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은 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25
한자 谷隱 遺稿
영어공식명칭 Gokeunyug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59년연표보기 - 『곡은 유고』 간행
성격 시문집
저자 이병훈
간행자 이상섭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24자[서문·발문]|10행 26자[본문]
규격 20.8×30.4㎝|15.9×22.9㎝[반곽]
어미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곡은 유고(谷隱遺稿)
판심제 곡은 유고(谷隱遺稿)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이병훈의 시문집.

[저자]

이병훈(李秉焄)[1885~1957]의 자는 태근(泰根)이며,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1906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로 이거하여 서재의 이름을 월와(月窩)라고 했으며, 1933년 산인면 입곡리의 선영 아래로 옮겨온 후에는 곡은(谷隱)이라는 당호를 사용하였다. 곡은은 '입곡에 은거하다'라는 뜻으로, 중국 서한 때 정박(鄭樸)이 곡구(谷口)에 은거한 고사에 근거하였다. 그러므로 이병훈의 호는 월와 또는 곡은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말 함안에 은거한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겸헌(謙軒)이수범(李壽範)이며, 할아버지는 취죽헌(翠竹軒)이재흠(李在欽)이다. 아버지는 이준호(李俊浩)이며, 어머니는 박영돈(朴永燉)의 딸인 경주 박씨이다. 부인은 조성식(趙性軾)의 딸인 함안 조씨로, 그 사이에 2남 3녀를 낳았다. 아들은 이상섭(李祥燮)과 이주섭(李株燮)이며, 사위는 조종래(趙宗來), 박성목(朴性穆), 김광영(金光泳)이다.

1885년 7월 14일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서 출생하였다. 15세 때 아버지의 명으로 족숙 서산(棲山)이정호(李正浩)[1865~1941]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월촌에 거주할 때 이웃에 살던 조윤선(趙允善)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1914년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시를 짓고 산청에 있는 남명(南冥)조식(曺植)의 사당에 배알하였다. 1925년 부친상을 당해 슬픔과 예법을 모두 극진히 하였다. 상을 마친 이후 더욱 학문에 매진하였다. 두 아우와 우애가 돈독하였다. 1928년 차제(次弟)가 해외로 도피하자 대신 부채를 갚아 주었으며, 1945년 귀국하여 돌아오니 농토를 나누어 주고 한 집에 같이 살았다. 1946년에 막내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나 남겨진 조카들을 돌봐 주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세 가족을 이끌고 김해 삼방촌으로 50일가량 피난을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1957년 11월 3일 세상을 떠났다.

[편찬/간행 경위]

『곡은 유고(谷隱遺稿)』는 1959년 장남 이상섭이 아버지 이병훈의 유고가 유실될까 염려하여 성암(誠庵)노근용(盧根容)에게 교정을 의뢰한 후 간행하였다. 권두의 서문(序文)은 문집을 교정한 노근용이 1959년 2월 중순에 작성한 것이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석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8㎝, 세로 30.4㎝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5.9㎝, 세로 22.9㎝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서문과 발문은 24자, 본문은 26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곡은 유고(谷隱遺稿)'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는 시(詩) 129편, 편지(便紙) 11통, 잡저(雜著) 6편이 실려 있다. 잡저의 작품은 「풍악설(豊樂說)」, 「증재거학자설(贈齋居學者說)」, 「추월최호설(秋月最皓說)」, 「감양계설(感養雞說)」, 「모곡 고적설(茅谷古蹟說)」, 「부소론(扶蘇論)」 등이다. 권2에는 서문 4편, 기문(記文) 3편, 발문(跋文) 2편, 잠(箴) 1편, 축문(祝文) 6편, 제문(祭文) 16편, 행록(行錄) 3편, 전(傳) 1편, 가장(家狀)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에는 가장, 행장(行狀),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전 등이 붙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병훈은 조선 말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동안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만년에는 6·25 전쟁까지 겪었다. 이와 같이 힘겨운 역사적 시기를 겪으면서도 이병훈은 자신의 삶과 학문을 견실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한 학자였다. 그러므로 『곡은 유고』에는 이병훈이 어려운 시대 속에서 길러낸 빛나는 정신과 삶이 표현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 내용을 통해 당시 함안의 시대적·사회적 실상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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