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지산현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면서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가 되어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구지지산...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김제·금산·금천 등 지명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백제시대에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금구현(金溝縣), 조선시대에 전주속현 지역이었다. 1910년 금구군으로 승격되어 10개 면을 관할하다가,...
-
이주를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금구이씨(金溝李氏)의 시조는 이주(李澍)로, 금구는 원래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인데 신라 때 금구가 되었다. 이주가 봉산군(鳳山君)[봉산은 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홍문관대제학을 지낸 시조 이주가 금구 지역에 낙향하면서 후손들이 이곳에 세거하게 되었다. 이주의...
-
75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후 백제 영토는 685년(신문왕 5)까지 신라식 4주 3소경 및 다수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각 고을의 이름도 당나라가 중국식으로 고쳤던 주·현의 이름이 복구되었지만, 상당수가 점차 신라화하였다. 신라는 757년(경덕왕 16)에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
-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금구현 북쪽 7리 낙양폐현’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금구면은 원래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이었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금구현(金溝縣)이 되었다. 고려 때는 무신 이의방(李義方)의 외향이라 해서 1170년(의종 24) 현령 치소로 승격되었으며, 거야현(巨野縣)과 낙양현(洛陽縣)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