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정평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골탕 먹은 소금장수」는 김제 출신인 정평구(鄭平九)를 통해 속임수를 잘못 쓰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당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교훈담이다. 이를 「소금장수 골탕 먹인 이야기」라고도 한다. ‘소금장구’란 소금장수의 사투리이다. 담뱃잎을 공짜로 얻으려다가 도리어 소금장수에게 있는 것까지 빼앗긴 정평구가 이를 만회하고...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서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당산에 쓴 명당」은 김제 출신인 정평구(鄭平九)가 친구를 돕기 위해 거짓 봉분을 세우고 명당자리를 얻었다는 풍수담이다. 정평구는 청렴결백한 친구를 위해서 거사(居士)를 만나 당산의 명당자리를 얻었지만, 아무리 명당이라고 할지라도 당산에 묘를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평구가 거짓 봉분을...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두 아내와 선달벼슬을 얻은 이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시대에 무과 출신이면서 임관되지 못하고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선달이라는 호칭이 붙여지게 되었는데, 「두 아내와 선달벼슬을 얻은 이씨」는 변변치 못한 사람이지만 그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선달벼슬이라도 하게 하여 명문가를 이루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벼고을농경문화테마파크[http...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천냥기생과 꾀보머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신화·전설·민담으로 나누는 것이 세계적인 통례로 되어 있다. 이 셋 사이에 확연한 선을 긋는 것은 곤란하며, 서로 넘나드는 경우도 있고 하나가 다른 것으로 전환되기도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정리할 수 있다. 신화·전설·민담을 구별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내용상의 구분인데, 신화가 신성성(神聖性...
-
1990~1995년 조정래가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평야를 배경으로 쓴 대하 역사소설. 작가 조정래는 1990년 12월 11일부터 『아리랑』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아 12권을 완간하였다. 1998년에는 『아리랑』 프랑스어판 제1부 3권이 4월 말에 아르마땅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제1회 노신(魯迅)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에는 『아리...
-
2006년 12월과 2008년 4월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한 사건. 20세기에 들어 중국·러시아 등 후발 산업국가들의 개발이 맹렬히 진행되면서 시베리아와 유라시아 등지를 오가는 철새의 주요 서식지인 하천과 습지가 지속적으로 파괴되었고, 이에 따라 터전을 잃어버린 철새들이 인간의 경작지나 주거지까지 날아와 먹이를 구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기르는...
-
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옛 무덤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이른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 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원할...
-
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옛 무덤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이른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 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원할...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마을의 위치는 만경면 남쪽 13리이며, 백제시대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으로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무읍(武邑)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김제군 관할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부윤현(富潤縣)으로 바뀐 뒤 잠시 임피현에 속하였다. 그 후 만경현(萬頃縣)에 속하였다가 현이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현에...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대형(郭戴炯)은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출신으로, 1926년 중동학교에 재학 중 김재문(金載文)·황정환(黃廷煥) 등과 중동학교 대표로 6·10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6·10만세운동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중심으로 전문 학생층의 계획과 중앙고등학교와 중동학교 중심의 중등 학생층의 계획으로 추진되었다. 전문 학생층의 시위 계획...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대한불교 원효종 소속 사찰. 대한불교 원효종은 비구와 대처의 분쟁에서 조계종을 이탈한 정수용, 손근도, 김수길, 이종구, 손월제 등의 일부 대처승들이 모여 정수용을 초대 종정으로, 경주 망월사를 총 본산으로 하여 출범하였다. 종정(宗正)으로 추대된 정수용은 경주 출신으로 조계종의 승려가 되어 기림사(祗林寺) 주지를 지내고 망월사(望月寺)에 있다가 19...
