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480 |
---|---|
한자 | 達城 龍鳳洞 石佛立像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가사2길 39[양리 3-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병선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조 불상.
달성 용봉동 석불입상(達城龍鳳洞石佛立像)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산 3-1번지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석불이다. 비슬산 일원에는 신라 시대 이래의 많은 불교 유적과 유물이 있었는데,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에는 99개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달성 용봉동 석불입상이 있는 곳도 그 중의 하나로서 석불과 기와 조각만 산재할 뿐,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416년(태종 16) 2월 9일과 1423년(세종 5) 11월 29일에 대견사 석상이 땀을 흘렸다고 조정에 보고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남아 있는데, 이 사료에 나타나는 대견사 석상이 바로 달성 용봉동 석불입상으로 추정된다. 달성 용봉동 석불입상의 조성 시기는 신체의 비례가 알맞고 풍만한 상호(相好)[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의 사실적인 묘사나,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낸 부드러운 조각 기법 등으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라 생각된다.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달성 용봉동 석불입상은 화강암 판석 한 매를 사용하여 한쪽 면에 양각으로 서 있는 불상을 조성한 것으로서 왼손에 약호를 든 약사여래(藥師如來)이다. 크기는 2.8m이다. 불상의 일부가 마모되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약식화된 연화대(蓮花臺) 위에 조각하였으며 하부의 표현은 빈약하다. 그러나 머리는 소발(素髮)에 큼직한 상투 모양의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솟아 있으며, 풍만한 상호에 이목구비가 균형 있게 자리 잡았다. 얼굴은 풍만하고 이목구비가 균형 있게 자리 잡았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며, 목은 짧고 삼도(三道)는 표현되지 않았다.
법의(法衣)[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앞가슴을 둘러 양어깨를 덮어 입는 부처의 옷차림]이며 가슴 앞에 U 자 형태의 주름이 새겨져 있고, 두 다리에도 각각 타원형의 옷 주름이 있다. 법의 자락은 무릎 밑에서 부드럽게 마감되었다. 가슴에서 U 자 형태로 터진 옷깃은 어깨 뒤로 반전되어 넘겨졌으며, 한 줄기의 옷자락이 가슴 앞에서 약기를 받쳐 든 오른손 위로 넘겨져 있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 배 위에 얹어 놓았다.
광배(光背)[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배[舟] 모양으로 판석 자체를 거신광(擧身光)[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 형태로 다듬고 한 줄기 도드라진 선으로 원형의 두광(頭光)[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긴 타원형의 신광(身光)[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표현하였다. 광배의 가장자리 부분은 5구의 화불(化佛)과 불꽃무늬로 장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