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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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汀秀 |
영어음역 | Yi Jeong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64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현덕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9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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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몰년 시기/일시 | 1953년 2월 15일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645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정수(李汀秀)는 1888년(고종 25) 9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는 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전라도·충청도 상인 등 400여 명도 합세하여 밤늦도록 시위를 전개하다 경찰의 발포로 해산하였다.
이정수는 다시 이강률·이정철·임만규 등과 모여 다음 장날에 2차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이강률에게 화개면사무소 면장과 직원들에게 고하는 사직 권고서와 장날 상인·주민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는 광고문을 작성하게 하였다. 그리고 4월 10일 밤, 임만규로 하여금 사직 권고서와 광고문을 화개면사무소 앞에 붙이게 하였다. 1919년 4월 11일 화개장터에서 2차 만세 시위를 하려던 순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하동경찰서로 연행되어 가면서도 계속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1919년 6월 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다. 법정 투쟁을 위해 항소했으나 7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53년 2월 15일 작고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2001년 화개장터에 이정수 등의 4월 의거를 기리기 위해 화개장터 삼일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