-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의 주 생산 품목은 분명 쌀이다. 갯지렁이를 잡고, 조개를 캐고, 망둑어를 잡아 농가 수익에 도움이 되었지만 벼농사만큼 소득을 올리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현재 광활면은 쌀보다 하우스 감자로 더 유명하다. 주 생산 품목이 바뀐 것이다. 연간 소득도 쌀보다 감자가 높다고 한다. 광활면에서 봄에 생산하는 하우스 감자가 전국 생산량의 20%를...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전라북도 서부 평야권의 중심지에 위치한 김제시는 주변에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정읍시 등 네 개의 시와 완주군, 부안군 등 두 개의 군이 인접해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김제시를 중심으로 여섯 개 노선의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주변 지역과의 연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동쪽의 전주시·완주군과는 김제~금구 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기독교를 신앙하며 종교 활동을 하는 공동체. 호남에서도 손꼽히는 곡창 지대로 알려진 김제 지역은 그 지리적 특성상 다양한 교통로를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가 육로와 수로 등 다양한 통로를 거쳐 전파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제 서부 지역은 군산 선교부의 전킨[한국명 전위렴] 선교사가 만경강을 건너와 1886년 송지동교회를 세우는 등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자연마을. 구암마을 서쪽에 위치한 둔산마을 동쪽 들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는데, 마을 어귀에 있는 팽나무 밑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거북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마을 이름을 거북 ‘구(龜)’자를 써서 구암(龜岩)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거북 구(龜)자 대신 아홉 ‘구(九)’자를 써서 구암(九岩)으로 바뀌었다. 1995년 8월...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개항기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민족적 정서가 강한 종교와 사상의 흐름이 지속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처음으로 기독교의 교리가 전파된 것은 군산선교부와 전주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1897년 전라북도 김제군 공덕면 송지동에 사는 송원선·강문성 등이 김제의 서남 지방을 담당하였던 선교사 전위렴[W.M. Jun...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 최태용 목사가 창설한 기독교 관련 종교단체.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1935년 김제 출신 최태용 목사가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에서 창설하였다. 그는 원래 예수교장로회 성남노회(成南老會) 교인이었다. 그는 수원농립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기독교의 무교회주의자인 내촌감산(內村鑑山)의 영향을 받고 무교회주의자가 되어 귀국했다. 그는 성서 연구에 몰두하...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동학농민운동가. 김덕명(金德明)의 본관은 언양(彦陽)이고, 초명은 준상(峻相), 호는 용계(龍溪)이다. 동학교문에서는 김필상(金弼相)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김한기(金漢驥)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며, 동생은 김인상(金寅相)이다. 장남은 김홍구(金洪九)이며 손자는 김병욱(金炳旭)이다.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다. 김덕명은 금구대...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의사. 김병수(金炳洙)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삼산(三山)이다. 1898년 10월 18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 51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군산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서울의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병수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지금의...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관성묘(關聖廟)는 중국 촉한의 무장 운장(雲長) 관우의 묘(廟)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관왕묘라 부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관성묘로 격상하여 부르고 있다. 공자의 묘를 문묘(文廟)라 하는데 대해 무묘(武廟)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관우를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우의 신령이 나라나 적을 섬멸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에 있는 마을문고. 김제 희망남포작은도서관은 1961년부터 추진된 마을문고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마을 도서관으로, 전라북도 김제에서 현재까지 활성화되어 있는 대표적인 문고이다. 1945년 이후 도서관의 사정은 매우 빈약해 지도층과 도서관계 지도자들은 식민지 치하 교육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지름길로 도서관 설치 운동을 벌였다. 1군 1관 운동이 전개된...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 김제고속버스터미널은 1982년 9월 전라북도 김제시와 김제군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이후 건물에 대한 개·보수가 수차례 이루어졌다. 김제고속버스터미널은 991.74㎡의 면적에 330.58㎡의 2층 건물·창고 및 주차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에는 매표소를 비롯한 사무실과 화장실 및 야간...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문화 예술 공연 및 전시장. 김제는 예로부터 풍요로운 도작문화의 발상지이자 저명한 학자, 문인, 서화가, 국악인 등이 많이 배출되어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무대인 공연장이나 전시장 등이 없어 그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문화예술인, 사회단체장, 지역 유지 등이 모여 김제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소속 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명칭 중 ‘제칠일안식일’은 기독교가 준수해야 할 안식일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데, 예수가 말한 재림의 징조들의 성취를 통해 재림의 임박성을 확신하고 있다....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역원. 김제 지역은 백제의 벽골군(碧骨郡)인데 신라 때 김제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屬縣)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두었다. 1403년(태종 3) 김제현 출신인 명나라 환자(宦者) 한첩목아(韓帖木兒)의 요청으로 군으로 승격되었다. 김제군의 동쪽으로 금구현(金溝縣) 경계까지 14리, 남쪽으로 태인현(泰仁縣) 경계까지...
