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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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子當 |
영어공식명칭 | Yun Jad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광철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무신.
[개설]
윤자당(尹子當)[?~1422]은 고려 후기 벼슬길에 나아가 조선 건국 후 병조 전서(兵曹典書)를 역임하던 중 1400년(정종 2) 발생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 4등에 봉해졌다. 태종 대에는 경상도 병마도절제사 등 외직을 역임하면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세종 초에는 하성절사(賀聖節使) 등을 역임하며 외교 사절로 활동하였다.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충렬왕 때 판서를 역임한 윤수(尹秀)이며,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한 윤길보(尹吉甫)이다. 아버지는 족보에 따라 윤화(尹樺)와 윤공(尹控)으로 달리 전하고 있다. 어머니는 판서를 역임한 남휘주(南輝珠)의 딸 영양 남씨(英陽南氏)인데, 일찍 과부가 되어 안성 이씨이경(李坰)에게 개가하여 이숙번(李叔蕃), 이중번(李仲蕃) 형제를 낳았다. 문하시중을 역임한 윤환(尹桓)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윤자당은 조선 건국 후 병조 전서를 역임하던 중, 1400년(정종 2) 1월에 발생한 제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 박포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 공을 세웠다. 태종 즉위 후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으로 책봉되어 토지 60결, 노비 6명, 백은 25냥을 하사받았다. 1407년(태종 7) 경상도 병마도절제사, 1408년 진주 상주도 병마도절제사, 판창원 부사, 경상 우도 수군 도절제사 등 남도의 외직을 주로 역임하면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1411년(태종 11) 이후에는 길주도 도안무 찰리사(吉州道都安撫察理使)를 맡아 북방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414년 6월 흠문기거사(欽問起居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황제의 요구 사항을 받아 돌아와 처리하였다.
세종 즉위 후에는 평안도 병마도절제사에 임명된 뒤 다시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1420년(세종 2) 군기감 제조로서 전함을 시험하는 등 군사 장비를 갖추는 데 노력하였다. 1421년 2월에는 절일사로 명나라에 갔다 같은 해 6월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1422년(세종 4) 4월 칠원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이 해 7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윤자당이 사망하자 조정에서 3일간 정사를 보지 않는 등 예를 표하고 정평(靖平)이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