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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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館里 |
영어공식명칭 | Myeonggw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개설]
명관리(明館里)에는 명지골·명동(明洞)·서재골·평광(平廣)의 자연 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명관리(明館里)의 명칭은 명동 마을과 평광 마을의 지명을 합하여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명관리는 약 700년 전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형성되었다. 원래는 평관(平館)이던 것을 1586년(선조 19) 함안 군수 한강(寒岡)정구(鄭逑)가 평광리(平廣里)로 개칭하였고, 뒤에 명관리로 개칭하였다. 자연 마을은 장안동·지현동(知見洞)·모영동(毛榮洞)·명지동(明知洞)·사리동(沙里洞)의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500년 전 성종(成宗) 때 남하한 경상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평광에 복지(卜地)를 정하고 동구에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하고 ‘백이산지(伯夷山地)에 금구몰니(金龜沒泥)하니 여조선(與朝鮮)으로 오자손(五子孫)이 망(亡)’ 이라는 비결(秘訣)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성지도사(聖知道士)가 함안면 파수리배다치(拜多峙) 고개에서 멀리 평광 마을을 바라보면서 크게 치하(致賀)하고 세 번 절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자연환경]
명관리는 백이산의 서쪽 비탈면에 형성된 지역으로 산세와 지형이 아름다워 "등등가장(嶝嶝可欌)이요, 곡곡가거(谷谷可居)니 즉, 고관대작(高官大爵)과 충효열사(忠孝烈士)가 끊이지 않을 곳이나, 건국(乾局)이라서 부불가백석(富不可百石)이라"는 예언이 전해진다고 한다. 명관리의 하천은 동남쪽 백이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며 명관천을 형성하고 있다. 수구(水口)는 북쪽으로 나 있다. 명동에서 북쪽 평광동(平廣洞)으로 내려가면 함안군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인 명관 저수지가 있다. 1977년에 완공된 명관 저수지는 만수 97만 톤이며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을 막은 것으로 잉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현황]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82가구에 143명[남 69명/여 7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평광동과 명동이다. 군북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들어가면 사방이 큰 산맥으로 둘러싸인 평광동이 있고 평광동에서 1㎞ 정도 더 들어가면 명동이 있다. 명관 저수지의 상류에 위치한 명동은 33가구에 43명이 살고 있으며 여초 현상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특징이 보인다. 하류의 평광동은 49가구에 100명이 살고 있어 명동보다 규모가 크고 남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관리에는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6호인 「도천재 단서 죽백(道川齋丹書竹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