-
1952년 9월 4일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광활방조제가 무너져서 논이 물에 잠기자 주민들은 농토를 되찾기 위해 공사를 추진했다. 방조제가 터졌을 당시 논에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동공업사를 축으로 각 지역에서 인력을 동원하여 방조제를 수리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일단 신작로를 기준으로 둑을 막았다. 빠른 시간 안에 공사를 시작해서인지 둑이 무너진 후...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던 대화교 포교당. 대화교(大華敎)는 손은석(孫殷錫)이 서울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손은석은 서울에서 최제우(崔濟愚)를 교조로 하여 제우교(濟愚敎)라는 종교를 만들어 포교를 시작하였다가, 1920년 교명을 용화교(龍華敎)라고 바꾸었다. 뒤를 이은 윤경중(尹敬重)은 불교성을 가미, 교명을 대화교라 고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다. 윤경중은 원래 강경...
-
동곡마을 주민들의 종교, 철학, 삶의 모습은 각기 서로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미래를 향한‘꿈’이라는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하다. 1980년 동곡마을에 동심원을 조성한 송재욱[1941년생] 씨 역시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건실하게 키워 나가고 있다. 그는 1987년 독도의 유일한 주민이었던 최종덕 씨가 사망해 독도가 무인도가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서둘러 울릉도로 향해서 당시...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대청리에서 발원하여 청하면 동지산리에서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동지산천이 발원하는 청하면 대청리는 원래 만경군 북일도면 지역으로 대청산과 대청역이 있어 대청 또는 역촌으로 불렸다. 1581년(선조 14)에 과거에 낙방한 이씨가 정착했다. 옛적에 전주나 서울을 가던 벼슬아치들이 말을 갈아탔다는 의미로 백마동, 또는 박막동으로 불렀으나 행정구역 개편 때 대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동진강휴게소와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 장등마을을 잇는 다리. 동진대교가 놓인 동진강 하구에 있던 나루터는 옛날부터 부안과 김제를 잇는 연결 지점이었다. 부안 사람들이 전주나 서울 등으로 나들이할 때 동진나루를 건너 죽산(竹山)~내재역(內才驛)을 거쳐 김제, 금구 또는 이서를 지나 전주에 갔다. 마찬가지로 외지의 사람들이 부안을 찾을 때도 대부분 동진나룻...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외세에 반대하고 탐관오리를 축출하기 위해 동학 남접(南接)의 주도 하에 진행된 집회. 개항과 더불어 농촌 경제가 점점 파탄 지경에 달했고, 지방관과 토호들의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한편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崔濟愚)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명으로 처형당하고, 동학교도들은 정부의 탄압으로 매우 힘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최제우 사후 최시형이 교단을...
-
189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에 기초를 둔 반봉건·반외세 농민항쟁. 19세기는 순조·헌종·철종 등 어린 왕들이 연이어 즉위하면서 외척 세력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세도정치의 시기였다. 그로 인하여 중앙 정치는 문란해지고, 탐관오리는 백성들을 핍박했으며, 전정·군정·환곡 등의 폐단으로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경주 출신의 몰락 양반 최제우(崔濟愚)가...
-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는 옛 금구현 원평(院坪)으로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봉준(全琫準)[1855~1895]과 김덕명(金德明)[1845~1895]이 이끈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이자, 원평집회와 최후의 결전이라 할 수 있는 원평·구미란(龜尾卵) 전투가 벌어진 동학농민운동사의 중요 무대이다. 금구 출신의 김덕명 장군은 당시 동학 남접으로 전봉준과 함께 가장 치열하게 당...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청하면·진봉면·공덕면·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어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로 행해지면서 두내산현(豆乃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인간이 배설 행위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 뒷간은 인간의 배설물, 즉 오줌과 똥을 처리하기 위한 편의 시설이다. 이를 ‘해우소[근심을 푸는 장소]’ 또는 ‘변소[배설물을 처리하는 곳]’, ‘화장실’ 등이라고도 부른다. 옛 한국의 가옥 구조에서는 화장실을 대개 집의 뒤쪽에 두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며, 뒤를 보는 공간 또는 몸채 뒤의 으슥한 곳으로 ‘뒤를...
-
이기(李沂)는 1848년(헌종 14) 6월 5일 전라북도 김제 만경[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에서 이택진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증(伯曾)이다. 호는 해학(海鶴)·질재(質齋)·재곡(梓谷)·효산자(曉山子) 등인데, 이기는 스스로 남악거사(南嶽居士)라고 부르기를 즐겨했다.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였으나 용감하게 보수적인 사상을 털어 버리고 근대적...
