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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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明怘 |
영어공식명칭 | I Myeongho |
이칭/별칭 | 양초(養初),매죽헌(梅竹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현섭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양초(養初), 호는 매죽헌(梅竹軒). 고조할아버지는 훈련 봉사(訓鍊奉事)를 지낸 이처인(李處仁)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해남 현감(海南縣監)을 지낸 이순조(李順祖)이며, 할아버지는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인 이사후(李士詡)이다. 아버지는 조식(曺植)과 이황(李滉)에게 수학하고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낸 황곡(篁谷)이칭(李偁)이다. 어머니는 감찰을 지낸 박윤수(朴允秀)의 딸 밀성 박씨(密城朴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진사 이희분(李喜盆)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로 슬하에 2녀를 두었다. 둘째 부인은 충의위(忠義衛) 정여강(鄭汝康)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로 슬하에 3남 6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이명호(李明怘)[1565~1624]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정구(鄭逑)에게 배웠고, 이흘(李屹), 조임도(趙任道), 하홍도(河弘度), 성호정(成好正) 등 남명 학파의 인물들과 교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등 가족을 이끌고 난을 피해 전라도 지역을 유랑하다 1600년(선조 33) 고향으로 돌아왔다. 1605년(선조 38) 성균 진사가 된 후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다. 만년에 서실인 매죽헌(梅竹軒)을 짓고 생도들을 가르쳤다.
[학문과 저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며 경전 공부에 치중하였는데, 특히 『주역(周易)』에 밝았다. 저서로 『매죽헌집(梅竹軒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