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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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帝國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별 |
건립 시기/일시 | 19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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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2년[추정] - 광남관에서 제국관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5년 - 무등극장 개관 |
현 소재지 | 11번가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102-12[충장로1가 25-1]![]() |
원소재지 | 제국관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 |
성격 | 극장 |
소유자 | 구로세 도요조[黑瀨豊藏] |
1932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에 개관한 극장.
제국관(帝國館)은 1927년에 개관한 광남관(光南館)의 후신으로, 관주(館主)는 일본인 구로세 도요조[黑瀨豊藏]였다. 일본 도호[東寶]영화사의 전속 극장이기도 하였다.
광주도시철도1호선 문화전당역 3번 출구 방향으로 나가서 우측 블록에 있었다. 좌측은 아시아음식문화거리이다.
1927년 광남관으로 개관하여 1932년 제국관으로 개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6년에는 광일지(光日紙)의 독립을 기원하는 광주부민(光州府民)의 단결 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 공화극장(共和劇場), 동방극장(東方劇場)으로 이름을 두 번 더 바꾸었다. 1955년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무등극장(無等劇場)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무등극장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멀티플렉스로까지 진화하였으나 경영난으로 2012년 폐관하였다.
제국관은 건물 상하층과 장외까지 포함해 총 67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1945년 광복 후 일제의 적산(敵産)으로 처리되었다. 극장에서 오래 일했던 전기섭(全起燮)이 불하(拂下)를 받고, 지배인이었던 최흥열(崔興烈)이 경영을 전담해 공화극장, 동방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재 제국관이 있던 자리에는 극장이 아닌 다양한 업종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광주좌(光州座)와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우선시 되었던 차별적 공간이었다. 1931년 광주좌가 불타고, 1935년 광주극장(光州劇場)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영화 상영을 위한 설비가 완비된 극장이었다는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