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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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이원진이 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지. 『탐라지(耽羅誌)』는 이원진(李元鎭)[1594~1665]이 제주목사로 있던 1653년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하여 제주도 내의 상황을 수집, 편찬하고, 제주의 석학 고흥진의 감수로 완성된 읍지이다. 『탐라지』와 같은 읍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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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지역에 세워진 10개의 국영 목장. 조선 정부는 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1429년(세종 11) 8월부터 이듬해 2월에 걸쳐 제주 지역에 중산간 초원 지대에 잣성을 새로 쌓거나 정비하고 그곳 120여 리에 10개의 목장을 조성하였다. 제주목 지역에는 1소장부터 6소장, 대정현 지역에는 7소장과 8소장, 그리고 정의현 지역에는 9소장과 10소장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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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통신 시설.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수제(烽燧制)의 ‘봉’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봉수제는 우역제(郵驛制)와 함께 신식 우편 제도와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근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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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 제주시에 있는 산 정상부에서 횃불과 연기로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조선 전기의 통신 수단.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烽)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燧)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 하며,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봉수는 높은 산이나 해안 구릉에 올라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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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조선 전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9개의 진(鎭)의 외곽을 둘러서 축조한 성곽. 진은 삼국 시대 말부터 조선 시대까지 설치되었는데, 둔전병(屯田兵)이 주둔하던 무장 성곽 도시, 또는 군사적 지방 행정 구역이다. 시기별로 진의 설치 목적은 다르지만, 북방의 변경과 해안 지대에 구축되었다. 즉 진은 신라 말기 상업적인 필요에 의하여 설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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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주로 정초나 3월에 행하는 마을 당굿에 앞서 치르는 의례. 거리굿은 지역에 따라 거리도청제나 매고, 또는 거리제라고 불린다. 거리도청제는 거리를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의미이고, 매고는 경상도 일대에서 풍물과 결합된 서낭제를 매구굿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거리굿과 거리제는 거리도청제와 같은 뜻으로 보인다. 오늘날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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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1,950m]은 남한 최고봉으로 백두산과 더불어 국토를 잇는 상징적인 산이다. 한라산은 예부터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으로 백록을 탄 신선이 사는 영산이라 알려져 왔고, 불로초를 찾아 영주산을 찾았다는 서불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또한 한라산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제주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의 보고이다. 또한 한라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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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 자는 진숙(晋叔), 호는 명도암(明道菴). 아버지는 김경봉(金景鳳)이며, 구좌읍 한동리 태어나 처가인 봉개리의 명도암으로 옮겨 살았다. 제주에 유배 온 실학자 이익(李瀷)[1579~1624]에게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1643년(인조 21) 숙녕전참봉에 천거되었으나 고향에서 후생을 가르치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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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 또는 심곡(深谷). 아버지는 부사 김시회(金時晦)이며, 영의정에 추층된 김시민(金時敏)[1554~1592]에게 입양되었다. 1597년(선조 30)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1608년(선조 41)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사가독서(賜暇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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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 김성구가 정의현감 재임시에 저술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 김성구(金聲久)[1641~170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이며 호는 팔오헌(八吾軒) 혹은 해촌(海村)이다. 1662년(현종 3) 사마시를 거쳐 166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무안현감·직강·정언 등을 거쳤으며 1679년(숙종 5) 정의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정권에서 멀어져 있던 김성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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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관둔답(官屯畓)을 경작하는 사람. 답한이란 제주 지역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직역명이다. 이 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관둔답의 존재로 볼 때 조선 전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답한은 관둔답이 소속된 관청에 따라 영답한(營畓漢)·목답한(牧畓漢)·삼성사답한(三姓祠畓漢)·답한(畓漢) 등으로 나뉘었다. 즉 영답한은 제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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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는 이형상 제주목사가 재임할 당시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 달 간 걸쳐 순력(巡歷)하고 돌아와서 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으로, 채색화이자 기록화이다. 