-
1919년 4월 4일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던 만경공립보통학교 훈도와 생도들이 일으킨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경 만세운동은 3·1운동을 통해 조선 독립의 움직임이 거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때 만경면 지사들도 이에 동참하여 지역에서 조선 독립의 열망을 고...
-
1950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우익 인사 등이 인민군과 지역 좌익에 의해 학살된 사건.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우리나라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도 좌우익의 대립이 격렬했고, 일제강점기 이후 탄압을 받았던 지역 좌익 및 지역 주민들은 북한군이 들어오자 우익 인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 9월 27일 당시 김제군 만경면의 지주 정판석 일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고유의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김제 지역에서는 예부터 농경 위주의 생활을 이어 왔으며, 이에 따라 기후와 계절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세시풍속이 발달하였다. 세시풍속은 1년 사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생활양식을 말하며, 해마다 되풀이 되는 민중 생활의 생활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택하여 명절이라 했다. 이때에는...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모악산(母岳山)은 충청남도에 있는 계룡산(鷄龍山) 버금가는 신흥종교의 발생지요 온상지이다. 이강오의 『한국신흥종교총람(韓國新興宗敎總攬)』에 따르면, 계룡산에 있는 신흥 교단은 한국의 신흥종교를 13계통으로 분류할 때 30여 교단 정도이지만 신계계(晨鷄系)와 외래계(外來系)를 제외한 11계통이 골고루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전라북도 모악산과 김제시 금산면,...
-
전라북도 김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야 지대로 과거 1차 산업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다른 고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리던 고장이다. 따라서 의식주의 풍요는 수준 높은 선비 문화로 승화되어 학문과 예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김제 유학(儒學)은 다른 고장과 달리 항상 서화의 흥을 동반한 선비 문화로 계승되어 직업적인 화공이 아니라 선비 출신의 서화인으로 오늘날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실을 뽑을 때 쓰는 기구. 목화의 솜이나 누에고치의 실을 잣는 간단한 수공업의 방적 연장으로 물레바퀴와 가락 사이에 솜을 걸고 물레를 돌리면 가락이 빠른 속도로 돌면서 실을 뽑는다. 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감는 가락, 물레의 몸과 가락을 걸쳐 감아 물레가 돌아감에 따라 가락을 돌게 하는 물레줄, 이 줄에서 힘을 받아 가락을 돌리는 물레바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 데 쓰는 용품. 고리버들이나 싸릿대를 쪼개 결어서 만드는데, 광주리에 비해 바닥이 좁은 대신 둘레의 높이가 높고 둘레에도 날을 넣어 결었다. 바구니에는 같은 재료로 만든 뚜껑을 덮기도 한다. 크기는 20~50ℓ들이가 많다. 지방에 따라 보구리, 보금치, 바구리, 바그미, 보고니, 보금지, 보고니라고도 부른다. 허리에 끼거나 머...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목사. 박연세(朴淵世)는 1883년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서 대대로 농토를 일구어 온 박자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농사를 도우며 인근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다가 군산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전킨(W. M. Junkin)[개명 전위렴]이 세운 영명학교에 입학하여 4년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후 박연세는 당시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에 있는...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학생운동가.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태어난 박종운(朴鍾雲)은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6월 17일 동맹 휴학(同盟休學)을 주도하였다. 당시의 동맹 휴학은 학생들이 교육상 제 문제나 또는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에서 동맹 휴학이 격화된 시기는 1920년대부터인데, 이는 1919년 3·1운동...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토헌(土軒) 박초(朴礎)의 후손이다. 박충길(朴忠吉)은 부장(部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백관들은 권정례(權停例)로써 진하(陳賀)하였다.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종묘와 사직의 주판(主版)을 받들고 먼저 떠나게 하고 왕...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출신의 승려이자 불교 지도자. 박한영(朴漢永)의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子)이다. 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전주, 김제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한영은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들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서 생산되는 포도. 백구포도는 1940년대 이전 부용역(芙蓉驛) 부근에서 일본인 시마모토가 처음 재배하였고, 1960년대 들어 재배 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백구농업협동조합 주관으로 백구포도축제를 개최하여 전국적으로 홍보하기도 하였다. 백구면 일대는 토질이 경사 5도 안팎의 사양토인데다 일조량이 풍부하여 포도 재배에 적합하며,...
