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정평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골탕 먹은 소금장수」는 김제 출신인 정평구(鄭平九)를 통해 속임수를 잘못 쓰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당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교훈담이다. 이를 「소금장수 골탕 먹인 이야기」라고도 한다. ‘소금장구’란 소금장수의 사투리이다. 담뱃잎을 공짜로 얻으려다가 도리어 소금장수에게 있는 것까지 빼앗긴 정평구가 이를 만회하고...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흥복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렁이와 흥복사」는 김제시 백산면 흥사리[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흥복사 중건에 관한 명칭유래담이다. 본래 흥복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末寺)로 650년 고구려의 고승 보덕대사가 창건하여 승가사라고 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그 후 1625년(인조...
-
전라북도 김제시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노래. 김제시민의 노래이자 실질적인 김제시의 시가(市歌)라고 할 수 있는 「김제시민의 노래」는 김제지평선축제 같은 김제시의 공식 행사 때 주로 불리는 노래이다. 또한 김제시립합창단의 ‘찾아가는 음악회’ 공연 때도 불리고 있는 김제시의 상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총 2절이며, 4/4박자로 이루어져 있다. 「김제시민의 노래」는 김제의 자연과 지...
-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에서 김효자·호랑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효자와 호랑이」는 갈공동에 있는 효자비를 세우게 된 비석유래담이자 위기에서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해준 것에 대한 호랑이의 보은담이다. 갈공동의 효자비와 호랑이 조각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하늘이 낸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김효자가 호랑이의 가시를 빼주고,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 주었다. 이런 은혜를...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서 황산에 있는 까막샘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향토학자 정진형이 봉황동[지금의 신풍동]에서 채록한 이야기로, 1995년 편찬된 『김제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 김제 황산의 한 골짜기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일곱 살 때 까치 알을 꺼내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후로 벙어리에 귀머거리, 거기다 정신마저 흐...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단야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단야의 설화」는 김제태수의 딸인 단야가 벽골제 제방을 마구 무너뜨리는 청룡에게 제물로 바쳐져 벽골제와 백성들을 살려냈다는 인신공희담이다. 단야아가씨가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백성들은 청룡이 사는 곳에 배를 띄우고 단야의 넋을 위로하였다. 또한 그녀의 효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단야각(丹若閣)과 단야루...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서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당산에 쓴 명당」은 김제 출신인 정평구(鄭平九)가 친구를 돕기 위해 거짓 봉분을 세우고 명당자리를 얻었다는 풍수담이다. 정평구는 청렴결백한 친구를 위해서 거사(居士)를 만나 당산의 명당자리를 얻었지만, 아무리 명당이라고 할지라도 당산에 묘를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평구가 거짓 봉분을...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서 벽골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는 옛날 부량면 포교리에서 월승리에 걸쳐 제방을 쌓을 때에 푸른 뼈를 넣어 벽골제를 건설했다는 토건유래담이다.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흘해왕 21년 조에 ‘시개벽골지안장일천팔백보(始開碧骨池岸長一千八百步)’라고 기록되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모심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모심기 노래」는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논농사는 무엇보다도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모심기 노래」 같은 노동요가 불리게 되었다. 특히 김제 지역은 ‘징게맹게 외애밋들’이라고 하는 금만경평야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모심기 노래」...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서 제주방죽 물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주방죽은 부량면 소재지에서 동남쪽 약 2㎞ 지점 월승리 명금산 아래 있던 옛 연못으로, 1925년 논으로 바뀌었으나 주민들은 지금도 이에 대한 기억과 정평구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물오리를 팔아먹은 정평구」는 제주방죽의 물오리를 두 번이나 팔아먹은 사기성공담이자 지략담이다. 이를 「제주방죽...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벽골제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벽골제 비명의 보존」은 부량면 신용리의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옆에 위치한 벽골제비(碧骨堤碑)에 얽힌 비석유래담이다. 벽골제비는 벽골제 사적과 개보수 상황을 기록하여 새긴 것으로 1959년 벽골제와 함께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1975년 제1차 벽골제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되어 문헌에 나타난 연대와 안장(岸長...
-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에서 임진왜란 때 정평구의 활약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보물상자 이야기」는 왜적이 전라도를 공격하여 무주·진안·장수 지역까지 공격해 왔을 때, 정평구가 지략으로 왜적을 물리친 지략담이다. 이를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박살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정평구는 보물 상자로 가장한 벌통으로 왜적을 혼쭐내고, 또한 벌통으로 가장한 화약통으로 전원을 몰살시켰다...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서 ‘이랴’ 소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부잣집 손부와 이랴소리」는 손자며느리가 뜻하지 않은 일로 피신을 할 때 같이 가던 소가 말을 듣지 않자 ‘이랴’ 소리로 꾀병을 부리는 소를 끌고 갔다고 하는 이랴 소리유래담이다. 옛날에는 여장부를 탐탁지 않게 여겨 멀리 집을 떠나게 된 손자며느리가 많은 짐을 실은 소가 힘이 부쳐서 고개를 오르지 못하자 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소리. 노동요는 일의 지루함을 잊고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이다. 「상사소리」는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소리로, 약간 빠른 4박자로 되어 있으며 늦은 잦은몰이 장단에 맞는다. 선소리꾼이 어깨에 북을 메고 소리를 하면 모를 심는 사람들이 뒤에서 받아서 소리를 하는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다. 시김새가 단순하며 소박하게 들린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상례의식에서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의식요. 「상여 소리」는 우리나라에서 전통 장례의식을 치를 때 상여를 나르면서 부르는 장례의식요이다. 이를 「오행 소리」라고도 한다. 죽은 사람의 상여가 집을 떠나면서부터 관을 장지에 내리는 순간까지 상당히 긴 시간을 부르게 된다. 이때 소리를 먹이는 사람 그리고 상주와 문상객들이 소리를 나누어서 부른다. 소리를 먹이는...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일원에서 농업노동요를 부르면서 농사일을 하는 전통 민속놀이. 만경(萬頃)은 글자 그대로 풀면 두둑이 만개라는 뜻으로, 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이다. 금만평야의 광활한 농토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경과 관련되어 생활을 한다. 금만경 들놀이는 ‘품앗이’, ‘두레’ 등 집단적인 공동 작업이다. 모심기와 김매기, 벼베기, 등짐하기 등 농사일을 하는 가운데 피로를...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신정리 서정마을에서 요강다리와 옥새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요강다리와 옥쇄골」은 신행을 가던 신부가 다리 밑으로 요강을 떨어뜨렸다는 요강다리의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신부가 옥쇄골에서 산고 끝에 귀한 옥동자를 낳았고, 후에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하는 이씨 가문 중시조 탄생유래담이기도 하다.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한 이야기이다. 그...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석동리에서 석동방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이 된 강처녀와 추방제」는 석동리 석동마을에 있는 석동방죽[추방제]과 관련된 지소(池沼)전설이다. 강처녀와 곽총각은 서로 사랑을 했으나 인연을 맺지 못하고 강처녀가 죽는다. 곽총각은 죽은 강처녀의 소원대로 방죽을 쌓다가 벼락을 맞아 돌로 변한다. 그 후에 강처녀는 용이 되었으나 석동방죽에 매년 총각 한...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서 명량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다 지친 명량산」은 형제산 중에서 동생 산이 이곳에 위치하게 된 산악전설이다. 이를 「울다 지친 울엉산」이라고도 한다. 김제시 서남쪽 죽산에서 서해 바다 쪽으로 2㎞ 지점에 명량산(鳴良山)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봐서 바닷물이 밀려드는 갈잎 속의 진흙땅이어서 산이 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그런데...
-
전라북도 김제시 순동에서 의견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의견비(義犬碑)」는 주인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개에 관한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 의구전설(義狗傳說)이자 의견비 유래담이다. 이를 「술 취한 주인을 구한 의견」이라고도 한다. 의견비는 주인[김득추]을 구하고 대신 죽은 살신성인의 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순동 마을을 가로 지르는 호남선 철로변의 올림픽 기념 숲에 세...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정평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름난 거짓말쟁이」는 정평구(鄭平九)[1566~1624]가 속임수로 시골 양반들을 속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줌으로써 거짓말의 묘미를 보여준 재치담이다. 이를 「시골양반 골탕 먹인 이야기」라고도 한다. 지금도 부량면에서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정평구 같은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별호가 전해지게 된 것은 당시...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장산리에서 입석산·와석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입석산과 와석산 싸움」은 청하면 장산리에 위치한 입석산(立石山)과 와석산(臥石山)의 생김새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산악전설이다. 힘이 센 장수가 서로 힘자랑을 하며 싸우다가 수바위는 장수처럼 우뚝 서 있다고 해서 입석산이 되었고, 암바위는 싸움에 져서 누워 있는 형상으로 와석산이 되었...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정평구의 후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삿날 잠자다가 벌 받은 불효」는 부량면 명금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하는 정평구(鄭平九)[1566~1624]와 관련이 깊은 이야기이다. 정평구는 「하늘을 나는 비거」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성심성의껏 제사를 지내지 않는 아들에게 화가 난 정평구의 혼령이 어린 손자를 죽게 만든 이후로 정씨 일가는 제사를 정성...
-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에서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연벽과 벽골룡」은 벽골제와 관련된 많은 설화 중 특별히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趙連璧)에 대한 씨족시조전설이다. 또한 벽골제 수호신인 벽골룡의 부탁을 받고 벽골제를 빼앗으러 온 변산의 청룡을 활로 쏘아 쫓아 주었다는 괴물퇴치담이다. 이를 「쌍용추(雙龍湫)와 벽골룡」이라고도 일컫는다. 전라북도 김...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서 화선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지네로 변한 이무기와 화선지」는 만경현 남상면[지금의 김제시 진봉면] 가실리와 정당리 사이에 있는 화선지에 살면서 백성을 괴롭히는 이무기를 퇴치한 함장군(咸將軍)의 영웅담이자 지네로 변한 이무기의 보복담이다.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전라북도 문화관광정보[http://www.g...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서 징검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청상과부와 홀어미다리」는 금산면 청도리 청도원마을에서 과부인 어머니가 쉽게 홀아비를 만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 드렸다는 효행담이자 다리유래담이다. 또한 어머니에게는 효성,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된다는 효불효설화(孝不孝說話)이기도 하다.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한 이야기이다. 그 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칠성신이 되는 유래를 밝혀 주는 서사무가. 「칠성풀이」는 칠성신의 근원을 풀어 밝히는 서사무가이다. 이를 「살풀이」, 「성신굿」, 「문전분풀이」 등이라고도 한다. 「칠성풀이」는 전국적인 전승 분포를 보이는 서사무가 유형의 하나로, 마음씨 나쁜 계모로부터 죽음을 모면한 전실 소생의 아들들이 칠성신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칠성신의 명칭은 함흥의 「살풀이」,...
-
전라북도 김제시 연정동에서 대제복구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피 흘리는 비」는 김제에서 죽산 방향으로 2㎞ 지점의 연정동 후신마을 앞 도로변에 있는 대제복구비가 피를 흘린다는 비석전설이다. 대제복구비는 1848년(헌종 14) 7월에 세운 것으로 김제군 내에서 가장 컸다는 대제저수지를 복구한 사람들에 대한 공적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대제를 복구할 당시의 총위사, 전라도관찰...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비거(飛車)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늘을 나는 비거」는 부량면 명금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하는 정평구(鄭平九)[1566~1624]의 활약상을 담은 인물전설이자 비거를 제작했다는 발명담이다. 정평구는 조선시대 선조(宣祖) 때의 인물로서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여암전서(旅庵全書)』 책...
-
전라북도 김제시 서남동에 있던 금만신문사에서 발행했던 지역 주간 신문. 『금만신문』은 1991년 5월 3일 김제 지역에서는 최초로 발행된 지역 주간 신문으로, 지역 언론의 활성화로 김제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사시(社是) 아래 창간되었다. 판형은 타블로이드 배판[가로 393㎜, 세로 545㎜]으로, 매주 4면을 발행하였다. 1991년 5월 3일 창간된 『금만...
-
1995년 김제문화원에서 김제시의 향토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보존, 전승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발간한 책. 김제시는 호남평야의 중심지로서 벽골제(碧骨堤)를 쌓아 근대 농업의 바탕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도작문화(稻作文化)을 발전시킴으로써 많은 문화 유적을 남겼다. 그러나 산업 문명이 발달하면서 선현(先賢)들의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들이 소멸되고 잊혀질 뿐만 아니라 사라져 가고 있다....
-
1994년 김제군에서 김제의 지리와 역사를 중심으로 일반 현황을 엮어 간행한 군지. 1994년 김제군과 김제시가 도농 복합 통합시로서 출발하기 전에 김제군의 행정구역은 물론, 생활문화권으로서의 김제군의 지역성을 남기려는 차원에서 『김제군사(金堤郡史)』를 간행하게 되었다. 1권 1책이며 1,472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크기는 가로 21.8㎝, 세로 30.4㎝이다. 제1편 김...
-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문인협회에서 매년 발행하는 문예 잡지. 『김제문학』은 1984년 6월 김제 지역 문인들의 문예 작품 발표 및 출향 문인들 간의 교류를 꾀하고자 창간되었다. 판형은 4·6배판이며, 수필·기행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이 수록된다. 『김제문학』은 특집과 김제문인협회 회원들의 창작 작품 및 모악문화제 백일장 수상작, 각종 백일장 수상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문화유적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김제문화유적분포지도』는 김제 지역 지정·비지정 문화재에 관한 문화유적분포지도로, 2007년 김제시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공동 발행하였다. 『김제문화유적분포지도』는 단행본 1권으로 총 508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제문화유적분포지도』는 김제시의 행정지도 및 고지도, 발간사, 조사 개요, 김제시의 자연환경과...
-
2008년 김제시청 문화홍보실에서 인터넷상으로 김제 소식을 전하는 디지털 신문. 『김제시 웹진』은 2008년 1월 9일 김제시청 문화홍보실에서 인터넷 사용자의 증가에 맞춰, 김제시 시정 소식을 시민들에게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창간하였다. 일정한 주기를 두지 않고 일반 행정, 의정 활동, 사회 복지, 농사 정보 등 김제 지역 시정 소식과 새만금·지평선과 관련하여 시민들에게 알린 내용...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김제시민의 신문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 주간 신문. 『김제시민의 신문』은 1997년 7월, 12만 김제시민을 대상으로 지역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을 종합·분석하여 시민들에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와 진정한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창간되었다. 판형은 타블로이드 배판[가로 393㎜, 세로 545㎜]으로 매주...
-
1995년 김제시에서 김제의 지리와 역사를 중심으로 일반 현황을 엮어 간행한 시지. 1995년 도농 복합 통합시로서 출발하는 김제시의 의미를 부각하려는 차원에서 통합 이전 6년간의 김제시와 관련한 자료를 집대성하여 『김제시사(金堤市史)』를 간행하게 되었다. 1권 1책이며, 1,815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크기는 가로 19.4㎝, 세로 26.5㎝이다. 표제는 김제시사(金堤市...
-
1884년 나기익(羅基翊)이 김제 지역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망라하여 편찬한 지리지. 예부터 많은 충신과 효자를 낳은 고장으로서의 김제의 위신을 드높이고, 후대에도 이를 오래도록 본받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김제읍지(金堤邑誌)』를 편찬하였다. 1권 1책의 필사본이다. 건치연혁, 군명, 관직, 방리(坊里), 도로, 산천, 성씨, 분포 지역, 풍속, 학교, 서원, 단묘(壇廟), 공...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향토문화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김제의 문화재』는 김제 지역의 문화재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김제문화원에서 1999년 초판, 2006년 개정판을 간행하였다. 『김제의 문화재』는 단행본 1권으로 총 200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제의 문화재』는 김제시의 연혁, 문화재 현황, 등록취소 문화재, 김제 고지도, 새만금의 기원, 목조건물 명칭, 석탑 및 불상...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지명과 마을의 유래를 조사하여 기록한 책. 김제는 호남평야의 중심지로 삼한시대에는 50여 개국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부족국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곳이며, 어느 지역보다 가장 먼저 저수지 벽골제를 쌓아 도작문화(稻作文化)의 발상지가 된 고장이다. 전국 제일의 곡창지이기도 한 김제는 문화유산과 천혜의 기름진 옥토, 산자수려(山紫水麗)한 모악산을 가진 터전이다...
-
2001년 김제문화원에서 김제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구비문학을 조사하여 수록한 책. 김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던 곳이다. 특히 벽골제를 중심으로 도작문화(稻作文化)의 꽃을 피워서, 어느 지역보다 민담·전설·설화 등 구비전승물이 많았다. 구비문학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로 크게 시가와 서사문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가는 민요가 대표적이고 서사문학은...
-
1999년 김제문화원에서 김제시의 역사와 문화유산 등을 기록으로 남긴 자료집. 1999년 초판을 찍은 데 이어 2000년 재판, 2002년 증보판을 간행하였다. 1권 1책으로, 모두 218페이지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는 벼골의 문화유산(벼골의 文化遺産)이다. 크게 ‘김제시의 연혁’, ‘김제의 고지도’, ‘문화재 범례’, ‘김제에서 가볼 만한 곳’, ‘우리 고장 문화유적을 찾아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벽골제와 벼농사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 우리나라 고대 농업 발달사의 신기원을 이루었던 최고이자 최대의 수리저수지 벽골제는 330년(백제 비루왕 27)에 쌓았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백제 때 시축하여 통일신라에 1차, 고려시대에 2차, 조선시대에 1차 등 4차례나 증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
1993년 김제문화원에서 김제시의 인물과 농요, 민요, 무가, 고사, 민담 등에 대한 내용을 수집하여 기록한 향토 문화 자료집. 호남평야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김제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농경문화를 꽃피워 왔던 곳으로, 민요나 농요, 무가, 속담 등이 풍부하게 구전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의 문화 말살 정책과 해방 후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점점 사라져갔다. 이에 김제문화원에서는 이...
-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문화원에서 매년 발행하는 종합 문예지. 김제 지역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제6대 김제문화원 김병학 원장이 1986년에 『성산문화』를 창간하였다. 『성산문화』는 매년 발행되고 있으며, 김제문화원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이다. 판형은 신국판으로, 김제 지역의 출향 인사, 직장인 및 김제 지역에서 실시되는 각종 백일장에서 입상한 초·중·고등학생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
1990~1995년 조정래가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평야를 배경으로 쓴 대하 역사소설. 작가 조정래는 1990년 12월 11일부터 『아리랑』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아 12권을 완간하였다. 1998년에는 『아리랑』 프랑스어판 제1부 3권이 4월 말에 아르마땅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제1회 노신(魯迅)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에는 『아리...
-
내촌마을은 김제시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죽산면 소재지를 향하다 보면 좌측의 홍산[홍지뫼] 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풍수적으로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홍지뫼가 마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오랜 세월 벼농사가 근간이었던 이 마을은 인근에 위치한 벽골제가 말해 주듯 옛날부터 대규모로 벼농사가 이루어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우리고장 역사문화의 전통』은 김제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적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2004년 12월 30일 김제문화원에서 간행하였다. 『우리고장 역사문화의 전통』은 단행본 1권으로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고장 역사문화의 전통』은 제1편 총론, 제2편 우리고장의 역사, 제3편 우리고장의 문화유적으로 구성되어 있...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인물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우리고장 인물사』는 김제 지역의 주요 역사 인물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2002년 김제문화원에서 간행하였다. 『우리고장 인물사』는 단행본 1권으로 총 360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고장 인물사』는 김제문화원장의 발간사, 김제시장·김제시의회 의장의 축간사를 시작으로, 제1편 학자, 제2편 정치인, 제3편 종교인, 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항일 의병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우리고장 일제36년사』는 김제 지역의 항일 의병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2004년 김제문화원에서 간행하였다. 『우리고장 일제36년사』는 단행본 1권으로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고장 일제36년사』는 김제의 연혁과 행정구역을 비롯하여 제1장 역사적 배경, 제2장 왜구의 침략사, 제3장 조선조 때의 왜구 침략, 제4...
-
1994년 전라북도 김제 출신 작가 임영춘이 발간한 시집. 『통일낙서』는 김제 출신의 중견작가인 임영춘(林永春) 시인의 자연, 삶, 어머니, 통일문제를 소재로 한 시집으로, 1994년 9월 1일에 출간되었다. 『통일낙서』는 단행본으로 총 116페이지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4년 임영춘의 그간의 작품을 모아 세림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통일낙서』는 제1부 통일낙서, 제2부 8...
-
전라북도 김제문인협회 회원들이 2007년부터 매년 발간하는 시화집. 2007년 6월부터 김제문인협회 회원들 중심으로 명선명시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때 출품된 작품들을 소중히 여기고 기념하기 위하여 『해바라기』라고 하는 시화집을 발간하고 있다. 시화전을 개최할 때 관람하는 시민들에게 혹은 하소백련축제, 김제지평선축제 등에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여 큰 호응을 얻고...
-
2008년 전라북도 김제시가 시민의 행복도를 높인 지방자치단체에게 수여하는 ‘행복한 도시 대상’을 수상한 일. 『이코노미 21』에서 주최하고 행복한도시대상 운영사무국과 한국미디어포스트 주관으로 추진했던 ‘2008 행복한 도시 대상’ 행사에서는 엠브레인 리서치가 실시한 시민 설문조사를 통해 자치단체의 주거와 교육, 안전, 교통 등의 기초생활 환경과 쾌적한 도시환경, 문화 등에 대한...
-
1919년 3월 2일부터 4월 4일까지 전라북도 김제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뒤 무단 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은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다양한 경로로 나타났다. 한편 국외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데 쓰는 농기구. 가래는 삽날을 끼운 넓적한 몸에 긴 자루를 박고 날 양편에 줄을 매어 사용한다. 한 사람은 장부[자루]를 잡고 둘 또는 넷이나 여섯 등의 사람이 밧줄을 당겨 흙을 파서 멀리 던진다. 옛날부터 두레 농업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하는 고유의 연장이 많은데, 가래는 그중 하나이며 삽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장소. 집안 사당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신 곳으로 제례를 드리는 공간이다. 이를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김제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조상에 제사를 지낼 때에 방안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갖추어 놓고 사는 집에서는 사당에 신위를 모셔서 제례를 행하는 경우도 있다. 사당의 위치는 일정치 않으나 대부분 집안 후원의 한편...
-
전라북도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 갈공동(葛公洞)은 이곳에 있던 갈공사(葛公寺)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대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김제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김제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김제읍 갈공리가 되었다. 1989년 김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교동 관할의 법정동인 갈공동이 되었다가, 1998년 교동과 월촌동이 통합되어 교동월촌동 관...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설치된 조선시대 국영 숙박시설. 원(院)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박시설로서 설치 시기나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시대에는 원이 사원...
-
함규를 시조로 하고, 함흥달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강릉함씨(江陵咸氏)의 시조인 함규(咸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으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태위(太尉)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광평시랑평장사(廣評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함씨가 강릉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함규의 후손 함제(咸濟)가 강릉에 세거하게 된 데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호는 송학(松鶴). 어릴 때부터 학문이 뛰어나 20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29세 때에 대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동관국승을 지내다가 외직을 거쳐 내직인 나시랑·예시랑에 영전되었다. 이후 영암군수에 임명되어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돌아와 태상예빈 등을 거쳐 승정원우승지에 올랐다. 그 후 신병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가 장흥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 집에 돌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후손이다. 강수립(姜守立)은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다....
-
조선 전기 신천강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신천(信川). 호는 봉호(鳳湖).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삼중대광도첨의우정승(三重大匡都僉議右政丞)을 지낸 강숙(康叔)이고, 할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지낸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강윤(康允)이다. 강원기(康元紀)는 1348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부(仁父), 호는 송재(松齋). 고조할아버지는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이며, 아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강종립이 있다. 강중호(姜仲虎)는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운 공이 있다. 호조참판이 추증되었다....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전주와 군산의 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김제 지역을 편의상 서남 지역과 동북 지역으로 나눈다면 서남 지역은 군산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했으며, 동북 지역은 전주에서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전주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하였다. 김제 서남 지역으로의 개신교가 전래는 김제시...
-
전라북도 김제시 월촌동과 부량면 용성리의 경계를 이루는 원평천에 놓인 다리. 국도 29호선과 원평천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갯다리는 길이 40m, 폭 11m, 유효 폭 10m, 높이 4m의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이다. 2009년 현재 교통량은 7,758회이다. 조선 초기 세종 때부터 벽골제가 제방의 구실을 못하게 되자 둑이 무너지고 원평천을 타고 서해의 조수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하였다....
-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려시대 초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이때는 아직 왕권의 통치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고려 왕조는 1018(현종 9)에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 통치 제도를 마련하게 된다.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었지만, 특히 이때에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다시 중국식 한자명으로 고쳐진 것이다. 그 기준은 757년(경덕...
-
반부를 시조로 하고, 반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거제반씨(巨濟潘氏)의 유래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계손이 반(潘) 땅에 봉해지고, 그곳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부터이다. 반부(潘阜)는 원시조 반계손의 9세손으로, 고려 충렬왕으로부터 문하시중의 벼슬을 받고 기성(岐城)[거제의 옛 지명]의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다. 입향조는 반부의 10세손 반희(潘熙...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건축이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나무·돌·벽돌·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이다. 김제시의 건축 유구(遺構)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작문화(稻作文化)의 특징에 걸맞게 삼국시대 축조된 수리 시설부터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유적이 벽골제이다. 이후 금산사가 창건되면서...
-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경주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는데, 그 분파와 지파가 수십 개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신라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 및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을 1세로 하고 있는 영분공파와 대안군파가 있다. 김제의 경주김씨...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는 산을 넘어가는 능선부로서 주요 교통로로 이용된다. 보통 고개라는 지명이 쓰이지만 이밖에 재·현(峴)·치(峙)·영(嶺) 등의 지명 접미사가 쓰이기도 한다. 고개는 그 지역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을 통과하는 관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제 지역의 주요 고개로는 도장리고개, 불무재, 숙조고개, 여우고개, 토끼재, 무령...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삼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역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관해 비교적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벽골제 축조에 관한 기사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30년(흘해왕 21) 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시기 김제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으므로, 벽골제 축조는 330년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김제시는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광활한 평야를 형성하여 미곡생산량이 풍부해 ‘삼한 중 가장 풍요로운 땅’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부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 계층을 중심으로 한 문화와 예술이 발달하였고 서당, 서원, 향교 등 교육 기관이 김제 전역에 산재 하여 교육의 도시로도 유명하였...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김제 지역 역사. 고려 전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왕조의 통치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고려는 1018년(현종 9)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통치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기는 하였지만, 이때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중국식 한자명으로 다시 바뀌었다. 바뀐 기준은 757년에 신라...
-
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옛 무덤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이른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 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원할...
-
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옛 무덤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이른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 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원할...
-
전라북도 김제에서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조금 떼어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 ‘고시레’라는 말은 감탄사다. 지방마다 유래가 좀 다르지만 거의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준비해간 음식 중에서 하얀 밥 같은 것을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다. 고시레를 외치면서 음식을 던지는 행위는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풍속 중의 하나다. 이런 행위는 대개 봄철에 모내기를 할 때나 여름...
-
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되어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선사시대 유적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중국의 화남 지방, 해안지대, 요동 지방,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 등에 분포하는 범세계적인 묘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북도 산간지대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조사되고 있다. 특히 호남 지방에 거의 90% 이상이 집중되어 있고,...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고분이란 성토를 한 옛 무덤을 통칭하는 것이지만, 고고학 상으로 볼 때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고대 사회의 분묘 양식을 말한다. 고분의 축조 방식은 불교의 전래 이전과 이후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분묘를 축조하면서 피장자의 곁에 껴묻거리[副葬品]를 많이 묻는 반면, 전래 이후에는 불교의 화장법이 성행함에...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만경군의 동일도면·동이도면·북이도면을 병합하고, 당시 동이도면 공덕리에 있는 공덕저수지[일명 공덕지]에서 이름을 따서 공덕면(孔德面)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던 지역으로, 백제시대에 내리아현(乃利阿縣),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이성현(利城縣), 조선시대에 만경현(萬頃縣)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
-
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공사일(孔士一)의 본관은 곡부(曲阜)이다. 1883년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며 국권 회복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공사일은 이 시기에 전해산(全海山) 의병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선봉장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전...