기록화는 특정한 사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한 그림을 말한다. 중앙에서는 도화서 화원(畵員)들이 의궤도를 비롯한 기록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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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주민들은 한을 혹은 한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은 크다(大)는 의미이며, ‘흘’은 숲 또는 바위와 잡풀로 뒤덮인 넓은 땅을 의미한다. 또는 큰 습지였으므로 한흘이 되었다고 한다. 1730년경 유제륭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왔고, 그 뒤 백씨·차씨·송씨 등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이른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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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우측의 큰 길을 건너오면 제주향교 지경에 도달하게 되는데, 제주향교에는 재미있는 풍수지리가 전한다. 용담동 노인회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예전에는 향교 터가 좋아야 출세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향교 자리는 어느 자리보다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제주향교도 향교 터를 여러 번 옮기면서 선비를 출세시키려 했었다는 것이다. 특히 향교 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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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거짓말 사기에 대한 민담. 「모관 청부와 정의 청부」는 거짓말 닷 되짜리 모관 언청이가 거짓말 한 말짜리 정의 언청이를 속여 재물을 취한다는 내용으로, 공간적 배경은 큰 의미가 없다. 소화(笑話) 중 사기담의 특징대로 상대방을 속이고 의도했던 바를 성취하는 이야기로, 누가 과연 거짓말의 대가인가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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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향교 교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남평. 자는 인경(仁卿)이다. 아버지는 문재박(文在樸)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났다. 1664년(현종 5) 8월에 조정에서 정언 윤심(尹深)을 제주시재어사로 보내어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시취(試取)를 실시하였을 때 문과에 문영후·문징후(文徵後)[1632~?]·고홍진(高弘進)[1602~1682] 등 3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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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발생한 12세기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제주 민중의 항거. 제주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기는 탐라가 고려에 병합되던 12세기부터이다. 이때의 민란은 탐라령의 횡포나 고려의 압정에 저항하면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삼별초 정벌 직후 원은 제주도를 그들의 직할지로 삼았는데, 외세의 지배 하에서 탐관 오리의 가혹한 수탈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고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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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방어 요충지에 설치된 진(鎭). 방호소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침입이 예상되는 요충지에 설치하여 방호 임무를 수행하던 군대의 경계 감시소이다. 각종 읍지나 『제주계록』에는 ‘진(鎭)’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방호소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에 “도내 군인이 주둔하는 곳은 본주 동쪽은 김녕·조천관, 서쪽은 도근천·애월·명월이며, 대정현 서쪽은 차귀, 동쪽은 동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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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51년(철종 2) 7월 이현공(李玄功)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귤림서원을 개건하였으며, 1851년 가을 별저미(別儲米)를 운반해 줄 것과 내탕전 1천 냥을 조정에 요청하여 전년의 흉년을 진휼하였다. 1852년(철종 3) 유생 강기석(姜琦奭)의 건의에 따라 제주성 남수구 북쪽 김정(金淨)의 적거지에 김충암적려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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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제주목에 있던 사찰 총 15개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보문사가 들어 있다. 1653년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도 총 22개의 사찰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시대 때 혜일 선사가 보문사에서 참배하고 쓴 시가 전하고 있다. 寺僻依荒徼(사벽의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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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떡. 메밀전의 담백한 맛과 무숙채의 삼삼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는 제주의 별미 음식이다. 제주에서 메밀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떡인데 그 명칭이 지역마다 다르다. 옛 제주목과 대정현 지역에서는 빙빙 돌려만다 또는 빙철(번철)에 지진다 해서 ‘빙떡’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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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시행되는 민사,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재판권 행사에 관한 모든 제도. 좁은 의미의 사법은 재판 작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사·형사 및 행정 사건 등의 재판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소송 절차를 거쳐 어떻게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선언하는 국가의 행위이며, 대립하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들어보고 공평한 제3자의 지위에서 국가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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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당. 1736년(영조 12) 제주목사 이 산지물 동쪽 동산에 세운 서당이다. 제주 전 지역의 선비가 이곳에서 글공부를 하였으며, 김정이 비용을 내어 후진들도 양성하였다. 1893년(고종 30)에 김정을 기리어 김정흥학비를 세웠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번지에 있는 오현단(五賢壇)에 남아 있다. 