-
조선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국경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다른 지역의 변경에 알리기 위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외부로부터 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외적과의 격전지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는데, 평상시에는 1개...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서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신리·양명리·하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신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가 되었다가 동년 8월 31일 상신리를 서도리로 변경하였다. 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고, 마을 위아래로 하천이...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서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신리·양명리·하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신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가 되었다가 동년 8월 31일 상신리를 서도리로 변경하였다. 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고, 마을 위아래로 하천이...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덕산(聖德山)에서 이름을 따서 성덕리(聖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김제군 만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산·나시·남포 각 일부, 상서면 부동·정동을 병합하여 성덕리라 하고 김제군 성덕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가 되었다. 남쪽으로는 김제시 성...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일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산리·독목리·백마리·문명리 각 일부, 이북면 두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쌍감리라 하고 김제군 쌍감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쌍감면이 황산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황산면 쌍감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
-
199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심에서 시골을 찾아 내려가면 방송이나 잡지에서 마치 기인이라도 나타난 듯 호들갑을 떨며 일거수일투족을 쫓아서 그려내기 바빴다. 하지만 어느새 귀농은 새로운 삶의 대안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동곡마을에도 번다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삶을 찾아 유입한 이를 만날 수 있었다. 마을회관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1㎞가량...
-
1980년대 감자 농사의 성공으로 화양마을을 포함한 광활면으로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주하였다. 이들은 현지 주민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광활면에서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지금은 나이가 50~60대로 면과 마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임직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는 본래 있던 토백이들은 별로 없어요. 그...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교단 소속의 교회. 여호와의증인은 천년 왕국 신앙, 성서적 엄격주의 등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독특한 흐름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공식 이름은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이사야서」 43장 10절에 기록된 “너희가 바로...
-
신앙생활을 위해서 동곡마을로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 나갔을까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얼핏 봐도 농사지로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동곡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곳은 기본적으로 농토가 부족한 마을이야.”라는 말을 곧잘 듣게 된다. 마땅히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서 그나마 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조금 이루어질 뿐이고, 그...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되는 쌀. 우리나라의 갯벌 대부분은 하구 갯벌이다. 여러 가지 영양분이 강을 타고 갯벌에 쌓이며, 이 영양이 가득한 갯벌에 땅을 만들어서 벼를 심어 키운 간척지 쌀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김제 오씨피오 쌀은 물 좋고 공해 없는 서해안 청정 간척지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되는 쌀이다. 질 좋은 벼를 엄선하여 최신 설...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에 있는 전통 옹기 제조업체.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 그릇이다. 예로부터 된장, 간장, 김치, 젓갈과 같은 발효 음식을 저장하는 용기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숨 쉬는 그릇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옹기의 기본 재료가 되는 태토(胎土)는 자기들보다는 수비(水飛)를 덜 한다. 따라서 작은 모래 알갱이나 돌덩이도 남...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마치 누워 있는 용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와룡망해(臥龍望海) 형국이어서 와룡리(臥龍里)라 하였다. 한편, 용 두 마리가 싸움을 벌이다 한 마리가 지쳐 쓰러져 죽어서 산을 이루었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마을 이름을 와룡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말기 김제군 모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수리 시설인 벽골제(碧骨堤)는 노령산맥(蘆嶺山脈)의 중봉인 모악산(母岳山)·구성산(九城山)·상두산(象頭山) 등에서 발원한 풍부한 물이 흘러 이루어진 원평천(院坪川)·두월천(斗月川)·감곡천(甘谷川)·금구천(金溝川)·신복천·오주천의 물을 모았다가, 금만평야를 비롯하여 정읍과 부안군 일부 지역 농지에 농업용수로 공급하였다. 오늘날의 김제...
