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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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壽瀅 |
영어공식명칭 | I Suhyeong |
이칭/별칭 | 사징(士澄),효산(曉山)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개항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사징(士澄), 호는 효산(曉山). 모은(茅隱)이오(李午)가 고려 멸망 후 함안군 모곡리에 은거하면서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대대로 함안에 살게 되었다. 고조할아버지 이두망(李斗望)은 효행으로 사헌부 감찰에 추증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시징(李時徵)이고, 할아버지는 이위신(李緯臣)이다. 아버지는 이유환(李有煥)이고, 어머니는 장도(張翿)의 딸 인동 장씨(仁同張氏)이다. 친아버지는 이유주(李有柱)이고, 친어머니는 정익선(鄭益善)의 딸 해주 정씨(海州鄭氏)이다.
[활동 사항]
이수형(李壽瀅)[1837~1908]은 8세부터 족숙 이희영(李羲榮)에게 배웠다. 1861년(철종 12) 향시에 합격하고, 1864년 증광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으로 함안군의 도림 서원(道林書院)이 훼철되자 서원의 요사채를 서당으로 만들어 선현을 존모하고 강학할 장소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군수가 서원을 모두 훼철하고 서원의 자재를 사적으로 취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다 모함을 받고 무주(茂州)로 귀양을 갔다가 1년 뒤 풀려났다. 1896년(고종 33) 순릉 참봉(順陵參奉)으로 부임하였다가 몇 달 후 귀향하였다. 그 후 함안군에 있는 이황(李滉)과 이현일(李玄逸)의 유적지에 단(壇)을 만들어 선현을 추앙하였다. 또한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율간정(栗澗亭)을 중건하는 등 선조의 추숭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학문과 저술]
『모촌집(茅村集)』, 『율간집(栗澗集)』, 『모계집(茅溪집)』을 간행하였다. 저서로 8권 4책의 『효산집(曉山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묘동(苗洞)의 선산 오좌(午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