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1597년 정유재란 때 원신과 김언공이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 지역에서 왜군을 궤멸시킨 전투. 일본은 명과의 강화가 결렬되자 1597년(선조 30) 1~2월에 14만5천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재차 조선을 침략하였다. 금구대첩(金溝大捷)의 목적은 직산전투에서 패퇴한 왜군이 정읍을 향하여 남주할 것을 예상하여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인 원신과 김언공(金彦恭)의 군사로 기습 공격을 하여...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동래정씨 동성마을. 동래정씨(東萊鄭氏)는 신라 유리왕 때 정씨 성을 하사받은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이후 계대가 전해지지 않아 후손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한다. 조선시대에 전주이씨[22명], 안동김씨[19명] 다음으로 정승을 17명이나 배출하였고 대제학 3명, 대과 급제자 198명을 낳은 대표적인 명문가이다. 고려 때 양헌(良獻) 정...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박명수(朴命壽)는 본관이 함양(咸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백의창의(白衣倡義)하여 의병을 모집한 뒤 웅치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순절하였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장수와 양곡을 주청한 이순신(李舜臣) 등 18명은 선무...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순흥안씨 동성마을. 순흥안씨(順興安氏)는 안자미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흥령현(興零縣)[순흥의 별칭]에 정착하였다.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은 순흥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현재 순흥안씨는 안자미의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안영린(安永麟)·안...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훈(大勳). 아버지는 안경신(安敬信)이다. 안위(安衛)[1563~1644]는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무고되어 용천에 유배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함락되자 배소를 이탈한 뒤 평양에 도착해 어느 병사의 막하에 배속되었다. 1592년 영유무과(永...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안위의 묘. 안위(安衛)[1563~1644]는 1592년(선조 2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거제현령이 되었다. 1594년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이 지휘한 제2차 당포해전 때 전부장(前部將)으로 공을 세웠다. 1597년에는 부산의 왜군 화약고에 불을 질러 폭파하였으며, 이후 전라우수사를 거쳐 전라도병마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초기에는 왜군의 일방적인 북상이 계속되었다. 풍부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대규모 왜군은 당일에 부산성을 점령하고, 계속 북상하여 같은 해 5월 2일에 한양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침공한 지 20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 유교를 국시를 삼은 조선시대에서는 행동 강령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강(三剛), 특히 군신과 부자와 부부 관계의 도리를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충(忠)·효(孝)·열(烈)을 장려하고 두드러진 행적이 있는 사람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올려 백성들의 사표로 삼았으며, 또 정려를 내려서 마을 입구에 정려...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황박의 정려. 황박(黃璞)의 본관은 우주(紆州), 호는 죽봉(竹峰)으로 문숙공 황거중(黃居中)의 후손이다. 황거중은 우주황씨(紆州黃氏)를 중흥시킨 인물로, 고려 말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남원 운봉 전투에서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무찌를 때 종사관으로 참전하여 개국 공신이 되었으며 정당문학에 발탁되었다.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