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 공원 관리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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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한용운의 묘소.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본명은 한봉완(韓奉玩)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다. 아명은 유천(裕天), 본명은 정옥(貞玉)이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면서 승려 시인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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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소설가 김말봉의 묘. 김말봉(金末峰)[1901~1961]은 1917년 일신 여학교를 수료하고 서울에 올라와 1918년 정동에 있는 정신 여학교(貞信女學校)를 졸업하였다. 1919년 황해도 재령 명신 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1923년 동경 송영 고등학교를 거쳐 1927년 도시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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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 중랑구 경계의 망우 공원묘지 내 구리시 방향에 있는 근현대 소설가 김이석의 묘. 김이석(金利錫)[1915~1964]은 일찍부터 문학적인 재질을 나타내 보통학교 때인 1925년에 동요 「돌배나무」를 발표하였다. 1927년 평양 종로 보통학교와 1933년 평양 광성 고등 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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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방정환의 묘. 방정환(方定煥)[1899∼1931]의 호는 소파(小波). 일제 강점기 한국 아동 문학 초창기에 활동한 작가이자 실천가이다. 최초의 아동 문화 운동 단체인 ‘색동회’ 등을 조직하여 소년 운동을 주창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였으며,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망우 공원 관리 사무소에서 구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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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묘. 오세창(吳世昌)[1864~1953]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명(仲銘), 호는 위창(葦滄)이다. 서울 시동(詩洞)[청계천 2가]에서 역관 오경석(吳慶錫)[1831~1879]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천도교인이다. 아버지 오경석과 함께 민족의 개화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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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유상규의 묘. 유상규(劉相奎)[1897~1936]의 본관은 강릉, 호는 태허(太虛)이다. 1897년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서부동에서 출생하였다. 유상규는 경성 의학 전문학교 수료 후 의학을 통한 민족 계몽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폭탄을 던지는 방식의 독립운동도 필요하지만 꾸준하고 점진적인 독립운동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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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 문명훤의 가묘. 문명훤(文明煊)[1892~1958]의 호는 지기(知期)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피탈되자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의 방향을 모색하다가 병을 얻어 귀국하였다.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맹산(孟山)에서 시위를 주동한 후 다시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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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법률가이자 국어 학자인 박승빈의 묘. 박승빈(朴勝彬)[1880~1943]은 1907년 27세 때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주오[中央]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07~1910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했으나 1910년 국권 피탈이 되자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925년부터 1932년까지 7년간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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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박희도의 묘. 박희도(朴熙道)[1889~1951]는 해주 의창 학교 보통과와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1939년 1월 『동양지광』 창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친일파로 전향하였으며 조선 배영 동지회 연맹 평의원[1939],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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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광조의 묘. 서광조(徐光朝)[1917~1964]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하여 1917년 3월 23일 평양에서 장일환, 강석붕 등과 함께 조선 국민 회의를 비밀리에 조직하였다. 전라도 지역 책임자로 항일 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8년 3월 16일 평양 지방 법원에서 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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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산림학자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는 일본인으로서 1909년 일본 류오 농림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키타 현의 대관 영림서에서 근무하였다. 1914년 조선으로 와서 조선 총독부 농공상부 임업 산림과에 근무하면서 조선 잣나무의 노천 매장법 등을 통하여 조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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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묘터. 안창호(安昌浩)[1878~1938]의 호는 도산(島山)이다. 어려서부터 한학과 유학을 공부하였다. 1894년 상경하여 구세 학당에 재학 중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학문을 수학하면서 근대적 사고와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졸업 후 귀향하여 독립 협회 관서 지부를 설립하여 근대 민족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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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의사 오긍선의 묘. 오긍선(吳兢善)[1878~1963]은 연세 대학교 의과 대학의 전신인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1917년 한국 최초 피부과를 창설하였고,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서 최초로 한국인 교장을 역임하는 등 현대 의학 도입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1919년에는 경성 보육원 및 양로원을 설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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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양화가 이인성의 묘. 이인성(李仁星)[1912~1950]은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28년 개벽사가 주최하는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에서 「촌락의 풍경」으로 특선을 했으며, 1929년 제8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그늘」 로 입선하여 화가로 인정받게 됨과 동시에 천재 소년 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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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서양화가 이중섭의 묘.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호는 대향(大鄕)이다. 일제 강점기 때 평양의 종로 공립 보통 학교에 다녔는데, 이 무렵 고구려 벽화가 그려진 고분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평북 정주 오산 학교에서 화가 임용련·백남순 부부의 지도를 받으며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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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의학자·국어학자인 지석영의 묘. 지석영(池錫永)[1855~1935]은 1855년 한성부 중서훈동(漢城府中署勳洞)[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에서 지익룡(池翼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의학자로 우두 보급에 힘썼으며, 한글 전용을 제창한 국어학자이기도 하다. 1908년 국문 연구소 위원에 임명되어, 이듬해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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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대중 가요 가수 차중락의 묘. 차중락(車重樂)[1942~1968]은 장충 초등학교와 경복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양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차중락이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화 백화점[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4층의 음악 감상실에서 접하게 된 팝과 재즈에 심취하면서부터이다. 사촌형 차도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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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아동 문학가 최신복의 묘. 최신복(崔信福)[1906~1945]의 본명은 영주(泳柱)이다. 배재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귀국 후 수원에서 화성 소년회(華城少年會)를 조직하여 소년 운동에 투신하였다. 윤석중과 함께 색동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27년에는 개벽사에 입사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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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최학송의 묘. 최학송(崔鶴松)[1901~1932] 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15년에 성진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가난 속에서 문학에 심취하였다. 1918년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