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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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建築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무정 |
건립 시기/일시 | 673년 - 옥천암 의상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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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863년 - 원통사 도선 창건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053년 - 원통사 관월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392년 - 원통사 천은 득일 삼창 |
개칭 시기/일시 | 1398년 - 천축사 사액 태조 내림 |
건립 시기/일시 | 1573년 - 도봉 서원 창건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10년 - 원통사 청화 중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71년 - 도봉 서원 훼철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87년 - 원통사 대법당 응허 중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3년 - 도봉 서원 단 설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8년 - 원통사 아미타불·지장보살상 자현 조성 |
개칭 시기/일시 | 1936년 - 원통사에서 보문사로 개칭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1년 - 도봉 서원 도봉 서원 재건 위원회 일부 복원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 덕성 여자 대학교 약학관·자연관·강의동 완공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 덕성 여자 대학교 한국 건축가 협회상 수상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2년 - 국립 현대 미술관 창동 창작 스튜디오 건립 |
현 소재지 | 국립 현대 미술관 창동 창작 스튜디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601-107 |
현 소재지 | 덕성 여자 대학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 144길 33[쌍문동 419] |
현 소재지 | 덕성 여자 대학교 덕우당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 144길 33[쌍문동 419] |
현 소재지 | 도봉구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마들로 656[방학동 720] |
현 소재지 | 도봉 구민 회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 552[창동 303] |
현 소재지 | 도봉 서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 |
현 소재지 | 도봉 실내 배드민턴장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2동 652 |
현 소재지 | 도봉 실내 수영장 - 서울특별시 도봉구 마들로 859-19[도봉동 30-1] |
현 소재지 | 둘리 테마파크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
현 소재지 | 원통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46 |
현 소재지 | 창동 문화 마당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4동 3 |
현 소재지 | 창동 스포츠 문화 콤플렉스 - 서울특별시 도봉구 노해로 69길 132[창동 1-6] |
현 소재지 | 천축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549 |
현 소재지 | 학마을 다사랑 센터 -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루봉로 128[방학동 446-5]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인간적 요구와 건축 재료에 의해 실용적·미적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진 구조물.
[개설]
1. 삼국 시대
고구려는 시원 종족인 부여족의 전통을 이어받아 건국 초부터 발달된 기법과 자재로 된 새로운 건축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의 사찰 건축은 불교가 도입된 372년 이후 성문사(省門寺)·이불란사(伊弗蘭寺)·평양의 구사(九寺) 등 많은 사찰을 창건한 것으로 미루어 매우 발달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의 궁궐 건축은 평양 시내에 있던 안학궁 터[安鶴宮址]의 발굴 조사에서 건물의 배치 등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안학궁은 한 변의 길이가 약 1㎞쯤 되는 마름모꼴의 왕성 안에 58채의 건물들로 구성되었다. 궁궐은 남·중·북의 삼궁(三宮)과 동궁으로 형성되었고 각 궁이 문과 회랑·궁궐 건물로 서로 연결되고 있었으며 대체로 좌우가 대칭으로 되어 있었다.
백제의 건축에 관한 자료로서는 두 기의 석탑과 많은 절터와 산성들이 있고 문헌 자료는 극히 적어 세부 양식들이 어떠하였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당시의 와당(瓦當)이나 유물 등으로 미루어 건축의 가구 기법이나 구조는 고구려의 경우와 별다를 바 없었고, 세부 양식은 중국 남조(南朝)의 영향으로 조금 더 부드럽고 경쾌한 느낌의 건축이었다고 추측된다.
신라의 건축에 관한 자료로는 가야 지방에서 발견되었다는 몇몇 집 토기[家型土器]와 두 기의 석조 건물 이외에는 황룡사 터[皇龍寺址]와 분황사(芬皇寺) 등 당시의 사찰 유적과 왕성이었던 월성(月城)뿐이다. 신라에서 발달된 새로운 기법과 자재로 된 건축이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유물들을 통해 늦어도 5세기 초에는 새로운 건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2. 고려 시대
고려 초기 건축을 비롯한 모든 문화는 신라를 계승하였다. 중기에 들어와서는 남송(南宋)과의 교류로 중국 화남 지방에 있던 새로운 양식의 건축이 고려에 도입되어 주심포(柱心包) 양식을 정착시켰고, 말기에는 원(元)과의 교류로 화북 지방에 있던 또 하나의 새로운 건축 양식이 도입되어 다포(多包)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이들 두 양식의 건축은 고려 말에서 조선 시대를 통하여 우리나라 권위 건축의 주축을 이루었다.