-
전라북도 김제시의 산업 중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원료를 가공하여 유용한 물자를 생산하는 산업.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있는 현 김제 지역의 공업 발전을 위해 김제시는 새만금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동북아 및 전국 최고의 물류허브단지를 조성하는 중장기적인 지역 특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08년 현재 김제시에서는 7개 산업단지 1,5...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풍광·풍속·사적 등을 유람하는 일. 전라북도 김제시는 21세기 황해권 시대의 중심 도시로 호남 최대의 곡창 지대인 만경평야를 기반으로 국내 최대의 쌀 생산은 물론 다양한 농경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대한민국 최우수 문화 관광 축제인 지평선축제를 통해 농촌 문화 등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내륙과 해안이 공존하는 특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에 있는 대한불교 관음종 소속 사찰. 속칭 각시골이라 불리는 관응사(觀應寺) 절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첩첩산중으로 한 각시가 들어가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 보니 현재의 절터에서 사라져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관음보살에게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며 이 관응사 터를 각시...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에 있는 농경지. 광활들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광활면 일대 갯벌의 대규모 간척 공사에 전국의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해안 지형은 ‘개땅’으로 바뀌었고, 수평선은 지평선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간척민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개척한 그 개땅에 소작인으로 눌러앉아 살면서 일본인들의 착취 대상으...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체험 중심의 인성 교육으로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도덕인,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인,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창조인, 전민적인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과 건강을 추구하는 건강인,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심미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논밭이나 땅을 파는 데 쓰는 기구. 석기시대의 돌도끼가 철기시대에 들어 분화, 발전하면서 도끼와 괭이로 변천된 것으로 보인다. 농경 시대에 접어들면서 활용도가 높아진 농기구로 정착됐다는 설이 있다. 일반적인 모양은 날을 이루는 넓적한 쇠끝이 ‘ㄱ’ 자로 구부러져 괴구멍을 이루고 여기에 나무 자루를 끼웠다. 날의 모양은 토질과 용도에 따라 길이와 너비, 자루,...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의 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터. 성산(城山)은 높이 42m의 남북으로 긴 독립된 산인데, 산 정상에 지형을 따라 타원형으로 토성이 세워져 있다. 성곽의 총 둘레는 559m로, 원래는 토루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유실 또는 파괴된 곳도 있다. 성산성은 김제의 주성으로 백제 때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산성의 성곽은 원래 토성과 석성의 이중성으로 되어...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제월동·명석동·입석동·장화동·복죽동·옥산동·신월동·월봉동·연정동·갈공동·신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교동(校洞)은 향교가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고, 월촌동(月村洞)은 1914년 월산면과 대촌면이 통합될 때 ‘월’자와 ‘촌’자를 따서 월촌면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교동은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읍내면 지역으로, 1914년 읍내면·입천면·대촌면 일부와 함께 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전라북도 서부 평야권의 중심지에 위치한 김제시는 주변에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정읍시 등 네 개의 시와 완주군, 부안군 등 두 개의 군이 인접해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김제시를 중심으로 여섯 개 노선의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주변 지역과의 연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동쪽의 전주시·완주군과는 김제~금구 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기독교를 신앙하며 종교 활동을 하는 공동체. 호남에서도 손꼽히는 곡창 지대로 알려진 김제 지역은 그 지리적 특성상 다양한 교통로를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가 육로와 수로 등 다양한 통로를 거쳐 전파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제 서부 지역은 군산 선교부의 전킨[한국명 전위렴] 선교사가 만경강을 건너와 1886년 송지동교회를 세우는 등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칭. 구비전승은 크게 문학적 성격을 지닌 구비문학과 비문학적 성격의 말로 된 생활 기술 지식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구비전승 하면 떠오르는 구비문학의 경우 전설·신화·민담 등 문학적 요소를 담고 있는 설화와 노동요·만가·타령 등 노래의 형식을 빌린 민요[口傳歌謠], 그밖에 수수께끼·속담 등으로 나뉜다. 설화...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와 금산면 용산리, 청도리에 걸쳐 있는 산. 구성산(九城山)은 한자로 아홉 구(九), 성 성(城)을 써서, 아홉 개 산봉우리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던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역 주민에 의하면 굴성산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정상의 서편 100m 지점의 헬기장이 있는 상봉과 구성산 줄기와 봉두산(鳳頭山) 주위에 성을 쌓고 적군의 침입을 막았던...
-
구성산(九城山)은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와 금산면 용산리와 청도리의 경계에 있다. 아홉 구(九)자와 성 성(城)자를 써서, 아홉 개 산봉우리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던 산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정상 서쪽에 위치한 상봉과 봉두산 주위에 성을 쌓고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고 전한다. 지금도 주위에는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고, 동쪽 아래에 있는 귀신사가 임진왜란 당시에...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구수산(九水山)[46m]의 모습이 마치 소나 말의 여물을 담는 구수통[구유통의 사투리]과 같다 하여 구수멀이라고 했다는 설과 마을 뒷산의 구수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구수산 밑의 샘구멍이 아홉 개여서 구수멀이라고 했다는 설과 구수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구수산은 신곡동·갈공...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산. 구수산(九水山)은 소나 말의 먹이를 담는 구수통[구유의 사투리] 형상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뒷산은 구수산, 앞산 밑에는 생수가 솟는 물구멍이 아홉 군데가 있어 구수멀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예부터 구수산에는 생수가 많이 솟아서 농사짓는 데 걱정이 없었고, 지금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배수지가 있어 선조들이 지은 지명이 증명된 셈이다. 구수산...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가마터.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옹기가마는 약 10여 년쯤 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옹기가마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서 가마터가 발견되었으며, 주변에서 상당한 양의 옹기편들이 수습되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자세하게는 알 수 없으나 옹기편의 조성 수법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옹기가마로 추정된다....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직제학을 지낸 구종길(具宗吉)의 후예로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구원이다. 구정려(具廷呂)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으로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정려는 경기전참봉으로 있던 오희길(吳希吉)을 비롯하여 유인(柳認), 손홍록(孫弘祿), 안의(安義) 등과 함께 「...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면서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가 되어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구지지산...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을 지나는 국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에서 김제시를 경유하여 전주시, 거창군을 지나 대구광역시 서구를 연결하는 총 길이 174.6㎞의 일반국도이다. 전라북도에서 국도26호선은 군산시 옥구읍 옥서면에서부터 출발하여 군산시, 군산시 개정면·대야면, 익산시 오산면, 익산시, 김제시 백구면·용지면, 전주시, 완주군 용진면·소양면, 진안군 부귀면·마령면·진안읍, 장수...
-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 있는 농산물 품질 관리 기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북지원 김제출장소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이 생산·공급될 수 있도록 농산물에 대한 검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농산물 품질 향상과 농산물 유통 질서 확립에 필요한 체계적인 검사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9년 「농산물검사법」 제정에 의거 농림부 산하 농...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조상 대대로 전승된 고유한 전통음악. 국악을 크게 분류하면 궁정악(宮廷樂)과 민속악(民俗樂)으로 나눌 수 있다. 궁정음악에는 악장(樂章)이 있고, 기악(器樂)에는 제례악(祭禮樂)·연예악(宴禮樂)·군악(軍樂) 등이 있다. 민속음악에는 성악(聲樂)과 기악이 있는데 이를 다시 나누면 성악에는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時調)·판소리·잡가(雜歌)·민요(民謠)·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밭이나 논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극젱이는 논에 쓰기도 하지만 주로 밭을 가는 데 쓴다. 바닥이 좁고 험한 곳에서 얕게 갈 때, 또는 쟁기로 갈아 놓은 땅에 극젱이를 끌어서 골을 타기도 한다. 쟁기로 갈면 볏밥이 한쪽으로만 갈려 나가나, 극젱이를 쓰면 양쪽으로 나가기 때문에 감자밭 따위를 매는 데 편리하다. 극젱이는 쟁기보다 힘이 약한 게 흠이다. 토질에...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서 태어난 근세 실학의 대가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은 근대 성리학자로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 김제 지역의 학풍과 학통을 크게 형성한 대학자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그 학문적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석정 이정직은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일명 여꾸다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으로...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실시된 계몽주의 교육. 교육사적 견지에서 근대교육이라 하면 중세의 봉건적 또는 도제식 교육 형식을 거쳐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말하며, 제도적으로는 공교육 체제 또는 의무 교육제가 나타난 것으로 18세기의 일이다. 한국의 경우는 근대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880년대부터 1945...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김제·금산·금천 등 이름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 금구군 동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길리·장교리·상학리를 병합하여 금구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김제·금산·금천 등 이름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 금구군 동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길리·장교리·상학리를 병합하여 금구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김제·금산·금천 등 지명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백제시대에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금구현(金溝縣), 조선시대에 전주속현 지역이었다. 1910년 금구군으로 승격되어 10개 면을 관할하다가,...
-
75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후 백제 영토는 685년(신문왕 5)까지 신라식 4주 3소경 및 다수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각 고을의 이름도 당나라가 중국식으로 고쳤던 주·현의 이름이 복구되었지만, 상당수가 점차 신라화하였다. 신라는 757년(경덕왕 16)에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개항기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민족적 정서가 강한 종교와 사상의 흐름이 지속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처음으로 기독교의 교리가 전파된 것은 군산선교부와 전주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1897년 전라북도 김제군 공덕면 송지동에 사는 송원선·강문성 등이 김제의 서남 지방을 담당하였던 선교사 전위렴[W.M. Jun...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배제골 도요지는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14세기 말 청자 가마로 유명하였으며, 15세기에는 분청 가마로, 19세기에는 백자 가마로 잘 알려진 곳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도 김제 금산면에서 자기가 생산되었음을 보여주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 대규모 사과밭이 조성됨에 따라 도요지 일대...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심원암골 도요지에서는 고려시대인 11~14세기에는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5~16세기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주로 구웠다고 한다. 심원암(深源庵)과 청룡사(靑龍寺)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심원암 방향으로 약 50m 지점에 있는 밭이 가마가 있던 곳이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도요지에서는 고려 후기인 14세기에는 주로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시대로 들어와 15~16세기에는 분청사기, 18~19세기에는 백자를 구웠다고 한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안양마을 한가운데 넓게 조성된 배밭이 예전에 가마가 있던 곳이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조선시대 분청사기·백...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북방골 도요지에서는 15세기에 주로 분청사기를 구웠다고 하나, 청련암(靑蓮庵)을 신축하면서 주변 지형이 완전히 변형되어 가마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밭에서 지금도 자기편과 초벌구이편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예전에 가마가 운영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청련암에서 안양마을으로 약 20m 내...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신원양지 도요지에서는 고려 후기인 14세기에는 주로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 전기에는 분청사기를 구웠고, 그 뒤 18~19세기에 이르기까지 백자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안양마을에서 청련암(靑蓮庵) 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사과밭 일대가 금산리 안양마을 신원양지 도요지로 추정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안양마을 청련암골 도요지는 고려 후기인 14세기경 가마가 설치되어 주로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 전기인 15세기에는 분청사기를 생산하였고, 이후 조선 후기까지 백자를 생산하였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안양마을에서 산속으로 약 600m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는데, 금산리 안양마을 청련암골 도요지는 청련암 바...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금산리 용방동 도요지는 고려 후기에 설치되어 청자를 생산한 곳으로, 15~16세기 이후에는 주로 분청사기와 백자를 구웠다고 알려져 있다. 금산리 용방동 도요지는 금산사(金山寺) 주차장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용방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조선...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서 생산되는 서화용 붓. 금산필방 붓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金山寺) 입구에 위치한 금산필방 채주봉이 만드는 서화용 붓이다. 채주봉은 191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40여 년 전 김제시 금산 지역에 정착하였다. 모악산 기슭의 16㎡ 남짓한 금산필방에서 제작되는 금산필방 붓은 김제 특산물 중의 하나로 이름나 있다. 금산필방 붓은 금...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기독교 이념을 기치로 하여 진(眞)·선(善)·미(美)·성(聖)을 지닌 슬기로운 여성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하나님을 사랑하자, 사람을 사랑하자, 흙을 사랑하자’이다. 1963년 4월 3일 학교법인 금성학원이 설립인가를 받았다. 1964년 4월 2일 금성여자중학교로 개교하고, 정희수 목사가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7...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에 있는 금속 관련 산업기계 제조업체. 금전기업사는 전라북도 김제를 대표하는 수(水)처리 설비 전문업체이다. 1956년 작은 철공소로 출발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수문 분야에 집중하면서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수문 제작 및 시공업체로 성장하였다. 그동안 수도권 신국제공항의 방조제 배수갑문, 국내 최초로 해저통과 구간 공법을 선보인 한강터널 비상 수문,...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볏짚으로 왼새끼를 꼬아 악귀를 쫓는 금기의 새끼줄. 금줄은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기 위해 대문 밖에 걸어두거나 길 어귀의 신목(神木)과 같은 신성한 대상물에 매는 줄이다. 이를 ‘인줄’ 혹은 ‘검줄’이라고도 한다. 즉 신성한 곳이나 정성껏 다루어야 하는 곳에 새끼를 꼬아서 둘러쳐 놓은 줄이다. 아기를 낳았을 때 숯과 청솔가지, 붉은 고추 등을 꿰어 대문 앞에...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 최태용 목사가 창설한 기독교 관련 종교단체.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1935년 김제 출신 최태용 목사가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에서 창설하였다. 그는 원래 예수교장로회 성남노회(成南老會) 교인이었다. 그는 수원농립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기독교의 무교회주의자인 내촌감산(內村鑑山)의 영향을 받고 무교회주의자가 되어 귀국했다. 그는 성서 연구에 몰두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중위도 온대성 기후대에 자리 잡고 있어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륙성 기후를 띤다. 겨울에는 한랭 건조한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춥고 건조하며,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덥다. 봄과 가을에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맑고 건조한 날이 많다. 김제를 비롯...
-
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김광춘(金光春)은 1877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며 국권 회복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김광춘은 이 시기에 전해산(全海山) 의병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선봉장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전라남도 나주와 영광...
-
개항기 김제시 죽산면에서 활동한 의병. 김성언(金成彦)은 1847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마을에서 훈장으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06년 국운이 기울자 창원과 거창 등지에서 왜병과 항전하는 등 용맹을 떨쳤다. 그러나 왜병의 감시와 핍박이 심해지자 가족과 가산을 버려 둔 채 고향을 떠나 김제의 죽산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비밀리에...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이몽학(李夢鶴)[?~1596]의 난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중 관군을 기피한 사람들이 많아 기근과 질병이 닥치자 군도(群盜)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가운데 호서 지방의 의병 모집 과정에서 하급 장교들이 농민들의 불만을 이용하여 민심을 선동해 일으킨 사건이다. 이몽학은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부친에게 쫓겨나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를 전전하다가 모속관...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관성묘(關聖廟)는 중국 촉한의 무장 운장(雲長) 관우의 묘(廟)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관왕묘라 부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관성묘로 격상하여 부르고 있다. 공자의 묘를 문묘(文廟)라 하는데 대해 무묘(武廟)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관우를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우의 신령이 나라나 적을 섬멸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
-
수리조합은 토지나 가옥 소유자가 모여 농지에 대한 관개용 저수지와 제방 따위의 축조·관리 및 수해 예방 사업을 목적으로 조직한 법인체이다. 1925년에 설립된 동진수리조합은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수리조합으로, 김제 진봉 일대 광활한 땅에 대대적인 간척 사업을 실시하여 오늘날 광활면 일대를 조성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수리조합은 근대식 농사법으로 개선한다는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일제의...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금융조합 건물. 1906년 「은행조례」 공포로 설립된 농공은행이나 지방 창고로도 농촌 금융을 소통시키지 못하게 되고 농촌 금융을 전담하는 새로운 금융 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07년 5월에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관한 건」이 공포되었다. 동년 8월에 광주지방금융조합이 설립되었고 1910년 6월 말 조합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 전기 혜덕왕사의 탑비.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는 고려 전기의 승려로, 속성은 이(李)고 이름은 소현(韶顯)이다. 11세 때 해안사(海安寺)의 지광국사(智光國師) 제자로 들어갔고, 1061년(문종 15) 경기도 개성의 송악산에 있는 왕륜사(王輪寺)에서 치러진 승과에서 합격하였다. 1079년(문종 33) 금산사의 주지로...
-
조정래(趙廷來) 대하소설 『아리랑』은 동학농민운동 이후부터 8·15광복 때까지 전라북도 김제의 드넓은 평야를 주요 배경으로 하여 한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아리랑』은 조선에서 곡물을 수탈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항구 도시 군산에서 시작해서 주요 작중 인물들의 궤적을 따라 한반도 전역과 만주, 러시아, 하와이, 동남아시아 등으로 폭넓게 전개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우...
-
1949년에서 1950년에 걸쳐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 1949년 봄부터 1950년 사이 김제에서 좌익 단체에서 활동한 임종연, 임종률, 윤성학 등 민간인이 전라북도 경찰국에 의해 이송되었다가 실종되거나 살해되었다. 이후 1950년 7월 25일부터 9월 28일 사이 인민군 치하 및 치안 공백기에 백산면·감곡면·금구면·봉남면·금산면·김제읍·만경면 등지에서 이석...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저수지. 백제는 3세기 말에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아우르고 노령산맥 이북까지 진출하였고,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 노령 이남의 잔존 세력들을 굴복시키고 오늘날의 전라남도 해안 지방까지 판도를 넓혔다. 이 시기는 고이왕으로부터 근초고왕에 이르는 80여 년으로, 고대 국가 발전의 준비 기간으로서 마한 세력을 완전히 아울렀다. 또한 기후가...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가옥. 일제강점기에 김제 지역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일찍부터 일본인들이 들어와 여러 농장들을 경영하였는데, 김제 신풍동 일본식 가옥은 김제시 광활면에 있던 일본인의 농장을 관리하던 관리인 주택으로 지어졌다. 김제 신풍동 일본식 가옥은 김제역에서 왼쪽으로 180m 지점 김제역 관사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연면적 99.1㎡ 규모의...
-
김제시에서 내촌으로 바로 다니는 버스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루 세 편 있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인근에 있는 신흥마을까지 가야 김제 시내로 오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쉬이 오갈 수 없는 김제 시내를 다니는 것은 동네 사람들 누구에게나 큰일이었지만, 특이 집안일과 시집살이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젊은 시절에 김제를 나가는 것은 ‘거사(巨事)’...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치안 행정 기관. 김제경찰서는 관내 치안 유지, 주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 등 사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5년 10월 21일 김제보안서를 국립경찰 김제경찰서로 개칭하였고, 1965년 12월 28일 김제읍 신풍동 141-2번지에 2층 청사를 신축하였다. 1973년 7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공덕면과 백구면...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 김제고속버스터미널은 1982년 9월 전라북도 김제시와 김제군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이후 건물에 대한 개·보수가 수차례 이루어졌다. 김제고속버스터미널은 991.74㎡의 면적에 330.58㎡의 2층 건물·창고 및 주차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에는 매표소를 비롯한 사무실과 화장실 및 야간...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김제공용버스터미널은 1972년 9월 전라북도 김제시와 김제군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하여 건립되었다. 건립 이후 1980년과 1982년 두 차례의 증축·개축 공사가 있었다. 건립 당시에는 김제고속버스터미널의 부지까지 포함하였으나 시외버스와의 연계 효과를 위해 부지의 일부를 고속버스터미널 부지로 내주었다....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7월 김제교육지원청 주관으로 개최되는 초등학교 씨름대회. 김제교육장기 초등학교 씨름대회는 체육의 활성화와 더불어 잠재력 있는 꿈나무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여 우수한 씨름 선수를 배출하기 위한 대회로, 2005년 7월 13일 제1회 김제교육장기 초등학교 씨름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7월 개최되고 있다. 교육장기 초등학교 씨름대회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열렸으며, 전...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국악 보전 및 전승 단체. 김제시는 도작농업의 대표적인 농촌도시로 오래전부터 여러 민속 음악이 공존 발전해 왔다. 김제국악원은 전라북도가 국악의 발상지라는 자긍심에 부응하여 김제 지역의 국악을 보전 전승하고자 1966년 2월 15일 김제 지역의 국악인들과 시민이 주축이 되어 설립하였다. 함명욱·박광현·안길용·박태호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김제국악원의...
-
1403년부터 199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가 멸망하면서벽골군은 757년(경덕왕 16) 중국식 한자명인 김제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현으로 격하되었고, 1403년(태종 3) 김제현에 지군사[1466년 군수로 개칭]를 두었고, 1466년(세조 12) 김제군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670년 발간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와 향교. 김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벼농사가 발달한 지역으로 농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던 시대에 다른 지역에 비해 군(郡)으로서 읍의 격이 높은 지역이었다. 현존하는 관아 와 향교 건물들은 그에 따른 위계를 보여 주고 있다. 김제 시가지의 중심에서 볼 때 서쪽 성산(城山) 아래에 향교가 있고, 약 130m 거리에 관아가 위치해 있다. 이 지...
-
김천서를 시조로 하고, 김정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김제김씨(金堤金氏)의 시조는 김알지의 후손이자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천서(金天瑞)로, 고려시대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냈다. 김천서가 김제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은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우고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호남 우도농악의 한 지류로서 전해 내려오는 농악. 김제농악은 일찍부터 각 마을에서 대동굿의 형태로 농악을 전승해 오다가 좀 더 전문적인 예인 집단에 의한 농악으로 발전하였다. 농악은 농부들이 두레[마을의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한 조직]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으로 꽹과리·징·장구·북 등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
김제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법인체. 김제 지역의 사료 발굴과 학술연구 등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하며 관련 유적지를 보존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7년에 모악향토문화연구회(회장 故최순식)에서 ‘김덕명장군 추모비’를 건립하는 것으로 최초의 기념사업이 시작되었고,최순식 선생이 지내온 동학농민군위령제를 1997년부터 구미란주민들이 마을...
-
1916년부터 1931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읍 지역의 행정구역상 옛 명칭. 일제는 기존 행정구역의 모호한 경계로 인한 행정상의 불편함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치기구를 붕괴시키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1914년부터 1916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지방행정구역을 폐합·축소 조정하였다. 1916년에 김제 지역의 읍내면과 입천면(立川面)을 합병하여 김제면으로 개칭되었다가...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문학 단체. 김제문인협회는 전라북도 김제시에 거주하고 있거나 김제에서 태어나 다른 지역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로 구성된 문학 단체이다. 김제문인협회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문인들이 서로 돈독한 친목을 나누며 향토 문학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김제문인협회는...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문화 예술 공연 및 전시장. 김제는 예로부터 풍요로운 도작문화의 발상지이자 저명한 학자, 문인, 서화가, 국악인 등이 많이 배출되어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무대인 공연장이나 전시장 등이 없어 그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문화예술인, 사회단체장, 지역 유지 등이 모여 김제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지역 문화 사업과 향토 문화 연구를 위해 설립된 문화 예술 단체. 김제문화원은 김제 지역 향토문화 예술의 개발 진흥, 전통 문화의 발굴 보존 및 전승, 문화 행사의 발전, 향토지 및 지방 문화 사업 사료 편찬, 사회교육에 관한 사업의 창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6년 김제 지역 향토 문화 발전에 뜻을 같이 하는 인사 30명이 모여 김제문화원을...
-
2000년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발행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품권. 김제시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0년 ‘김제사랑상품권’을 발행하였다. 도내 자치단체 중 김제시가 처음 발행, 유통시킨 김제사랑상품권은 2000년 당시 166개 가맹점에 1억5천만 원대 유통 자금의 역외 유출을 막고, 전주·익산·군산 등 주변 대도시로 유출되는 상권을 되찾고자 발행되었다. 김제사랑상품권은...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장학 재단.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김제시가 새만금의 중추 거점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교육,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춰야만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 자녀에게 보다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타 지역 유출은 인구 감소와 함께 지역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고,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들의...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김제 지역 산림조합. 김제산림조합은 김제 지역 내 건강한 숲의 조성과 함께 임업 경영의 효율화 및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조합원의 소득 증대와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조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4년 11월 25일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12월 김제임업협동조합으로 설립 등기되었다. 1995년 3월 13일 처음 업무를 시작한데...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10월 김제시 통합체육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전국마라톤대회. 김제새만금지평선 전국마라톤대회는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10월 김제지평선축제 때 열리는 전국마라톤대회로, 신체 건강한 만 18세 이상의 남녀가 김제시민운동장에서 모여 출발하는 마라톤대회이다. 2002년 김제시는 김제지평선축제를 기념하고 환황해권 시대의 주역으로서 김제시의 체육 위상을 높이고자 전국...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소방 행정 기관. 김제소방서는 화재, 구조, 구급 등 각종 재난으로부터 김제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0년 익산소방서 관할 김제파출소로 개소하였으며 1991년 4월 23일 김제소방서 직제 승인을 받아 같은 해 7월 25일 개서식을 가졌다. 1994년 6월 30일 옥산파출소 설치를 승인하였으며 1996년 10...
-
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
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
전라북도 김제 지역 초·중학생들의 과학 흥미 제고를 위한 초등학교 교사들의 모임. 김제시 과학교육연구회는 지역 과학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과 더불어 다양한 과학 행사의 개최 및 주관을 통해 어린이 과학 체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2년 12월 23일 김제 지역 초등학교 교사 42명으로 구성된 김제시 과학교육연구회가 창립되었다. 2003년 3월 2일 제1대 송기원 회...
-
전라북도 김제 지역 노인들의 건강한 노후를 위해 개설된 노인 전문 교육 학교. 김제시 노인대학은 문화·교양·오락·취미 등 다방면에 걸친 평생교육의 기회 제공을 통해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실버 세대들이 건강하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4년 4월 대한노인회 김제시지회 부설 노인대학으로 개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8년 4월에는 김제시 노인대...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에 있는 노인 복지 시설. 김제시 노인복지센터는 열림·나눔·섬김의 성공회(聖公會) 정신을 바탕으로 정신적·신체적인 이유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곤란한 노인이 있는 가정에 가정봉사원을 파견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노인들이 지역 사회 안에서 건전하고 안정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001년 1...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농업 기술 지원 기관. 김제시 농업기술센터는 김제시 전역을 대상으로 농촌지도 사업을 실시하고 식량작물, 원예작물, 병해충에 대한 정보를 보급하며 지역 농업 생산품을 상품화하는 등, 농업에 지식을 접목하는 사업을 관장하면서 지역 농업의 과학화와 체계화를 앞당기기 위해 선진 농업 기법을 전파하고 있는 기관이다. 김제시 농업기술센터는 김제 지역의 농업 현장에...
-
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 있는 결혼 이민자 가족 지원 기관. 김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결혼 이민자 가족을 위한 가족교육·상담·문화 프로그램 등의 서비스 제공을 통해 결혼 이민자의 한국 사회 조기 적응 및 결혼 이민자 가족의 안정적인 가족생활 지원을 위해 설립되었다. 국제결혼으로 인한 이주 여성이 증가함에 따라 다문화가정에서 발생되는 문제 해결 및 복지 상담을 위해 2005년 결혼...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불교 단체. 김제시 사암연합회는 1961년 초 금산사 주지 송월주를 중심으로 김제 지역에 소재한 사찰과 암자의 주지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상호간에 정보를 교환하며 김제 지역의 불교 발전과 포교 사업을 효과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각 사암 현안 사업을 비롯하여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 김제시 불교인 송년의 밤, 전통 불교인 바라춤 보...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문화시설. 김제시는 작가들에게는 작품 창작실을 지원하고 방문객들에게는 창작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문학과 예술을 아우른 공간을 조성하여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김제시 창작스튜디오를 설립하였다. 김제시는 소설 『아리랑』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아리랑문학관 옆에 폐교된 백제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2006년...
-
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 김제공설운동장 등지에서 매년 4~5월에 열리는 청소년 과학 탐구대회. 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는 매년 전국의 420만여 명의 청소년이 참가해 학교와 지역, 시도 예선을 거쳐 과학 탐구력을 겨루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과학 탐구대회이다. 이에 김제교육지원청에서는 1983년 5월부터 전국 단위, 도 단위 과학 경연대회에 참가할 김제 지역 예선을 겸한 김제시 청소년과학탐...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김제시·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제지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청소년축제. 2005년 이래 매년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김제시는 이의 일환으로 김제시 청소년한마음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08년 11월 1일 김제시청 강당에서 개최된 제4회 김제시 청소년한마음축제는 김제교육청이 후원하고, 김제청소년문화의 집과...
-
전라북도 김제 지역 출신 사람들의 친목 모임. 김제시 향우회는 고향 김제의 소식을 나누고 발전을 바라는 한편 동향 출신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전국적으로 번진 고향 찾기, 옛 친구 찾기 운동은 향리 단위, 학교 단위, 동기 단위의 비정기적인 소수인들의 모임을 향우회란 큰 범주로 아우르면서 지역 단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김제향우회도 이 영향을 받...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시조 창작과 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학단체. 김제시우회는 김제 지역에서 우리 고유의 시조를 사랑하는 인사들이 시조 문학의 발전 및 확산과 회원 간의 교류를 위해 1964년 12월 창립하였다. 김제시우회가 설립되기 이전인 1961년 4월 광주에서 개최된 제3회 전국시조경창대회에서 김진성(金珍成)이 명인부 1등을 수상하고, 1963년 11월 5일에는 강...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지방 자치 단체의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기구. 김제시의회는 김제 시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시민의 대표 기관으로 김제시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 기관을 감시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이다. 김제시의회는 전라북도 김제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지방 자치 단체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위해 설립되었다. 근대적인 의미...
