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2020 |
---|---|
한자 | 遊雲門山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동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99년 - 「유운문산록」 저자 이중경 출생 |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78년 - 「유운문산록」 저자 이중경 사망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42년 - 「유운문산록」 창작 |
배경 지역 | 운문산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
성격 | 유산록 |
작가 | 이중경 |
[정의]
1642년 이중경(李重慶)이 청도의 운문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개설]
조선 시대 선비에게 있어 산수 유람은 인지지락(仁智之樂)의 추구라는 학문의 한 방편이었다. 따라서 산수에 대한 미의식을 유산기(遊山記)를 통하여 드러내고는 하였다.
유산기는 조선 후기에 대량으로 저술되었는데, 영남 지역의 사림이 주된 담당층이었다. 운문산과 관련된 유산기는 현재 5편이 전한다. 밀양 출신 오한(聱漢) 손기양(孫起陽)[1559∼1617]의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과 청도의 문인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1599∼1678]의 「유운문산록」, 송재(松齋) 김상은(金尙殷)[1807∼1851]의 「유운문산록」, 복암(復菴) 장화식(蔣華植)[1871∼1947]의 「유운문산록」, 그리고 자인(慈仁) 출신 소산(素山) 이호우(李浩祐)[1826∼1892]의 「유운문록(遊雲門錄)」이 있다. 이 가운데 내용과 분량은 물론이고 문학적으로도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수헌 이중경의 「유운문산록」이다.
[구성]
유산기는 명산을 유람하고 여행의 동기와 과정, 견문과 소감 등을 산문으로 기록한 기행문 양식이다. 「유운문산록」은 일기체로 구성되어 있다. 서두에서 여행 동기를 기술하고 날짜별로 유람의 일정과 여행 도정을 기록하며 마지막으로 유산에 대한 여행을 결산하고 의무를 부여하는 총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인 유산기의 체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내용]
이중경의 운문산 유람은 영남 사림의 유산 관행과 부친의 산수 취향, 그리고 자신의 산수벽이 동기로 작용하였다. 일반적인 유산록의 의도처럼 이중경의 「유운문산록」도 한람(閒覽)과 와유(臥遊)의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었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운문 일대는 ‘우리 집안의 산수[吾家山水]’라고 할 만큼 이중경의 가족사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었다. 책으로 간행되지는 않았지만 이중경은 부친 이기옥(李璣玉)의 「운문산부(雲門山賦)」와 자신의 「유운문산록」, 그리고 동생 이중영(重榮)의 장인이자 자신의 망년우(忘年友)인 이심홍(李心弘)의 시를 합쳐 별도의 책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운문산 유람의 목적은 도입부에서 언급하였는데, ‘세속의 얽매임을 떨칠 만한 장소를 찾는 것’과 ‘좋은 벗들과 즐겁게 노니는 것’이었다. 이중경은 유람을 통해 오대(梧臺)의 풍광에 매료되어 5년 뒤인 49세 때부터 본격적인 은거를 시작하였다. 이때 운문산과 관련된 20수의 시조와 900여 수에 달하는 한시를 남겼다. 운문동의 입구와 공암(孔巖), 운문사 일대 등에서 이중경은 선경에 노니는 진정한 즐거움[遊仙之眞趣]과 마음이 속세를 벗어나는 경지[性情之脫俗]를 경험하였다. 유람 중 날이 저물면 일행의 친지와 마을 유지의 집에 들러 숙박을 하였는데, 그때마다 성대한 주연이 베풀어지고 난만한 유흥이 수반되었다고 전한다.
유람 날짜는 1642년 9월 21일부터 시작해 그해 10월 2일까지다. 유람단의 규모는 처음 13명으로 시작했으나 도중에 차츰차츰 불어나 30여 명에까지 이른다. 여기에 시중드는 노복과 가무하는 기생, 악사 등 수행원의 규모를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다.
유람 여정은 현재의 청도읍 원정리에서 출발하여 자천(紫川)[청도천의 옛 이름]을 따라 내려가다가 유천(楡川)으로 돌아 동창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서 매전역을 거쳐 선암(仙巖), 도연정(道淵亭)의 옛 터를 둘러보고, 공암을 구경한다. 그러고는 운문산에 들어가 운문사 경내와 암자를 둘러보고, 면치(綿峙)를 넘어 박곡(朴谷)으로 내려와 매전역을 거쳐 웅현(熊峴)[곰티재]을 넘어 귀가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유운문산록」도 다른 유산록과 마찬가지로 산천경개의 감상과 선현의 유적지, 역사 유적과 설화에 대한 기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유람 중에 놓칠 수 없는 자연 경관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삼족대와 선암대 등 선인들의 유적을 만나면 특별한 감흥과 관심을 보였다.
다음으로 발길 닿는 장소마다 간직하고 있는 사연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상기하였다. 예를 들어 대사간의 지위에 오른 아버지를 두었지만 어머니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기녀였기에 자신도 기녀의 길을 가면서 어머니의 거문고를 가지고 유람에 따라 나선 기녀 청(淸)이의 기구한 사연이 있다. 가야금을 잘 타고 춤을 잘 추었던 기생 말대(末代)의 무덤, 부친의 자취가 서린 공암, 그 옛날 기녀가 춤추다 떨어져 죽은 낙화암(落花巖) 등 여정의 곳곳마다 인간사의 애틋함과 인생무상의 비감이 짙게 묻어난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대부분 시를 삽입하여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였다.
유람을 끝낸 직후 이중경은 유람하였던 장소를 수묵으로 그린 다음 간단하게 기록하고 각 장소마다 거리도 표시하였다. 「산수도설(山水圖說)」이라는 글에서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현재 이 산수도는 전하지 않는다.
[특징]
이중경의 「유운문산록」은 일반적인 유산기와는 달리 산행(山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천을 따라 주변의 경승을 감상하며 운문산까지 유람한 과정이 주된 일정이다. 양식적 측면에서는 많은 시를 삽입하여 서술과 의론 위주의 글에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었는데, 자신의 작품도 있지만 동행한 이심홍의 작품이 많은 것도 이례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영남 사림의 유산 관행을 계승하면서도 난만하고 질탕한 유흥의 분위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도 다른 유산록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운문산과 관련된 유산록은 현재까지 총 5편이 전한다. 이 중에서 이중경의 「유운문산록」은 청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선비들의 일반적인 유산 관행과 구별되는 독특한 유산 과정과 내용, 이례적으로 큰 편폭[10행×28자×39면]과 다채로운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산천경개의 감상과 유산의 안내서라는 유기류(遊記類)의 일반적 특징을 크게 벗어난 것이라 하겠다. 이 같은 특징은 이중경이 편찬한 청도 지역 최초의 사찬(私撰) 군지인 『오산지(鰲山誌)』에 일정 부분 반영되기도 하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지리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