3. 조선 시대
조선 시대의 목조 건축은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이 궁궐이나 사찰 등 주요 건축의 주류를 이루었다. 두 양식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부의 가공 기법이 간략해지고 두 양식이 혼용되기 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건물의 두공의 주두와 소로에서 가장 일찍이 나타났다. 다포 양식의 건축에 주심포 양식이 혼용된 것으로는 평양의 보통문(普通門), 개심사 대웅전(開心寺大雄殿) 및 전등사 약사전(傳燈寺藥師殿) 등이 있다.
4. 개항기
19세기 말 개항과 더불어 다른 문물과 함께 낯선 서구 양식이 유입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모든 체제와 생활의 기능이 서구화함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개항은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인 만큼 일본의 외교 공관 시설이 처음으로 들어와 원산[1880]·인천[1883]·서울[1884]·부산[1884] 등지에 영사관과 공사관이 차례로 세워졌는데, 초기 일본 기술에 의한 의양풍(儀洋風)의 목조 2층 건물들이었다.
1890년 이후부터는 서양 각국의 외교 공관도 출현하였는데, 러시아[1890]·영국[1890]·프랑스[1896]·벨기에[1905]·독일[1900년경] 영사관 등 준 르네상스식 벽돌 2층 건물로 격식을 갖춘 것이었다. 또 신구 기독교의 유입에 따라 배재 학당 교사[1886]·정동 교회[1898]·천주교 명동 주교관[1890]·약현 성당[1892]·명동 성당[1892~1898] 등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세워졌다. 이 무렵 인천의 외국인 거류지에는 주거 형식의 외국 상인들의 상용 건축(商用建築)이 세워졌으며, 독립 협회의 주관으로 관민이 협력하여 독립문[1897]이 건립된 사실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5. 일제 강점기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조선의 행정 기구 재조직과 함께 관아 건물을 더욱 많이 세우게 되었는데, 1916년에서 1926년까지 10년간에 걸쳐 세워진 총독부 건물은 르네상스식 석조 건축으로 일제 강점기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그 밖의 관아 건축들은 르네상스식에 바탕을 둔 절충주의적인 것이 많았다. 1928년경부터는 한편으로 건축에 조선의 향토적 정서를 포함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선 전주·남원·서평양·경주 등 유서 깊은 지방의 역사(驛舍)라든가 박물관 등에 채택되었다. 1929년경부터 한국인 건축가의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6. 현대
1954년에는 대한 건축학회가 조선 건축 기술단 후신으로 발족하였고, 1957년에는 한국 건축가 협회의 전신인 한국 건축 작가 협회가 조직되었다. 1950년대의 주요 작품으로는 남산 국회 의사당 현상 설계[1959, 미실시, 김수근 외]·명보 극장[1957, 김중업]·부산 대학교 본관[1957, 김중업]·서울 대학교 농과 대학 교사[1957, 김희춘]·국립 중앙 기상대[1959, 정인국]·혜화동 성당[1958, 이희태] 등이 있는데, 대체로 국제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이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시작되는 1960년대는 경제 개발과 더불어 건설의 수요가 급증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울 시민 회관[1961, 이천승]과 프랑스 대사관[1962, 김중업], 워커힐 각 동[1962, 김희춘 외]·명동 성모 병원[1963, 김정수] 등이 있다. 이런 건물들은 국제주의적 경향이 기반이 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려는 표현적인 노력이 보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의 변화로는 기념적 공공건물의 속출과 업무용 건축의 대형화 및 주거 건물의 변모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기념적 건축인 국립 극장[1973, 이희태]·국회 의사당[1975, 김정수 외]·세종 문화 회관[1978, 엄덕문] 등은 열주(列柱)를 사용한 고전적 근대주의와 한국적 건물의 세부를 반영한 것이며, 업무용 건물인 동방 생명 빌딩[1976, 박춘명]·대우 센터[1976] 등은 합리주의적 근대주의의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1980년대는 대한 생명 63빌딩의 착공과 함께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건축 대전은 1982년 새로이 탈바꿈되어서 나타났고, 1980년대 초 우리의 근대 건축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봉구의 건축]
도봉구에는 시대를 아우르는 귀중한 역사의 보고인 건축물들이 곳곳에 건재하고 있으며 특히, 유서 깊은 사찰들이 많다.
1. 원통사
원통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1교구인 조계사의 직할 사찰로 신라 경문왕 3년인 863년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으며, 도봉산 자락 우이암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 시대인 1053년(문종 7)에 관월 대사가 재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인 1392년(태조 1)에 천은 선사가 삼창하였다. 그 뒤 영조 때 유인(宥牣)이 퇴락한 불전과 승당을 중수하였고, 1810년(순조 10)에 청화(淸和)가 중수하였으며, 1887년(고종 24)에는 응허(應虛)가 대법당을 중수하였다.