-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정책 추진의 영향을 받아 전국적인 이촌향도(移村向都) 현상이 나타났으며, 수많은 농촌의 구성원이 도시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인구의 이동으로 농촌마을에서는 인구 과소에 따른 유효 노동 인력 부족이, 도시에서는 인구 과밀에 따른 노동인력 과잉으로 실업의 증가라는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1997년 IMF 외...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일어난 동학농민군의 전투.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거한 뒤 조선 정부가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군을 끌어들이자 동학농민군은 척왜(斥倭)를 부르짖으면서 1894년 9월에 다시 일어나 북진하였다. 10월 하순에 주력부대는 논산에서 합세한 다음 공주를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농민군의 논산 집결 소식이 정부에 보고되자 관군과 일...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전라도 최초의 본당은 금구의 배재[현재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었다. 본당은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신부가 일정한 곳에 상주하면서 관할 구역의 공동체를 사목하는 교회 단위를 말한다. 한국의 성당은 오랫동안 본당이 없이 공소로만 운영되었다. 공소는 본당보다 적은 단위로써 신부가 주재하지 못하는 지...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도정공장. 오오쓰미[大隅] 도정공장 또는 부용 도정공장이라고 부르는 월봉 도정공장은 일본이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할 때 지어진 건물이다. 일제시대 김제 만경평야는 쌀과 돈이 넘쳐흘러 조선 식민지 침탈에 나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기에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김제 지역에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근처에 항구를...
-
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호는 죽헌(竹軒)이고, 이명은 종규(種奎)이다. 1859년 10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유종규(柳鐘奎)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서서히 강탈당하자 1906년 4월 전라도 태인에 있는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의병을 모집할 때 참여하여 임병찬(林炳瓚)·최재...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정치가. 윤제술(尹濟述)의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운재(芸齋)이다. 1904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앙청에서 태어났다. ‘일이관지(一以貫之)’와 ‘유성(惟誠)’ 등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처럼 6선의 오랜 의정활동에서도 문교위원으로만 일관했고, 철저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몰두해 온 지조로 일생을 바쳤다. 윤제술은 7세 무렵 동네 서당에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정월 초하루에 편을 나누어 윷을 던져 승부를 겨루는 놀이.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그것이 나타내는 형상을 통해 일정한 행로를 통과하도록 말[馬]을 놓아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윷놀이는 음력 정월 초에 가족과 친척 그리고 정든 이웃이 모이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두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편을 짜서 즐기는 놀이이다. 멍석이나 가마니에 윷판을 만들고,...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개항기 의병 항쟁.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한말 의병항쟁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이 계기가 되어 발생한 것으로, 활동 시기에 따라 을미의병·병오의병·정미의병 등으로 구분된다. 을미의병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그리고 복제(服制)의 변경 조치로 발생하였고, 병오의병은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19...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실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증(伯曾), 호는 해학(海鶴)·질재(質齋)·재곡(梓谷)·효산자(曉山子)이다. 이기(李綺)라고도 쓴다. 이기(李沂)[1848~1909]는 30대 중반부터 생활 근거지를 구하여 김제·대구·순창 등지를 전전하다, 44세에 황현(黃炫)의 주선으로 구례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학문과 세무에 뜻을 두었다. 1...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병률(林秉律)은 1891년 8월 30일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성장해서는 주로 군산에서 활동했는데, 1919년 3월 군산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朴淵世)와 이두열(李斗烈) 등은 서울에서 내려온 김병수(金炳洙)로부터 독립선언서와 함께 서울의 시위 상황을...
-
이민자들에게 자녀는 미래다. 그래서 바다일도 나가고, 땅도 팔아서 자녀들을 교육시킨다. 가깝게는 김제로, 익산으로, 전주로 학교를 보내고, 멀리는 서울까지 유학을 보낸다. 1960년대에 광활면 주민 중 대학생이 192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광활이 지금은 광활하면 김제 가서도 부자 동네라고 그러는데,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 때 여기 대학생만 192명이나 있었어요. 그니까 왜 그런...
-
개항기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순국지사. 장태수(張泰秀)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齋)이다. 1841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구 상신리] 서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부협판을 지낸 장한두(張漢斗)이다. 1861년(조선 철종 12)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제수된 뒤 전적(典籍), 선략장군부사과(宣...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 아버지는 첨정(僉正)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이다.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1570년(선조 3)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각별한 후원과 촉망을 받았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이 되었고, 1585년 홍문관수찬이 되었다. 본래 서인이었으나 이이를 버리고 박순(朴淳)·성혼...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정한조(鄭瀚朝)는 1890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거유 석정 이정직(李定稷)의 문하에 들어가, 뛰어난 향학열로 18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하였다. 구(舊) 학문만을 배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배워서 나라의 동량이 되어야 한다는 이정직의 가르침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공업전수학원에 입...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조성만은 1964년 12월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모산마을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 조찬배와 어머니 김복성 사이에서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조성만은 용암초등학교를 마치고 전주 서중학교와 해성고등학교를 거쳐 1984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화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는 민주화와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눈을...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중양절은 날짜와 달의 숫자가 겹치는 명절로서,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9는 원래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쳤다는 뜻으로 중양·중광(重光) 등이라고도 한다. 중구는 ‘9[九]’ 수가 겹친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隅數]를 ‘음(陰)의 수’라 하...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매년 지평선지푸라기·풀문화센터 주관으로 개최되는 지푸라기풀공예경연대회. 지평선지푸라기풀공예경연대회는 지푸라기를 실생활에 밀접한 민구(民具)를 제작하는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되짚고, 이를 소중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움직임이다. 현재 지푸라기풀공예는 공예의 한 장르로 발전하여 생활용품으로서라기보다 예술 작품으로 재조...
