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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무과급제 교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710
한자 鄭種武科及第敎旨
영어의미역 Military Service Examination's Gyoji of Jeong J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 377[노리1길 36-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지
관련인물 정종
발급자 세종
수급자 정종(鄭種)
발급일시 1442연표보기
소장처 오노재(吾老齋) 정종(鄭種) 종손가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 377[노리1길 36-7]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고령 출신의 무신 정종(鄭種)에게 발급된 무과급제 교지.

[개설]

고령 지역에 세거해 온 세조 조의 적개공신(敵愾功臣) 정종의 종손가에서는 고문서로 교지(敎旨)·호구단자(戶口單子)·통문(通文)·소지(所志)·품목(禀目)·완문(完文) 등 총 45건에 48매를 소장하고 있는데, 「정종 무과급제 교지(鄭種 武科及第 敎旨)」도 그 중 하나다.

오로재(吾老齋) 정종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1442년(세종 24) 무과에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11월에 이징옥(李澄玉)의 난이 일어나자 종성절제사로서 이징옥을 포살(捕殺)한 공으로 군공(軍功) 1등에 책록되고,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그 후 1467년 5월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율원군(栗元君) 이종(李徖)의 휘하에서 총통군(銃筒軍)을 이끌고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어 행충무위상호군겸오위장(行忠武衛上護軍兼五衛將)에 임명되고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졌다. 덕곡면 반성리에 있는 반암서원(盤巖書院)에 제향되고 있으며,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제작발급경위]

「정종 무과급제 교지」정종 종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45건의 고문서 중 하나로, 정종이 1442년(세종 24)에 무과 병과에 급제하면서 받은 교지이다.

[형태]

장지로 1매로 되어 있으며, 규격은 67×97㎝이다.

[구성/내용]

교지에는 ‘수의교위행중군섭사정정종무거병과오인급제출신자(修義校尉行中軍攝司正鄭種武擧丙科五人及第出身者)’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정종 무과급제 교지」는 1435년(세종 17)에 발급된 「이임무과급제왕지」[보물 제1006호], 「조서경무과급제왕지」[보물 제954호] 다음으로 시기가 오래된 무과급제 교지로 추정된다. 특히 왕지에서 교지로 바뀐 후 발급된 교지로는 시기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국왕신보(國王信寶)’라는 어보가 찍혀 있다. 교지에 나오는 관명 중 섭사정은 1466년(세조 12) 부사정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교지에서 무과를 ‘무거’로 표기한 점도 특징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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