-
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서 매년 김제시 통합체육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읍면동 대항 실버생활체육대회. 김제시장배 읍면동대항 실버생활체육대회는 노인들의 건강 증진은 물론 회원 간 친목 다지기에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2003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김제 지역에 거주하는 실버 세대들을 위한 대표적 행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제5회 김제시장배 읍면동대항 실버체육대회는 2007...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행정 기관. 김제시청은 김제 시민을 위한 위민 행정 구현과 지역 발전을 위한 미래 지향적 정책 및 사업을 수립하고 집행하고자 설립되었다. 330년(비류왕 27) 벽골군이 되었고, 757년(경덕왕 16) 김제군으로 개칭하였다. 1143년(인종 21) 전주목에서 김제현으로 승격하였고, 1170년(명종 원년) 전주목에서 금구현으로 승격하였다....
-
1960년 김제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신문기자 단체.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 단체는 1945년 10월 23일 서울 YMCA회관에서 개최된 조선신문기자대회를 계기로 좌익계 신문이 주동이 된 조선신문기자회이다. 1946년 창립된 담수회(淡水會)는 서울시내 일간 신문과 통신사 편집국장들의 친목회였다. 좌익 계열의 조선신문기자회에 맞서 우익 계열의 조선신문기자협회가 1947년 8월 10일...
-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강제적인 이주가 아닌 자발적인 이민의 경우 생존 경제와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은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광활방조제를 막으며 개발된 간척지이다. 염기(鹽氣)[소금기]가 가득한 갯땅을 전국에서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염기를 제거하고 농사가 가능한 땅으로 만들었다. 해방 후 광활은 이민자들의...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호남선의 철도역. 김제의 지명은 삼한 시대에 벽비리국, 백제시대에 벽골군이었다. 이는 모두 벼의 고을이란 뜻이다. 757년(경덕왕 16) 지방 조직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꿔 주·군·현 체제를 강화하면서 지명도 전국에 걸쳐 모두 한자명으로 고쳤다. 그에 따라 벽골은 김제로 바뀌었는데, 이는 금의 언덕 또는 황금벌판[들]이란 뜻으로 역명도 지역 명칭에 따라...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서 매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제시지부 주관으로 개최되는 종합 예술제. 김제예술제는 김제 시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문화·예술에 거는 기대 또한 다양해져 김제 지역의 문화·예술 단체의 활동 수준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제시지부 주관으로 여러 예술 단체들이 참여하며, 지역 문화 행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폭넓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호남우도농악의 한 지류로 분포되어 있는 농악. 김제우도농악은 일찍부터 각 마을에서 대동굿으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다가 김도삼, 나도숙, 현판쇠, 백남윤 등에 의하여 좀 더 전문적인 예인 집단 형태로 발전한 농악이다. 이를 ‘김제농악’이라고도 부르며, 현재는 정읍농악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전승 발전되고 있다. 김제우도농악의 특징은 농악대의 구성에 있어서 쇠와 장...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우편, 체신, 금융 기관. 김제우체국은 전북체신청 산하 기관으로 우편 서비스를 통해 김제시민의 생활 편익을 증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84년 4월 22일 국내에 우정사업이 도입되었으며, 1898년 6월 1일 김제 임시우체사가 신설되면서 김제 지역에 우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1906년 12월 1일 김제우편취급소가 개설되었고, 1...
-
1931년부터 1988년까지 전라북도 김제군에 있던 행정구역. 통일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에 벽골군(碧骨郡)을 김제군(金堤郡)으로 바꾼 뒤 ‘김제’라는 지명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14년 김제군 김제면은 읍내면[옥산리·교동리·요촌리·서암리]과 입천면[백학리·순동리·용동리·신풍리·검산리], 대촌면 일부 지역[신곡리·갈공리]을 병합하여 11개 리로 구성되었다. 1931년 1...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던 일제강점기 사립 초등학교. 김제일본인소학교는 1911년 2월 25일 김제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광복 후인 1945년 10월 5일 김제중앙국민학교[현 김제중앙초등학교]에서 마에다 요시노부[前田義信] 교장으로부터 김제일본인소학교를 인수하여 분교장으로 일시 병속하였다. 1968년 9월 1일 통학 구역 제정과 함께 분리·독립하였...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재래시장. 김제전통시장에 대한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예전부터 ‘시장통’으로 불리며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부터 김제시 요촌동에는 정기 및 상설 형태로 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는 목조 기와 장옥 7동과 목조 함석 장옥 68동, 공동화장실 1동으로 조성되었으며, 주로 곡물·주단·포목·피복·양품·주철물·...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소속 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명칭 중 ‘제칠일안식일’은 기독교가 준수해야 할 안식일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데, 예수가 말한 재림의 징조들의 성취를 통해 재림의 임박성을 확신하고 있다....
-
조연벽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김제조씨(金堤趙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光胤)의 후예라 전해오고 있으나 고증할 수 없고, 실제로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고 있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공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김제조씨 동성마을. 김제조씨(金堤趙氏)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섬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벽성이 김제로 이름이 바뀌자 후손들이 관향을 김제로 하여 김제에 세거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조연벽의...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28년 김제제일교회의 장로였던 정공선과 교인들이 요촌리에 126㎡ 규모의 교회당을 신축하고 김제중앙교회를 설립하였다. 초대 목사로 제주도 출신 이도종이 부임했으나 교회당 신축과 더불어 고향 제주도로 목회를 위해 떠나게 되자 정공선 장로에게 모든 것이 맡겨졌다. 이에 정공선이 병원과 교회에서 부인 최원선 권사와 함...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종합병원. 김제중앙병원은 지역 내 병원 시설 확충과 노인성 질환에 대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여 환자들의 병원에 대한 기대 수준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김제중앙병원이 설립되었으며 2009년 11월 김제중앙노인요양병원을 개원하였다. 종합병원 일반의 진료 외에 연중무휴 24시간 진료, 신종플루 거점 병원 지정 등 사회적 수요에 신속하게...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빈곤 계층 자활 지원 기관. 김제지역자활센터는 김제 지역 특성을 살린 농촌형 자활센터로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주관하고 김제시가 지원하며 대한성공회 김제 나눔의 집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다. 김제지역자활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바탕으로 IMF 이후 대량 실업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인한 지역 빈곤 계층의 위기를 해소하고 자활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19...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수상 레포츠 시설. (주)김제지평선마린리조트는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능제(菱堤) 주변의 경관을 이용하여 친환경 테마공원과 위락시설을 갖추고 2005년 김제지평선마린리조트를 개관하였다. 김제지평선마린리조트는 능제저수지 및 능제수변공원과 연계되어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모터보트, 제트스키, 수상스키, 플라이피시, 바나나보트,...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과 만경읍에 조성 예정인 산업단지. 김제지평선일반산업단지는 다가오는 서해안 시대의 신산업 입지 수요에 대응하여 도시산업 기능을 강화하고, 전라북도 연담권 도시인 전주~익산~군산~김제를 T자형 산업벨트 전략의 중심축으로 구축하고, 생산·주거·업무 기능 등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복합형 산업단지 개발로 지역 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김제지평선축제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농경문화축제. 김제평야는 들이 넓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곡창 지대이다. 여타 도시보다 역사·문화유산이 많이 있는 김제시는 새 천 년을 앞두고 김제시를 대표할 만한 자랑거리 선정에 부심하였는데,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국내 최고·최대의 평야를 갖고 있다는 점에...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봉사 단체. 김제청진회는 ‘밝은 김제, 새마음 청진’이라는 구호 아래 진취적인 사고와 봉사정신으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1년 7월 1일 자생봉사단체로 창립된 이래 40여 년 동안 불우이웃이나 불우청소년 세대 등 지역 사회의 소외 계층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환경보호 캠페인과 비인가 복지시설 생필품 전달,...
-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펼쳐진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평야. 김제평야는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주요한 수탈지가 되기도 하였다. 농업이 발달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김제 지역은 우리나라가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갖고 있던 1950년대까지는 잘 사는 고장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가 공업...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김제향교의 대성전. 향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으로 공자나 그의 제자 그리고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기리고 공부하는 곳이다. 조선시대는 각 군·현마다 향교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김제향교는 1404년(태종 4) 대성전을 창건하고 여기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1790년경에 작성된 『김제군읍지(金堤郡邑誌)』에 의하면 당시...
-
1143년부터 1403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지금의 김제시는 삼한시대에 벽비리국(辟卑離國)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벽골군(碧骨郡)을 설치했고, 백제 멸망 후 당(唐)이 벽성(辟城)으로 고쳐 고사주(古四州)[현재의 고부]의 영현을 삼았다. 757년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제군으로 바꾸고 전주에 예속시켰다. 이때 평고현(平...
-
전라북도 김제시의 지역 사회 발전과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된 자생적 시민단체. 김제희망포럼은 김제 시민 스스로가 개혁과 변화의 주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병폐와 문제점을 바로 보고 개선안을 제시하여 김제를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2007년 12월 5일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하였다. 시장 등 공직 후보자 검증 공청회와 김제시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다. 2...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자선가. 김천석(金千石)은 순조 때 지금의 김제시 백학동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계에 대해서 밝혀진 기록은 없다. 그는 찰방(察房) 고씨의 머슴으로 있으면서 근검절약하여 재산을 모아 이웃들이 가뭄이나 재난을 당할 때마다 식량을 고루 나누어 주는 등 인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자손이 없던 김천석은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 고잔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꼬막이나 동죽의 조갯살로 만든 무침 요리. 꼬막은 고막·고막조개·안다미조개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감·복로(伏老)·괴합(魁蛤) 등으로도 불린다. 이매패류에 속하며, 껍데기 길이가 약 5㎝, 높이 약 4㎝, 너비 약 3.5㎝로, 피조개나 새꼬막보다 크기가 작다. 껍데기는 사각형에 가깝고, 매우 두꺼우며, 각피에 벨벳 모양의 털이 없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 터. 나시리 건물 터는 김제 금강2지구 내의 문화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으로서, 조선시대 건물 터 유적에 해당된다. 유적은 전체적으로 그리 넓은 편은 아니며, 6기의 도랑과 주공군(柱孔群), 건물지 퇴적층이 조사되었다. 건물이 조성되고 난 후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건물 터가 폐기되는 과정까지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입부(立夫), 호는 월곡(月谷). 장인은 충청수사(忠淸水使)를 역임한 최호(崔湖)이다. 아들로 나형(羅珩)이 있다. 나신도(羅伸道)[1568~?]는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6년(선조 29) 이몽학(李夢鶴)이 난을 일으키자 장인인 최호와 함께 홍산[지금의 부여]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159...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이이당(怡怡堂)·구산처사(龜山處士). 아버지는 건계(建溪) 나안세(羅安世)이고, 형은 행정(杏亭) 나응허(羅應虛)이다. 나응삼(羅應參)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그 변을 직접 맛보며 병세를 살폈고,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 1...
-
나부를 시조로 하고, 나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나씨(羅氏)는 중국 백익(佰益)의 후예로 주대(周代)에 대라씨(大羅氏)로 나국(羅國)에 봉해져 나씨가 되었고, 그 뒤 한(漢)나라 초에 예장으로 옮겨져 예장나씨(豫章羅氏)가 되었다. 문헌을 종합하면 시조 나부(羅富)가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사이에 송나라가 멸망하니 발라현(發羅縣)[지금의...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조선시대 나주나씨 종중 묘역.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나주나씨 종중 묘역에는 의금부지사(義禁府知事)를 지낸 나득강(羅得康)의 묘를 중심으로 제단과 신도비, 문인석 등이 널따랗게 배치되어 있다. 익산~김제 간 산업도로에서 김제시 검산동으로 가다 보면 서흥교차로가 나오는데, 흥사동 나주나씨 종중 묘역은 이곳의 왼쪽 구릉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흥사...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나주나씨 동성마을. 나주나씨(羅州羅氏)는 중국 백익(佰益)의 후예로, 주대(周代)에 대라씨(大羅氏)로 나국(羅國)에 봉해져 나씨가 되었고, 한나라 초에 예장(豫章)으로 옮겨 예장나씨가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시조 나부(羅富)가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사이에 송나라가 멸망하니 발라현(發羅縣)[지금의 나주]에 정착하고 고려조에 출...
-
고려 후기 문신이자 나주나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낙천와(樂天窩). 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아버지는 금양군(錦陽君) 나석(羅碩)이다. 1362년(공민왕 11) 병과(丙科)에 16번째로 급제하였다. 전교시령겸춘추관편수관(典校寺令兼春秋館編修官)을 거쳐 예문관지제고(藝文館知製誥)에 이르렀다. 신돈 집권 후 공민왕이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우(士遇), 호는 주은(酒隱). 나중우(羅仲佑)의 6세손이다. 나협(羅悏)은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아울러 김장생(金長生)으로부터 학문과 덕을 쌓았다. 1575년(선조 8) 성균관 생원(生員)에 급제한 뒤 여러 번 승진하여 1607년(선조 40) 남대(南臺)[학행(學行)이 높다고 인정되...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공보(共寶), 호는 월재(月齋). 아버지는 이몽학(李夢鶴)의 난과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나신도(羅伸道)[1568~?]이다. 나형(羅珩)은 지금의 김제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정략장군(定略將軍)으로 선전관청선전관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김준룡(金...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농업 개척자.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월암(月庵). 아버지는 나창일(羅昌一)이다. 나휘소(羅徽素)는 174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김제시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벽골제 내에 위치한 표박평(瓢朴坪)은 남쪽으로는 정읍시 감곡면 삼평리, 동쪽으로는 봉남면과 황산면, 북쪽으로는 김제시에 접하는 넓은 평야지만 용배수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던 시절, 조금만 비...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낙양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흥리·장흥리·사방리를 병합하여 낙성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가 되었다. 북쪽으로 완주군과 이웃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두월천(斗月川)이 흐르는 중산간 지역이다. 2009년 11...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낙양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흥리·장흥리·사방리를 병합하여 낙성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가 되었다. 북쪽으로 완주군과 이웃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두월천(斗月川)이 흐르는 중산간 지역이다. 2009년 11...
-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금구현 북쪽 7리 낙양폐현’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금구면은 원래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이었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금구현(金溝縣)이 되었다. 고려 때는 무신 이의방(李義方)의 외향이라 해서 1170년(의종 24) 현령 치소로 승격되었으며, 거야현(巨野縣)과 낙양현(洛陽縣)을...
-
전라북도 김제시 난봉동 난산마을에서 음력 정월 보름밤에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난봉동 난산 당산제는 신년을 맞이하여 김제시 난봉동 난산마을 전체에 액운과 질병을 없게 하고 풍년이 들게 하며 일 년 동안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이 협동하고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제시 난봉동 난산마을은 옛 백제성이었던 도리봉 성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 난봉동에 있는 백제시대 성터. 난산성(卵山城)은 난봉동에 있는 해발 121m의 황산(凰山)을 중심으로 하여 백제가 쌓은 원형의 석성(石城)으로 그 둘레가 2㎞에 달하였다고 한다. 김제의 주성인 성산성(城山)의 성을 보호하는 호익역(護翼域)이 월성(月城)과 난산성인데, 월성은 거의 사라져 마을이 되었고 현재는 난산성 터만 남아 있다. 도리봉성 터로도 불린다. 난봉동...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석동리에 있는 백제시대 절터.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난와사(蘭瓦寺)는 백제 때 건립하여 1천여 년을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에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 때 절에는 비구 2명과 비구니 1명이 있었다고 한다. 난와사 터는 성덕면 면소재지인 석동리 성덕초등학교 교문에서 동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난와사 터 주변에 있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풀, 나무, 곡식 등을 베는 데 사용한 농기구. 낫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기구의 하나이고 주로 풀이나 곡식을 베고 나무의 가지를 치거나 벨 때에도 사용한다. 대체로 ㄱ자 모양이며 안쪽은 갈아서 날이 되도록 하였고, 뒤쪽 끝 곧은 슴베에는 나무 자루를 박았다. 지역에 따라 날의 형태, 자루와의 각도 등이 차이가 난다. 낫은 모양이나 쓰임에 따라 밀낫·벌낫·반...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 내주마을에 세워져 있는 입석. 입석은 마을 어귀나 마을 안에 세운 일정한 형태를 갖춘 돌로서, 우리 조상들은 이 입석을 가정과 마을을 지켜 주는 신앙물로 생각하였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매년 새해 정초가 되면 입석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당산제를 행하여 왔다. 내광리 내주 입석이 세워진 시기는 확실한 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내리아(乃利阿)에서 ‘내리(乃利)’는 ‘곧다’라는 뜻이고, ‘아(阿)’는 읍이나 성을 말한다. 즉 곧은 성이라는 뜻이다. 바다의 조수가 이곳까지 밀려올 때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역원. 김제 지역은 백제의 벽골군(碧骨郡)인데 신라 때 김제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屬縣)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두었다. 1403년(태종 3) 김제현 출신인 명나라 환자(宦者) 한첩목아(韓帖木兒)의 요청으로 군으로 승격되었다. 김제군의 동쪽으로 금구현(金溝縣) 경계까지 14리, 남쪽으로 태인현(泰仁縣) 경계까지...
-
내촌마을회관 앞에 가면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등 여러 개의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많지 않은 수의 마을 사람들이지만 마을 내에서 각각 속해 있는 조직이 다르기 때문이다. 60세 이상이 되면 노인회 회원이 된다. 정회원과 준회원이 나누어져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남녀를 막론하고 노인회에 참여하게 되는데, 내촌 주민의 평균 연령이 높다 보니 마을 차원에서는...
-
김제에서는 땅 넓이를 가리키는 단위로 1마지기가 150평[495.87㎡]이고, 8마지기는 1,200평[3,966.94㎡]으로 ‘1필지’ 또는 ‘1배미’라고 부른다. 광활은 하우스 감자의 성공으로 대부분의 땅에서 2모작 또는 3모작이 성행하고 있다. 그래서 겨울에도 노는 땅보다는 비닐하우스가 설치된 땅이 더 많다. 1년 동안 땅을 빌리는 세가 1,200평 기준으로 적게는...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보(中甫),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감찰지평(監察持平) 노준경(盧俊卿),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노단(盧亶), 어머니는 비순위별장(備巡衛別將) 이천로(李天老)의 딸이고, 아내는 김극치(金克致)의 딸 및 김후(金厚)의 딸이다. 아들은 노상인(盧尙仁)·노상의(盧尙義)·노상례(盧尙禮)·노상지(盧尙...
-
전라북도 김제시 순동에 있는 농산물 생산·판매 업체. 농업회사법인 농산무역은 파프리카 생산 농가가 파프리카의 수출 과정에서 목격한 급변하는 시장 여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공동 출자하여 설립한 농산물 무역업체이다. 농업회사법인 농산무역은 판매자 위주가 아닌 소비자 요구에 맞춘 안전한 농산물 공급을 통하여 농민들의 소득 증대와 권익 보호를 실현시키며, 김제 지역 농업을 세계적으...
-
조선 후기 김제에서 활동한 의승장(義僧將). 법명은 처영(處英)이고, 호가 뇌묵(雷默)이다.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이다. 뇌묵은 금산사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휴정은 팔도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승(義僧)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뇌묵은 김제 금산사를 중심으로 1천여 명의 승...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능제(菱堤)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만경현조에도 능제라고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저수지이다. 능제저수지는 귀[굽이·귀퉁이]가 99곳이나 되는데, 귀가 100곳이 되면 나라에 큰 경사가 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능제저수지는 본래 주변 구릉지의 물을 가두는 재래지(在來池)였으나, 1930년 1월 1일 확장 공...
-
전라북도 김제시 벽골제 아리랑문학관 전시장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 미술 전시회. 대형 아트페어[여러 개의 화랑이 한 곳에 모여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행사] 하면 그동안은 뉴욕이나 런던, 파리, 동경 등 선진국의 대도시에서 주로 행해지는 행사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호남 출신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사)다프(DAF)[단야국제미술대전의 영문 Danya Int’l Art...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명절. 음력 5월 5일 단오는 양의 수가 겹치는 날로서 설·추석과 함께 3대 명절의 하나이다. 이를 ‘수리[戍衣日]’, ‘수뢰’, ‘천중절’, ‘중오절’, ‘단양’ 등이라고도 한다. 예부터 이날이 되면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은 창포에 머리를 감거나 새 옷을 해 입고, 그네를 뛰거나 씨름을 하는 등 흥겨운 하루를 보낸다. 이와 같이 단오를...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에 있는 대동금속스텐공업의 공장. 대동금속스텐공업은 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전라북도 김제시에 공장을 두고 스테인레스 파이프 등을 비롯한 다양한 강관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이다. 대동금속스텐공업 김제공장은 효율적인 공법 개선으로 현대적인 건축학에 부응하는 다양한 강관 제품의 생산을 통하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김제 지역 경제에...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에 있는 전문농공단지. 대동전문농공단지는 신행정수도의 배후 중심지로 공업 입지 제공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 도모를 위해 2003년 4월 9일 전문농공단지로 지정 승인되어, 2002년 12월 1일부터 2006년 11월 14일까지 총 사업비 153억 원을 투입하여 조성되었다. 대동전문농공단지는 2004년 10월 11일 실시 계획이 승인되었으며, 2005년...
-
김제지평선축제는 우리나라 유일의 비경인 지평선을 테마로 하는 전국적인 문화 행사로, 도작 농업의 발상지인 김제를 브랜드로 내세워 전통·현재·미래가 조화를 이루는 축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담아내는 축제를 지향한다. 제1회는 1999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열렸고, 2009년 11월 제10회를 맞았다. 광활한 평야에 펼쳐진 지평선을 새로운 테마로 개발하여 관광 김제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본사를 둔 대한불교조계종의 교구. 대한불교조계종은 한국 불교 최대 종단으로 전국에 약 3,000여 개의 사찰을 두고 있으며 25교구로 구분되어 있다. 각 교구에는 해당 지역 교구를 관리하는 본사가 있는데 그 중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는 금산사(金山寺)에 교구 본사를 두고 있다. 599년에 창건된 금산사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진표율사(眞表律...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는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소속 지회. 1998년 9월 사진예술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친목 도모 및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대한사진예술가협회 김제지회를 설립하였다. 대한사진예술가협회 김제지회의 모태가 된 한국사진작가협회 김제지부의 활동으로부터 김제 지역 사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1971년 10월 한국사진작가협회 김제지부가 김제 지역 사진예술인의 모임으로 처...
-
김희조를 시조, 김원경을 파조로 하고, 김윤후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도강김씨(道康金氏)의 시조는 김희조(金希祖)로, 호는 강성(康城),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김희조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병부상서를 지냈고 도성부원군이 되었다. 도강백(道康伯)을 수봉하였기에 그 후손들이 도강(道康)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후 후손들은 4개의 분파로 나뉘어졌고, 고...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니는 비교적 큰 길. 김제시를 통과하는 도로는 국도 4개 노선 총 69.62㎞, 지방도 8개 노선 총 117.60㎞, 시도 47개 노선 총 239.64㎞ 등이 있다. 국도 1호선은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까지 14.08㎞로 정읍~원평~전주를 연결하는 노선의 일부 구간이다. 국도 21호선은 김제시 공덕면 저산리에서 김제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아기가 태어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에 베풀어 주는 잔치상. 돌이란 아기가 태어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 즉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을 말한다. 이때에 생일을 맞이하는 아기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아기 앞에 다양한 음식을 차린 상을 마련한다. 이를 ‘돌상’, ‘돌잡이상’ 등이라고도 한다. 돌상 차리기는 일반적인 잔치상이나 생일상과는 달리 상에 음식만을...
-
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동래정씨(東萊鄭氏)는 신라 유리왕 때 임금으로부터 정씨의 성을 받은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였으나, 계대가 전해지지 않게 되어 후손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있다. 『을미보(乙未譜)』에는 안일호장(安逸戶長)이었던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여 기세하였으나, 『병신보(丙申譜)』 이후부터는 문안공(文安公)...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월현리에 있는 조선시대 동래정씨 종중 묘역. 월현리 동래정씨 종중 묘역은 김제시 청하면 월현리 상대마을 남쪽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이조판서를 지낸 정극선(鄭克善) 부부의 묘가 묘역의 중심부에 비교적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사방으로 동래정씨 종중 사람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정극선 부부의 묘 앞에는 140㎝ 정도 높이의 문인석이 좌우로 세워져 있다. 문인석...
-
전라북도 김제시에 서식·분포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 김제시는 서해안에 접해 있으면서 기복이 작은 평야지형이다. 북으로는 금강을 경계로 충청남도 논산군·부여군에, 서쪽으로는 옥구평야에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 만경강이, 남쪽으로는 동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특이한 장소이다. 북쪽에는 입석산이 있고, 동쪽에는 완주군을 경계로 모악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동물상 조사는 김제시의 자연환경을 반...
-
전라북도 김제시 신월동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시대 동복오씨 종중 묘역. 신월동 동복오씨 종중 묘역에는 고려 후기 문신인 오천(吳蕆) 등 3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으며, 문인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고려사(高麗史)』 오잠(吳潛)의 전기에 따르면, 오천은 승지를 지낸 오잠과 오연(吳演), 정랑 오형(吳珩), 소윤 오련(吳連)과 형제간이었으며, 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오선(吳璿...
-
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산인 동지산(東芝山)에서 이름을 따서 동지산리(東芝山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만경군 북일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산리·궁동리·척산리·내실리·내토리·대신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지산리라 하고 김제군 청하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가 되었...
-
전라북도 김제시 남부를 지나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하천. 동진강 유역은 동학 농민 혁명의 발단이 된 주 무대이다. 동학 농민 혁명은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만석보(萬石洑)를 쌓고 수세를 너무 많이 거두어들인 데서 촉발된 농민 혁명이다. 정읍시 신태인읍에서 고부 방향으로 가다가 동진교를 건너 하류 쪽으로 바라보면 바로 아래에 농민들이 만석보를 부수고 관가로 쳐들어간 흔적을 볼 수...
-
전라북도 김제시 동진강 하구에 있는 철새도래지. 우리나라는 이동성 철새의 중간 기착지 및 월동지로서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147만 개체가 찾아와 겨울을 난다. 환경부는 본격적인 철새 도래 시기인 12월 초에 주요 철새도래지인 금강 하구, 해남·순천만, 주남저수지, 낙동강 하구, 한강 하구 등을 대상으로 환경부, 시도,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생물자원관 등 관련 기관 합동...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 있는 휴게소. 동진강휴게소가 위치한 동진강(東津江)은 동진교 바로 남쪽에서 고부천과 합해져서 북진하여 흐르는데, 동진교 부근은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북쪽의 동진강 하구는 새만금 방조제의 내부가 되었다. 동진강휴게소는 20년 사용 후 김제시에 기부체납을 조건으로 1992년에 완공된 휴게 편의 시설이다. 동진강휴게소의 연면적은 1,321㎡...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동진강휴게소와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 장등마을을 잇는 다리. 동진대교가 놓인 동진강 하구에 있던 나루터는 옛날부터 부안과 김제를 잇는 연결 지점이었다. 부안 사람들이 전주나 서울 등으로 나들이할 때 동진나루를 건너 죽산(竹山)~내재역(內才驛)을 거쳐 김제, 금구 또는 이서를 지나 전주에 갔다. 마찬가지로 외지의 사람들이 부안을 찾을 때도 대부분 동진나룻...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민속박물관.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의 전시물은 전 임직원들이 각 농가에 흩어져 있는 수리·농경·민속자료 등을 한데 모으고, 교육과 문화에 관심 있는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의 기증과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마련되었다. 김제시는 2000년 전 벽골제(碧骨堤)를 축조했던 도작문화(稻作文化)의 발상지이다.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은 문명의 이기에 밀려 차츰 사라져 가...
-
189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에 기초를 둔 반봉건·반외세 농민항쟁. 19세기는 순조·헌종·철종 등 어린 왕들이 연이어 즉위하면서 외척 세력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세도정치의 시기였다. 그로 인하여 중앙 정치는 문란해지고, 탐관오리는 백성들을 핍박했으며, 전정·군정·환곡 등의 폐단으로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경주 출신의 몰락 양반 최제우(崔濟愚)가...