삼천서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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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정의현(旌義縣) 「불우조(佛宇條)」에서는 성불암과 관련해 ‘성불암재성불악(成佛庵在成佛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 제주목 정의현 「불우조」에도 동일한 내용이 전해 내려온다. 이 성불오름 중턱에는 성불새미라 불리는 샘물이 있다. 옛날에는 이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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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인물. 전라북도 익산 사람으로, 정여립 첩의 사촌이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모반 사건의 여파를 피하여 삭발하고 승려가 되었다. 승병을 거느리는 승장(僧將)이 되어 경상북도 선산에서 산성을 쌓았으며 이때 길운절(吉雲節)과 교유하게 되었다. 1599년(선조 32) 제주에 들어와 제주목·대정현·정의현 토호들을 선동하여 문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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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원경(元卿), 호는 우수(迂叟). 아버지는 송증(宋拯)이다. 1683년(숙종 9)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1690년(숙종 16) 사간원정언에 올랐으며, 당시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 처우문제의 상소를 올렸다. 이어 사헌부지평을 지냈으며, 1696년(숙종 22) 경성판관 재임 중 정사를 잘 돌봐 품계가 올라 16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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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1883년(고종 20) 5월 박선양(朴善陽)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6월 제주 유배인 백낙관(白樂寬)이 서울로 이송, 의금부의 남간(南間)에 수감되었다. 1883년 7월 함덕포 해변에 표착한 일본 상선의 선장과 선원 4명을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1883년 10월 삼읍(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마병도시(馬兵都試)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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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선여(善餘). 아버지는 안건(安鍵)이며,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났다. 1725년(영조 1)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8년(영조 14) 1월 전라북도 고부군수에 부임하였지만 1738년 10월에 백성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하여 감금되었다. 1740년(영조 16) 9월 조동점(趙東漸)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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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경기도 남양부사 재임 중인 1771년(영조 47) 2월에 안종규(安宗奎)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고, 1773년(영조 49) 3월에 죄인을 두둔하였다 하여 체포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772년 제주 삼성혈에 담을 쌓고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또한 제전(祭田)을 제주목사의 자문 기관인 유향소(留鄕所)에서 사용하도록 배려하여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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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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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정절을 지켰던 여자. 유교에서 중요시한 덕목 가운데에는 효(孝)와 열(烈)이 있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조선조에 태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 7월에 발표된 「즉위 교서」에는 충신, 효자, 의부, 절부의 일은 풍속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를 널리 권장하고 문려(門閭: 동네 어귀에 세운 문)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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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를 지냈으며, 1414년(태종 14) 윤임(尹臨)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417년(태종 17) 3월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떠났다. 이후 인령부윤·좌군총제(左軍摠制)를 거쳐 경주부윤 재임 중 사망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에는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산남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관아를 왕래하는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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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선비. 아버지는 오전(吳巓)이다. 집안이 가난하지만 배우기를 즐겼고,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1728], 정희량(鄭希亮)[?~1728], 박필현(朴弼顯 )[1680~1728] 등이 이른바 이인좌의 난을 일으키자 정의현을 중심으로 창의 격문을 삼읍(三邑)에 돌려 의병을 일으켰다가 진압 소식이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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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끓는 물에 옥돔을 넣어 익히고 미역을 넣어 살짝 끓인 생선국. ‘메역’(미역)과 함께 끓인 국이라고 해서 ‘옥돔메역국’(옥돔미역국)라 부른다. 제주도에서 가장 고급으로 치는 생선이 옥돔이다. 그래서 옛날 3읍(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관리들의 밥상에 옥돔 구이가 많이 쓰였고, 제사상에는 반드시 올리는 제수용품이다. 특히 제례상에서 최고의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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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인 해적을 총칭한다. 흔히 고려 후기까지의 왜구를 전기 왜구, 그 이후의 왜구를 후기 왜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기 왜구가 우리나라를 주요 약탈 대상으로 삼았다면, 후기 왜구는 약탈의 대상지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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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포구. 용항포는 지금의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신착개와 그 주변을 이른 말이다. 