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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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봉우리. 이 오름은 두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로 나뉘어 있다. 두 오름 사이로 난 작은 길이 명월리와 금악리 경계를 이루고 있어 큰 봉우리는 명월리에 속하고, 작은 오름은 금악리에 속한다. 이 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가 서로 나뉘어 있다는 데서 갓그리 오름 또는 갯거리 오름이라 부르고, 한자 차용 표기로는 피문악(皮文岳)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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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석대(石帶). 명월대는 옛 선비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베풀고 한량들이 모여 주연을 베풀던 수려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숲과 바위로 이뤄진 제주 특유의 계곡으로 냇가를 따라 수백 년이나 되는 팽나무 60여 그루가 우거져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또한 한 여름철 더위를 식히며 놀이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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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명월진성 서북쪽 모서리에 위치한다. 명월진성 남문에서 동쪽으로 성벽을 따라 나 있는 비포장도로로 200여 m 가면 왼쪽 연변에 있다.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발 25m의 완경사면에 자리한다. 유적은 훼손이 심하여 토기편과 석기류 수 점만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모두 경질 무문 토기(곽지1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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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서 음력 정월 중에 마을 수호신을 위해 지내는 유교식 마을 제사. 명월리 포제는 천지지령과 지신지령을 위해 지내는 유교식 마을제이다. 약 40여 년 전에 명맥이 끊겼으나 마을 사람들이 최근에 명월리 중동에 포제단을 마련하여 정월 중에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하동 왕대왓에 포제단이 있었고, 제사는 음력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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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팽나무 군락. 조선시대에 명월마을은 문화, 교육,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마을에는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된 명월대와 더불어 팽나무와 푸조나무 등 100여 그루가 울창하게 군락을 이루어 잘 보존된 채 자생하고 있다. 잎은 계란형이며, 길이는 4~11㎝로 윗부분에 잔 톱니가 있고 측맥이다. 명월의 팽나무 가운데 10그루의 경우는 높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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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향교 교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남평. 자는 인경(仁卿)이다. 아버지는 문재박(文在樸)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났다. 1664년(현종 5) 8월에 조정에서 정언 윤심(尹深)을 제주시재어사로 보내어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시취(試取)를 실시하였을 때 문과에 문영후·문징후(文徵後)[1632~?]·고홍진(高弘進)[1602~1682] 등 3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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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오름. 은 오름은 오름과 오름 일대가 붉은 송이와 흙으로 덮여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밝은 오름 또는 붉은 오름이라고도 하며 한자를 차용하여 명악(明岳) 또는 적악(赤岳)이라고도 한다. 은 오름의 동남쪽에는 나지막한 방지 오름이 있다. 은 오름의 면적은 60,359㎡, 둘레는 1,08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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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었던 조선 후기에 세워진 교육 기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으로 재생과 늠료를 두었다. 서당은 종래의 여러 교육 기관과 성격이 다르지만 교육 기관이라는 이유로 특권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강하였다. 이러한 특권적인 보호는 특히 군역 면제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남학당은 제주목 오등에 있었는데, 지금의 제주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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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었던 조선 후기에 세워진 교육 기관. 조선 후기에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으로 재생과 늠료를 두었다. 서당은 종래의 여러 교육 기관과 성격이 다르지만 교육 기관이라는 이유로 특권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강하였다. 이러한 특권적인 보호는 특히 군역 면제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우학당은 제주목 명월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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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던 조선 시대 교육 기관. 월계정사는 1545년(인종 원년) 제주목사 임형수가 벽지 자제의 교육을 위하여 명월성 서쪽에 세운 서당이다. 월계정사에서는 고을 사람 중에서 학문이 뛰어난 자를 가려 사장(師長)으로 삼고, 주변에 거주하는 자제들을 모아 교육을 시켰다. 명월성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학(西學)으로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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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의 명의(名醫). 자는 중서(仲舒), 호는 순암(順菴)·월계(月溪). 일명 진좌수라고도 한다. 제주도 입도조 진계백(秦季伯)의 10세손이며 아버지는 진정적(秦廷績)이다. 전설에 따르면, 진국태가 다른 마을로 글공부를 하러 밤에 다니게 되었는데, 여인이 항상 나타나 구슬을 입에 물고 서로 입으로 넘겨주며 놀게 되었다. 여인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그대로 했더니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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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읍장을 지낸 관리. 1894년(고종 31) 제주관찰부의 주사 및 제주지방재판소의 판임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그만두었다. 1900년(고종 37)을 전후한 시기에 김윤식(金允植) 등의 유배인과 어울리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고 시 동인 모임인 귤회(橘會)의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윤식은 홍종시에 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