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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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愼惟益 |
이칭/별칭 | 여수(汝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덕진 |
[정의]
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수(汝受). 아버지는 신이명(愼爾明)이다.
[활동 사항]
신유익(愼惟益)[1671~?]은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01년 5월 무장 현감으로 부임하고 여러 지역의 수령을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1722년 9월 능주 목사로 부임하고, 1723년 영세 불망비가 세워졌는데, 이 비석은 현재 능주 향교 경내의 비석군 속에 들어 있다.
1723년 8월 제주 목사로 부임하였다. 1724년 1월 가락천(嘉樂泉) 서쪽의 제주 향교가 화재로 거의 대부분 소실되자 가락천 동쪽으로 이설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조정에 곡식 4천 섬을 요청하여 굶주린 백성을 도왔다. 선정을 베풀었으나 1725년 6월 파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