이 포구는 당시 용목잇개[龍項]라고 이르는 지경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며, 용목잇개는 용의 목과 같은 모양을 한 개[浦口]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탐라순력도』의 별방조점(別防操點)에는 조선시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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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민란(1813년)을 밀고한 무신. 1783년(정조 7) 이경철(李景喆) 등 17명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였다. 1813년(순조 13) 양제해(梁濟海)가 아들 양일회(梁日會)와 윤광종·김지검(金之儉) 등과 함께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수령을 모해하고 민란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윤광종이 이 사실을 제주목사 김수기(金守基)에게 밀고하여 관련자 전원이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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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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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주.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지완(李志完)[1575~1617]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에 풀려났다.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지평·교리·부수찬·장령·집의 등을 거쳐 1647년(인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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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찰리겸위유어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신로(新老). 아버지는 판서 이문원(李文源)[1740~1794]이며, 어머니는 심숙(沈鏽)의 딸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813년(순조 13)의 제주민란(일명 양제해의 난)으로 흩어진 민심을 위로하기 위하여 홍문관응교 이재수를 제주찰리사 겸 위유어사로 파견하였다. 18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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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제주민란(일명 이재수의 난, 신축민란, 제주교난)의 주모자. 본관은 고부(高阜). 아버지는 이시준(李時俊)이며 어머니는 송씨이다. 본래 대정군의 관노였으나 갑오개혁 이후 노비제가 폐지되자 관아의 급사이면서 향청의 우두머리인 오대현(吳大鉉)의 하예(下隸)가 되었다. 칼과 활 등 무예에도 뛰어났다. 1901년 5월 봉세관(封稅官)의 과중한 세금과 이와 결탁한 천주교도의 작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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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이고, 아버지는 이주하(李柱厦)이다.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680년(숙종 6) 별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03년(숙종 29)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후 제주의 전통 풍속을 개혁하여 유교화시키는 데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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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790년(정조 14) 7월 경상좌수사 재임 중 이철모(李喆模)[1732~?]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791년(정조 15) 7월에 사임하였다. 1793년(정조 17) 11월에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90년 7월 27일 유구국(琉球國)[일본 오키나와]의 배가 귀일포에 예고 없이 정박하였는데, 배에는 선원 12명이 있었으며 유구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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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입두연대는 동쪽으로 정의현지미봉수(직선 거리 5.4㎞), 서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 3.3㎞)와 서로 교신이 가능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동동에서 제주 삼성연합의원으로부터 서남쪽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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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익힌 멥쌀 반죽을 일부 떼어내어 절변 떡본으로 찍어서 만든 유교식 제례용 떡. 설날이나 상례, 제례 등 특별히 정성을 들이는 제사상에 올리는 떡으로, 해[日]를 상징한다. 달을 상징하는 반달 모양의 솔변과 함께 짝을 이루어 올렸다. 조선시대 제찬을 다루는 고문서『태상지(太常志)』에 나오는 절병(切餠)의 그림을 보면, 제주도의 절변 모양과 같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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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국가 권력을 획득·유지·조정·행사하는 기능·과정 및 제도. 한국 정치는 19세기 후반 대원군의 집권을 경계로 전통 시대와 근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통 시대의 정치는 주로 왕조 체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근대 정치는 문호 개방에 따른 외세 개입과 거기에 대한 대응 속에서 전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역사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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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목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 문관. 제주 목사는 형옥·소송의 처리, 부세의 징수, 군마(軍馬)의 고찰, 왜구의 방비 등 제주 지방에 대한 모든 행정을 집행하였던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한 관직이었다. 제주도에 목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 1295년(충렬왕 21)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왔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제주목의 설치는 1397년(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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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철종 13) 9~11월 세 차례에 걸쳐 제주도에서 조세 폐단과 탐관오리의 처단을 요구하며 일으킨 민란. 감관(監官)이란 조선시대 각 관아나 궁방에서 금전 출납을 맡아보거나 중앙 정부를 대신하여 특정 업무의 진행을 감독하던 관직이었다. 