-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는 옛 금구현 원평(院坪)으로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봉준(全琫準)[1855~1895]과 김덕명(金德明)[1845~1895]이 이끈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이자, 원평집회와 최후의 결전이라 할 수 있는 원평·구미란(龜尾卵) 전투가 벌어진 동학농민운동사의 중요 무대이다. 금구 출신의 김덕명 장군은 당시 동학 남접으로 전봉준과 함께 가장 치열하게 당...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금산의 웅치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이어서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청하면·진봉면·공덕면·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어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로 행해지면서 두내산현(豆乃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
-
두경령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 두경령(杜慶寧)은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내다가 고려시대에 만경(萬頃)을 식읍지로 하사받았다. 만경은 백제 때는 두내산현(豆乃山縣)이라 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이라 하였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
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두릉(杜陵). 자는 경원(慶源), 호는 초당(草堂). 두만형은 1759년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시사천리에서 태어나, 34세 되던 1792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구미마을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향리 유생들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후 해박한 지식과 문장이 정조에게 알려져 어전시재(御前試才)를 하...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전망대. 두악산(斗岳山)[58m]은 김제시 흥사동과 백산면 하정리 경계에 위치한다. 두악산의 북서쪽에는 백산저수지가 있고, 남쪽은 신평천(新坪川)의 발원지가 된다. 두악산은 마치 말[斗]에다 쌀을 담아 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유래된 명칭이다. 흥사동은 1989년 김제시에 편입되기 전에 백산면에 속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두악산전망대를 일명 백산전망대라고...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쌀·콩·팥 등 곡식을 담는 기구. 뒤주는 두주(斗廚)·도궤(度櫃)·두도(斗度) 등으로도 불리며, 곡물을 보관하는 수장궤(收藏櫃)의 일종이다. 대청마루나 찬방에 두고 사용하며, 보관하는 곡물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쌀을 보관하는 것은 대형이고 잡곡을 보관하는 것은 중형, 깨나 팥을 보관하는 것은 소형이다. 쌀과 잡곡을 구분해 보관하고 큰 것은 쌀뒤주, 작은 것...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남정리와 백구면 마산리를 지나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마산천이 만경강에 합류하는 백구면 마산리는 원래 김제군 공동면 지역인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 통폐합에 따라 마전리·난산리·반월리·신모리 일부를 합하여 마전과 난산의 이름을 따서 마산리로 고쳐서 김제군 백구면에 편입되었다. 마전리는 삼베를 짜는 삼을 많이 재배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마전과 난산을 합...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농주. 막걸리는 예부터 각 지방의 관인 양조장에서만 생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제조하여 애용하기도 했다. 발효할 때 알코올과 함께 유산균이 생성된다.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6~7도로 알코올 성분이 적은 술이다. 막걸리는 탁주(濁酒) 또는 탁배기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두밥...
-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발원하여 김제시를 지나 서해의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하천. 만경강 유역의 수리 시설과 치수사업은 우리나라 8대 오지로 불리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에 1923년 동상저수지를 축조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동상저수지 아래에 20m를 높여 대아저수지를 축조하였다. 1925~1930년에는 직강(直江) 공사, 1935년 경천저수지 축조, 1930~194...
-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발원하여 김제시를 지나 서해의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하천. 만경강 유역의 수리 시설과 치수사업은 우리나라 8대 오지로 불리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에 1923년 동상저수지를 축조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동상저수지 아래에 20m를 높여 대아저수지를 축조하였다. 1925~1930년에는 직강(直江) 공사, 1935년 경천저수지 축조, 1930~194...
-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종은 동학 농민 운동이 모두 진압되고 난 후 지방 행정구역 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1895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때 만경현과 금구현이 군으로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만경군·금구군은 김제군과 함께 전주부[관찰사]에 속하게 되었다.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3개 군은 전라북...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동산에 있는 전망대. 만경읍에 위치한 동산(東山)[58m]은 만경읍사무소 뒤편[북쪽], 김제와 군산을 연결하는 국도 29호선과 만경읍과 백산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702호선 사이에 위치한다. 백제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의 이름이 두내산(豆乃山) 또는 두릉이라 불렸기 때문에 일명 두산이라고도 한다. 산중턱에는 두릉두씨 시조 2세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만경동산...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만경(萬頃)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밭 사이의 경계[두둑]가 만 개라는 뜻인데, 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작지가 광활함을 일컫는 말이다. 만경리 남쪽에 김제시에서 가장 넓은 능제저수지(菱堤貯水池)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조선 말기 만경군 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신·외동...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만경(萬頃)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밭 사이의 경계[두둑]가 만 개라는 뜻인데, 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작지가 광활함을 일컫는 말이다. 만경리 남쪽에 김제시에서 가장 넓은 능제저수지(菱堤貯水池)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조선 말기 만경군 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신·외동...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삼국시대 읍성 터.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후록산(後麓山)은 백제시대 두내산(豆內山) 또는 두릉(杜陵)이라 칭했다. 이런 이유로 후록산을 두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만경편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는 조선 전기 어느 시기인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둘레가 겨우 1백 보에 불과한 작은 토성(土城)이 있었으나, 퇴폐된 채...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평생학습 교육기관. 만경문화센터는 만경읍을 비롯한 김제시 서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사회, 문화, 예술 교육의 실시를 통해 지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2년 8월 20일 설립되었다. 만경문화센터에서는 매년 문화 소외 지역의 아동 및 주부들을 대상으로 ‘서해안의 푸른 꿈을 찾아서’라는 미술 체험 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서양화, 회화, 조...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간이 버스터미널. 1975년 전라북도 김제시와 만경읍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하여 건립되었다. 만경터미널은 건물 및 주차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행버스 매표소는 건물 내에 입주한 슈퍼마켓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화장실을 제외한 다른 편의 시설은 거의 없다. 2010년 현재 만경터미널은 만경읍의 영업소로 등록되어...
-
통일신라와 고려·조선 때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벽골·두내산·무근촌(武斤村)·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
전라북도 김제시 양전동에 있는 자연마을. 만석동은 벼 만석을 거두어들일 만큼 큰 부자가 나올 좋은 터라는 풍수지리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망석산(網石山)[37m, 되뫼산]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망석동이 만석동으로 변음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만석꾼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김제와 연결되는 지방도 714호선을 개설하면서 마을 북쪽...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농가에서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는 나무로 만든 그릇. 말구유는 구수[전라북도], 구시[경상남도], 궁이[강원도] 등으로 불린다. 통나무를 파서 구유를 만들었을지라도 이를 바로 쓰면 터지기 때문에 2~3년 동안 그늘에 두어 오줌 따위를 받아 두었다가 사용한다. 이러한 예비 구유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랑채 부근에 두고 오줌을 받는데, 이를 오줌 구유라 한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물건을 담아 메고 다니기 위해 새끼나 노 등으로 꼬아 만든 주머니. 지역에 따라 망탁, 망태, 구럭, 깔망태라고도 한다. 쓰임새에 따라 크기나 모양이 다양한데, 한쪽 또는 양쪽 어깨에 멜 수 있다. 꼴을 담는 것을 ‘꼴망태’라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인삼[산삼]이나 산나물을 캐러 가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망태는 끈이 달린 주머니로 감자나 옥수수 같...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함지나 물통 등의 네 귀퉁이에 줄을 매어 두 사람이 물을 푸는 농기구.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물을 푸기 때문에 맞두레라고 한다. 맞두레는 글자 그대로 목판처럼 바닥이 좁고 위가 넓은 나무그릇 네 귀퉁이에 줄을 달아, 두 사람이 두 줄씩 마주서서 잡고 호흡을 맞추면서 물을 떠올린다. 물이 깊이 고여서 두레나 용두레로는 물을 옮기기 어려운 데 쓴다. 물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콩을 이용하여 만든 각종 장의 기본이 되는 원료. 보통 김제 지방의 각 가정에서는 입동(立冬)을 전후해 김장을 끝내고 메주를 쑨다. 콩을 충분히 불린 다음, 큰 무쇠 솥에서 끓여 삶은 것을 절구에 찧어 으깬다. 이것을 콩 1되로 1개 혹은 2개 정도가 되도록 둥글거나 네모나게 빚어 단단하게 만든다. 일반 농가에서는 이 메주를 더운 뜰아랫방에다 짚을 깔고 드문...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두리에 있는 백제시대 토성 터. 명금산 토성은 백제시대에 테머리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거의 평탄한 산상 둘레에 토루를 쌓아 내황(內隍)을 만들었다. 벽골제(碧骨堤)의 남단에 위치하여 벽골제를 수호하고 동진강(東津江) 하구를 따라 내륙으로 들어오는 적을 차단하는 방어 진지로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따르면 “정읍과 김제의 양쪽 군 경...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와 죽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옛적에 두 형제 산이 정답게 지냈는데, 어느 날 물난리가 나자 두 산이 조난을 당해 형 산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으나 동생 산은 죽산까지 떠 내려왔다고 한다. 그 산이 명량산으로 형을 잃고 슬피 울었다 하여 명량산(鳴良山)이라 전한다. 명량산은 죽산면 평야지대에 유일하게 있는 산으로 마치 누에가 길게 누워 있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고유의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김제 지역에서는 예부터 농경 위주의 생활을 이어 왔으며, 이에 따라 기후와 계절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세시풍속이 발달하였다. 세시풍속은 1년 사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생활양식을 말하며, 해마다 되풀이 되는 민중 생활의 생활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택하여 명절이라 했다. 이때에는...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 시설. 모악산유스호스텔은 금산사 문화 유적지, 드넓은 금산사 계곡 일원의 모험 활동장, 각종 놀이 시설의 체험 활동장인 사계절썰매장 모악랜드, 천혜의 삼림욕장인 모악산 등산로, 일제강점기 역사의 현장인 금광동굴 등의 다양한 체험 활동장과 더불어 현대적 감각의 쾌적한 숙소, 조명 및 음향과 영상 시설이 완비된 강당, 위생 시설을 갖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단골이 무악의 반주에 따라 노래하고 춤추면서 제의를 진행하는 굿. 무굿은 사제자인 단골이 무악의 반주에 따라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제의를 진행하는 굿이다. 이를 ‘당골굿’, ‘무당굿’ 등이라고도 한다. 고대국가의 영고·무천·동맹·오월제 등의 제천의식이 오늘날 별신굿·대동굿·당제 등과 같은 무교적인 제전으로 전승되는 것은 민족의 문화 현상이다. 무굿은 전통성과...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행해지는 몸짓을 통해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1980년대까지 김제 지역에서 꾸준하게 무용 활동이 이루어지던 주 무대는 학교였다. 그러다가 1989년 4월 조향숙이 김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현대무용학원’을 설립함으로써 지역 무용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무용에 대한 인식 부족과 무용수들의 타 지역 진출 및...
-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무근...
-
전라북도 김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야 지대로 과거 1차 산업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다른 고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리던 고장이다. 따라서 의식주의 풍요는 수준 높은 선비 문화로 승화되어 학문과 예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김제 유학(儒學)은 다른 고장과 달리 항상 서화의 흥을 동반한 선비 문화로 계승되어 직업적인 화공이 아니라 선비 출신의 서화인으로 오늘날까...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에 있는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김제 들판에 우뚝 솟은 황산[162m]에 자리한 문수사(文殊寺)는 현재 비구니 선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산 기슭에 까막샘 혹은 황산약수라고 불리는 유명한 약수터가 있어 단오와 백중, 그리고 한가위에 김제 일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한바탕 춤을 춘 뒤 샘물을 마시며...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김제는 옛날부터 학문 대도를 걷는 많은 선비들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하다. 그 문맥(文脈)은 오늘날에도 역량 있는 다수의 작가들이 배출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만경평야를 배경으로 향토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어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김제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대학자들이 많이 배...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국악, 미술, 문학, 사진, 음악, 무용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전라북도 김제시는 예부터 넓은 금만경평야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넉넉한 고장이었다. 이러한 풍요로움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분야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특히 시(詩)·서(書)·화(畵)와 국악의 수준은 가히 본고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화유씨 종중 묘역. 황산리 문화유씨 종중 묘역은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는 벽성대학으로 들어가는 도로 우측 황산리의 구릉 사면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옆으로 황산리 전주최씨 종중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정상부에 자리 잡은 묘들을 중심으로 둘레에 한 쌍의 문인석과 망부석, 안내석이 설치되어 있다. 문인석의 높이는 140㎝ 정도...
-
과거 한반도 어느 농촌에서건 농사를 짓는 이들의 가장 큰 숙제는 원활한 농수 공급이었다. 가뭄이 드는 해에는 밭작물의 피해도 컸지만 논농사는 물 없이는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홍수가 들면 개천과 하천에 연하고 있는 논들은 큰물에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소위 천수답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논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실을 뽑을 때 쓰는 기구. 목화의 솜이나 누에고치의 실을 잣는 간단한 수공업의 방적 연장으로 물레바퀴와 가락 사이에 솜을 걸고 물레를 돌리면 가락이 빠른 속도로 돌면서 실을 뽑는다. 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감는 가락, 물레의 몸과 가락을 걸쳐 감아 물레가 돌아감에 따라 가락을 돌게 하는 물레줄, 이 줄에서 힘을 받아 가락을 돌리는 물레바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전라북도 김제시 순동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미래브이씨는 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을 통한 자동차 부품의 효율적 생산을 달성함으로써 기업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국민 경제와 김제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2년 7월 16일 창업자 김연민이 미래에스비텍으로 설립하였다. 2002년 7월 25일 브레이크 챔버 조립 생산 라인을 인수하였고 11월 26일에는 (주)미래브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행해지는 색채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 김제 지역은 김제평야를 끼고 있어 예부터 여유롭고 넉넉한 고장이었다. 이 때문에 학문과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무르익어 직업적 화공보다 선비 출신의 서화인들이 대를 이어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미술의 경우 서화의 본고장으로 불릴 만큼 서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17세기에 활동한 송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행해지는 색채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 김제 지역은 김제평야를 끼고 있어 예부터 여유롭고 넉넉한 고장이었다. 이 때문에 학문과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무르익어 직업적 화공보다 선비 출신의 서화인들이 대를 이어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미술의 경우 서화의 본고장으로 불릴 만큼 서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17세기에 활동한 송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 민간신앙은 서민층에 전승되는 자연발생적 신앙으로 뚜렷하게 교조가 없고 경전처럼 체계화된 교리도 없다. 대부분 자연 종교적이며 주술적인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민간신앙은 오랜 전승 과정을 통해 민간의 생활에 존속해 오면서 특정 민족의 기층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교·불교·도교 등의 외래 종교가 토착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서 민중들이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민속이란 민속학에서 포괄적인 용어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김제 지역의 민속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신앙·전설·풍속·생활양식·관습·종교의례·민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민중들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민속놀이는 인간의 생활 속에서 영위하고 있는 생활환경이나 경제 활동과 관련을 맺으며 생겨난 놀이를 말한다. 이를 ‘전통놀이’라고도 일컫는다. 김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업 활동 및 지리적 여건과 관련하여 민속놀이가 형성되었으며, 반복을 통하여 세대 간 전승이 변화·발전되기도 하면서 이어져 내려왔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민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민요는 예로부터 민중들 사이에 자연 발생적으로 오랫동안 불려오던 소박한 노래이다. 전문적인 소리꾼에 의해 불리는 통속민요와 각 지방에 따라 불리던 소박하고 향토적인 토속민요로 구분된다. 민요는 민중들의 사상·생활·감정 등을 담고 있으며, 작사자·작곡자가 따로 없고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전해 오는 노래이다...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인화가. 박규환(朴圭晥)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향집(鄕執), 호는 표원(表園)이다. 1868년 지금의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으며, 1916년에 세상을 떠났다. 박규환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에 열정이 많았으며, 서예와 사군자에 뛰어났다. 당시 김제 지역에는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과 같은 대가가 있어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기업인. 박기남은 1941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 39-35번지[용마로 429-9]에서 태어났다. 1971년 인천의 신포동에서 ‘우리집’이라는 6.6㎡ 남짓한 작은 만두가게로 출발, 고기만두와 쫄면을 대중 메뉴로 상품화한 뒤 경인 지역에 10개의 분점을 개설했다. 1987년에는 김제시 황산면에 신포우리식품이란 이름으로 공장을 설립하고 ‘신포우...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박명수(朴命壽)는 본관이 함양(咸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백의창의(白衣倡義)하여 의병을 모집한 뒤 웅치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순절하였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장수와 양곡을 주청한 이순신(李舜臣) 등 18명은 선무...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아버지는 박길중(朴吉中)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최계진(崔季眞)의 딸이다. 동생으로 박헌(朴軒)과 박초(朴礎)가 있다. 동생인 박초가 김제시 입석동에서 태어난 것으로 미루어 박부(朴敷)도 김제 출신으로 보인다. 감무(監務)를 지냈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일서(一瑞), 호는 굴지당(屈指堂).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고창현감을 지낸 박형(朴珩)이다. 어머니가 큰 돌이 떨어져 가슴에 안기는 꿈을 꾸고 낳아 석정(石精)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다. 박석정(朴石精)은 16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학문이 남달리 뛰어났으며, 많은 제자들...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밀성(密城).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 초명은 박실(朴實)이다. 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郞)인 박인기(朴仁杞)이다. 아들은 박경빈(朴景贇)·박경무(朴景武)·박경문(朴景文)이다. 박의중(朴宜中)[1337~1403]은 1362년(공민왕 11) 과거에서 장원에 뽑히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헌납(獻納), 좌사의대부(左司...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화(孝華), 호는 신촌(薪村).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이(朴頤)이다. 박정영(朴廷榮)[1559~1592]은 지금의 김제시 흥사동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재종숙인 굴지당(屈指堂) 박석정(朴石精)에게 글을 배워 11살 때 『주역(周易)』을 알고 경전(經傳...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금산의 웅치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權悰)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진안을 거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토헌(土軒) 박초(朴礎)의 후손이다. 박충길(朴忠吉)은 부장(部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백관들은 권정례(權停例)로써 진하(陳賀)하였다.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종묘와 사직의 주판(主版)을 받들고 먼저 떠나게 하고 왕...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출신의 승려이자 불교 지도자. 박한영(朴漢永)의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子)이다. 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전주, 김제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한영은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들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김제여자중학교에서 매년 5~6월에 열리는 과학 행사. 발명꿈나무를 위한 어울림 한마당은 김제교육지원청과 김제여자중학교에서 2005년 발명의 날인 5월 19일을 전후하여, 김제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어울려 다양한 발명과 과학 활동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발명 교육의 활성화와 발명 마인드를 조성하기 위해 개최하였다. ‘창의적...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방송은 적절한 수신 장치를 갖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동시에 청취할 수 있도록 오락·정보·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방송법 제2조 1항에서는 방송을 목적으로 지상의 무선국을 이용하여 행하는 지상파 방송, 전송·선로 설비를 이용하여 행하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토착어. 방언은 표준어와 대립되는 개념의 말이다. 한 언어를 형성하고 있는 하위 단위로서 하나의 국어가 지역에 따라 음운·어휘·문법 등에 다름이 있을 때, 그 다름에 의하여 분단되는 지역에 있어서의 언어 체계를 방언이라고 한다. 한국어는 현재 우리나라 전역에서 쓰이는 방언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고, 방언은 한국어의 변종이라고 정의할 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를 연결하는 고개. 김제 청룡사(靑龍寺)에서 완주군 구이면 배재울과 탑선을 넘어가는 배재는 옛적에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 때문에 배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배재는 호남정맥 운암 초당골[막은댐]에서 분기한 모악기맥이 엄재, 국사봉, 밤티재, 화율봉을 지나 장근재를 가기 전에 있는 고개로 모악산(母岳山)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한다....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백석면(白石面)의 ‘백(白)’자와 연산면(延山面)의 ‘산(山)’자를 따서 백산면(白山面)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던 지역으로, 신라시대에 벽성군, 고려시대에 전주속현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석면의 금동·삼수·석정·사가·괴방·소음·황경·자학·상서·하서·요교·돌제·옥정·석정·상두악·하두악·상말...
-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백석서원(白石書院)에는 백석 유집(柳楫)[1585~1651], 창강 조속(趙速)[1595~1668], 반곡 유도(柳棹)[1604~1663] 등 향현 3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주벽에는 유집이 자리하고 있다. 유집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와 찰방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이흥발(李興跋) 등과...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수여(秀汝). 고조할아버지는 첨사(僉使) 백장(白璋)이며, 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역임한 백광호(白光浩)이다. 백선남(白善男)[?~1636]은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의 패륜함을 목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 때 창원부사에 임명되어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다. 1636년(...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자연마을. 백운동(白雲洞)이라는 명칭은 이 마을이 높은 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항상 흰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운동은 한때 ‘제2전매청’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복 후 담배 사기가 몹시 힘들었던 시절에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담배 마는 기계를 설치하고 담배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에 있는 자연마을. 백자를 굽던 마을이라 하여 백자동(白磁洞)이라고 부르다가, 도공들이 천대받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마을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해서 백자(百子)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당시 익산군 함라현에 살던 유군심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
-
662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풍왕을 중심으로 백제를 다시 세우고자 한 운동.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공격하자 의자왕과 태자를 비롯한 왕족들은 웅진성으로 피난했다가 곧 항복함으로써 백제는 멸망하였다. 당은 백제 땅에 5도독부와 7주를 설치해 직접 지배하려 했으나 이는 백제 유민의 저항과 반감만 살 뿐이었다. 백제는 비록 수도가 함락되었지만 지방...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올리는 물대기 행사. 백파제는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에서 주관하여 김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풍년을 기약하는 전통의식으로, 영농철을 맞이하는 봄마다 호남평야의 고품질 쌀 생산을 기원하며 올리는 통수식이다. 한 해의 안전 영농과 풍년을 기원하고, 저수지를 비롯한 양·배수장 등의 수리시설물이 아무 문제없이 정상 가동·운영되기를 바라면서 실시하는 행...
-
전라북도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 백학(白鶴)은 백로가 밭에 내려앉는 형국인 백로하전혈(白鷺下田穴)의 산이 마을들을 감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입천면 백학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포내리, 선정리, 대덕리, 진관리, 용곳리, 대리와 금구군 일북면 난봉리, 이북면 두월리·홍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김제면 백학리가 되었다. 1931년...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학성강당(學聖講堂)에서 사계절 꽃으로 담그는 전통주. 백화주(百花酒)는 밑술에 두 차례의 겹술[덧술]을 한 뒤 세 번째 겹술로 백 가지 꽃을 담아 최소한 40일에 걸쳐 만든다. 꽃은 이른 봄 매화에서부터 늦가을 감국까지 김제 들판에서 자라는 풀꽃과 꽃나무에서 채취하여 말린 것이다. 술 빛은 짙은 갈색인데 탁하진 않다. 도수는 14도쯤으로, 백화주는 도수에 비...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에서 백구리까지 연결되는 도로. 전주와 군산을 잇는 번영로 벚꽃길은 일본이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 가고자 1908년에 건설한 도로이다. 전체 길이가 40㎞에 이르며,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 신작로이다. 당시에는 전군도로(全群道路)라고 불렀으며, 도로 양쪽에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 벚꽃백리길이라고도 한다. 번영로 벚꽃길은 전주와 군산을 잇는 우리나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무명·모시·삼베 등을 짜는 직조기. 베틀은 삼베나 명주·무명 등을 짜는 틀이다. 이러한 베틀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개발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시대 김제 지역에서는 삼나무 껍질을 실로 만들어 옷감을 만드는 삼베와 누에치기에 의한 명주를 베틀로 직조하였는데, 주로 목화솜을 따서 씨를 빼 물레를 돌려 실을 짜는 무명을 직조하였다....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농경문화 테마파크. 벼고을테마파크에 속한 벽골제(碧骨堤)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로,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친 약 3㎞에 이르는 제방 및 수문과 1415년 건립된 벽골제 중수비를 포함하여,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총 463호의 사적 중 실제 기능을 수행한 유일한 구조...
-
백제 때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벽골군(碧骨郡)에 관한 기록은 부족하여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330년(비류왕 27) 벽골제 축조 기사로 보아 벽골제와 관련성이 있다는 설과 볏골[벼의 고을]이라는 말에 연원이 있다는 설이 있다.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무근촌(武斤村)·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
전라북도 김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매년 개최되는 미술대전. 벽골미술대전은 서화(書畫)의 본고장이라는 김제의 자존심과 전통을 살리고 또한 이를 계승하고자 2000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 9월 제1회 벽골미술대전을 시작으로 총 10회의 행사를 이어 오는 동안 명실공히 신인 작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첫 회는 전국벽골한국화특별대전으로 시작하였으며, 차츰 공모 분야...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벽골제 단지 내에 있는 농악 전수관. 농악은 크게 웃다리농악[경기·충청 지역]·호남좌도농악·호남우도농악·영남농악·영동농악으로 나누어진다. 호남평야에서 발달한 호남우도농악은 잔가락이 많고 다채로워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를 전수하기 위한 우도농악전수관이 전라북도 정읍·영광 등 각 지역에 설치되어 있다. 벽골우도농악전수관도 그 중 하나이다. 벽...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벽골제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유구석부. 유구석부(有溝石斧)는 홈자귀라고도 하는데, 나무를 깎거나 다듬는 데 사용하는 연모이다. 흔히 도끼가 전쟁이나 수렵, 나무를 벌채할 때 쓰였다면, 석부는 도끼로 여러 가지 용도에 맞게 재목을 자르거나 다듬어서 가공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또는 농사지을 때 땅을 파는 괭이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청...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공립 박물관.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1호이자 고대 최대의 수리시설인 벽골제의 역사적 의의 및 발굴 경과, 그리고 수리와 치수(治水)의 역사 및 농경 도구를 비롯한 농경문화와 오래된 고을 김제를 주제로 하여 전시를 구현함으로써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전통 농경 사회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사적 벽골제를 만날 수...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에서 단야의 설화를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 벽골제 쌍용놀이는 백룡과 청룡 두 용의 싸움과 이 과정에서 희생된 김제태수의 딸인 단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가 지금의 민속놀이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벽골제의 제방공사와 용의 이야기가 후대에 와서 인간들의 애정갈등과 함께 얽히면서 놀이화가 된 것이다. 쌍용놀이는 ‘벽골제’에 얽힌 다음과 같...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던 마한 54소국의 하나. 벽비리국의 ‘비리’라는 말은 비리국(卑離國)·고비리국(古卑離國)·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내비리국(內卑離國) 등 마한의 소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백제의 부리(夫里)와 신라의 벌(伐)·불(弗)·불[火]처럼 평야, 읍락, 나라 등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벽골제 단지 내에 있는 미술관. 벽천미술관(碧川美術館)은 한국 화단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나상목(羅相沐)[1924~1999]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미술관이다. 미술관 이름이기도 한 벽천(碧川)은 나상목의 호이다. 나상목은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출생했다. 대각선적 포치법(布置法)으로 화면에 자연사물을 배치하고 간결하면서도 생명력...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상가 밀집 지역의 옛지명. 본정통(本町通)은 일제강점기 때 김제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던 서독안경사거리[전북지업사, 과거 박약국 간이 배차장]~안경박사사거리~금만사거리 구간을 말한다. 금만쇼핑거리라 부르기도 하였다[박약국사거리까지를 말하기도 함]. 일제강점기에 혼마찌라고 하다가 해방 이후 본정통이라 불렀는데, 당시 김제에서 가장 번화했던 상가 밀집 거리...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산이씨 종중 묘역. 선암리 봉산이씨 종중 묘역은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의 재넘어마을에서 영천마을로 지나가는 도로로 접어들면 나오는 오른쪽 산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묘역의 남쪽으로는 안동권씨 열녀비와 온덕기 효자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서도리 유물산포지가 위치하고 있다. 선암리 봉산이씨 종중 묘역에는 4기의 무덤이 산재해 있으...
-
조선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국경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다른 지역의 변경에 알리기 위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외부로부터 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외적과의 격전지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는데, 평상시에는 1개...
-
전라북도 김제시 월봉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김제 지역에 활발하게 복음이 전파된 배경 중 하나는 동학 혁명 직후, 기독교로 귀의한 동학도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다. 1900년에 세워진 입석리교회가 동학 세력의 개종으로 설립된 교회의 대표적인 예이다. 전의렴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곽성국 등이 월촌면 입석리에 기도처를 마련하여 1900년 10월 1일 설립한 입석리교회가 봉...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봉황산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봉황산(鳳凰山) 안에 있어 봉황사(鳳凰寺)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절은 1968년에 한 보살이 불당을 짓고 창건한 암자형 사찰이다. 기도처로 이름 나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목조와가 3칸으로 지어진 법당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요사채는 1991년 승려 강귀석이 건립했는데, 콘크리트 벽돌로 된 ㄱ자형 주택...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교리의 으뜸가는 부교마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부교마을은 백제시대에 이미 형성된 마을로, 고려 말 너무 가난하여 비골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부교(父橋)로 고쳤다. 이웃 모산마을[母山마을]과 대비되는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1789년 발간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뜰 ‘부(浮)’자와 다리 ‘교(橋)’자를 써서 부교(浮橋)라고 기록되어...
-
삼국시대 김제에서 활동한 승려. 성은 진(陳),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다. 부설은 경주 출신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났다. 20세가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찾아가 출가하게 되었다. 일심으로 인내하는 사찰 생활과 부처의 모습을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하여 염불하고 불경을 읽는 등 수도 생활에 정진하여 경학(經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날마다 그의 명성...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승반산과 용지면에서 발원하여 청하면 동지산리에서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부용천이 발원하는 김제시 흥사동은 흥복사(興福寺)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승반산과 승가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승반산 서북쪽으로 1㎞ 지점에는 두악산이 있다. 부용천이 만경강에 합류되는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는 내륙 지역 동쪽에 있어 앞산의 이름대로 동지산이라 불렀다. 동지산리는...
