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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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藝峰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진선 |
출생 시기/일시 | 1917년 1월 3일 - 문예봉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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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문예봉 나운규의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에 출연 |
몰년 시기/일시 | 1999년 3월 26일 - 문예봉 졸 |
출생지 | 문예봉 출생지 -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문예봉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0-4 |
거주|이주지 | 문예봉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0-12 |
거주|이주지 | 문예봉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0-15 |
묘소 | 평양 애국 열사릉 - 평양직할시 |
성격 | 연극배우|영화배우 |
성별 | 여 |
[정의]
일제 강점기 말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한 연극배우이자 영화배우.
[개설]
문예봉(文藝峰)[1917~1999]은 1917년 1월 3일에 태어나, 1932년 16세의 나이로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하였고, 그 후 많은 작품의 주연을 독차지하면서 ‘3천만의 연인’이란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일제 강점기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연극배우이자 영화배우이다. 일제 강점기 말[1937년 무렵]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 40-12번지[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해방 후 남편 임선규와 월북하여 1952년에 북한 최초로 ‘공훈 배우’ 칭호를 받았다.
[활동 사항]
문예봉은 1930년경부터 무대에 섰으며, 1931년 아버지 문수일이 창단한 ‘연극 시장’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32년 16세의 나이로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로 영화에 첫 출연하였다. 1933년 4월 극작가 임선규와 결혼하였다. 1935년에 한국 최초의 토키 영화[무성 영화] 「춘향전」에서 성춘향 역을 맡았고, 1936년에는 「장화홍련전」[아버지 문수일과 함께 출연], 「무지개」 등에서 주연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1930년대 말부터 친일 영화에도 다수 출연하였다. 해방 후에는 조선 영화 건설 본부와 조선 영화 동맹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초에 월북하여 그 이듬해 북한의 첫 예술극 영화 「내 고향」에서 혁명가의 아내 역으로 출연하였다. 1952년에 북한 최초로 ‘공훈 배우’ 칭호를 받았다. 1965년 『조선 영화』 4월호에서 나운규를 ‘천재적인 예술가이며 정열적인 인간’으로 묘사한 수필이 화근이 되어, 문예봉은 반혁명 반동으로 몰려 안주 협동 농장으로 추방당하였다가, 1980년 「춘향전」의 월매 역으로 복귀하면서 복권되었다. 4남매와 13명의 손자 손녀를 두었던 문예봉은 북한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누리다 1999년 3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임자 없는 나룻배」[이규환 연출, 1932], 「춘향전」[이명우 연출, 1935], 「아리랑 고개」[홍개명 연출, 1935], 「춘풍」[박기채 연출, 1936], 「그 후의 이도령」[이규환 연출, 1936], 「장화홍련전」[이명우 연출, 1936], 「무지개」[이규환 연출, 1936], 「미몽」[양주남 연출, 1936], 「인생 항로」[안종화 연출, 1937], 「나그네」[이규환 연출, 1937], 「군용 열차」[서광제 연출, 1938], 「애련송」[김유영 연출, 1938], 「새출발」[이규환 연출, 1939], 「수선화」[김유영·방한준 연출, 1940], 「수업료」[최인규 연출, 1940], 「내 고향」[강홍식 연출, 1949]에 출연하였다.
또 「용광로」[민정식 연출, 1950], 「소년 빨치산」[윤용규 연출, 1951], 「빨치산 처녀」[윤용규 연출, 1952], 「신혼부부」[윤용규 연출, 1955], 「춘향전」[윤용규 연출, 1980], 「봄날의 눈석이」[조선 예술 영화 촬영소, 1985], 「생명수」[조선 예술 영화 촬영소, 1985], 「은비녀」[조선 예술 영화 촬영소·총련 영화 제작소, 1985], 「위대한 품」[조선 예술 영화 촬영소, 1986] 등에 출연하였다.
[묘소]
묘소는 평양 애국 열사릉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문예봉은 1952년 북한 최초로 ‘공훈 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1982년 김일성의 70세 생일을 맞아 배우로서는 최고의 영광인 ‘인민 배우’가 되었고, 국가 훈장 제1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