-
동곡마을에는 기독교인이면서 다른 이웃 종교와 더불어 상생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특히 조선영토 회복운동을 하고 있는 송재욱 씨가 세운 동심원이 있다. 동심원은 개인이 만들어 놓은 역사박물관 같은 곳이다. 이곳에 가면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미래를 다짐해 보게도 된다. 동심원 은 1980년도에 조성된 공원으로 작은 박물관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된 금산교회(金山敎會)는 1905년 미국 선교사 테이트(Lewis Boyd Tate)가 처음 세운 뒤, 1908년 새 건물을 마련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교회 건물은 한옥으로 ㄱ자형인데 이러한 건축 구조는 남녀 신도의 자리를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남녀유별이라는 전통 사회의 관습을 해치지 않으려는 방안이었다. 1882년 조미 수호 통...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추석은 중추절(中秋節)이라고 하여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명절이다. 이를 ‘가배(嘉俳)’, ‘한가위’ 등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2대 명절이다. 이때쯤에는 백과가 만발하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최고의 명절로 친다. 일 년 내내 물자가 귀하던 시...
-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다. 우리나라 마을 대부분은 집성촌(集姓村)으로 씨족이 구성되고, 마을의 역사가 시작된다.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은 반대로 땅이 먼저 생기고 사람들이 들어온 곳이다. 농토를 일궈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안고 전국 각처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곳은 각성바지들[성이 각각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사람 모두 어렵게 살다...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버스 터미널과 철도 터미널.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버스 터미널과 철도 터미널은 운송업이라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시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김제시의 버스 터미널로는 김제고속버스터미널, 김제시외버스터미널, 원평터미널, 만경터미널 등이 있다. 철도 터미널로는 김제역, 부용역, 와룡역이 있으나 현재 부용역과 와룡역은 여객 터미널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특산물은 어떤 지역의 특별한 산물로서 지역의 문화, 지형, 기온, 토양 등에 따라 그 차이가 있다. 한국의 예부터 지방적 성격이 강하며, 지방마다 고유한 문화와 그에 따르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산물이 많다. 이러한 지방의 많은 특산물은 현대화, 도시화로 접어들면서 지방 특산물, 지방 관광 상품, 지방 향토 음식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하였다...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가까이서 보면 평사낙안(平沙落雁), 멀리서 보면 금환낙지(金環落地) 형국이므로 평사리(平沙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산리·등용리·주자리·대하리·송내리 각 일부, 초처면 성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평사리라 하고 김제군 하리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하리면이 봉남면으로...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에 있는 건설 분야 안전진단 전문 기관. (주)한국건설기술공사는 건축, 토목 분야의 품질시험 및 관리를 비롯하여 교량 및 터널, 수리 분야의 안전진단과 친환경 건축자재의 연구 개발 및 생산, 그리고 각종 기술 용역 컨설팅 등 건설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005년 3월 광주광역시 북구에 (주)한국재료기술연구원을...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에 있는 해학 이기의 생가. 이기(李沂)[1848~1909]는 황현(黃玹)·이정직(李定稷)과 함께 호남 3절로 불렸으며, 유형원(柳馨遠)[1622~1673]·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학풍을 이어받은 조선 말 실학자이자 항일 독립투사이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전봉준(全琫準)[1855~1895]을 찾아가 동학군을...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증조할아버지는 홍처심(洪處深)이고, 할아버지는 홍수진(洪受晋)이며,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홍우전(洪禹傳), 어머니는 대사헌을 지낸 이상(李翔)의 딸이다. 홍계희(洪啓禧)는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에서 태어났는데, 기록에 보면 “몽산이 맑고 깨끗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데 홍계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