-
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의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고현마을과 부서울마을 일대가 과거 부윤현의 위치이다. 성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부설각시’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부서울’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만경면 남쪽 13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이 지금도 고현과 부윤으로 부르는 점 등 여러 가...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4세기 말로서, 당시 고구려·백제·신라는 부족 연맹체를 벗어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 국가로 도약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 종래의 씨족 중심적 세계관과 종교관을 대체하는 보편적 윤리와 이념을 제공하였다. 고구려의 불교는 372년(소수림왕 2)...
-
193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을 중심으로 채굴된 정제되지 않은 금. 백제 때 벽골군(碧骨郡)이던 지명이 신라의 통일 이후 김제군으로 바뀐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말쯤부터 금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산사(金山寺)로 이름난 구악산(口岳山) 서쪽 지명이 금산(金山) 금구(金溝)인 것도 김제 지역에서 일찍이 금이 생산되었음을 말해준다. 1906...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한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당시 고구려가 받아들인 불교는 주로 전진(前秦)을 비롯한 북방 중국의 불교였으며, 백제가 받아들인 불교는 동진(東晉)을 비롯한 남방 중국의 불교였다. 신라의 경우는 처음에는 고구려에서, 그 이후로는 백제와 중국의 남조·수나라·당나라 등지에서 전래되었다. 삼국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사회의 변혁과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일체의 행동. 사회운동은 기존 사회의 사회 규범 또는 가치 체계 등의 변혁이나, 어떤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행동하는 조직적·집단적 활동이다.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인 대중 운동으로서 흔히 시위운동, 서명 운동, 연좌 농성 등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김제 지역의 산들은 대부분 호남정맥(湖南正脈)에서 갈라져 나온 모악기맥(母岳岐脈)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악산(母岳山)[793.5m], 국사봉(國士峰)[543m], 구성산(九城山)[487.6m]을 제외하면 대부분 50~150m가량의 낮은 산과 구릉 수준이다. 전라도의 땅들과 물줄기들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
-
구성산과 모악산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 청도리 동곡마을이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고 하는 형상 같기도 하고, 짐승이 마을 전체를 껴안고 있는 듯해서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자가 봐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풍수 연구가들은 이곳의 기(氣)가 예사롭지 않아서 각종 신흥 종교가 번창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개항기 김제조씨의 삼강문. 삼강문(三綱門)은 김제조씨(金堤趙氏) 집안의 효를 기린 정려문으로, 김제조씨 종친회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조득양, 아들 조창현과 조기형·조기현, 그리고 그들 처 등의 정려가 있다. 조득양의 자는 화진(花震)이요, 호는 고암(高庵)으로 본관은 김제이며,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6월과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중복·말복을 가리키는 말. 삼복은 하지(夏至)로부터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후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한다. 이를 그냥 ‘복날’이라고도 일컫는다. 삼복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로서, 흔히 이때의 더위를 ‘삼복더위’라고도 한다. 따라서 복날이 되면 술과 반찬을 마...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을 관장하는 삼신을 모시는 신앙. 삼신은 아이의 점지와 출산, 수명과 질병 등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이다. 이를 ‘산신’, ‘삼신할머니’, ‘삼신할매’, ‘삼승할망’, ‘세존할머니’, ‘지왕할매’ 등이라고도 일컫는다. 그 어원은 ‘삼줄’, ‘삼가르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특히 손이 귀한 집에서는 아이의 태를 좋은 날 좋은 방향을 찾아 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3월 3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는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펴고, 이제 다시 새로운 농사일을 시작할 시점에서 서로 마음을 다 잡고 한 해의 건강과 평화를 비는 의미에서 다양한 의례와 풍속을 행하였다. 삼짇날은 한자어로 ‘삼진일(三辰日)’, ‘원사(元巳)’, ‘상제(上除)’라고도 한다. 이 날에는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오고, 나비가...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장산리에 있는 효자 정려. 삼효문은 도강김씨(道康金氏)인 김광현과 김노현, 그리고 김노현의 아들 김영기의 효행 사실을 기록한 석정려이다. 『만경향교지』에 김광현·김노현·김영기의 효행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김광현과 김노현은 형제로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를 받들어 모심에 정성을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여 항상 집안이 화목하였다. 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참새를 쫓는 데 쓰는 농기구. 김제 지역에 널리 유행하였던 상개는 논밭의 참새를 쫓는 데 쓰며 장대 끝의 삼줄에 매달린 우묵한 쌈지에 작은 돌을 담고 휘돌리다가 참새가 있는 방향으로 뿌리면 새들이 날아간다. 멀리 있는 새들을 쫓는 데 유리하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장사 지내는 예법. 상례(喪禮)는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그 주검을 거두어 땅에 묻기까지의 절차를 말한다. 유교적 윤리 관념이 철저하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 대하여 효도를 다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상례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 엄숙하게 치러야 했다. 주희(朱熹)의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 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상을 당했을 때 입는 옷. 상례는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를 말하며, 장사지낼 때 입는 복식을 상례복이라고 한다. 상례복에는 상이 났을 때 죽은 사람이 입는 옷인 수의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하여 입는 옷인 상복이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상례를 중시하였으며, 상례의 예로서 상가에서는 상주를 비롯한 가족들이 상복을 착용...
-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에 들어서면 논과 길 옆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도랑을 볼 수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보면, 땅을 파면 얼마든지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도랑을 만들었는지 의아해 한다. 간척 사업으로 일군 이곳은 다른 지역과 달리 깊이 팔수록 짠기가 그득한 물만 배어 나온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식수와 농수를 위해 섬진강 물을 막은 운암호에...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행하는 상례와 장례에 사용되는 용구. 상례(喪禮)는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그 주검을 거두어 땅에 묻기까지의 절차이며, 장례(葬禮)는 상례의 과정 중에서 망자를 지하에 묻는 절차를 말한다. 유교적 윤리 관념이 철저하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 대하여 효도를 다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라 생각하였기에 부모에 대한 상장례는 최대한의 예를...
-
전라북도 김제시, 군산시, 부안군을 연결하는 방조제. 동진강(東津江)과 만경강(萬頃江) 하구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전라북도 군산, 김제, 부안에 총길이 33㎞의 방조제를 축조해 총 면적 401㎢의 토지를 조성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김제시의 사업 구역은 광활, 죽산, 만경, 청하, 성덕, 부량, 진봉 등 7개면이 포함된다. 새만금 방조제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
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서 2007년 7월 13일 김제청년회의소 주관으로 개최된 문화·예술 행사. 새만금풍류제는 새만금 개발을 기원하며 열린 문화·예술 행사로 2007년 7월 13일 “김제의 밝은 미래! 전북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김제시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김제와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한 돌파구로 김제의 미래 새만금을 제시하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
전라북도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변리의 ‘서’자와 초암리의 ‘암’자를 따서 서암동(西菴洞)이라 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읍내면[신리, 대리, 구산리, 성황리, 초암리, 서변리, 중앙리, 옥리, 도당리, 외리, 구수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수리, 서변리, 초암리, 중앙리와 입천면 내리, 대촌면 진교리를 병합하여 서암리라...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홍정리에 있는 콘크리트관 및 기타 구조용 콘크리트 제품 제조업체. 서원산업은 기술 개발과 경영 기법의 혁신을 통해 최적화된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양질의 콘크리트 제품을 생산하여 김제 지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2월 서원산업으로 설립되었으며 6월에는 자본금 1억 원으로 주식회사 서원으로 법인 전환하였다. 2005년 6월 현 위치로...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마비(馬非)는 학생(學生) 서치명(徐致明)의 아내였는데, 30세에 남편을 여읜 후 21년간 상복을 벗지 않은 채 위판(位版)[위패]을 설치하고 장막을 쳐 놓았으며, 겨울과 여름으로 의복을 만들어 영전 앞에 가져다 놓았고 조석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시 전라도관찰사였던 유관(柳灌)에 의해 절의가 조정에까지 알려져 포상이 상신되었다. 1528년(중종...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서 죽산면까지 연결되는 고속국도. 전라남도 무안군을 기점으로 전라북도 김제시를 경유하여 서울특별시 금천구까지 이어진 고속도로이다. 서해안고속국도는 총 길이 340.6㎞로, 416㎞의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긴 고속도로이다. 서해안고속국도가 김제시를 통과하는 구간은 청하면에서 죽산면까지로 김제시 인터체인지에서 국도 29호선과 만난다. 호남고...
-
진봉면 심포리 심포항(深浦港)과 망해사(望海寺)는 드넓은 서해의 풍광과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제시의 중요한 문화적·역사적 자원으로 일망무제한 김제 지평선의 일단을 장식하는 중요한 문화 관광지로 꼽힌다. 옛 문헌에서 심포라는 지명을 찾아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 지방 지도 등에는 이 지역이 하일도(下一道)로 표기되어 있다. 심포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석교마을과 신곡동을 잇는 다리. 석교는 길이 48m, 폭 10m이며, 경간 수 3, 상부 RCS형 구조, 하부 SGP형 구조, 설계 하중 DB-18이다. 2009년 현재 교통량은 7,758회이다. 석교는 김제시 신곡동과 백산면 석교리 사이에 흐르는 신평천(新坪川)에 놓은 다리이다. 이 다리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김제와 만경을 잇는 중요한 다리였기 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시대의 역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며 생활의 터전을 닦아왔다. 그러나 백제 중엽 이전의 구체적인 연혁은 아직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한시대에는 54개국 중 벽비리국에 해당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전라북도 김제시에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이 확인된 예가 없어 그때부터 이곳에 사람이...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석담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 유적. 석담리 봉의산 유적은 금강2지구 김제1-1공구 내 유적 2차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조사되었다. 유적으로는 원삼국시대의 방형 주거지를 포함하여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광묘가 발굴되었으나, 그 건립 경위 또는 매장 경위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현재 석담리 봉의산 유적이 위치한 곳에서는 금강2지구 김제1...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적극 활동하는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 작가의 창작 활동 지원을 시작으로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의 장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여, 김제 지역의 문화예술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제정되었다. 김제시에서 법무사를 운영하는 김영달이 상금 100만 원을 내놓고, (사)모악문화예술연구회가 해당 인물을 선정하여 문학 및 음악, 미술, 무용,...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 시대의 변천 과정. 선사시대는 고고학적 편년법을 적용하여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로 구분된다. 구석기시대는 약 100만 년 전부터 후빙기에 들어선 약 1만 년 전까지를 말한다. 신석기시대는 7000~8000년 전부터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인간은 농경사회에 들어서고, 석기도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 변화하며, 사냥 도구 대신 돌낫...
-
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김세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선산김씨(善山金氏)는 문성왕 8세손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일선(一善)[지금의 선산]에 이르러 모병(募兵)하였는데, 문성왕 8세손이 종군할 것을 희망하니 왕건이 크게 기뻐하여 친히 어궁(御弓)을 하사하고 ‘선궁(宣弓)’이라 사명했다. 김선궁은 그로부터 왕건을 도와...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봉두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봉수는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타 지역의 변경에 알리는 통신 수단이다. 또한 외부로부터 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외적과의 전투를 치르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금구읍지(金溝邑誌)』에 남아 있는 “남산에 불을 피웠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남산봉수’와 선암리 봉두산 봉수대와의 관계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일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설날’은 새해의 첫날, 곧 정월 초하룻날이고, ‘설’은 새해의 첫머리이다. 이런 뜻에서 설날은 한자어로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정조(正朝)’, ‘신일(愼日)’ 등이라고도 한다. 설날이 되면 새해에 맞이하는 첫날이라 하여 그 시작에 특별한 의미를 두어 평소와 다른 음식을 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 전라북도 김제시 및 김제시 외곽에는 많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역의 특성상 주로 전설적인 요소들이 강한 설화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벽골제와 관련된 설화가 많다. 특이하게 비거를 만들었다고 하는 정평구와 관련된 설화가 채취되어 회자되고 있다. 김제 지역에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이 깊은 설화들이 많이 전해지고...
-
전통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고대로부터 일정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자연적·인공적 외부 침략에 대비하며 스스로 거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축조해 왔다. 성곽이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그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전통 건조물’이라고...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회당. 김제 지역에서는 1866년에 일어난 병인교란 때 순교자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1879년에는 드게트(Deguette) 신부가 금구의 배재에서 잡혀 추방되었다가 1881년 뭬렐 신부와 함께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한때 금구에 피신했다고 전한다. 1894년 동학혁명 이후 가톨릭 선교가 용인되자 말세로구 신부가 전주 이...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성덕산 일대에 있는 백제시대 토성 터. 전라북도 김제는 해안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백제시대부터 각 국경 지대 및 각 요지에 이르는 지역과 군현의 치소(治所)에 군사적 방어를 위하여 성을 쌓았다. 대체로 산 정상을 중심으로 사면에 외곽을 두르는 테뫼식 산성을 많이 쌓았는데, 김제 성산성·사창산성(社倉山城)·만경리 만경읍성(萬頃里萬頃邑城)·성덕리 성덕...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산. 백제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과 석성이 있어 성산(城山)으로 불린다. 성산(城山)은 『한국지명총람』에는 ‘삼국통일 전쟁 때 당나라 원병이 백제와 싸우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산은 서해안에 가까이 있어 해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좋은 요새지였다고 한다. 『김제읍지(金堤邑誌)』에는 동헌을 중심으로 성산을 비롯한 교동, 옥산동,...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산. 백제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과 석성이 있어 성산(城山)으로 불린다. 성산(城山)은 『한국지명총람』에는 ‘삼국통일 전쟁 때 당나라 원병이 백제와 싸우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산은 서해안에 가까이 있어 해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좋은 요새지였다고 한다. 『김제읍지(金堤邑誌)』에는 동헌을 중심으로 성산을 비롯한 교동, 옥산동,...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근린공원. 성산공원(城山公園)은 김제 도심에 있는 성산(城山)[41m]에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김제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 및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공원이다. 공원 안의 교동 성산성지(校洞城山城址)는 누가 언제 어떻게 쌓았는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제시대에 김제의 주성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서·북쪽에 토성으로 쌓은 흔적만 남아 있다. 19...
-
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집을 수호하는 신령(神靈). 성주는 가내의 평안과 부귀를 관장하는 가옥신(家屋神) 중 가장 우두머리의 신이다. 이를 ‘성조(成造)’, ‘상량신(上樑神)’, ‘성주대감’, ‘성주신’ 등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김제에서는 집을 새로 짓거나 옮긴 후에는 반드시 성주를 모셨다. 흰 종이를 10㎝가량 되게 모나게 여러 겹을 접어 그 속에 왕돈 한 푼을 넣고 안방 쪽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대대로 세거한 성씨. 김제 지역에 대대로 세거해 온 성씨로는 김제조씨, 만경김씨, 만경노씨, 금구온씨, 금구이씨 등이 있다. 시조 조연벽(趙連壁)은 고려 고종 때 벽성군에 봉해졌다. 벽성은 김제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후손들이 김제를 본관으로 삼았다. 조필달(趙必達)은 포도대장, 양주목사, 훈련원도정 등을 역임하였다. 김제조씨의 집성촌은 김제시 교동과 죽산면...
-
최배달(崔倍達)[본명 최영의(崔永宜)]은 일본 전통 무예인 가라데를 변형한 극진가라데의 창시자로 전 세계를 돌며 쿵푸, 검도, 복싱, 카포에이라, 프로레슬링, 무에타이 등 각 분야의 실력자들과 싸워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던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격투가였다. 200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최배달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바람의 파이터」가 개봉되어 최배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이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으로 행하는 주기적인 생활 풍속을 말한다. 예부터 이를 ‘세시(歲時)’, ‘세사(歲事)’, ‘월령(月令)’, ‘시령(時令)’ 등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변화가 분명하여 계절에 따라 세시행사를 행하였다. 농...
-
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사용되는 삶의 지혜를 드러내는 짧은 문장의 격언. 속담은 민간에 전해져 오는 말로서 풍자·비판·교훈 등을 간직한 짧은 구절이다. 이를 이언(俚諺)·속언(俗諺) 등으로도 일컫는다. 서민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고전이나 고사에서 나와 세상에 유포된 것도 많다. 어조가 좋고 간결하며, 표현이 정확하다. 속담은 그 기능에 따라서 비판적·교훈적·경험적...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마을인 송정(松亭)과 송죽(松竹)의 이름으로 미루어 모두 소나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 대부분이 마을 둘레의 낮은 산지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산리(松山里)라 하였다고 여겨진다. 조선 말기 김제군 개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정리·죽순리·명당리·영동리 일부를 병...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는 영농조합. 영농조합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농민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물자의 생산·구매·판매·소비 등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협동으로 영위하는 단체이다. 송산영농조합은 영농 활동에 필요한 각종 편의 및 효율적인 영농 서비스의 제공을 통하여 조합원들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송산 위쪽에 있어 송상리(松上里)라 하였다. 송산은 푸른 소나무가 늘 울창했다고 한다. 조선 말기 만경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덕·제항·공중·송하 일부, 김제군 마천면 송방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상리라 하고 김제군 만경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만경면에...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송상리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고분군. 고분이란 성토를 한 옛 무덤을 통칭하는 것이지만, 고고학 상으로 볼 때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고대 사회의 분묘 양식을 말한다. 고분의 축조 방식은 불교의 전래 이전과 이후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분묘를 축조하면서 피장자의 곁에 껴묻거리[副葬品]를 많이 묻는 반면, 전래 이후에는 불교의 화장법이 성행...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경주김씨 가문에서 송순(松荀)으로 담그는 전통주. 약 400년 동안 김제 지역에 전해 내려온 송순주(松筍酒)는 경주김씨 가문의 밀장된 가용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김제시 요촌동에 사는 90세 고령인 배음숙(裵陰淑) 할머니의 구전(口傳)에 의해 전해 내려왔다. 배음숙 할머니는 15세에 김씨 가문에 시집와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로부터 송순주 양조법을 전수받았다고...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문명(文明), 호는 송재(松齋). 송일중(宋日中)은 1632년(인조 10)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의 두악산에서 태어났다. 8세 때에 사물의 정사를 판단하고 시문을 엮으니, 김제군수로 재임하고 있던 창강(滄江) 조속(趙涑)이 송일중의 재질을 인정하여 문하생으로 받아들여 경서를 비롯하여 당(唐)·송(宋)의 역사와 제자...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홍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송저의 묘역. 홍정리 석성현감 송저 묘역은 김제시 황산면 홍정리 신흥마을 동측 구릉에 있는 여산송씨 종중 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홍정리 석성현감 송저 묘역에는 송저(宋儲)의 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민묘도 여러 기가 자리하고 있다. 송저의 묘 남쪽 바로 아래에 여산송씨 재각이 자리하고 있어, 이...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송정기의 정려.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에 있는 낙양사(洛陽祠)는 여산송씨 소윤공파 석성공파 재실(齋室)로, 효자인 죽계(竹溪) 송정기(宋廷耆), 백재(柏齋) 송정구(宋廷耈), 송정(松亭) 송정모(宋廷模) 3형제를 모시는 사당이다. 송정기는 부모가 병으로 눕게 되자 정성껏 병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끝내 부모가 돌아가자, 3년 동안...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회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1896년 군산에서 장을 보고 오던 중 송원선과 강문성이 전위렴[W.M. Junkin]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은 후 두 사람은 당시 송지동에 거주하던 문학선의 방 하나를 빌려 송지동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최치국 등 다수의 신자들이 협력하여 교인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세례 교인 15명...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사위는 임피현감을 지낸 홍수제(洪受濟)이다. 송지렴(宋之濂)이 언제 김제 지역으로 내려왔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660년(현종 1) 3월부터 7월까지 태인현감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숙종 때 화순현감으로 재직하다 옥사를 잘못 처리하여 제주에 유배되었는데, 당시 좌참찬으로 있던 11촌 족숙(族叔)...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수동산현은 본래 백제 영토였는데,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백제 소속이었는지, 지방...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수록리 중상에 있는 정보화마을. 정보화 마을이 위치한 중상(中尙)마을이 형성된 것은 약 400여 년 전 조양임씨 임진이 정여립 사화로 삼족을 멸할 위기를 면하기 위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내려와 숨어살면서부터이다. 중상은 1914년 상돌(象乭), 하상(下象), 산치(山稚), 수록(水祿)으로 나뉘어졌다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조정 시에 상돌과 하상을 합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1890년대 호남에는 3개의 성당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천주교로 귀의시켰다. 되재본당[전라북도 완주 화산], 나바위본당[당시 익산군 망정면 화성리], 수류본당[당시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화율리]이 바로 그곳이다. 수류성당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 가장 많은 신부를 배출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류본당...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상례를 치를 때 망자에게 입히는 옷. 수의는 인간의 죽음에 있어 시신(屍身)에 새로 갈아입히는 옷, 즉 습의(襲衣)를 말한다. 과거에는 시신을 싸는 데 쓰이는 염의(殮衣)와 구분하였으나 현재는 염습(殮襲)의 모두를 수의라 통칭한다. 이러한 수의는 망자의 생존 시 사회적 지위·신분·성별 등을 가름해 주기도 한다.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수의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
-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수억과 안수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이다. 그는 고려 신종[1197~1204]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냈는데,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어 흥령현(興寧縣)[지금의 순흥]에 정착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순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안자미의 10세손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리에 있는 고려와 조선시대 순흥안씨 종중 묘역. 하서리 순흥안씨 종중 묘역은 김제시 백산면 하서리 생건마을 입구 학당서원 뒤편의 구릉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하서리 순흥안씨 종중 묘역에는 안천서(安千瑞), 안원기(安原起), 안극성(安克誠) 등 고려와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순흥안씨 20여 인의 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묘가 상·중·하로...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벽골제 제방 공사에 투입된 인부들의 수를 세던 곳. 1415년(태종 15) 벽골제(碧骨堤)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당시, 하루에 1만여 명이나 동원되는 인부들의 현황을 매일같이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자, 임시방편으로 일정한 크기의 논에 사람들을 빽빽이 세워서 곡물(穀物)을 되질하듯 인원수를 헤아려 냈다고 한다. 이를 승답(升畓) 혹은...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산. 승반산(升盤山)은 풍수지리상 쌀을 되는 되[升]를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승반산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초당골[막은댐]을 지나 모악산기맥 분기점에서 전라남도 광양시의 백운산까지 뻗어가는 호남정맥과 헤어져 북쪽으로 달리는 모악기맥이 뿌리이다. 모악기맥은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을 가르며 엄재, 국사봉, 화율봉, 장근...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재화 및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우리나라 시장의 역사는 고대 사회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장 형성은 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1399년(정조 1)에는 최초로 한양에 왕실과 각 아문의 공·사적 상품 수요를 위한 시전(市廛)을 설치하였다. 이는 난전(亂廛)과 육의전(六矣廛)의 시초가 되었으며, 시전은 한양뿐 아니라 지방의 큰...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의 모든 종류. 김제시는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어 전 지역의 식물상과 식생이 단조로운 편이지만 전주시와 완주군이 인접한 모악산도립공원이 있어 이 일대의 식물 종 다양성은 높은 편이다. 김제시의 대표 산인 모악산(母岳山)[793.5m]은 노령산맥의 한 자락을 이루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북방계 식물의 남한계지이자 남방계 식물의 북한계지로 식물상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김제 지역은 천혜의 지리적 여건과 토질 그리고 알맞은 기후로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김제는 일찍이 농업의 발상지로 여겨져 왔다. 더욱이 백제시대에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금만평야의 복판에 수리 토목을 일으켜 벽골제(碧骨堤)라는 저수지를 시축하고 우리나라 수전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이로 말미암아 주곡인 쌀...
-
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서 매년 6월 열리는 과학 체험 활동 관련 행사. 신나는 지평선과학아카데미 축제한마당은 다양한 과학 체험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학생들의 탐구력을 길러주고 과학 체험 활동의 기회를 넓혀 창의력을 개발하기 위한 행사로서, 김제 지역 초등학교 교사 42명이 발족한 김제시 과학교육연구회가 2002년부터 김제교육지원청과 함께 매년 주최하고 있다. 과학 마술, 과학...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와 신덕동을 잇는 다리. 신덕교는 길이 48m, 폭 10m, 높이 4m이고, 경간 수 3, 상부 RCS형 구조, 하부 SGP형 구조, 설계 하중 DB-18이다. 2009년 현재 교통량은 7,758회이다. 월촌동사무소에서 화호로 가는 구도로를 따라 3.2㎞ 가면 옛날 제1신덕교가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제1신덕교, 제2신덕교가 있었는데, 1989년에...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되어 구독자들에게 정보·지식을 전달하는 언론 매체. 통상적으로 신문은 신문사라는 전문 조직이 뉴스나 정보 등을 취재하여 일간 또는 주간으로 발행·보도하는 일반지를 말하며 매스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일종이다. 그러나 신문은 불특정한 다수의 독자를 상대로 시사 뉴스와 의견 등을 전달하는 일반지 외에도 기사의 내용과 그 신문이 대상으로 삼는 독자 또는...
-
전라북도 김제시 신월동에 있는 동복오씨 종중 묘역의 문인석. 문인석(文人石)은 봉분 곁을 지키는 문관 모습의 석상을 말하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올려 홀을 들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3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사람의 무덤 앞에만 설치할 수 있다. 신월동 신월마을 문인석은 전라북도 김제시 신월동 신월마을 내 동복오씨 종중 묘역에 있으며, 인근에 경모재라는 재각이 있다. 신월동...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리의 ‘신’자와 서정리의 ‘정’자를 따서 신정리(新井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모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정리라 하고 김제군 용지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용지면 신정리가 되었다. 낮은 구릉조차 거의 없는 평야 지대이다. 다만 군데군데 있는 소나...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흥 종교란 기존의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 외에 1900년대를 전후하여 새로 탄생된 종교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제 지역에서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1860년 경주의 유생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시된 천도교를 비롯하여 강증산(姜甑山)[1871~1909]의 증산교, 박중빈(朴重彬)[1891~1943]의 원불교와...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신천강씨 동성마을.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에 따르면 신천강씨 득성조(得姓祖)는 중국 주나라 왕족인 강숙(康叔), 시조는 강호경(康虎景), 중시조는 충렬공(忠烈公) 강지연(康之淵)으로, 강씨는 모두 강지연의 후손이다. 중시조 강지연은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략을 피해 최씨 무신정권이 강화도로 천도할 때 국왕을 호종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에 있는 식품 제조업체. 신포우리식품은 순수 국내 식재료만을 엄선하고 매실이나 석류를 첨가하여 방부제 없이도 변질을 막고 맛과 영향을 풍부하게 함유한 다양한 식자재와 음식을 공급하여 김제 지역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역 경제 및 국민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1년 2월 창업자 박기남은 인천시 신포동에서 ‘우리집’이라는 상호로...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용동·난봉동·황산동·오정동·월성동·도장동·서정동·양전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1912년 개통된 김제역 부근의 신흥 지역이라는 뜻에서 신풍(新豊)이라 하였다. 원래 김제군 입천면[용진, 내호, 외호, 소검, 대덕, 진관, 사진, 용호, 대검, 대리, 용곳, 선정, 포내, 순동, 예동, 내리]에 속하였다가 1914년 용진·내호·사진·소검·용호를 병합하여...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전라북도 김제 시내에 있는 요촌성당 한 곳으로는 지역의 많은 신도들을 포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1983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여 신풍성당을 설립하게 되었다. 1981년 김제본당의 제19대 주임신부 오현택[가시미로]이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138번지를 제2성당 부지로 매입하였다. 1983년 1월 김제시 신...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서 생산되는 장고. 신풍장고는 무형문화재 강신하(姜信夏)가 제작하는 장고이다. 전라북도 김제 지역은 우도농악 가락과 함께 농악기 제작의 명인들이 많이 활약해 왔으며, 그중 강신하와 같은 전통 기법의 명장 솜씨는 깊고 웅혼하면서도 독특한 김제 장고의 자부심을 지켜 내고 있다. 강신하는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출생으로 17세에 김제시 신풍동으로 이사하여 20세에...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월리의 ‘신’자와 유흥리의 ‘흥’자를 따서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홍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흥리·마삼리 일부, 반산면 신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흥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죽산면 신흥리가 되었다. 원평천(院坪...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들. 심포마을은 진봉산 남쪽의 마을로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이란 의미로 ‘깊은개’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깊은 포구라는 뜻의 심포(深浦)로 고쳤으며, 심포들은 이 심포에서 유래하였다.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의 주요 들녘에는 심포와 안하(雁下) 사이의 간석지를 막아서 만든 상무간척지가 있다. 진봉산과 안행산...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들. 심포마을은 진봉산 남쪽의 마을로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이란 의미로 ‘깊은개’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깊은 포구라는 뜻의 심포(深浦)로 고쳤으며, 심포들은 이 심포에서 유래하였다.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의 주요 들녘에는 심포와 안하(雁下) 사이의 간석지를 막아서 만든 상무간척지가 있다. 진봉산과 안행산...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봉화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터.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길곶 봉수대는 황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세워져 있어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로 들어오는 적선을 곧바로 탐지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4 만경봉수조에 “길곶 봉수는 현 서쪽 29리에 있다. 남...