이러한 감관의 자리는 항시 불안한 것이었고 신분상에 있어서도 미천하였으므로, 감관은 자신들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합법적·비합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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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耽羅)·탁라(乇羅)·탐모라(耽毛羅)·동영주(東瀛洲)이다. 1295년(충렬왕 21)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목(牧)은 경(京)과 도호부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와 더불어 계수관(界首官) 지역으로 일컬어졌다. 계수관 지역은 최상의 독자적·개별적 행정단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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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주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요. 국가무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된 제주민요들은 대부분 표선면 성읍리에서 전승되어 온 노래들이다. 성읍은 1423년부터 조선 말기까지 정의현(旌義縣)의 현청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성읍 민속마을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지역에서는 제주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밭을 매면서 부르는 소리, 맷돌을 돌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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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제주시청에 있는 17세기 후반인 조선 숙종(肅宗)[1661~1720]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지역 속오군의 소속과 신원을 적어 놓은 명부. 속오군은 조선 후기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편성된 예비군 조직인 지방 군대이며 속오군적부는 지금의 병적기록부와 같은 속오군의 명부 자료이다. 『제주속오군적부』는 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보물 제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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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북부 지역을 포괄하는 행정 구역.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의 실시로 이전의 제주시와 북제주군이 통합되어 제주도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제주(濟州)라는 명칭은 1223년(고종 10)경에 탐라군(郡)이 행정단위 개편으로 제주로 불려진 데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먼 바다를 건너가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제주시는 탐라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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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도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승되어 온 노래. 창민요는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에 의해 불린다 해서 통속민요라 칭하기도 하고, 놀이요의 성격을 갖는 민요와 한데 묶어 잡요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요즘에는 노래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춤추기나 윷놀이 등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아 노래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들을 가창유희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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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담은 제주 선민들의 생존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돌담은 제주도를 먼저 살다가 떠난 제주 선민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잘 활용하라’는 유언장(遺言狀)과도 같은 존재로서,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의미체라 할 수 있다. 또한 돌담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미학적(美學的) 요소이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다른 요소들, 즉 한라산과 오름, 청정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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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이다. 제주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돌하르방과 마주친다. 오랜 세월 제주를 지켜온 돌하르방은 제주 방문을 환영하고 보호해 주는 듯, 위엄 있는가 하면 둥글넓적한 온후한 인상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마치 모진 환경에서 한평생을 보낸 우리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뚝뚝하고 엄한 표정엔 미소마저 담뿍 담겨 있어 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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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 조선 시대 제주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는 말의 특산지로 부각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중앙 정부에 의해 과중한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 지역을 목장으로 만들어 개간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은 해변 지역의 일부 땅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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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우의정 조태채(趙泰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 조영순(趙榮順)이며,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부인은 홍지해(洪趾海)의 딸이다.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별검(別檢)이 되었다. 1777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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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민가(民家).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고관사 버류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서울슈퍼 오른쪽으로 100여 m를 가면 길 왼쪽 방향에 있다. 황인관 가옥은 안거리 4칸, 밖거리 3칸, 목거리 4칸의 기와집이다. 삼각형 대지의 중심에 마당을 두고 북향하여 안거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안거리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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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평양. 자는 덕일(德一), 호는 학해당(學海堂). 아버지는 진사 조존영(趙存榮)이다. 1864년(고종 1)부터 3년간 죽산부사를 지냈으며, 1866년(고종 3) 12월 부령부사에 임명되었으나 1867년(고종 4) 병으로 교체되었다. 