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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92
한자 龍江里遺積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72|용강리 81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집필자 이영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9월 2일연표보기 - 용강리 유적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9월 30일연표보기 - 용강리 유적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종료
현 소재지 용강리 유적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72번지·81번지 일대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용강리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 광주 박물관
성격 주거 및 무덤 유적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서 발굴된 삼국 시대 유적.

[개설]

용강리 유적운주사 관광지를 위한 정비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1989년에 실시한 운주사 3차 발굴 과정에서 토광묘와 옹관묘가 처음 확인되었다. 그 후 용강리에서 운주사로 진입하는 부지가 화순 군청에서 추진하는 운주사 관광지 조성지에 포함되어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7년 전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지표 조사에 의해 유적이 있음이 밝혀졌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2008년 시굴 조사를 실시하여 집자리와 분묘 유구가 잔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는 2차례 실시되었는데, 2008년에는 총 36개 유구가 확인되었지만 집자리가 추가로 확인되고 중첩이 심하여 2009년에는 연장 발굴이 이루어졌다.

1989년 조사에서 토광묘 3기와 옹관묘 1기가 조사되었다. 2008년, 2009년 조사에서는 청동기 시대 돌덧널 무덤 3기, 삼국 시대 주구묘 5기, 토광묘 14기, 옹관묘 2기, 집자리 160기, 나말 여초 수혈 유구 24기 등 총 208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에서 나말 여초에 이르는 유구가 확인되었으나 삼국 시대 집자리와 분묘 유적이 중심이다.

[위치]

용강리 유적도암면 소재지에서 중장터로 가는 지방도 818호선에서 운주사로 들어가는 진입로 입구에서 운주사 사역에 이르는 지역이다. 이곳은 나주호로 유입하는 대초천 상류 지역으로 중장터를 중심으로 한 분지형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은 곡간 평지부에 입지하고 있다.

1989년 발굴 지역은 운주사 초입 좌측에 있는 초창기 건물지 앞 평지 지역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72이다. 2008년 조사 지역은 운주사로부터 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으로 행정 구역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81 일원이다.

[형태]

집자리는 모두 삼국 시대에 속한 것으로 160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 49%, 장방형 43%, 철자형(凸字形) 7%, 타원형 1%로 방형계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철자형의 경우 경기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발견되는 철자형 집자리와는 형태상 차이가 있다. 용강리 철자형은 출입구 시설 흔적 정도만 남아있는 것으로 것이다. 면적도 12~16㎡를 중심으로 중형 규모들이 대부분이나 60㎡ 이상도 4기나 되며, 대형 집자리는 모두 4주식이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저장 및 장방형 수혈, 출입 시설, 선반 시설, 부뚜막 시설 등이 확인되고 있다. 이 중 부뚜막 시설은 연도와 연소부가 일직선상이 있는 ‘一’자형, ‘ㄱ’자형, ‘ㅜ’자형이 있지만 거의 ‘一’자형[67%]과 ㄱ자형[31%]이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철기류와 석기류가 있다. 토기류는 호형 토기와 발혈 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장난형 토기, 시루, 개배, 주구 토기, 완형 토기, 파수부 토기, 유공광구소호, 이중 구연호 등이 있다. 철기류는 환두도, 철겸, 철촉, 철정, 철도자, 철부, 슬러그, 용도 미상 철기 등 다양하지만 생활 용구나 농공구가 대부분이다.

용강리 삼국 시대 분묘는 1996년에 보고된 것을 포함하면 토광묘 17기, 옹관묘 3기, 주구묘 5기가 발굴되었다. 용강리 토광묘는 5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분구가 유실되고 그 주위로 도랑을 두른 주구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형태는 사다리꼴(梯形)이며, 매장 주체부는 토광묘이고 대상부나 주구상에 매장 시설을 추가하여 다장분이다. 분구는 길이 10m 내외의 소형 분이며, 등고선 방향과 대체로 평행하고 있다.

출토 유물은 호형 토기를 중심에 이중 구연호와 철겸이 공반되고 있다. 제형계 고분은 4세기 대에 들어서면서 다장분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토광묘는 모두 14기인데, 주구묘의 주 매장 주체부로 조성된 토광묘 6기, 주구상에 추가된 1기, 단독 토광묘 7기 등이다. 대체로 등고선과 평행한 방향으로 길이 2~4m, 너비 1m 내외, 잔존 깊이 0.1~0.4m의 토광에 목관이 안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장 유물은 호형 토기 1점 또는 2점이 기본이고, 호형 토기 1점인 경우 이중 구연호나 광구호 토기가 1점씩 동반되며, 철겸과 철모가 1점씩 동반되고 있다. 특히 14기 토광묘 중 7기에서 철겸이 부장되어 12기에서 부장된 호형 토기와 함께 부장 비율이 매우 높다.

집자리에서도 많은 철기와 철기 관련 유물이 발견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농공구를 제작 생산한 집단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대상부에서 토광묘와 옹관묘가 공존하는 예가 많지만 용강리에서는 토광 주체의 제형분 분구에 복수의 매장시설이 안치된 다장분으로 토광묘에서 옹관묘로의 이행 과정을 밟지 않은 단계로 볼 수 있다. 옹관묘는 모두 3기인데, 상단이 결실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전용 옹관 2기와 대용 옹관 1기이다. 모두 합구식이다. 3세기에서 4세기로 추정된다.

[현황]

유물은 청동기 시대 석곽묘에서 무문 토기, 돌끌, 대롱옥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삼국 시대 분묘에서는 호형 토기, 겹 아가리 항아리, 큰 입 항아리 등이, 집자리에서는 분묘 출토 토기 이외에 장란형 토기, 바리형 토기, 굽다리 토기[高杯], 그릇 받침[器臺], 뚜껑 접시[蓋杯], 구멍 뚫린 큰 입 토기[有孔廣口小壺], 옹형 토기 등도 있다. 토기 이외 철 슬레그와 쇠낫[鐵鎌], 쇠창[鐵矛] 등 철기류가 있다. 그리고 나말 여초 수혈 유구에서는 큰 항아리[大壺], 동이와 쇠솥[鐵鼎] 등이 있다.

현재는 발굴 후 지형을 복토하여 주차장과 숲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앞으로 전시관, 화장실 등이 시설될 예정으로 있다.

[의의와 평가]

용강리 유적은 영산강 상류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삼국 시대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은 고고학적 편년과 14개 시료의 AMS 측정 결과 기원후 250년에서 660년으로 측정되어 기원후 3세기에서 7세기까지 약 400여 년 간 지속된 마을 유적이다. 특히 전남 지방 삼국 시대 마을 유적에서 많게는 15% 이내에서 3% 정도에서만 철기가 발견되는 것에 비해 160기 집 자리 중 40기[25%]에서 출토되고 슬러그 등 철기 생산과 관련된 부산물의 발견으로 철기 제작 생산 집단의 마을로 추정된다. 그리고 집자리에서 다량의 슬러그와 철기들이 출토되어 철기 생산 관련 자료를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철기 연구에 귀중한 유적이다. 영산강 유역에서 유행한 주구묘와 토광묘, 옹관묘도 발굴되어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한편으로 전남 동부 지역의 토기 요소도 많아 양 지역의 문화 교류가 빈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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