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94
한자 朴實
영어공식명칭 Bark Sil
이칭/별칭 정효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02년 - 박실, 전농시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10년 - 박실, 남포진병마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11년 - 박실, 용기사첨절제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14년 - 박실, 예조참의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17년 - 박실, 경상도수군도절제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28년 - 박실, 중군도총제 임명
몰년 시기/일시 1431년 12월 1일연표보기 - 박실 사망
성격 무신
성별
본관 함양
대표 관직 남포진병마사|용기사첨절제사|예조참의|중군도총제

[정의]

조선 전기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무관.

[가계]

박실(朴實)[?~1431]의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아버지는 좌군도총제 박자안(朴子安)[?~1408], 동생은 박유(朴牖)이다.

[활동 사항]

1397년(태조 6) 아버지 박자안이 이방원의 휘하에 있을 때 왜적을 막지 못하여 참형을 당하게 되자 박실이 구명운동을 극진하게 전개하였다. 이를 가상히 여긴 이방원이 박자안을 장형과 함께 삼척으로 유배하는 것으로 끝내었다. 박실은 이 일로 근위병으로 채용되어 벼슬길에 올랐다.

이후 1410년(태종 10) 남포진병마사가 되었고, 용기사첨절제사를 거쳐 1414년(태종 14) 예조참의가 되었다. 1414년 9월에는 태종의 명으로 전라도 진포에서 고만량(高巒梁)에 이르는 수로(水路), 황곡포(黃谷浦) 등지에 전운소(轉運所)[조선 시대에 조세 양곡의 뱃길 운반을 맡아 보던 지방 관아]를 두는 것의 편리한 여부, 전라도 용안(龍安)에서 충청도 내포(內浦)에 이르기까지 육지로 전운(轉運)하는 것을 살피고 돌아왔다. 1417년(태종 17) 2월에 경상도수군도절제사가 되었고, 1418년(태종 18) 6월에 좌군동지총제가 되었다. 1426년(세종 8)에는 전라도수군처치사가 되어 서해안에 출몰한 왜선을 격파하고 왜적 17급(級)을 베어 그 공으로 어의(御衣) 한 벌을 하사받았다. 1428년(세종 10) 9월에는 진하 겸 사은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도총제(都摠制)로서 활동하다가 병이 갑자기 위독하여져서 1431년(세종 13) 12월 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실이 죽자 세종은 조회를 이틀 동안 폐하고, 시호(諡號)로 정효(靖孝)를 내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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