-
코스모스가 길을 따라 길게 양편으로 늘어서서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길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광활한 김제만경 평야는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풍성한 현재의 풍경은 그냥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선조들의 피땀으로 얼룩진 부산물이다. 억압과 착취에 항거한 농민운동인 동학농민운동명은 이 지역 일대를 근거지로 시작되었...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쌀을 저장하는 뒤주 형태의 독. 벼나 쌀을 저장하는 시설 및 용구는 저장법과 규모에 따라 여러모로 달랐다. 논에 임시로 볏단을 쌓아 놓는 노적가리에서부터 공공의 곡창(穀倉)에 이르기까지 여러 저장 시설이 있었다. 비교적 소규모인 목조 소창(小倉)은 판벽(板壁)을 쌓아 올린 곳간으로 땅에서 한 자가량 높여 마루를 깐 뒤 만들었다. 토벽(土壁)으로 된 곳간이 있...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죽이나 밀가루 풀, 미음, 메주, 묵, 팥죽을 만들 때 하는 조리법. 쑤기는 김제 지역에서 세시 풍속으로 메주 쑤기나 팥죽 쑤기를 할 때 행해졌다. 『농가월령가』에 11월령에는 메주 쑤기, 동지에는 팥죽 쑤기 등을 한다는 기록이 있다. 쑤기는 가루를 물에 푼 다음 불에 올려 가루가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은근히 끓이거나 죽처럼 쌀이 완전히 퍼질 때까지 물을 부으...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문학 박물관. 소설 『아리랑』은 조정래의 근현대사 3부작 중 도입부에 해당한다. 일제강점기 40여 년의 세월과 전라북도 김제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흩어진 이산(離散)의 과정 및 민족의 고난과 투쟁을 그리고 있다. 누적 판매 부수 330만 부를 기록한 소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 중 일반 독자에게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대표적...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통 악기를 제작해 오고 있는 전라북도 지정 장인. 악기(樂器)는 음악을 연주하는 데 쓰이는 기구의 통칭이다. 전통음악에 상용되는 국악기는 삼국시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전해 오는 고유한 악기와 서역 및 기타 지방에서 수입해온 외래 악기를 포함하여 약 60여 종이 전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계 및 서역계의 음악이 들어왔고, 특...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안대규(安大規)[1642~1711]는 본관이 순흥(順興)으로 지금의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도리실마을에서 태어났다. 함경북도 명천부사로 재임하면서 백성을 편히 다스렸다. 숙종이 안대규를 아껴 내직으로 불러들였는데,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놓아 주지 않아 상경하지 못하였다. 기다리던 조정에서 관원을 파견하여 원인을 조사하였는데, 조사자는 관민이 일치하여 태...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훈(大勳). 아버지는 안경신(安敬信)이다. 안위(安衛)[1563~1644]는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무고되어 용천에 유배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함락되자 배소를 이탈한 뒤 평양에 도착해 어느 병사의 막하에 배속되었다. 1592년 영유무과(永...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예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안지의 묘. 안지(安止)[1387~1445]는 1414년(태종 14)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참판과 공조참판, 공조판서를 역임하고 문형(文衡)을 관장하였으며, 영중추부사를 지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예촌리 안지공 묘는 김제시 용지면 예촌리 한절미마을에 있다. 좌우로 문인석 2개가 세워져 있는데, 세월의 풍화 작용...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금산의 웅치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진안을 거쳐 전주로...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에 있었던 금광. 오봉리는 금구면의 동쪽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양리, 지봉리, 목련의 일부를 합하여 오양과 지봉의 이름을 따 오봉리가 되었다. 한편으론 양석, 오산, 지장, 봉림, 목련 등 다섯 개 마을이 있어 오봉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양석마을은 오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에 선돌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어서 양석(兩石...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김제지회. (사)어린이도서연구회는 1980년 5월 창립하여 ‘겨레의 희망,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이라는 기치로 활동해 오고 있는 단체로 서울양서협동조합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모든 회원은 어린이 책을 읽고 바람직한 어린이 책 문화 환경을 가꾸는 활동을 하며,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하는 비영리 시민 단체이다. 서울양서협동조합은 책을...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신문이나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일반적으로 언론은 담화·토론·연설·연극·방송·음악·영화 등 구두(口頭)를 통한 사상 발표를 말하며, 출판은 문서·서적·도화·사진·신문·잡지·조각 등 문자 및 상형(象形)에 의한 사상 발표를 의미한다. 그러나 두 용어 모두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이나 사상을 외부에 발표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
-
김선을 시조로 하고, 김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 김선(金鐥)이다. 김선이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언양(彦陽)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언양은 본래 신라의 거지화현(居知火縣)인데, 고려 현종 때 언양으로 이름으로 바뀌어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김선의 19세손인 김지(金輊)는 할아버지인 김관(...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에 있는 골프장. 에스페란사골프장은 2006년 10월 23일 사업 승인을 받아 같은 해 11월 17일부터 2009년 4월 30일까지 공사를 진행하여 개장하였다. 10홀 규모의 대중 골프장으로, 클럽하우스, 관리동, 티하우스, 스타트 하우스를 갖추고 있다. 에스페란사골프장은 2009년 4월 30일부터 2011년까지 추가 조성 공사를 진행 중이다. 호남고속...
-
전라북도 김제시 순동에 있는 전자부품 제조업체. 엘리코는 고품위 Mn-Zn Ferrite 생산에 적합한 제조 라인을 구축하여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수출을 증대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국민 경제 및 김제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11월 11일 임영춘이 자본금 1억 5000만 원으로 엘리코를 설립하였다. 2001년 4월 페라...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주위에 여뀌[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 잎이나 줄기에 털이 없으며, 매운맛으로 향신료나 약재로 쓰임]가 무성하고 마을 앞에 냇물을 건너는 다리가 있어 여뀌 ‘요(蓼)’, 다리 ‘교(橋)’자를 써서 요교(蓼橋)라고 부르던 것을 우리말로 풀어 ‘여꾸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형은 물이 동쪽에서 서쪽,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윤과 송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송씨(宋氏)의 원시조는 중국 춘추시대의 왕세손 3자인 송주은(宋柱恩)이다.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송주은의 11세손이라고 전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시조의 4세손 송송례(宋松禮)가 상장군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하사받았는데, 여량(礪良)은 여산(礪山...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에 있는 여산송씨 동성마을. 여산송씨(礪山宋氏)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進士)로서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지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이로부터 여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송유익의 선계(先系)는 중국 경조(京兆) 출신으로 당나라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한 송주은(宋柱殷)의 후손 송자...
-
전라북도 김제시 용동에 있는 자연마을. 옛날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던 포구였는데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포구의 모양이 여우의 생김새와 같아서 여시개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여수해(麗水海)가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또 마을 뒤를 감싸고 있는 산의 형국이 마치 여우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입천(立川)·선내라고도 한다. 고려 예종 말에 나석(羅碩)이 터를 잡고 살기...
-
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진윤반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여양진씨(驪陽陳氏)는 고려 예종[1106~1122] 때 상장군을 지낸 진총후(陳寵厚)를 시조로 한다. 여양[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을 식읍으로 하사받음으로써 후손들이 여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여양진씨의 김제 입향조는 진윤반(陳胤潘)으로, 진윤반의 아버지 진우(陳宇)가 성균관장의로 있을 때 김안로(金安老...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김제시의 변천 과정.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과, 남쪽으로는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 및 부안군과, 북쪽으로는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인접하며,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하고 있다. 김제의 자연환경을 보면 동부에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높이 500~700m의 산지가...
-
조선시대 김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이나 칭송을 받은 여자. 조선 왕조에서 충·효·열은 유교 정치의 실현을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실천궁행(實踐躬行)이었다. 그 중 열은 시집온 여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한번 남편과 인연을 맺으면 일부종사해야 된다는 유교의 기본 이념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병간호부터 집안 살림까지 모든...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일대에 있는 광산. 모악산을 이루고 있는 엽리상 화강암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금구면 선암리 등지에 석금(石金)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다. 현재 채굴하고 있는 금광은 모두 사금광으로, 엽리상 화강암의 풍화물이 하천에 의해 이동·퇴적하면서 집적된 충적층 하부와 기반암 또는 플라이스토세 접촉부에 사금이 포함되어 있다. 모악산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우도(友道), 호는 돈암(遯庵). 판서(判書) 오점(吳漸)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오사언(吳士彦)이다. 손자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오천구(吳天久)가 있다. 오선겸(吳善謙)은 참봉(參奉)을 지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종숙(從叔)인 참봉 오사영(吳士英), 교관(敎官) 오수...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되는 쌀. 우리나라의 갯벌 대부분은 하구 갯벌이다. 여러 가지 영양분이 강을 타고 갯벌에 쌓이며, 이 영양이 가득한 갯벌에 땅을 만들어서 벼를 심어 키운 간척지 쌀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김제 오씨피오 쌀은 물 좋고 공해 없는 서해안 청정 간척지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되는 쌀이다. 질 좋은 벼를 엄선하여 최신 설...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오영순 가옥은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 죽절마을에 있는 초가집으로 왕개산 아래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당시에는 3칸 정도였으나 20세기 초에 와서 정지[부엌] 아래쪽을 증축·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오영순 가옥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체적인 구조는 안채·헛간채·문간채로...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대옥산리의 ‘옥’자와 신성리의 ‘성’자를 따서 옥성리(玉盛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반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성리·대옥산리·소옥산리·내재리·제내리·신흥리 일부, 대촌면 신학리·산리·경제리 일부, 월산면 후장화리 일부, 홍산면 신동리·명마리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에 있는 전통 옹기 제조업체.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 그릇이다. 예로부터 된장, 간장, 김치, 젓갈과 같은 발효 음식을 저장하는 용기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숨 쉬는 그릇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옹기의 기본 재료가 되는 태토(胎土)는 자기들보다는 수비(水飛)를 덜 한다. 따라서 작은 모래 알갱이나 돌덩이도 남...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마치 누워 있는 용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와룡망해(臥龍望海) 형국이어서 와룡리(臥龍里)라 하였다. 한편, 용 두 마리가 싸움을 벌이다 한 마리가 지쳐 쓰러져 죽어서 산을 이루었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마을 이름을 와룡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말기 김제군 모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홍산리에 속한 내촌[당시에는 내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외리(外里)라 하였다. 약 300년 전 장씨와 임씨 등이 처음으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임씨들이 주축이 되어 저수지를 쌓으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저수지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리는 홍산[24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낮은 구릉지에...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지리의 ‘용’자와 신복리의 ‘신’자를 따서 용신리(龍新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초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지리·용문리·신복리·장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신리라 하여 김제군 초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초처면이 봉남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봉남면 용신리가 되었다....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용암서원(龍巖書院)은 조간(趙簡)을 주벽으로 하여 이계맹(李繼孟)[1458~1523]·나안세(羅安世)[1475~1527]·윤추(尹推)[1632~1707]·이세필(李世弼)[1642~1718]·나응삼(羅應參)[1505~1568]·조윤침(趙潤琛) 등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조간의 호는 열헌(悅軒), 본관은 김제(金堤)이다. 1279년(충...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서 생산되는 고구마.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은 지표면의 10%가 황토로 덮여 있는 황토의 고장이다. 황토 1스푼에는 약 2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다양한 효소들이 순환 작용을 일으켜 황토에서 자라나는 농산물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용지면은 우수 농산물의 필수 조건인 물 빠짐이 용이한 5~10%의 경사진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마는...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여러 마을들의 이름에 ‘용(龍)’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연못[池]이 많으므로 용지면(龍池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개토면(介吐面) 지역으로 명당(明堂)·신평(新坪)·중평(中坪)·구평(舊坪)·송정(松亭)·죽순(竹筍)·영동(永洞)·사산(四山)·신사(新寺)·마교(馬橋)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수리 시설인 벽골제(碧骨堤)는 노령산맥(蘆嶺山脈)의 중봉인 모악산(母岳山)·구성산(九城山)·상두산(象頭山) 등에서 발원한 풍부한 물이 흘러 이루어진 원평천(院坪川)·두월천(斗月川)·감곡천(甘谷川)·금구천(金溝川)·신복천·오주천의 물을 모았다가, 금만평야를 비롯하여 정읍과 부안군 일부 지역 농지에 농업용수로 공급하였다. 오늘날의 김제...
-
황민보를 시조로 하고, 황응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우주황씨(紆州黃氏)의 시조는 고려시대 중윤공(中尹公)으로 추봉되었던 황민보(黃旻甫)이다. 시조의 10세손 문숙공(文肅公) 황거중(黃居中)은 태조를 도와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어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우주(紆州)를 본관으로 정한 것은 황거중이 우주에 낙향, 그곳에 세거하였기 때문인데 우주는 전주(全州)...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우주황씨 동성마을. 우주(紆州)는 전라북도 전주시(全州市) 북쪽에 있던 지명으로 백제시대에 우소저현(于召渚縣)이었다. 757년(경덕왕 16) 우주[또는 오주(汚州)]로 개칭하여 금마군(金馬郡)[지금의 익산] 속현이 되었고, 고려시대에 전주에 속하였다. 우주황씨(紆州黃氏)의 시조 황민보(黃旻甫)는 우주에 토착한 사족의 후손으로 중윤(中尹)에 추증...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주장...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용신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주장...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원불교 요양원.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원불교 요양원.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주장...
-
1919년 3월 20일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이 조선에서 무단 통치를 실시하여, 조선인은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다양한 경로로 나타났다. 한편 국외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도정공장. 오오쓰미[大隅] 도정공장 또는 부용 도정공장이라고 부르는 월봉 도정공장은 일본이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할 때 지어진 건물이다. 일제시대 김제 만경평야는 쌀과 돈이 넘쳐흘러 조선 식민지 침탈에 나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기에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김제 지역에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근처에 항구를...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조선시대 방축지. 월승리 제주 방축지는 1415년(태종 15) 9월에 벽골제 대보수 공사 시 제주도 장정들만 일하던 곳이라는 설과, 교통이 불편했을 때라 제주도 주민들이 고생 끝에 김제에 도착했으나 이미 보수 공사가 끝나 허탈하여 방죽을 파놓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초승마을 뒤에 있는 명금산 아래의 논 일대에 위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보급된 종교로서 유학의 연원과 전개 현황. 호남은 지역적으로 영남유학과 대별되는 기호유학에 포함되어 있다. 호남 향촌사회의 유학자들은 도학사상을 기반으로 학술활동 및 치민활동을 하면서도 의리와 실천을 그 근본정신으로 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김제 지역 유교의 전래는 김제향교와 금구향교, 만경향교를 중심으로 용암서원을 비롯한 30여 개의 서원·재·강당에...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박씨는 남편 유구연(柳九淵)이 죽자 3년 동안 여묘(廬墓)를 했다. 여묘를 마친 뒤에는 남편의 얼굴을 그려 벽에 걸어 두고 사철 의복을 지어 시렁에 달아 두면서 아침저녁 제사 지내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박씨의 절의를 높이 평가하여 나라에서 세역을 감면해 주었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재(用齋),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별좌(別坐) 유태형(柳泰亨)이고, 자의(諮議) 유집(柳楫)의 동생이다. 유도(柳棹)[1592~?]는 큰형인 유집을 따라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시남(市南) 유계(兪棨),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등과 더불어 교우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유집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세시풍속. 유두(流頭)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음력 6월 15일, 즉 6월 보름은 유두라는 유월명절이다. 이를 ‘유두날’, ‘유두일’이라고도 한다. 이날이 되면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으며 하루를 즐긴다. 이렇게 하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유두란 ‘동류수두목...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유하(柳下). 아들로 동곡 유근상[1909~?]이 있다. 유근상은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받아 문인화에 두루 능하였으며, 특히 묵죽이 간결하였고 화풍이 맑았다.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 KBS 송신소가 있는 선영 아래 자리하고 있다. 묘비가 없어 후손이나 친지와 함께 가지 않으면 찾기가 쉽지 않다. 유영완(柳永完)[189...
-
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호는 죽헌(竹軒)이고, 이명은 종규(種奎)이다. 1859년 10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유종규(柳鐘奎)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서서히 강탈당하자 1906년 4월 전라도 태인에 있는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의병을 모집할 때 참여하여 임병찬(林炳瓚)·최재...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여(用汝), 호는 백석(白石). 아버지는 형조좌랑 유태형(柳泰亨)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승지에 증직된 유정(惟精)의 딸이다. 동생으로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유도(柳棹)가 있다. 유집(柳楫)은 최명룡(崔命龍)·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6년(광해군 8)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유아 교육 담당 기관. 전라북도 김제 지역은 6·25전쟁의 역사적 시련을 거치고 난 후, 천주교와 개신교가 앞장서서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김제 지역 최초의 유치원은 사립 김제성모유치원으로 1956년 천주교단에서 지원하여 김제시 요촌동에서 설립했으며 1976년 개신교가 개원한 김제중앙유치원과 더불어 김제 지역 어린이 교육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후 1981년을...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응운(應運), 호는 수곡(樹谷). 문화군(文化君) 유진(柳鎭)의 8세손이다. 부인은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승지에 증직된 유정(惟精)의 딸이다. 아들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유집(柳楫)[1585~1651]과 유도(柳棹)[1592~?]가 있다. 유태형(柳泰亨)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사마시(司馬...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달력의 계절과 실제 계절과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1년 중의 달수가 어느 해보다 많은 달. 윤달은 태음력에서 계절의 추이를 맞추기 위하여 평년의 12개월에다가 한 달 더 보탠 달을 말한다. 윤달은 일정치 않아 3년에 한 차례, 또는 5년에 두 차례로 그 주기가 조금씩 달라지며, 일정한 달에 윤달이 들지 않는다. 태양력처럼 하루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 1636년(인조 14) 4월 후금의 태종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이 왕자와 대신 그리고 척화론(斥和論)을 주장하는 자를 인질로 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당시 척화의 분위기가 고조된 조선 조정이 이를 거부하자 태종이 재차 침입을 감행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조선 조정은 12월 13일 도...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정치가. 윤제술(尹濟述)의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운재(芸齋)이다. 1904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앙청에서 태어났다. ‘일이관지(一以貫之)’와 ‘유성(惟誠)’ 등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처럼 6선의 오랜 의정활동에서도 문교위원으로만 일관했고, 철저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몰두해 온 지조로 일생을 바쳤다. 윤제술은 7세 무렵 동네 서당에서...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립(仲立), 호는 청곡(靑谷). 아버지는 영흥군(鈴興君) 윤지효(尹之孝)이다. 아들로 병자호란 때 쌍령치에서 전사한 윤여임(尹汝任)[1590~1637]이 있다. 윤찬(尹瓚)은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문장에 능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야인으로서 용맹스럽게 선조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정월 초하루에 편을 나누어 윷을 던져 승부를 겨루는 놀이.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그것이 나타내는 형상을 통해 일정한 행로를 통과하도록 말[馬]을 놓아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윷놀이는 음력 정월 초에 가족과 친척 그리고 정든 이웃이 모이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두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편을 짜서 즐기는 놀이이다. 멍석이나 가마니에 윷판을 만들고,...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목소리나 악기를 소재로 박자·선율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하여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시간 예술. 음악을 국악(國樂)과 양악(洋樂)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은 우리 국악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들 양악을 음악이라 부르고, 우리의 전통 민속 음악을 국악이라고 부르지만 국악 역시 우리 음악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서양 음악은 신문화 발흥 이후 기독교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의례를 치를 때 준비하는 음식. 의례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생을 마칠 때까지 지나는 출생의례, 통과의례, 평생의례 등이 있다. 이들 의례에는 각기 규범화된 의식(儀式)이 있고, 그 의식에는 음식이 따르게 마련이다. 각 의례음식에는 대개 의례의 의미를 상징하는 특별한 양식(樣式)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시행하는 통과의례는 출생, 삼칠일(三七日)...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개항기 의병 항쟁.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한말 의병항쟁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이 계기가 되어 발생한 것으로, 활동 시기에 따라 을미의병·병오의병·정미의병 등으로 구분된다. 을미의병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그리고 복제(服制)의 변경 조치로 발생하였고, 병오의병은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19...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의생활은 주로 지리·기후·지형과 같은 일정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나 경제·사회·문화와 같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환경의 차이에 따라 각 지역의 의생활은 조금씩 달리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평상복보다는 의례복과 관련된 의생활에서 조금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즉 관례복·혼...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실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증(伯曾), 호는 해학(海鶴)·질재(質齋)·재곡(梓谷)·효산자(曉山子)이다. 이기(李綺)라고도 쓴다. 이기(李沂)[1848~1909]는 30대 중반부터 생활 근거지를 구하여 김제·대구·순창 등지를 전전하다, 44세에 황현(黃炫)의 주선으로 구례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학문과 세무에 뜻을 두었다. 1...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동질금(同叱今)은 남편인 향리(鄕吏) 이당(李堂)이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동안 상복을 벗지 않고, 안방에 흰 장막을 설치하여 신주를 그 안에 모셔 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다. 1512년(중종 7) 정려의 명이 내려져 정문(旌門)이 세워졌으며, 1517년(중종 12)에는 전라도관찰사 남곤이 장계를 올려서 세(稅)를 감면받았다....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휴(景休), 호는 저당(樗堂). 할아버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부인은 남상덕(南尙德)의 딸이다. 아들은 이정신(李廷臣)이다. 이몽상(李夢祥)은 음사로 관직에 나아가 인의(引儀)와 감찰(監察) 등을 지냈다. 임실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사(壯士)를...
-
757년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고쳤는데, 그때 내리아현(乃利阿縣)은 이성현(利城縣)으로 개칭되어 김제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이성현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김제시 공덕면...
-
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어머니를 둔 집권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의종 말기에 산원(散員)으로 견룡행수(牽龍行首)를 지냈다. 1170년(의종 24) 보현원(普賢院)에서 대장군 정중부(鄭仲夫)·이고(李高) 등과 무인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뒤 응양용호군(鷹揚龍虎軍)의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이의방은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하여 전주의 영현으로 있던 금구(金溝)를 현(縣)으로 승격...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公輔). 증조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할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아버지는 이몽상(李夢祥), 어머니는 남상덕(南尙德)의 딸이다. 아들은 이응명(李應蓂)·이응협(李應浹)·이응시(李應蓍)이다. 이정신(李廷臣)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8년(선조 21) 식년문과에...
-
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이천서씨(利川徐氏)는 신라 효공왕 때에 아간(阿干)을 지낸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한다. 서신일이 이천(利川) 효양산록에 복성당(卜聖堂)을 짓고 살면서 가칭 처사라 부르며 후진 양성에 힘썼는데, 이로 인해 후손들이 이천을 본관으로 삼고 있다. 이천서씨의 김제 입향조는 서관(徐寬)이다. 조선 세종 때에 문과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이괄(李适)은 인조반정에 대한 녹훈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하여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세무 행정 기관. 익산세무서 김제지서는 전라북도 김제시의 세금 부과·징수 및 상담 등 세무 행정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4년 김제와 부안을 관할하는 직할 단위 세무서로 출발하였다. 1962년 1월에는 김제세무서가 이리세무서로 통합되었으나 1965년 7월 다시 김제세무서 부활로 김제군으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1999년 9월 세원...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정된 문학상. 인당청소년문학상은 2008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인당은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김제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진호 대표의 호로, 그는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재능 있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북돋아주고, 문학적 재능을 키워주며, 지역 문화 진흥에 기여하기 위해 상금과 경비를 기탁하여 이 상을 만들었다. 인당청소년문...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
일제강점기 김제 지역이 전라도 평야 지대에서 생산되는 쌀을 모아 호남선을 통해 군산으로 보내는 배후지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김제는 그런 역할을 떠맡아야 했을까?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자본의 급속한 축적으로 농민의 대량 이동과 도시 노동자의 급증이란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식량 수급(需給)[수요와 공급을 아...
-
1910년 한일병합으로부터 1945년 8·15 해방에 이르는 기간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한일병합은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倂呑)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
-
일제강점기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 교육은 사립학교, 간이학교, 야학, 서당 등 4가지 유형이 있었다. 그 중 정기적이고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1934년에 설립된 사립학교로 3년제였다. 사립학교는 해방 후 광활초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맨 처음 교사로 초빙된 분은 고문선 씨였고, 주로 가르친 과목은 한국어, 일본어, 한문, 산수 등이었다. 고문선 씨는 사립학교를 다닐 수...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한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나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임진왜란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1592년 4월 14일 일본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이와 맞서 부산진의 첨사 정발(鄭撥)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초기에는 왜군의 일방적인 북상이 계속되었다. 풍부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대규모 왜군은 당일에 부산성을 점령하고, 계속 북상하여 같은 해 5월 2일에 한양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침공한 지 20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
-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 있는 자연마을. 입석(立石)은 마을에 선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교동월촌동의 법정동인 입석동의 중심 마을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김제 시가지에서 남쪽 부량면 방향으로 약 1.5㎞ 지점이다. 입석마을은 진가·제남·남산·용현·신촌·용두 등의 마을과 더불어 입석동에 있는 자연마을로 입석동의 중심 마을이다. 문화재로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7호인 월촌입석(月...
-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서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입석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 사람들이 재앙을 막고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입석[선돌]은 길쭉한 자연석이나 커다란 돌을 일부만 다듬어 똑바로 세운 기념물 또는 신앙 대상물을 지칭한다. 입석동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이 입석은 마을의 당산으로...
-
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
이민자들에게 자녀는 미래다. 그래서 바다일도 나가고, 땅도 팔아서 자녀들을 교육시킨다. 가깝게는 김제로, 익산으로, 전주로 학교를 보내고, 멀리는 서울까지 유학을 보낸다. 1960년대에 광활면 주민 중 대학생이 192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광활이 지금은 광활하면 김제 가서도 부자 동네라고 그러는데,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 때 여기 대학생만 192명이나 있었어요. 그니까 왜 그런...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태풍, 가뭄, 홍수, 지진, 해일 등의 자연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 재해. 호남평야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은 동쪽은 모악산을 중심으로 한 해발 고도 500~700m의 산지로 둘러싸이고, 남북으로는 동진강과 만경강, 서쪽으로는 황해와 접하고 있다. 만경강, 동진강, 원평천, 신평천 등의 하천이 황해로 유입되고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지와 광활한 평...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김제 지역은 동부의 산지와 남북의 동진강(東陳江)·만경강(萬頃江), 서쪽의 진봉반도(進鳳半島)에 둘러싸여 있고, 만경강·동진강·원평천(院坪川)·신평천(新坪川) 등이 황해로 흘러든다. 동남부는 모악산(母岳山)을 중심으로 국사봉(國師峰), 상두산(象頭山), 구성산(九城山), 매봉산(梅峰山) 등 엽리상화강암으로 구성된 비교적...
-
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
전라북도 김제시의 산업 중 고치를 생산하기 위해 뽕을 길러 누에를 치는 업종. 잠업(蠶業)은 오랜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산업으로서 발전해 왔다. 특히 1960년대에는 국가 경제의 밑거름이 될 정도였으며 당시 김제 지역은 우리나라 최고의 잠업 단지였다. 그러나 잠업은 1990년을 기점으로 국제 경쟁력을 상실함과 더불어 사양 산업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1996년 이후로는 양잠...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몸을 치장하기 위해 쓰던 물건. 장신구는 신체 일부에 끼거나 걸치는 장식품과 의복의 장식을 위해 사용되는 소품이다. 장신구는 몸치장 뿐 아니라 벽사적(僻事的)·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주로 착용하였다. 김제 지역에서 사용했던 장신구의 종류에는 반지·화관(花冠)·댕기·비녀·목걸이·노리개 등이 있다. 반지는 어느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
전라북도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 장화동(長華洞)은 1450년경 당시 성균관 진사였던 돈화 정임(鄭任)이 벼슬을 그만두고 화산(花山)으로 내려와 살면서 마을 이름을 장화(長華)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장화(障化) 또는 꽃잔[華殘]이라고도 하였다. 마을 서쪽에 있는 화초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원래 김제군 월산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월산면과 대촌면이 통합되어 월촌면이 될 때...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산하 김제 지역 지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987년 9월 27일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로 출범하였다. 전국교사협의회는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이로 인해 가입 교사들이 징계를 받는 등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1993년 8월 국제교원노동조합총연맹에 가입하였으며, 이후...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소상공인 지원 기관. 전라북도 소상공인지원센터 김제사무소는 김제시를 기반으로 서비스업, 도소매업, 음식업[종사자 5인 미만], 제조 및 운송업[종사자 10인 미만]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전라북도 소상공인지원센터 김제사무소는 김제 지역의 소상공인들에게 창업과 운영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원을 통...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교육 행정 기관. 전라북도김제교육지원청은 김제시의 교육·과학·기술·체육·기타 학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각 학교의 교육 현장을 관리·지도·감독하며, 교육 환경 개선 및 발전을 통하여 학생들의 교육 복지와 학습권 구현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2년 4월 24일 교육자치제 실시법령 공포로 초대 교육위원이 선출·구성되었다. 같은...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열녀. 이씨는 남편 전시효(田時孝)가 도적에게 피살되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마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계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전의이씨(全義李氏)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합할 때의 공으로 삼한개국공신으로 책봉되고 삼중대광태사의 벼슬에 올랐던 이도(李棹)를 시조로 하고 있다. 이도가 전의(全義)[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에 살았고, 개국공신으로 전산후(全山候)에 봉작되어 전의현(全義縣)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받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전의(全義)를...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영상리에 있는 목재 제재 및 가공업체. 전일목재산업은 ‘고객만족, 직원보람, 기업발전’이라는 사훈을 걸고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고객서비스 경영마인드로 좋은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킴은 물론 국가 경제와 김제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8년 2월 현 김병진 대표이사의 부친인 김홍식이 전일제재소...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김제 지역 관할 사법기관. 전주지방법원 김제시법원은 재판 업무를 통하여 공공의 안녕 질서와 국민의 재산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전주지방법원 김제시법원의 시원은 1914년 5월 1일 제령 제20호에 의거 1916년 11월 25일에 설치된 광주지방법원 김제출장소이다. 김제출장소는 1922년 6월 26일 총령 제95호에 의거 같은 해 11월...