1928년 초여름에 주지로 온 비구니 자현(慈賢)은 불전을 신축하는 한편, 보경(寶鏡)을 청하여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그 뒤 1933년에 칠성각을, 1936년에는 법당 일부와 대방(大房)을 중수하였고, 이때 절 이름을 원통사에서 보문사로 바꾸었으며, 1938년에는 독성각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관음 보전과 삼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관음 보전만이 1929년에 건립한 것이고 나머지는 근래에 지은 건물들이다. 이 밖에 고색이 깃들인 석물들과 축대, 요사채의 주춧돌, 수령 600여 년의 느티나무 등이 있다.
경내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하였던 석굴이 있으며, 약사전 아래 거북 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새겼다는 ‘상공암’이라는 글씨가 있다. 원통사는 예로부터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초고 길지에 자리 잡은 수행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문화유산 보존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2. 천축사
천축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직할 교구로 조계사에 속해 있다. 북한산 국립 공원의 도봉산 선인봉 남쪽에 있다. 673년에 의상(義湘)이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암자를 세웠고, 그 뒤 고려 명종 때는 영국사(寧國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부속 암자로 삼았으며, 1398년(태조 7년)에 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寺額)을 내렸다. 1474년(성종 5)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 문정 왕후(文貞王后)가 화류 용상(樺榴龍床)을 헌납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1812년(순조 12)에 경학(敬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은 영험 있는 기도 도량으로 여러 차례 중수하였는데, 현재의 당우는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圓通殿)·복운각(福雲閣)·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참선 도량인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전래되는 유물 가운데 문정 왕후가 헌납한 화류수 목조 용상(樺榴樹木彫龍床)은 대웅전 안에 보존되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약 50년 전에 창건한 석굴암이 있다. 당우로는 석굴·만월 보전(滿月寶殿)·나한전(羅漢殿)·종각(鐘閣)·요사채 등이 있다.
3. 도봉 서원
조선 시대의 건축인 도봉 서원은 도봉산길 입국 옛 영국사 터에 위치해 있으며, 현존하는 서울 소재 유일한 서원이다. 1573년(선조 6)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창건과 동시에 ‘도봉(道峯)’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1871년(고종 8)에는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기도 하였으나, 위패를 땅에 묻어 보관하였다가 1903년(고종 40) 지방 유림이 단(壇)을 설치하여 향사를 지내 왔다.
1971년 도봉 서원 재건 위원회에 의해 일부 복원되어 현재 뒤편에 있던 사당만이 남아 있으며, 도봉 서원과 각석군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 건물로는 세 칸의 사우(祀宇,) 유도문(由道門)이라 편액된 신문(神門), 동협문(東夾門), 서협문(西夾門) 등이 있으며, 사우 안에는 조광조와 송시열(宋時烈)의 위패가 있다.
4. 덕성 여자 대학교
전통적 미감의 건축물들을 이어 한국 근현대 건축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건물 역시 도봉구에 위치하고 있다. 덕성 여자 대학교 쌍문동 캠퍼스의 건축물 중 약학관, 자연관, 강의동의 세 건물은 한국 현대 건축가 제1세대인 김수근에게 의뢰하여 1977년 기공된 후 1979년 완공되었다. 인접한 북한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필로티(Piloti) 공법으로 축조되었으며, 각각 다른 건물이지만 1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 건물의 구성이 북한산 백운대를 전망할 수 있도록 하여 자연을 받아들이는 배치를 하였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들과 차별되는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이 건물은 1979년 한국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한 바 있어 의미가 깊다.
더불어 덕성 여자 대학교 내부에 있는 덕우당은 1930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에 지어진 아름다운 한옥으로, 1998년 덕성 여자 대학교 쌍문동 캠퍼스로 이전하였다. 이 건축물은 근대식 주상 복합 건물 형식을 대표하고 있어 변화하는 도시 유형의 귀중한 예로 평가받고 있다.
5. 도봉구 공공건물
도봉구에서는 도봉구 청사, 도봉 구민 회관, 행정 지원 센터, 거주자 우선 주차, 창동 스포츠 문화 콤플렉스, 도봉 실내 배드민턴장, 창동 문화 마당, 도봉구 재활용 센터, 학마을 다사랑 센터, 도봉 실내 수영장, 도봉 견인 보관소 등 공익과 수익이 조화를 이루며 도봉 구민들에게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물들을 많이 건축하고 있다.
또 도봉 구민들의 삶의 질을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과 관심 역시 점차적으로 증대시켜 2002년에는 국립 현대 미술관 창동 창작 스튜디오가 건립되었다. 국립 현대 미술관 창동 창작 스튜디오는 역량 있는 작가 발굴과 함께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창작 공간을 마련해 주고, 단순한 작업실의 개념을 넘어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 작가들의 발전은 물론 시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2013년 현재는 도봉구의 아이콘인 둘리를 모티브로 한 전시 체험관, 어린이 도서관, 애니메이션 상영관 등을 포함하는 둘리 뮤지엄을 설립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