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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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璣玉 |
이칭/별칭 | 의보(儀甫),두암(竇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상동 |
출생 시기/일시 | 1566년 - 이기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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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9년 - 이기옥 정여립의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596년 - 이기옥 공릉 참봉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599년 - 이기옥 집경전 참봉으로 옮김 |
몰년 시기/일시 | 1604년 - 이기옥 사망 |
거주|이주지 | 이기옥 유배지 - 함경도 종성군 |
묘소|단소 | 이기옥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
사당|배향지 | 도림사 - 경상북도 청도군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전의 |
대표 관직|경력 | 집경전 참봉 |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인.
[개설]
이기옥은 임진왜란 전후 시기 청도 산수 문학의 대표 작가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청도 지역의 재지 사족들은 앞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벼슬하기보다는 은거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벼슬보다 산수를 벗삼아 시와 문장 짓는 것을 더 즐겼다. 이러한 청도 산수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두암 이기옥과 두암의 아들 수헌 이중경이 있다.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의보(儀甫), 호는 두암(竇巖). 아버지 이득록(李得祿)과 고성 이씨(高城李氏) 이희려(李希呂)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흥지(李興智)가 소요당 박하담의 딸에게 장가들어 경기도 금천(衿川)에서 청도로 옮기게 되었다.
[활동 사항]
이기옥(李璣玉)[1566∼1604]은 일찍부터 과업(科業)을 끊고 김우옹(金宇顒)과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문장과 학덕이 뛰어났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특사되었고, 1596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공릉 참봉(恭陵參奉)에 임명되었다.
1599년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으로 옮겼다가 얼마 뒤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장현광(張顯光)·김부륜(金富倫)·박성(朴醒) 등과 교유를 맺고 학문을 닦았다. 청도의 운문산 두암(竇巖)을 취하여 스스로 호를 짓고 강호 생활을 즐겼으나 39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1912년 목활자로 간행된 『두암선생문집(竇巖先生文集)』 4권 3책이 전한다. 시문은 대부분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을 겪는 사이에 지은 것이다. 청도와 관련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587년에 지은 장편의 「운문산부」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유림의 천거로 경상북도 청도군의 도림사(道林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