-
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최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전주최씨는 고려 전기인 1090년(성종 7) 삼중대광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중시조 최양(崔瀁)은 조선의 건국을 반대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고려 후기의 충신이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전라북도 전주시 대승동 봉강리에 은거하였다....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주최씨 종중 묘역. 황산리 전주최씨 종중 묘역은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 산 구릉에 있다. 묘역 바로 아래에 재각이 있으며, 옆에는 황산리 문화유씨 종중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황산리 전주최씨 종중 묘역에는 10여 기 정도의 묘가 있는데, 그 가운데 3기의 묘 앞에 문인석이 각 한 쌍씩 세워져 있다. 문인석이 서 있는 무덤 중 2기는 나...
-
양순애[호적명 양복자, 1938년생] 할머니는 마을에서 정거장댁으로 불린다. 중멀댁, 진흥댁, 광활댁 등 마을 할머니들 대부분이 지명을 딴 택호(宅號)로 불리고 있는데 정거장댁이라니? 양순애 할머니 집을 물으면 못 찾다가도 “정거장댁 할머니요.” 하면 다 알아듣는 주민들을 보면서 왜 그런 택호가 붙여졌는지 궁금해졌다. 택호는 여자들이 결혼 후 갖게 되는 또 다른 이름으로...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정구례 고가는 한때 구례군수를 지냈던 정준섭이 살았기 때문에 ‘정구례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기와로 되어 있는데 본래는 모든 건물에 초가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이것은 풍수지리설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정구례 고가를 지은 사람의 꿈에 이 자리가 돼지 터였다고 하여 마치 돼지우리처럼 초가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정구례 고가는...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김제문화원 주관으로 개최되는 정월 대보름맞이 행사. 김제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정월 대보름행사로 한 해 동안 지역의 안녕과 화합을 다지고 풍년 농사를 기원하기 위하여 김제 지역 일원에서 펼쳐진다.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인 정월대보름을 맞아 지역 주민이 만들어 가는 행사가 사랑과 상생의 불꽃으로 활활 타올라 한 해의 모든 액운을 다 태워 버리고 희망과 행복을 안겨 주...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정읍시 상공회의소 산하 김제 지회. 상공회의소는 「상공회의소법」에 의해 시, 군 등의 행정구역을 단위로 조직된 상공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역 종합 경제단체이며 당해 구역 내에서 영업소, 공장, 사업장을 두고 상공업을 영위하는 개인 또는 법인은 원칙적으로 모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전국 각 지역 상공회의소를 정회원으로 하고 특정...
-
고려 후기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 할아버지는 정지형(鄭之衡)이고, 아버지는 정승보(鄭承甫)이다. 부인은 김제조씨 대호군 조기(趙岐)의 따님이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대호군(大護軍)이 되고, 1356년(공민왕 5) 강릉교주도도지휘사(江陵交州道都指揮使)를 지냈다. 후에 김제로 낙향하여 벽골(碧骨) 호숫가에서 말년을 보냈다. 음률(音律)에 밝고 예...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에 있는 효자 정존후의 정려. 정존후(鄭存厚)의 자는 중직(重職), 호는 고암(顧庵)이다. 겨울에 아버지가 병으로 몸져눕자 정존후는 여러 방면으로 약을 구하여 지성으로 돌보았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매일 천지신명께 빌었더니 하루는 우연히 한 의원이 와서 “부친의 병환에는 다른 약보다는 소의 생간을 끓여 드려야 효험이 있을 것이오.”라고...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효자 정지형의 정려. 정지형(鄭志亨)의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호는 벽계(碧溪)이다. 정지형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럽고 남달리 총명하였는데 아버지가 병으로 몸져눕자 여러 방면으로 약을 구하고 밤에는 마당에 서서 아버지가 낫기를 하늘에 간절히 빌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든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른 후, 3년 동안이나 곡하는 소리를 끊지...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향토사학자. 정진형은 1926년 2월 28일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다촌(茶村)이다. 호남일보 논설위원, 김제군체육회 부회장, 전라북도체육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김제지부장, 한국문화재보호협회 김제군지부장, 전북지방문화재 전문위원, 한국예술인총합회 김제지부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국사편찬위원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돌아가신 조상이나 마을의 수호신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 제례란 제사를 지내는 예를 말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집안의 조상이나 일가친척 중 죽은 이에 대한 추모의례와 마을 공동적인 차원에서 당산이나 입석 등 민간신앙의 대상 신체에 지내는 동제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제례라고 하면, 흔히 사람이 죽은 후에 일정한 시간마다 기리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제사를 모실 때 입는 옷. 제례는 조상 숭배의 의례로서 제사라고도 한다. 제사는 죽은 조상을 받드는 예절로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례 복식을 갖추어 입었는데, 제사의 내용이나 입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서 복식이 다르다. 제례 복식의 제도는 조선시대까지는 잘 준수되었으나 신분 제도가 무너지면서 많은 변화를 보였다. 제사는 대상에 따라 기제사(忌祭祀), 시조제...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 있는 금속 열처리 업체. 제이엠은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제품 불량률 0%의 품질 경영으로 매출의 지속적 신장을 도모하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함은 물론 국민경제와 김제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5월 1일 전북열처리로 설립되었으며 2001년 12월에는 제이엠이란 회사명으로 법인 전환하였다. 2002년 5월 순동지방산업...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다. 조간(趙簡)[1264~1325]은 1279년(충렬왕 5)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왕이 친시(親試)하였는데, 여기에서도 1위를 차지하여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시묘를 3년간 하였는데, 왕의 칭찬을 받고 특례로 기거주(起居注) 벼슬을 받았...
-
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壁)이다. 조기(趙岐)는 1255년(고종 42)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인 1273년(원종 13) 무과에 급제하였다. 성품이 강직한데다 무인답게 내유외강하여, 안으로는 부모에 지극한 효를 행하고 밖으로는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몽고군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자 용감하게 참전하여 아...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기담(趙紀淡)의 본관은 한양, 호는 운정(雲汀)이다. 1893년 6월 9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 237번지에서 태어났다. 조기담은 1916년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동지를 규합한 뒤, 군자금 모집을 위해 미곡상인(米穀商人)으로 가장하고 군산 지방에서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사기죄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학자이자 서화가. 조기석(趙沂錫)의 본관은 김제(金堤), 호는 심농(心農)이다. 아버지는 당대 명필로 알려진 조주승(趙周昇)이다.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해서(楷書)와 행서(行書)에 뛰어났으며 사군자 솜씨 또한 훌륭하였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죽(竹)」이라는 제명으로 입선하였다. 묵죽도(墨竹圖)는 당시 김제를 중심으로 하여 석...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희보(趙希甫)이고, 어머니는 대언(代言) 홍림(洪琳)의 딸이고, 동생은 조의(趙義)이다. 조달(趙達)은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했다. 묘소가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있다....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고, 동생은 조간(趙簡)이다.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냈고, 밀직부사(密直副使)·사헌부대사헌·부원수(副元帥)·승정원좌승지를 역임했다고도 한다....
-
1392년부터 일제강점기 전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김제의 역사. 조선시대 지방 통치제도는 이미 태종 대[1400~1418년]에 대개 확립되었고, 세조 대[1455~1468]에 일부가 개정되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리게 되었다. 김제 지역에는 조선시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1403년(태종 3)에 김제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1415년(태종...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사응(士凝), 호는 죽암(竹庵)이다. 조성립(趙成立)은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전주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을 함락시키고 두 갈래로 나누어 그 중 한 왜병의 부대가 용담과 진안을 친 다음 진안과 경계를 이르는 전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웅치를 넘어 전...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낸 조의(趙義)이다. 조선 세조 때 여산군수를 지내다가 1466년(세조 12)에 탐오(貪汚)하여 백성을 침학(侵虐)한 것이 문폐사(問弊使)에게 발각되어 해임되었다. 이듬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여 거병하였는데 조석문(曺錫文) 등이 적을 토벌했다는 소식을 듣...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덕후(趙德厚)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무과에 합격하여 해영중군(海營中軍)을 거쳐 회령부사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27명에 포함되었다. 이후 구성부사를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용지면에 있다.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진무공신 2등에 책록...
-
임세미를 시조로 하고, 임소·임사복·임사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조양임씨(兆陽林氏)는 고려 말기 광정대부 정2품이었던 임세미(林世味)를 시조로 하고 있다. 조양(兆陽)은 전라남도 보성군에 있던 지명으로, 후손들은 세미공에서 파적되어 군사공파(郡事公派)·주부공파·생원공파·참의공파·부사공파(府使公派)·군수공파(郡守公派)·현감공파·별시공파 등으로 나뉘었다. 조양임씨...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김제 조씨의 시조. 본관은 김제(金堤). 조기(趙岐)·조서(趙瑞)·조간(趙簡) 등 3남 2녀를 두었다. 조연벽(趙連璧)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김제조씨(金堤趙氏)의 시조이다. 무예가 뛰어나 이름을 떨쳤는데, 1232년(고종 19)에 몽고가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몽고 장수 살례탑(撒禮塔)을 처인성(處仁城)[지금의 경기도 용인시]에서 죽였다고...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조영립의 정려. 조영립(趙英立)의 본관은 김제, 자는 사수(士秀)이다. 선조 때 인물로 충과 효를 함께 행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했던 조영립은 정유년에 과거에 오르고, 무오년에 아이만호(阿耳萬戶)라는 벼슬에 올랐다. 북쪽 오랑캐들이 창칼을 앞세우고 쳐들어오자 조영립은 자원하여 군에 들어가 좌영장 김응하와 더불어 오...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합성수지 및 기타 플라스틱 제조업체. 조영산업은 합성수지 생산과 관련된 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김제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0년 1월 장방호가 조영플라스틱공업사로 설립하였으나 1990년 6월 폐업과 함께 포괄 양도되어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에서 납입자본금 5...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고, 아버지는 조기(趙岐)이다. 아들은 조통원(趙通元)이다. 군부총랑직보문각(軍簿摠郞直寶文閣)을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에 있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자선(子善), 호는 회헌(晦軒)이다. 조용창(趙用昌)은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을 얻어 몸져누우면 정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올리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깨어나게 하였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평고군(平皐君) 조숭지(趙崇智)이다. 조원윤(趙元倫)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병조판서에 올랐다.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4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마천군(馬川君)에 봉해졌다....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가헌(可獻), 호는 백천당(百千堂).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역임한 조원우(趙元祐)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윤침(趙潤琛)[1476~1545]은 어려서부터 글을 즐겨 읽고, 효성 또한 극진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성(誠)과 예(禮)를 다했고, 생활은 한 치도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중종 때에 조...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희보(趙希甫)이고, 어머니는 대언(代言) 홍림(洪琳)의 딸이며, 형은 조달(趙達)이다. 조의(趙義)는 현감,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냈다. 죽은 후에 예장(禮葬)[일정 품계 이상의 문·무신이 죽으면 나라에서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주는 일]이 치러졌다....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 선구자. 자는 경안(景安), 호는 유천(瑜泉)이다. 사재를 털어 김제중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지방 교육의 선구자로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 사직단에 자리하고 있다. 조재돈(趙在敦)은 188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남의 귀감이 되었으며, 효성도 지극하여 동네 사람들로부...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 선구자. 자는 화숙(和叔), 호는 춘강(春岡)이다. 사재를 털어 김제농업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지방 교육의 선구자로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자리하고 있다. 조재식(趙在軾)은 1898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한결같이 성의와 예...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예가. 조주승(趙周昇)의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장일(章日), 호는 벽하(碧下)이다. 1854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한학자이자 서예가로 이름난 조기석(趙沂錫)이다. 조주승은 어려서부터 예능에 대한 재주가 출중하였으며, 해서(楷書)와 사군자가 뛰어났다. 진(秦)·당(唐)·송(宋) 등 여러 나라 대가들의 글씨를 보고 수...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기(趙岐)이고, 아버지는 조영회(趙令誨)이다. 공조전서를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에 있다. 숭모사(崧慕祠)에 배향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행지(行之)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叅判)에 추증된 조사회(趙思誨)이며, 어머니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여급(宋礪伋)의 딸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1624년(인조 2)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호위하였다. 선전관...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조필달의 유물.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본관이 김제이며 문양공(文良公) 조간(趙簡)의 11세손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1630년(인조 8) 충좌위우부장(忠佐衛右部將)에 처음 제수되었다. 그 후 순안현령, 보성군수, 양주목사, 포도대장(捕盜大將),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등...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정치인. 조한백(趙漢栢)의 본관은 김제(金堤), 호는 월촌(月村)이다. 1908년 3월 30일 전라북도 김제시 명덕동에서 아버지 조두현(趙斗鉉)과 어머니 부령김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조한백은 어려서부터 강직하고 영민하였다. 교직에 있을 때는 일제의 조선어 교육 폐지 사건에 항거하여 교사직을 사퇴하였다. 조국 광복 후 『대동신문』 전북지사장을 거쳐 초대...
-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에 있는 효자 조항진의 정려. 조항진(趙亢晋)의 본관은 김제이고, 자는 후재(厚齋)이며, 호는 눌헌(訥軒)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고 효성이 지극했던 조항진은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돌보았다. 상복을 벗고 나서도 다시 3년 동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거르지 않고 산소를 찾아 제사를 극진히 모셔 1892년(고종 29) 11월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복행(福行), 휘(諱)는 환복(煥福). 아버지는 조익성(趙翊成)이다. 조환용(趙煥容)은 1823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납세 물품을 납세자들이 직접 지정된 창고가 있는 데까지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배를 이용하여 물품을 운반하는 군현민은 그나마 고통이 덜하지만 김제와 금구, 만경,...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영회(趙令誨)이고, 아버지는 공조전서를 지낸 조통원(趙通元)이다. 부인은 직문하(直門下) 홍림(洪琳)의 딸이다. 호조판서를 지냈다. 아버지 조통원과 함께 숭모사(崧慕祠)에 배향되어 있다....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김제 지역은 백제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고려 말 유교 도래 이후 일찍이 근대 시기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전래되었다. 또한 자세한 통계는 없으나 한때는 계룡산보다도 신종교가 많았다고 전해질 정도로 모악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종교가 성행하였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김제 지역 불교에 중대한...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 종정마을에 세워져 있는 문주석. 종정마을 사람들은 고려시대 종정마을에 종정현이라는 현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각종 읍지 등의 문헌에는 종정마을에 현의 치소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종덕리 종정 문주석을 옛날 이곳에 있었다고 하는 종정현청의 문주라고 하거나 하마비 또는 이정표라고 하...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종정(從政)은 고려시대부터 부르던 이름으로, 이곳에 행정을 수행했던 치소(治所)가 있던 데서 유래하였다. 고려시대 종정현의 관청이 있던 마을이다. 그 흔적으로 당시에 세운 것으로 여겨지는 높이 2m가량의 ‘종정문주’라고 불리는 자연석이 남아 있다. 옛 종정현에는 월평(月坪)·회평(回坪)·원평(院坪)·내주평(內注坪)·신주평(新注坪) 등...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김제 지역에는 손효성 가옥, 김제 신풍동 일본식 가옥, 오영순 가옥, 최희성 가옥, 함태영 가옥, 황병주 가옥 등의 전통 가옥과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전통 가옥의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김제시 장화동 후장마을의 가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후장마을 가옥의 평면 구성과 규모 등을 보...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청소년 문화 시설. 2009년 현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는 김제·만경·금산·죽산 등 4곳의 청소년문화의 집이 운영되고 있다. 김제청소년문화의 집은 김제시 검산동에 있고, 만경청소년문화의 집은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위치하며, 금산청소년문화의 집은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자리하고 있다. 죽산 청소년문화의집은 김제시가 청소년들에게 지역 사회 생활권...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소공원. 죽산공원(竹山公園)에는 인근 주민들의 이용 편의를 위하여 각종 체육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2009년 4월에는 한식형 팔각기와 정자를 건립하였다. 죽산공원은 서해안고속국도, 김제와 부안을 연결하는 국도 23호선, 부량면에서 만경읍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711호선의 중간 지점으로, 경위도상의 위치는 북위 35°...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00여 년 전 동학군이 무기인 죽창(竹槍)를 만들었다는 대숲이 우거져 대뫼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죽산으로 바뀌었다. 조선 말기 김제군 반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칠리·석산리·명량리·죽동리·자고리·제내리·화교리·대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죽산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
-
내촌마을은 현재 약 40여 호가 살고 있지만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1970~1980년경에는 120여 호가 살았던 비교적 큰 마을이었다. 마을을 죽 돌아보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품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가까이 가 보면 비어 있는 집들이 많다. 마을 인구는 10~15년 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농촌에서는 자식들을 교육시키...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에 대나무가 무성하여 대메[竹山]라 하였는데, 나중에 마을이 번창하여 상죽(上竹)과 하죽(下竹)으로 나누어졌다. 이때 서쪽의 상죽마을은 죽절(竹節), 동쪽의 하죽마을은 리문(里門)이라고 하였다. 죽절이 있는 복죽동은 원래 김제군 대촌면 지역으로 1914년 월촌면이 되었고, 1989년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하면서 김제시 교동에 편입되었다....
-
증산 강일순의 교리를 바탕으로 근대에 발생한 신종교.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1871년 정읍군 덕천면 출생하였다. 일찍이 동학(東學) 교도가 되었으나,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에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할 뜻을 품고 전국을 떠돌면서 유교·불교·도교·참위(讖緯:음양오행설에 따라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예언함) 등 여러 사상과 설(說)을 공부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짐을 얹어 어깨와 등에 메고 나르는데 사용하는 연장. 지게는 처음에 ‘지개’로 불리다가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지게의 크기는 쓰는 사람의 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 것은 1m에서 큰 것은 1.5m나 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산골에서 쓰는 지게는 비탈에서 지기 쉽도록 목발이 짧고, 반대로 들에서 쓰는 지게는 목발이 길다. 발채를 얹은 지게를 ‘바지게’...
-
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성은 정씨(鄭氏), 호는 환성(喚惺), 자는 삼낙(三諾).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지안(志安)[1664~1729]은 1678년(숙종 4) 15세에 미지산 용문사(龍門寺)로 출가하였고, 정원(淨源)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680년 설제(雪霽)를 찾아 법맥을 이어받은 뒤, 침식을 잊고 경전 연구에 몰두하였다. 1690년(숙종 16...
-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지음서원은 충정공 이귀(李貴)[1557~1633]·나협[1546~1632]·나수눌(羅守訥)·고봉익(高鳳翼)·나처대(羅處大)[1714~1791]·나희후(羅喜厚) 등의 위패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이귀의 호는 묵재(墨齋), 자는 옥여(玉汝),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이(李珥)[1536~1584]와 성혼(成渾)[1535~1598]...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물질. 김제 지역은 백두대간과 금남정맥(錦南正脈), 호남정맥(湖南正脈), 영산기맥(榮山岐脈), 모악기맥(母岳岐脈) 등의 산줄기 때문에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지형을 이룬다. 동남부와 북서 해안에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동진강(東津江)·원평천(院坪川)·만경강(萬頃江) 주변에 광대한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남부 산지는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생산되는 보리. 지평선 황금보리는 김제평야에서 재배되는 김제 지역의 대표 특산물 중의 하나로서, 다른 맥류와 비교해 볼 때 탄수화물의 함량이 높고, 칼슘·인·철분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B가 풍부하다. 형태는 다른 보리와 마찬가지로 줄기 속은 비어 있고, 높이는 1m 정도로 자란다. 원줄기는 속이 비고 원주형이며, 마디가 높고 마디 사이가 길다. 잎은 어긋나며 넓은...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 중인 해외 이주민 여성을 위한 사회봉사단체. 지평선나누미는 다문화 사회가 된 한국에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거주하는 해외 이주민 여성들이 지역 사회에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2008년 3월 사단법인으로 출범하였다. 외국인 이주 여성들이 한국과 한국 음식,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지역 사회에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쇼핑몰. 지평선몰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오직 한 곳’이라는 선전 구호를 내걸고 2006년 12월 개설되었다. 김제시에 위치한 호남평야에서 엄선된 우수 농특산물을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판매와 직판장 판매를 동시에 진행하였다. 소비자의 식탁에 신선함을 그대로, 더욱 저렴하게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지평선몰은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및 지평...
-
자유무역지역은 한 국가 내에서 교역, 생산, 투자 등의 경제 활동에 대해 비관세 등 예외적인 조치를 허용해 주는 특정 지역이다.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국제적 경제 규범(Global Standard)을 적용하고 외국 투자 및 수출 기업의 활동에 가장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김제시 당국은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 지대인 김제시가 2008년 12월 8일 자유무역지역으로...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지평선지푸라기·풀문화센터 주관으로 개최되는 지푸라기풀공예경연대회. 지평선지푸라기풀공예경연대회는 지푸라기를 실생활에 밀접한 민구(民具)를 제작하는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되짚고, 이를 소중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움직임이다. 현재 지푸라기풀공예는 공예의 한 장르로 발전하여 생활용품으로서라기보다 예술 작품으로 재조...
-
전라북도 김제 지역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이 동쪽으로 높고 험한 백두대간의 설악산(雪嶽山)·태백산(太白山)·소백산(小白山) 등이 동해 가까이 솟아 있어 하천의 흐름이 빠르고 길이가 짧은 반면, 서쪽은 흐름이 느리고 길이도 길다. 김제 지역 또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지형으로 동쪽은 대부분 호남정맥(湖南正脈)에서 갈라져 나온 모악기맥(母岳岐脈) 줄...
-
유인비를 시조로 하고, 유종숙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진주유씨(晉州柳氏)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유차달(柳車達)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나, 유차달의 9세손으로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진 유인비(柳仁庇)를 시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차달의 9세손 유순(柳淳)에 이르러 9형제로 번창하여 문화·풍산·서산·선산·전주·진주의 6파로 분파하였는데, 이때 유인비가 진산군에...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인데,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혈연이다. 삼국시대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17세기 이후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널리 퍼지면서 가부장제가 정착되고, 이에 따른 혈연의식이 강화된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농업경제를 바탕으...
-
우리나라 농촌의 일반적인 경관은 고불고불 외길을 따라 들어가면 산등성이를 병풍처럼 뒤로하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펼쳐진다. 이런 풍광(風光)을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은 광활면 입구에서부터 어리둥절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자칫 하면 길을 잃는다. 산과 구릉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지평선을 보기 힘들다. 그러나 김제평야에서는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은 곳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는...
