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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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春馣 |
영어공식명칭 | Lee Chunam |
이칭/별칭 | 문원(聞遠),송헌(松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개설]
이춘암(李春馣)[1565~?]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전란 후에는 자인향교(慈仁鄕校) 중건에 앞장섰다.
[가계]
이춘암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원(聞遠), 호는 송헌(松軒)이다. 아버지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를 지낸 이응규(李應奎), 어머니는 임백성(林白成)의 딸 옥구 임씨(沃溝林氏), 할아버지는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을 지낸 이정(李禎), 증조할아버지는 종부시 정(宗簿寺正)을 지낸 이인부(李仁溥), 부인은 배몽열(裵夢說)의 딸 대구 배씨(大邱裵氏)이다.
[활동 사항]
자인현 출신의 이춘암은 일찍이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기업(李起業)·이억수(李億壽), 동생 이춘함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자인 의병장 최문병(崔文炳) 휘하에서 활약했다. 1596년(선조 29) 대구에서 열린 팔공산 회맹(八公山會盟)에 참여하였고, 1597년에는 종숙 및 동생과 함께 곽재우(郭再祐)를 도와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을 방어하였다. 1603년(선조 36)에는 여러 유생들과 함께 상소문을 올려, 전란으로 소실된 자인향교 중건을 청원하였다. 당시 자인현은 경주부의 속현(屬縣)이었기 때문에 한 고을에 두 개의 향교를 둘 수 없다며, 경상도 관찰사가 향교 중건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춘암 등이 주도하여 자인현은 주읍과 거리가 먼 탓에 이전부터 향교가 설치되었고, 그로 인해 최문병과 같은 의병장이 배출되었다고 주장하여 향교 설치를 허가받았다. 관직은 장사랑(將仕郎) 김제 훈도(金堤訓導)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이춘암은 사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