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1224
이칭/별칭 장승배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수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9년 - 「장승백이」 『동명연혁고』12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9월 30일 - 「장승백이」 『동작구지』에 재수록
관련 지명 장승백이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2동[노량진2동]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유래담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장승백이[장승배기]의 지명 유래담.

[개설]

「장승백이」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에 가는 길에 쉬어가던 곳으로, 장승을 만들라고 했던 것에서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2동 일대를 ‘장승백이’로 불렀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장승백이」는 1994년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간행한 『동작구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1989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동명연혁고』12에 수록된 것을 재수록한 것이다. ‘장승백이’ 지명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1994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회에서 발간한 『서울민속대관』6에 황광연[남, 21세]으로부터 채록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고, 2015년에 발행된 김학규·맹현숙의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에는 「정조와 변강쇠, 장승배기에서 만나다」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노량진동, 대방동이 마주한 지역은 장승백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의 정조(正祖) 임금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를 다녔다.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이 경기도 수원에 있어서 행차할 때에는 장승백이에서 쉬었는데, 장승백이는 나무가 무성해서 날씨가 궂으면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때문에 정조가 장승을 만들어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하라고 하였다. 장승이 세워지고 난 후 ‘장승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서울특별시 동작구 장승백이에 대한 이야기는 판소리 「변강쇠가」에서도 발견된다. 게으른 변강쇠가 나무를 하지 않고 함양(咸陽)에 있는 장승으로 땔감을 만들었을 때, 함양장승이 대방장승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를 들은 대방장승이 전국의 장승을 모으는데, 대방장승이 다름 아닌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장승이다.

[모티프 분석]

대개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워두던 장승은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장승이 있던 지역은 ‘장승배기’나 이와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전해지는 「장승백이」의 지명 유래 설화는 장승이 세워지게 된 점을 사도세자의 묘소를 가던 정조가 만든 것이자 휴식을 취하던 곳이 나무가 무성하여 스산한 기운을 주기에 이를 막고자 세운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정조의 효성을 보여주는 설화이자 악귀를 물리쳐 줄 것이라 생각하였던 장승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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