-
전라북도 김제시 순동에 있는 식물성 유지 제조업체. 참고을은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정신을 바탕으로 최상의 식용 유지와 장류를 생산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식생활과 김제 지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10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주)참고을로 설립되었으며 12월 경기도 고양시에 제1공장이 준...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화유씨 인물 묘역. 황산리 창평현령 유공 묘역은 조선시대 창편현령과 시강원 벼슬을 지낸 두 인물과 관련한 묘를 말한다. 묘는 2기씩 쌍을 이루어 50m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데, 두 사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 있는 벽성대학으로 들어가는 도로 우측, 황산리의 구릉 사면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황...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 교회. 김제 지역의 천주교는 1866년(고종 3) 병인박해로 많은 순교자가 나온 후인 1879년(고종 16) 드게뜨 신부가 금구 배재에서 잡혀 추방되었다가 1881년(고종 18) 뭬렐 신부와 같이 재입국하면서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 혁명 후에는 말세로구 신부가 와서 금구현 수류면[현 김제시 금산면]에 있던 전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의 역사. 철기시대는 대체적으로 원삼국시대 이후이다. 원삼국시대의 김제 지역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마한의 벽비리국(辟卑離國)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익산 지역 일대를 포함한 건마국(乾馬國)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 일대에 대한 긴급 수습조사를 하...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철제 궤도 위로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시설. 우리나라 철도의 시작은 1825년 9월 27일 영국의 스티븐슨이 처음 여객을 운송한 지 74년만인 1899년 9월 18일 일본보다 27년 늦게 일본인 경영의 경인철도합자회사가 제물포와 노량진 간 33㎞의 가영업을 개시한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 후 경부선이 1905년 1월에 착공하여 1908년 4월...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일대에 있었던 광산. 모악산을 이루고 있는 엽리상 화강암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금구면 선암리 등에는 석금(石金)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다. 현재 채굴하고 있는 금광은 모두 사금광으로, 엽리상 화강암의 풍화물이 하천에 의해 이동·퇴적하면서 집적된 충적층 하부와 기반암 또는 플라이스토세 접촉부에 사금이 포함되어 있다. 김제...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전주군 우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정리·동곡리, 금구군 수류면 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청도리라 하고 전주군에 편입하였다가, 1935년 김제군 금산면으로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가 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고도 100~700m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청도리 동곡 도요지는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648번지 일대와 산256번지, 그리고 산341번지 일대에 있는 세 곳의 백자 가마터로 분산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대체로 15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걸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이다. 지금은 모두 형태가 파괴되어 대량의 백자편이 더미를 이루고 있다. 김제시 금...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청도리 동곡 도요지는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648번지 일대와 산256번지, 그리고 산341번지 일대에 있는 세 곳의 백자 가마터로 분산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대체로 15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걸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이다. 지금은 모두 형태가 파괴되어 대량의 백자편이 더미를 이루고 있다. 김제시 금...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청도리 백운동 도요지는 15~16세기에는 상감청자와 회청사기·분청사기 등을 생산하였으며, 이후에는 주로 백자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도리 백운동 도요지는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백오동마을의 끝자락 남향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조선시대 분청사기·백자 유적 현황과 관련한 사료와...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마터. 청도리 청도원 도요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미루어 조선 후기인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주로 백자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후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고 있어 18세기경에 이미 생산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청도리 청도원 도요지는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화운동마을에서 시앙골[下谷]로 1㎞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데, 마을...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청도리 하운동 도요지에서는 고려 후기인 11~14세기에는 주로 청자가 생산되었으며, 18~19세기에는 백자가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가마터가 아니라, 생활 용기나 특수한 용도의 그릇을 사용했던 주거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백오동 맞은편의 새로 지은 재실이...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낙양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불로리·중평리, 서도면 상리, 이북면 용은리·옥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청운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가 되었다. 북쪽으로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와 이웃하고, 남쪽으로 두월천(斗月川)...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청하산(靑蝦山)[50m]의 이름을 따서 청하(靑蝦)라 하였다. 조선 말기 만경군 북일도면 지역으로 장산리 등 18개 동리를 관할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만경군 북면 송상리·송중리·송하리 일부, 김제군 마천면 관상리 등 13개 동리, 동이도면 신기리 일부를 병합하여 청하면이라 하고 김제군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운동 경기 및 체육 활동과 관련 체육 단체. 근대 이전 우리 민족의 주요 체육 활동은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줄다리기, 활쏘기, 그네뛰기, 씨름, 썰매타기, 가마타기, 팽이놀이, 팔씨름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체육 활동은 1910년대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보통학교의 정규 교과 과정으로 체육 시간이 편성되면서 발전하여 왔다....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된 금산교회(金山敎會)는 1905년 미국 선교사 테이트(Lewis Boyd Tate)가 처음 세운 뒤, 1908년 새 건물을 마련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교회 건물은 한옥으로 ㄱ자형인데 이러한 건축 구조는 남녀 신도의 자리를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남녀유별이라는 전통 사회의 관습을 해치지 않으려는 방안이었다. 1882년 조미 수호 통...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친환경 축산으로 생산되는 한우. 김제시에서는 김제와 정읍 등지의 논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청정 총체보리와 볏짚만을 사료의 원료로 사용하며, 이 원료에 유산균·쌀겨·옥수수 등을 섞어 발효시킨 사료로 한우를 사육한다. 이렇게 사육되는 총체보리한우는 병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높아졌으며, 분뇨는 땅으로 되돌려져 자연스럽게 친환경 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총체보리한우는...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달호의 정려. 최달호(崔達昊)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만육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최달호의 아버지가 병으로 몸져눕자 변을 맛보아 가며 약을 쓰고 정성을 다하니, 1851년(철종 2) 3월 19일 도승지(都承旨) 김병기(金炳冀)가 왕에게 아뢰고 같은 달 27일에 예조판서(禮曹判書)...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백(麗百).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최후신(崔後臣)이다. 최득남(崔得男)은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피난길에 오르자 위험을 무릅쓰고 당시 세자인 광해군을 호종하였다. 위성원종공신(衛聖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위성원종공신이...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명서의 정려. 최명서(崔命瑞)는 전주최씨 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만육 최양을 중시조로 하는 최여정 도사공파의 후손이다. 호는 낙촌으로 참봉 최응삼(崔應三)의 7세손이다. 전주최씨 도사공파는 금구면 둔산, 신흥, 광현, 용사, 용전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최명서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님을 섬...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식의 정려. 매촌 최식(崔湜)은 충익공 최만육의 증손이다. 부모를 기쁘게 하고자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생원·진사 시험에 급제하는 등 정성을 다하였으며, 부모가 위독하자 자신의 손끝을 잘라 피를 먹여서 수개월 동안 연명하게 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최식의 효행을 칭찬하며 조정에 알리자, 이에 조정에서는 증직 3품의 벼슬을 내리며...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국회의원. 최윤호(崔允鎬)는 1946년 2월 8일 결성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에 관여하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우익 계열의 범정당 정치 단체로서, 이승만 계열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 계열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이란 공통의 목적으로 통합 결성한 단체이다. 이후 최윤호는 1950년 김제 지역에서 제2대 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응삼의 정려. 최응삼(崔應三)의 자는 춘향, 호는 애일당으로, 아버지는 역시 효자로 정려를 받은 최식(崔湜)이다. 최응삼은 부모님의 생일과 연중 좋은 철이나 명절이 되면 동네 사람들과 각지의 선비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부모님을 위로하며 오래오래 살기를 빌었다. 행여나 부모님이 병을 걸리면 겨울에도 죽순과 잉어를 구해다 드리는...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화의 정려. 학은(學隱) 최화(崔和)는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어른같이 하면서 부모님 섬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어느 날 최화는 아버지가 병으로 눕게 되자 한밤중에 10리나 떨어진 깊고 깊은 산중에 있는 의원에게 약을 구하러 가게 되었다. 때는 겨울이라 눈과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와 눈앞을 가리는데, 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추석은 중추절(中秋節)이라고 하여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명절이다. 이를 ‘가배(嘉俳)’, ‘한가위’ 등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2대 명절이다. 이때쯤에는 백과가 만발하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최고의 명절로 친다. 일 년 내내 물자가 귀하던 시...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개최되는 각종 의례와 행사. 1990년대 이후 지방 자치가 활성화되면서 광역시와 도, 군 등 자치 단체마다 지역별 특성이나 문화를 반영하여 만든 각종 축제가 홍수를 이루기 시작했다. 자치 단체마다 문화재나 특산물을 테마로 하는 축제를 개최해 지역 홍보와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읍·면·리·동 단위까지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축제가 범람하고 있으나, 축제의 성격...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산전부터 산후에 이르기까지 육아와 관련하여 행하는 의례. 출산의례는 아기를 갖고자 기도를 드리고, 아기를 가진 뒤에는 여러 가지 금기를 지키며, 아기를 낳은 후에도 금기와 축하의 의례를 말한다. 즉 아기를 낳기 전부터 낳아서 어느 정도 성장하기까지의 육아 과정을 거치며 치르는 여러 가지 의례를 통틀어서 하는 명칭이다. 이를 ‘산육속(産育俗)’이라고도 한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 유교를 국시를 삼은 조선시대에서는 행동 강령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강(三剛), 특히 군신과 부자와 부부 관계의 도리를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충(忠)·효(孝)·열(烈)을 장려하고 두드러진 행적이 있는 사람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올려 백성들의 사표로 삼았으며, 또 정려를 내려서 마을 입구에 정려...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10월 중순경 한국유기농업협회 김제시협의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행사. 김제시는 우리나라 도작문화의 발생지인 벽골제의 의미를 되새기고 풍년을 기원하며, 벽골제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전설과 군민들의 화합 단결을 위하여 1999년부터 김제지평선축제를 시행하고 있다. 친환경유기농산물 품평 및 전시회는 김제지평선축제 기간 중에 개최하여 김제 지역의 우수 농산물을 전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인경씨 종중 묘역. 월전리 태인경씨 종중 묘역에는 태인경씨의 13세조 경극중(景克中)의 묘를 중심으로 그 후손들이 묘가 들어서 있다. 경극중의 호는 성재(誠齋)로, 효행으로 천거되어 청안현감을 역임하였다. 경극중의 아들 경거윤(景居倫) 역시 천거되어 낭천현감을 지냈다. 경거윤의 아들 경세성(景世誠)은 맹산현감을 지냈고, 경세성의 손자...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버스 터미널과 철도 터미널.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버스 터미널과 철도 터미널은 운송업이라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시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김제시의 버스 터미널로는 김제고속버스터미널, 김제시외버스터미널, 원평터미널, 만경터미널 등이 있다. 철도 터미널로는 김제역, 부용역, 와룡역이 있으나 현재 부용역과 와룡역은 여객 터미널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집터를 지켜 준다고 믿는 가신(家神). 터주는 집의 울타리 안을 주로 관장하는 지킴이이다. 지역에 따라 ‘터줏대감’, ‘토주(土主)대신’, ‘왕신단지’ 등으로도 불린다. 집의 뒤꼍이나 장독대 가까이에 터주를 모시는 터주가리를 만들어둔다.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안방의 윗목 시렁 위에 조상단지를 모시고 있는데, 상달에 단지의 곡식을 갈아 담아서 조상숭배의 상징으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토란을 넣고 끓인 국. 시원하게 끓인 토란국은 예부터 김제 지역의 대표적인 추석 별미였다.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인 토란에는 소화를 돕고 변비를 예방하는 성분이 있다. 이 때문에 떡이나 고기를 많이 먹어 배탈이 나기 쉬운 추석에 토란국을 끓여 먹은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토란의 주성분은 녹말·단백질·섬유소·무기질 등으로 소화가 매우 잘되는 음식이나 수산석...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성된 흙. 토양은 광물성 풍화 산물이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작용에 의해 더욱 변화하여 이루어진 암석권의 표층을 말한다. 토양은 식물의 생장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불가결한 자연 자원으로 농업의 기반이 되므로 토양의 속성에 따라 작물을 선택하고 토양의 구조를 꾸준히 개량하여 지력(地力)을 높여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토...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특산물은 어떤 지역의 특별한 산물로서 지역의 문화, 지형, 기온, 토양 등에 따라 그 차이가 있다. 한국의 예부터 지방적 성격이 강하며, 지방마다 고유한 문화와 그에 따르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산물이 많다. 이러한 지방의 많은 특산물은 현대화, 도시화로 접어들면서 지방 특산물, 지방 관광 상품, 지방 향토 음식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하였다...
-
전라북도 김제시 검산동에서 매년 김제특수교육지원센터 주관으로 개최되는 특수학급학생 축제. 특수학급학생 한마당축제는 2005년 12월 26일 김제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김제교육청 주최, 김제특수교육지원센터 주관의 ‘통합학급 친구들과 함께하는 2005 꿈나눔축제’가 시발점이 되었다. 이 축제는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농산어촌 지역 학생들에게 문화 공연을 통하여 문화적...
-
광활간척지 조성 사업은 1925년 일본 재벌 아베 후사지로[阿部房次郎]가 자기 자본 백만 엔과 일본 정부 자본 백만 엔으로 김제에 동진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공사를 위해 일본 정부는 당시 참모본부에 있던 육군 대좌 후쿠이를 책임자로 불러들였다. 단기간에 많은 인력이 필요한 공사였기에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중국인들도 1천 명에 가까이 동원되었고, 일본에...
-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보상과 윤찬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왕건을 도와 삼국 통일의 공을 세웠는데, 고려 태사(太師)였다. 윤신달이 출생한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385-1번지 용연(龍淵)은 당시 파평현(坡平縣)이었는데, 윤신달의 5세손 윤관이 여진(汝眞)을 평정한 공으로 벼슬이 지군국중사(知軍國重事)에 이르고...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리에 있는 파평윤씨 동성마을.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한다. 윤신달은 왕건을 도와 삼한 통일의 공을 세웠으며, 태사(太師)를 지냈다. 윤신달이 태어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연(龍淵)이 당시 파평현(坡平縣)이어서 파평을 관향으로 삼았다. 윤신달의 5세손 윤관(尹瓘)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올라 여진족을 평정한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에서 생산되는 도자기 제작 업체. 팔봉도예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4대를 이어 도자기를 만들어 온 도자기 명가이다. 팔봉도예 도자기는 도자기에 조예가 없어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우아하고 청초한 자태를 자아낸다. 팔봉도예는 1대[고(故) 박준석], 2대[고 박복래]에 전통 옹기를 만들어 보급하였고, 3대인 박창영과 4대인 박광철·박혜자는 전통 옹기...
-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 이외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중...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가까이서 보면 평사낙안(平沙落雁), 멀리서 보면 금환낙지(金環落地) 형국이므로 평사리(平沙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산리·등용리·주자리·대하리·송내리 각 일부, 초처면 성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평사리라 하고 김제군 하리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하리면이 봉남면으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 단계마다 행하는 의례. 평생의례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과정 중에서 중요한 단계마다 치르는 의례행위로써, ‘통과의례’라고도 한다. 삶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순간도 쉼 없이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것이 일반적인 속성이다. 하지만 인간은 보다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결혼과 죽음 등과 같은 중요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는 산지와 산지 사이에 발달한 넓고 평탄한 지형. 평야는 충적 평야와 침식 평야로 나누어지고, 충적 평야는 하곡 충적 평야와 해안 충적 평야로 나누어진다. 전라도 서부에 펼쳐진 호남평야는 강 하구에서 중·하류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져,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 하류 및 하구 10~30m 이하 지역은 충적 평야가, 10~40m 사이 중류 지역은 침식 평...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설명하는 이론. 풍수는 산천(山川)·수로[水流]의 모양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학설로, 이를 체계화한 것이 바로 풍수지리 사상, 풍수설, 풍수지리설 등으로 정착되었다. 즉 풍수지리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이다. 풍수지...
-
하시모토는 일러전쟁 당시 통역관이었다.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20대의 젊은 하시모토는 조선 땅에 남아 대농장주를 꿈꾸면서 마구잡이로 토지를 사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죽산면에 있는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농장과 소작인들을 군대식으로 조직하며 소작쟁의를 막는 등 철저하고 치밀하게 농장을 운영한다. 간교하게 농민들을 착취했던 하시모토는 너른...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강승의 유허지. 강승(姜昇)[1430~1500]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완휴재(玩休齋)이다.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강순(姜純)이며 어머니는 김제조씨(金堤趙氏)로 판서 조통원(趙通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 부자와 김시습(金時習)을 스승으로 받들면서 도의지교를 맺었다. 1447년(세종 2...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강과 하천이란 용어가 일부 혼용되어 쓰이지만 대체로 시내와 내[川], 강을 총칭하여 하천이라고 한다. 자연 현상이나 인위적인 작용에 의해 지구 표면에 만들어진 물의 흐름길이 바다로 이어지기까지를 하천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에 강(江)이나 천(川)을 붙인다. 대체로 규모가 큰 하천 또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강과 하천이란 용어가 일부 혼용되어 쓰이지만 대체로 시내와 내[川], 강을 총칭하여 하천이라고 한다. 자연 현상이나 인위적인 작용에 의해 지구 표면에 만들어진 물의 흐름길이 바다로 이어지기까지를 하천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에 강(江)이나 천(川)을 붙인다. 대체로 규모가 큰 하천 또는...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국악협회 산하 지부. 한국국악협회 김제시지부는 동호인 모임으로 머물던 김제 지역의 국악을 정부에서 인정하고 지원하는 공인된 문화 예술 단체로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0년 11월 김제시 국악 발전에 전기와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제시지부 창립에 맞추어 설립되었다. 초대 지부장에 강종철이 선임되었다. 강종철이...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호남지역본부의 전주지사. 한국도로공사 호남지역본부 전주지사는 한국도로공사 6개 지역본부[경기·강원·충청·호남·경북·경남] 중 하나인 호남지역본부가 관할하는 2곳의 도로관리소[남원·진안]와 6개 지사[전주·광주·순천·부안·함평·담양] 가운데 한 곳이다. 한국도로공사 호남지역본부 전주지사는 고속도로의 설치 및 관리에 관련된 사업을 통해...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문인협회 산하 지부. 한국문인협회 김제지부는 김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의 발전과 상호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향토 문학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한국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 3월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가 전주시에서 결성되자 김제에서 활동하던 최학규가 한국문인협협 전북지부 이사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962년 9...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미술협회 산하 지부. 한국미술협회 김제지부는 시서화(詩書畵)의 고장인 김제의 수준 높은 미술의 맥을 이어가고 재조명하면서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설립되었다. 1970년 11월 창립하여 초대 지부장에 송하영을 선출한 이래, 1971년에 창립 초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제시지부의 기반 구축과 기금 조성을 위해 초대미술전을 열었다. 참...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불교 27개 종단의 하나. 한국불교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은 1970년 1월 15일 박대륜(朴大輪)을 종정(宗正)으로 추대하여 정식 종단으로 발족하였다. 총무원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92-1번지[성북로28길 60]의 태고사(太古寺)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1954년부터 1963년까지 계속된 비구(比丘)와 대처(帶妻)[결혼하여 아내가 있...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했던 한국사진작가협회 산하 김제 지역 지부. 한국사진작가협회 김제지부는 김제 지역의 사진 문화 발전과 향상을 위하여 공헌하며, 회원들의 권익 옹호와 지위 향상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사협 김제지부는 사협 회원이던 김훈(金薰)이 군산에서 김제로 오면서 그동안 개별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 오던 박도현(朴道鉉)·한명선(韓明宣)과 함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제지부...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한국서예협회 산하 지부. 한국서예협회 김제지부는 서예 발전에 기여하고 서예가의 권익을 옹호하며 서예의 국제적 교류 및 진흥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9년 12월 15일 한국서예협회 김제지부를 창립하였으며, 초대 지부장에 청암 이상록이 당선되었다. 1993년 2월 10일 제2대 지부장에 금계 임장옥, 1996년 2월 10일 지부장에 행산...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지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제시지부는 예술과 문화의 본향인 김제에서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결성되었던 벽성예우회(碧城藝友會)를 기반으로 중앙 및 타 지방과 체계적이고 일괄적인 교류를 위해 설립되었다. 1969년 10월 김제 지역의 뜻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상호 간의 친목 단합과 향토 문화 예술의 창달 및 저변...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한국음악협회 산하 지부. 한국음악협회 김제지부는 김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옹호하며, 음악의 저변 확대와 발전을 모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4년 12월 한국음악협회 김제지부를 창립하였다. 창립 임원으로는 지부장 곽인, 부지부장 최성애, 상임간사 임방면, 사업간사 강윤철, 조직간사 정덕희, 감사 조성산 등이 참여...
-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한가운데 큰 우물이 있어서 한우물 또는 대정(大井)이라 하였다. 두월천(斗月川) 북쪽 구릉에 형성된 마을로 자연 샘물이 있던 곳이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던 큰 우물의 깊이는 약 5m, 수심은 약 3m로 아무리 많은 물을 사용해도 줄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 김제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이 우물만은 마르지 않아 황산면에서 배를 타...
-
전라북도 김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매년 개최되는 한중 간 미술교류전. 한중국제미술교류전은 한국과 중국 간의 우의를 증진하고 문화 교류를 통한 상호 예술 발전을 위하여 2008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한국미술협회 김제지부 회원과 중국 산둥 성 웨이하이 복지문화예술관과의 교류에서 시작되었는데, 2008년 8월 한국미술협회 김제지부 지부장이 중국 웨이하이 복지문화예술관을 방문하여 상호...
-
남궁원청을 시조로 하고 남궁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대장군을 지낸 남궁원청(南宮元淸)이 감물아현백(甘勿阿縣伯)[지금의 익산시 함열읍]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함열을 관향으로 삼았다. 시조의 21세손 남궁제(南宮齊)[1626~?]가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파주를 떠나 김제에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남궁제의...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법조인이자 독립운동가·정치가. 함태영(咸台永)의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송암(松岩)이다. 1873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정당리에서 태어났다. 1889년에 아버지 함우택(咸遇澤)이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관(宣略將軍行龍讓衛副司官)에 제수되자 함께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법조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6개월 과정을 거...
-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정설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해주오씨(海州吳氏)는 고려시대에 건교군기감을 지낸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한다. 1410년(태종 10) 오선경(吳先敬)이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해주오씨족도(海州 吳氏族圖)」를 보면 해주오씨의 시조를 오인유라고 적고 있다. 오인유 계는 처음 본관을 수양(首陽)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해주가 전에 수양이란...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에 있는 해학 이기의 생가. 이기(李沂)[1848~1909]는 황현(黃玹)·이정직(李定稷)과 함께 호남 3절로 불렸으며, 유형원(柳馨遠)[1622~1673]·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학풍을 이어받은 조선 말 실학자이자 항일 독립투사이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전봉준(全琫準)[1855~1895]을 찾아가 동학군을...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권력, 즉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자연마을. 교동에 있는 향교·교남·성산·신동·사직단 등 5개 자연마을 가운데 향교마을과 교남마을을 향교골이라고 한다. 향교골은 향교가 있는 마을, 향교가 있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향교골은 과거 김제 교육의 중심지로 성산(城山)[42m]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문화재로 2007년 사적 제482호로 지정된 김제군 관아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제조법이 구전되어 오는 향토 술 담그는 비법. 향토술은 크게 곡주, 약용주 및 증류주로 나뉜다. 곡주란 주로 멥쌀이나 찹쌀을 주원료로 하여 누룩을 사용해서 빚어내는 술로, 향토술의 대부분이 곡주에 해당된다. 약용주란 곡주에 특수한 한약재를 섞어 빚어내는 술로, 민간요법에 사용되었다. 증류주란 전통적인 고리를 사용하여 곡주를 증류한 술로 알코올 도수가 매우 높...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오는 음식. 전북 지역은 호남의 곡창지대로서 넓은 평야에서 나오는 질 좋은 쌀과 좋은 토양에서 나오는 각종 야채와 해산물 등 천혜의 식재료가 넘친다. 예부터 김제 지역 선조들은 이를 사용하여 맛과 멋을 즐겼고, 특별히 입맛에 맞는 맛있는 향토음식을 많이 만들어냈다. 뜸부기 찜은 뜸부기 적당량에 밀가루 적당량, 간장 적당량으로 요리를 한다. 먼...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한 향토사에 머물지 않고 지리·풍속·문학·예술·행정 등 향토에 관한 모든 사상(事象)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 의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제 지역과 관련되어 있거...
-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전라북도 김제시는 호남평야의 중심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큰 변화를 겪어왔다. 일제 때에는 미곡의 집산지로서 발전이 이뤄지면서 인구가 증가했으나, 해방 후에는 미곡 반출이 중지되면서 철도 교통의 요지로서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또 1960년대 후반부터한국의 산업 구조가 공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에 있는 재생 플라스틱 제조업체. 형진화학은 김제 지역의 폐플라스틱을 수집·운반하여 재생 플라스틱을 생산함으로써 수익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환경 보전에 기여하고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5년 창업자 이한복이 형진수지로 설립하였다. 1998년 3월 6일 형진화학으로 상호가 변경되었으며 대표자가 이한주로 이전되었다. 2004년에는 (...
-
김제시를 포함하여 전라북도 서쪽에 있는 농경지. 백제시대부터 시행된 국가 단위의 수자원개발사업은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정읍의 눌제(訥堤), 익산의 황등제(黃登堤) 등을 그 효시로 한다. 임실군 운암(雲岩)에는 운암댐이 조성되어 그 물이 호남평야의 남부를 관개하고, 만경강의 지류 고산천(高山川)의 상류에도 대아저수지가 축조되어 이 물이 호남평야 북부의 관개를 원활하게 한다. 더욱...
-
김제시를 포함하여 전라북도 서쪽에 있는 농경지. 백제시대부터 시행된 국가 단위의 수자원개발사업은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정읍의 눌제(訥堤), 익산의 황등제(黃登堤) 등을 그 효시로 한다. 임실군 운암(雲岩)에는 운암댐이 조성되어 그 물이 호남평야의 남부를 관개하고, 만경강의 지류 고산천(高山川)의 상류에도 대아저수지가 축조되어 이 물이 호남평야 북부의 관개를 원활하게 한다. 더욱...
-
김제(金提)라는 지명을 풀이하면 ‘황금을 캐내는 둑’이라고 한다. 여기서 황금은 노랗게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추수기의 벼이삭을 의미한다. 만경(萬頃)이란 말 또한 1만 이랑의 드넓은 평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부터 부르는 ‘징게 맹갱 외얏밋[외배미] 들’은 ‘황금이 노랗게 일렁이며 끝없이 하나로 이어진 너른들’이라 풀이할 수 있다. 기름진 옥토와 따듯하고 비가 많은 기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남녀가 혼인할 때 치르는 의례 과정. 혼례는 남녀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혼인에 따르는 모든 의례와 절차이다. 남녀가 일정한 혼례를 거행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오늘날에는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서 중매결혼·연애결혼 등 다양한 혼례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혼례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할 정도로 중요시하여 일정한 절차와 의식에...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남녀가 혼인할 때 치르는 의례 과정에 사용하는 용구. 혼례는 남녀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치르는 일정한 의식이다. 이러한 절차를 거침으로써 두 사람이 부부임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오늘날에는 혼인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서 중매결혼·연애결혼 등 다양한 혼례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혼인은 가문 대 가문, 집안 대 집안 간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혼인할 때 신랑과 신부가 입는 옷. 혼례는 성이 다른 남녀가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통과의례로 이러한 혼례 의식에서 착용하는 옷과 수식을 혼례 복식이라고 한다. 사례 복식 가운데 어떠한 복식보다도 화려했던 전통 혼례 복식은 조선시대부터 민가에서 착용하였다. 신랑·신부가 착용했던 혼례복의 종류와 형태는 이재(李縡)[1678~1746]의 『사례편람(四禮便覽)』...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증조할아버지는 홍처심(洪處深)이고, 할아버지는 홍수진(洪受晋)이며,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홍우전(洪禹傳), 어머니는 대사헌을 지낸 이상(李翔)의 딸이다. 홍계희(洪啓禧)는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에서 태어났는데, 기록에 보면 “몽산이 맑고 깨끗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데 홍계희가...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에 있는 효자 홍관효의 정려. 홍관효(洪寬孝)의 자는 내옥, 호는 태모재이다. 아버지는 효자로 정려를 받은 홍수벽(洪壽壁)이다. 13세 때 어머니가 몸져누워 급히 약을 구해 돌아오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져서 다리가 무너지고 냇물이 불어났다. 도저히 건널 수가 없게 되자 홍관효는 마침 근처에 있던 소의 꼬리를 잡고 냇물을 건넜다. 그 후 아버지...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홍수벽의 정려. 김제시 백산면 상리 두동은 1,100여 년 전 남양홍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여 형성된 마을로, 평소 덕을 베풀고 부모를 극진히 모셔 효성으로 나라에서 벼슬과 정문을 받은 홍수벽(洪壽壁)과 홍관효(洪寬孝), 홍재우(洪在禹) 등이 살았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웃어른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머리 ‘두(頭)’자를 써...
-
조선 후기 김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몽촌(夢村). 할아버지는 홍처심(洪處深)이며, 아버지는 임피현감을 지낸 홍수제(洪受濟)이다. 형은 만경현에서 진사에 합격한 홍우현(洪禹賢), 동생은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홍우전(洪禹傳)이다. 담와 홍계희의 큰아버지이다. 홍우천이 세상을 떠나자 홍우전은 큰아들 홍계록(洪啓祿)을 그에게 입양시켜 대를 잇게 하였다. 하지만 홍계...
-
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설치 시기 및 운영 방법 등은 확실하지 않다. 각 주(州)·현(縣) 내의 관(館)과는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했다. 원은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에 있는 효자 홍재우의 정려. 홍재우(洪在禹)의 자는 성규, 호는 술예이다. 할아버지 홍수벽(洪壽壁), 아버지 홍관효(洪寬孝)의 뜻을 받들어 언제나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이 정성을 다해 부모님을 섬기어 근동 사람들로부터 큰 효자라고 찬사를 받았다. 이에 유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추천하고 관찰사가 임금에게 아뢰어, 1870년(고종 7) 조정에서 벼슬과 이름이...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초대 국회의원. 홍희종(洪憘種)은 대전에 있던 삼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김제군 농업기수와 순창군 농업기수, 전라북도 산업기수, 조선총독부 곡물검사소기수, 김제군 소작위원회 예비위원, 김제부읍장, 김제군농회 통상의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제군지부 부위원장, 조선민족청년단 김제군단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김제 지역에서 제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던 중 1...
-
일제강점기 이리농림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화랑회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벌이려던 사건. 일제강점기 일본의 압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투쟁은 광주학생운동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나타났고, 일제 패망이 임박하여 조선인의 독립 투쟁에 대한 폭압적인 탄압이 계속되었음에도 학생들의 민족의식과 투쟁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에서 결성된 비...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매년 11월경 환경미술협회 김제시지부 주관으로 개최되는 미술전. 2005년 6월 8일 환경미술협회 김제시지부가 설립되어 그해 창립전이 개최되었다. 2006년에는 김제시 노인종합복지타운 요양원에서 작품 기증 행사를 가졌으며, 2007년에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제3회 환경미술전을 개최하였다. 제4회 환경미술전은 2008년 11월 27일~12월 3일 김제문화원...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환경미술협회 산하 지부. 환경미술협회 김제시지부는 순수 미술인들과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환경의 중요성이 요구되는 현대 생활에 예술을 통한 환경 지킴이 일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예술 활동에 환경을 접목하여 환경의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 및 환경 캠페인 등을 통하여 시민들에게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아...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우주(紆州)[오늘날의 전북 완주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아버지는 고려에서 문하평리를 지낸 황문용(黃文用)이며, 어머니는 덕수장씨(德水張氏)로 현령을 지낸 장핵(張翮)의 딸이다. 황거중(黃居中)은 어릴 때부터 글 짓는 데 능하고, 경서를 해석함에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의 황산전투(荒山戰鬪)에...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학자.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황박의 정려. 황박(黃璞)의 본관은 우주(紆州), 호는 죽봉(竹峰)으로 문숙공 황거중(黃居中)의 후손이다. 황거중은 우주황씨(紆州黃氏)를 중흥시킨 인물로, 고려 말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남원 운봉 전투에서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무찌를 때 종사관으로 참전하여 개국 공신이 되었으며 정당문학에 발탁되었다. 충...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에 있는 자연마을. 일제강점기 마을 주민들이 일본인이 경영하던 농장 지배인의 못마땅한 행동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시위를 벌이다가 주모자가 잡혀 수모를 당하자, 일을 수습하기 위해 창고에 모여 자주 회의를 열었다고 하여 회령(會寧)이라 하였다. 바다를 건너온 중국 사람들이 제방 쌓는 일에 참여했다 하여 대국촌(大國村)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갯벌이 간...
-
전라북도 김제 지역 출신이거나 김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인물. 유교(儒敎)를 국시를 삼은 조선시대에서는 행동 강령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강(三剛), 특히 군신과 부자와 부부 관계의 도리를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충(忠)·효(孝)·열(烈)을 장려하고 두드러진 행적이 있는 사람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올려 백성들의 사표로 삼았으며,...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자연마을. 후장(後長)이 있는 장화동은 1450년경 당시 성균관 진사였던 돈화 정임(鄭任)이 벼슬을 그만두고 화산(花山)으로 내려와 살면서 마을 이름을 장화(張華)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장화(障化) 또는 꽃잔[華殘]이라고도 하였다. 마을 서쪽에 있는 화초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장화동이 커지면서 전장[전장화]과 후장[후장화]으로 나누어졌다. 후...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흥복(興福)은 승가산(僧伽山)[56m]에 있는 흥복사(興福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흥복사는 원래 650년 고구려의 고승 보덕대사가 승가사를 지은 곳으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절이 파괴된 뒤 1625년(인조 3) 김제 사람 흥복이 재산을 털어 다시 절을 짓고 흥복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흥복은 당시 김제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흥복사(興福寺)는 1954년 불교 정화 운동 때 임시 조계종 전북종무원으로 약 1년간 교단의 행정본부가 되었으며, 1961년에는 승려 월주(月珠)가 금산사와 흥복사의 주지를 겸임하면서 전라북도 지역 불교 정화 운동의 핵심 구실을 담당하였다.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온 보덕(普德)이 창건하여 처...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흥복사에 있는 조선 후기 삼존불상. 흥복사는 650년(의자왕 10)에 고구려에서 온 보덕(普德)이 창건한 사찰로 승가사라고도 불렸다.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25년(인조 3) 김제에 살던 흥복처사(興福處士)가 기원도량으로 삼아 극락전을 중건하고 흥복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목조삼존불좌상이 있고, 관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