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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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幕里甕器窯址 |
영어공식명칭 | Onggi Kiln Site in Dongmakri |
이칭/별칭 | 동막리 옹기가마터,대점동 옹기가마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 산30[대점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경신 |
건립 시기/일시 | 조선 시대 - 동막리 옹기요지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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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950년 이후 - 동막리 옹기요지 폐지 추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3월 28일~1994년 4월 16일 - 동막리 옹기요지 국립문화재연구소 지표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6월 14일~2005년 12월 12일 - 동막리 옹기요지 강원문화재연구소 광역 지표조사 |
소재지 | 동막리 옹기요지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 산30[대점동]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132[문지동 472] |
성격 | 가마터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가마터.
[개설]
동막리 옹기요지(東幕里甕器窯址)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가마터이다. 옹기가마는 산사면을 활용한 반지하식 등요 구조로 2기 정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막리 옹기가마터, 대점동 옹기가마터라고도 부른다.
[변천]
동막리 옹기요지는 출토 유물의 형식으로 볼 때 조선 중엽에 처음 옹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지속적으로 생산을 이어갔는데 주민의 말에 따르면 1950년 전후까지 옹기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위치]
동막리 옹기요지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 산30번지에 있다. 지방도 제464호를 따라 월하삼거리에서 정연리 방향으로 약 8.3㎞ 이동한 오른쪽 산사면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동막리 옹기요지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94년 3월 28일부터 1994년 4월 16일까지 실시한 군사보호구역 지표조사 과정에서 묘역 조성으로 말미암아 옹기가마터가 파괴된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강원문화재연구소가 2004년 6월 14일부터 2005년 12월 12일까지 실시한 철원군 광역 지표조사 과정에서 가마터의 범위를 확인하였다.
[현황]
동막리 옹기요지는 1994년 전후 순흥안씨 묘역 조성 및 도로 개설로 인하여 가마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바닥이 노출된 곳도 확인되었다. 옹기가마터 주변에서는 가마의 벽체, 다수의 옹기편 등이 노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동막리 옹기요지는 다른 옹기가마와 달리 오랜 기간 옹기 생산이 이루어졌다. 가마터 근처에는 삼림 자원이 풍부하여 땔감 공급이 용이하고, 인근 양지리[가루매]에서 질 좋은 옹기 원료를 구하였으며, 한탄강의 수계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어 옹기 유통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옹기 생산의 최적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철원군 및 경기도 북부에 옹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하였던 가마터로 학술사적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