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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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古忠臣金德齡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김덕령이 조정의 간신들로부터 모함을 받아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선조(先祖)가 중국 지관이 잡은 명당을 빼앗아 묘를 써서 김덕령을 낳았다. 김덕령은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부모상(父母喪)을 당해서 전장(戰場)에 나아가지 못했다. 김덕령은 조정 간신들의 모함으로 역적이 되어서 사형을 당하지만 죽지 않았다. 김덕령은 만고충신비를 세워주면 죽겠다고 약속하고, 자신의 비늘을 쳐서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1986년에 간행된 『한국구비문학대계』 6-8, 전라남도 장성군편에 수록되었다.
1990년에 간행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었다.
광주광역시의 무등산에는 명당이 있다. 조선 사람이 이 명당에 묘를 쓰면 안 되고, 중국 사람이 묘를 써야 큰 인물이 난다고 했다. 김덕령 선조가 이 명당에 묘를 써서 김덕령이 무등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김덕령은 새벽마다 말을 타고 무등산을 일곱 바퀴씩 돌았고, 무등산에서 장안(長安)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은 김덕령에게 출전할 것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김덕령은 부모상을 당해서 전쟁에 나갈 수 없었다. 조정의 간신들은 출전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서 김덕령을 역적으로 모함하였다. 왕은 김덕령은 잡아서 사형을 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김덕령을 죽일 수 없었다.
김덕령은 왕에게 자신이 역적으로 몰려 죽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하면서, 만고충신김덕령비(萬古忠臣金德齡碑)를 세워 주면 스스로 죽겠다고 약속하였다. 왕은 만고충신김덕령비를 세우게 하였고, 김덕령은 자기 몸에 있는 비늘을 꺾어서 죽었다.
「만고충신 김덕령」은 인물전설로서 김덕령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만고충신 김덕령」 이야기에는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김덕령 전설이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임진왜란 출전과 부모상 갈등은 김덕령이 왕과 조정으로부터 역적으로 몰리게 된 이유이며, 이로 인해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기장수 설화의 중요 모티프인 겨드랑이 비늘[날개]과 제거가 김덕령을 비극적 영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