동으로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고 한다. 영암 지역 유림들이 나주 나씨의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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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개항기의 문신 이규대의 행적비. 이규대(李奎大)[1791~?]의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아버지는 이참희(李參熙)이다. 이규대는 1875년 7월 전라도 영암 군수, 1877년 6월 전라도 진도 군수, 1883년 10월 경상도 창원 부사, 1878년 6월 강원도 중군(江原道中軍) 등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이규대 행적비(李奎大 行績碑)는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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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에 있는, 1940년 이정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정규 정혜 불망비(李正奎 定慧 不忘碑)는 시종면의 지주였던 이정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40년 소작인들이 건립하였다. 이정규 정혜 불망비는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다. 시종면사무소에서 시종로를 따라 4.5㎞ 정도 가다가 반남면 흥덕리 사거리에서 월악 보건 진료소 방향으로 2㎞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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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장독걸샘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1555년(명종 10) 5월에 남해 현감으로 재임하던 양달사(梁達泗)[1518~1555]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관직을 버리고 시묘를 위해 고향 영암에 돌아왔다. 이 무렵 왜구들이 1552년과 1553년 두 해에 걸쳐 제주를 노략질하고 1555년 5월에는 60여 척의 병선을 이끌고 달량진[현 해남군 달량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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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는, 1940년 마름 장재관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고자 세운 비. 장재관 시혜 기념비(張在寬 施惠 紀念碑)는 일본인 지주의 마름이었던 장재관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고자 1940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소작인들이 건립하였다. 장재관 시혜 기념비는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다. 시종면사무소에서 시종로를 따라 4.5㎞ 정도 가다가 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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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전몽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전몽성(全夢星)[1561~1597]의 본관은 천안(天安)이고,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군기시 주부(軍器寺主簿) 등을 역임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함께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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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전몽태의 공적을 기리기 우해 세운 비. 전몽태(全夢台)[1571~?]는 영암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전몽성(全夢星)의 막내 동생으로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그 뒤 선전관에 제수됨과 아울러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의 표창을 받았다. 전몽태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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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금대 마을에 있는, 1932년 의관 정덕중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덕중 시혜 불망비(鄭德重 施惠 不忘碑)는 의관(議官)이었던 정덕중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금정면 일대 소작인들이 1923년에 세운 비석이다. 정덕중 시혜 불망비는 영암군 금정면 면소재지에서 나주시 세지면으로 가는 국도 23호선 가에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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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비.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오한 박성건의 후손으로 하동 정씨 정석렬(鄭錫烈)의 부인이다. 함양 박씨는 18세 때 정석렬과 혼인하여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셨으며, 남편 정석렬이 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먹여 남편을 살리고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석렬 처 함양 박씨 열녀비(鄭錫烈 妻 咸陽 朴氏 烈女碑)는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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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화촌 마을에 있는 지주 조계환의 처 능성 구씨의 시혜비. 능성 구씨(陵城 具氏)의 남편인 조계환(曺桂煥)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능성 구씨는 집안 살림을 관장하게 되었다. 능성 구씨는 소작인들에게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1920년에 영암군 시종면과 곤이종면[오늘날 서호면]의 소작인 일동이 능성 구씨를 추모하기 위해 조계환 처 능성 구씨 시혜비(曺桂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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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신기 마을에 있는, 1890년 조보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조보원 영세불망비(趙寶元 永世不忘碑)의 비문에 따르면, 도사(都事) 조보원이 토지와 소를 팔아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자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이에 보답하고자 1890년 조보원의 불망비를 세웠다고 한다. 조보원 영세불망비는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신기 마을에 있다. 영암군 학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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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무신 하경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하경수(河坰秀)는 1893년(고종 30)에 전라도 병마우후(兵馬虞候)로 부임하였다. 하경수를 기리는 영세불망비는 영암군 외에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면사무소 내 현존하고 있다. 1897년(고종 34) 사포(沙浦)[비내산(飛乃山) 남쪽에 위치하는 곤일시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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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무신 하경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하경수(河坰秀)는 1893년(고종 30년) 전라도 병마우후(兵馬虞候)[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외관직]로 부임하였다. 후임 병마우후 장규찬이 장흥에서 발생한 비적(匪賊)에 의해 1894년 12월 10일에 살해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았을 때, 하경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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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1928년 하대두가 영암 군민을 구휼한 공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비. 하대두(河大斗)는 일제 강점기 영암의 대표적인 지주로 1882년 10월 7일 영암군 군시면(郡始面) 남내리(南內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 호참(戶參) 하서오(河書五)의 증손이고, 동중추(同中樞) 하개봉(河鎧鳳)의 손자이다. 하대두는 1911년 조선 총독부에서 목배(木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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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에 있는 효자비. 황정주(黃正周)는 철종 때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인물로 본관은 장수이다. 효성이 깊은 인물로 할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나온 피로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황정주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장수 황씨(長水黃氏)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 효자비(黃正周 孝子碑)를 건립하였다. 장수 황씨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