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78 |
---|---|
한자 | 李伶 |
영어공식명칭 | I Ryeong |
이칭/별칭 | 여윤(汝允),충순당(忠順堂),이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류진희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성산·광평(星山·廣平). 자는 여윤(汝允), 호는 충순당(忠順堂). 고조할아버지는 함안 입향조 병조 판서 정무공(靖武公)이호성(李好誠)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봉사공(奉事公)이처인(李處仁)이다. 할아버지는 해남공이순조(李順祖)로 무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아버지 사직공이사후(李士詡)도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냈다.
[활동 사항]
이령(李伶)[1541~1592]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외삼촌 갈천(葛川)임훈(林薰) 밑에서 수학하였다. 부귀영달을 좇지 않고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였다. 1592년(선조 25) 52세 때 왜적이 동래성에 침입하여 위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 100여 명을 모집하여 김해로 달려가 부사 서예원(徐禮元) 밑에서 동문장(東門將)을 맡아 많은 적을 참살하고 여러 번 격퇴하였다. 함께 참전한 둘째 아들 이명화(李明惒)에게 피 묻은 적삼을 벗어 주며 “장차 이것으로 장사 지내라.” 하고는 군사를 독려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그해 4월 20일 순절하였다. 전쟁 후 시신을 찾지 못해 아들에게 맡긴 피 묻은 적삼으로 초혼장(招魂葬)을 지냈다.
[학문과 저술]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동지산(冬只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묘지명을 지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뒷산 기슭에 충순당(忠順堂) 사당이 있다. 창의비(倡義碑)와 충신 정려각(旌閭閣)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검암천 가에 함께 서 있다. 1885년(고종 22)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