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0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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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州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성우 |
[정의]
조선 전기 정구가 편찬한 경상도 함안군의 읍지.
[편찬/간행 경위]
함주 군수[함안 군수] 정구(鄭逑)가 쓴 『함주지(咸州誌)』의 서문에서 편찬과 간행 계기를 엿볼 수 있다. “함주군은 땅이 넓으나 생산되는 산물은 많지 않고 풍속이 저속해서 순후(淳厚)하지 못하였다. 옛날을 상고해 보니 선비를 배출한 곳이 아닌 것도 아니며, 지금을 살펴보니 아직 문헌을 고징(考徵)할 것이 없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함주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불민(不敏)한 내가 여기와서 후일에 다시 오늘날을 묻는 이가 있다면 나도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라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정구가 평소 가까이 지내던 군인(郡人) 박여선(朴汝宣)·박제인(朴齊仁)·이정(李瀞)·오운(吳澐) 등과 함께 모여 여러 차례 의논하던 중에 정구 본인이 수집한 『산천민물록(山川民物錄)』을 바탕으로 군지(郡志)를 편찬하게 되었다. 즉 사림 출신의 군수와 고을 사람의 동참으로 편찬된 읍지는 고을을 다스리는 데 참고하려는 의도와 고장의 문화를 정리하려는 목적에서 편찬하였다.
[서지적 상황]
『함주지』는 임진왜란 때문에 발간하지 못하다가, 1603(선조 36)에 오운에 의하여 재등사되었고, 영조 때 군수 이휘진(李彙晉)에 의하여 증집(增輯)되었다. 다시 100여 년 후인 헌종 때 군수 이덕희(李德熙)에 의하여 계수(繼修)되었는데, 전자를 제1권, 후자를 제2권으로 하였다. 2권의 내용 가운데, 1권에 없는 것으로 전부(田賦)·조적(糶糴)·진공(進貢)·봉름(俸廩)·군병(軍兵)·임수(林藪)·시장(市場)·목장(牧場) 등이 있다. 『함주지』가 편찬된 이후 한말까지 누차 편찬되어 각지에 이본(異本)인 인본(印本)과 사본(寫本)이 전하고 있다.
[형태]
1책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함주지(咸州誌)'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서문(序文)을 비롯해 경사상거(京師相距), 사린 강계(四隣疆界),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풍속(風俗), 각리(各里), 호구(戶口), 전결(田結), 산천(山川), 토산(土産), 관우(館宇), 성곽(城廓), 단묘(壇廟), 학교(學校), 서원(書院), 역원(驛院), 군기(軍器), 봉수(烽燧), 제언(堤堰), 관개(灌漑), 정사(亭榭), 교량(橋梁), 불우(佛宇), 고적(古蹟), 임관(任官), 명환(明宦), 성씨(姓氏), 인물(人物), 선행(善行), 규행(閨行), 견행(見行), 문과(文科), 무과(武科), 사마(司馬), 총묘(塚墓), 정표(旌表), 책판(冊板), 제영(題詠), 총담(叢談)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모방하였으나 항목 설정이 훨씬 상세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없는 경사상거, 각리, 호구, 전결, 군기, 제언, 관개, 임관, 문과, 무과, 사마, 정표, 책판, 총담 등의 항목이 첨가되었다. 현존하는 읍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후 편찬되는 읍지의 모범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구성 내용 중 각리조는 사방 경계, 동서남북의 거리 및 이의 크기, 속방(屬坊)의 수와 명칭, 토지의 비척, 수한(水旱)[장마와 가뭄]의 정도, 거민(居民)의 신분·풍속 등이 기재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촌락 편성과 주민의 신분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호구조와 전결조는 각 리를 단위로 거주하는 사람의 남녀 수와 전결 수가 기록되어 있어 지방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