1868년 10월 이후선(李後善)[181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72년(고종 9)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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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사이에 있는 도로. 지방도 1135호선 은 총 29㎞이며, 구 북제주군 구간은 16.2㎞, 구 남제주군 구간은 12.8㎞이다. 〈표〉지방도 1135호선 현황 지방도 1135호선 은 중산간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한 1967년부터 산업도로라고 하다가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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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사(禪師). 조선 성종 때의 선사(禪師)로서, 도근천의 수정사(水精寺) 승려이다. 수정사는 원래 고려시대 산북을 대표하는 비보사찰이었다. 이후 조선 태종 때에 이르기까지 법화사(法華寺)와 마찬가지로 노비 130명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30명의 노비를 두던 대사찰이었다. 1487년(성종 18) 최보(崔溥)[1454~1504]가 제주 삼읍(제주목·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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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지방관이 왕에게 의례적으로 바친 특산물. 진상은 원래부터 납세의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道) 단위로 지방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상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 그 부담이 배정되었고, 이것이 다시 각 민호에 배정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의 진상물 품목으로는 말·귤·전복·버섯·한약재 등을 들 수 있다. 『탐라지』(제주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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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안무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영주(永州). 아버지는 검교참찬문하부사 최무선(崔茂宣)[?~1395]이다. 아버지 유고(遺稿)인 『화약수련법』의 비법을 전수받았으며, 1401년(태종 1) 군기시주부를 거쳐 1408년(태종 8) 경기우도병선 군기점고별감이 되어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1409년(태종 9) 군기감승에 올랐고, 10월에는 화차를 만들어 태종이 임석한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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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말~10세기 백제·중국·일본 등과의 국제 교역을 하면서 ‘국(國)’을 형성 기반으로 하였던 제주의 옛 정치체. 탐라국은 ‘섬나라’라는 의미로서, 섬에 위치하여 오랫동안 독자적인 국가 형태로 존속하였던 국가이다. 탐라국에 관한 기록은 『구당서(舊唐書)』 「유인궤전(劉仁軌傳)」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 『후한서(後漢書)』에는 섭라(涉羅), 『북사(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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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제주도 지도와 그 서문. 1709년(숙종 35)에 제주목사 이규성(李奎成)이 제작한 지도 1과 병서 2로 이루어진 지도로, 세로 125㎝, 가로 98㎝의 크기이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의 제주 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1년 6월 4일 제주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도의 서문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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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제주도에서 산출된 말을 일컬어 탐라마(耽羅馬)·제주마(濟州馬)·제마(濟馬)·토마(土馬)·국마(國馬)·조랑말이라고 했다. 이 중에서 조랑말(pony)이라는 명칭은 몽골어 ‘조로모로(상하의 진동 없이 매끄럽게 달리는)’ 주법으로 달리는 말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제주마라는 명칭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제주도 내에서는 재래마와 개량마 등 여러 종류의 말들이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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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예의판서 한리(韓理)이다. 아들은 한서룡(韓瑞龍)·한서봉(韓瑞鳳)·한서구(韓瑞龜) 등 3명이다. 1437년(세종 19) 2월 최해산(崔海山)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부임하기 전, 의정부에서 제주 방어는 중요하므로 봉화·척후(斥候)를 엄하게 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왜선이 정박할 요해처를 잘 방어하라고 지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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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행정 단위. 행정 구역은 나라의 행정 사정에 따라 다른 데, 우리나라는 현재 특별시·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이로 구획되어 있다. 그러나 선거구 등 특별한 목적으로 구획되는 행정 구역이 있으며, 이는 일반 행정 구역을 토대로 인구의 비례에 따라 결정된다. 행정 구역은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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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도에서 마을 단위로 작성한 호적 자료. 호적이 작성되는 시기가 되면 각 집 안에서 작성한 호구단자를 수합하여 검토하고, 이를 다시 마을을 단위로 전체적으로 작성하였는데, 이때 마을 단위로 작성한 호적을 호적중초라고 한다. 호적중초는 육지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옛 대정현 지역에 치중되어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대정현 지역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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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로 유배된 조정철을 변호하다 죽은 여인. 본관은 남양. 일명 홍랑(洪娘)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향리를 지낸 홍처훈(洪處勳)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777년(정조 1) 9월 11일 노론 벽파에 속하였던 조정철(趙貞喆)이 제주로 유배되어 제주성 안에 있던 신호(申好)의 집에 귀양지를 마련하였다. 홍윤애는 조정철의 귀양지를 드나들며 시중을 들었고, 1781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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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유배된 선비 조정철(趙貞喆)을 위하여 순절한 홍윤애의 무덤 터. 조정철을 극진히 사랑했던 홍윤애는 연인의 죄를 추궁하는 제주목사의 가혹한 고문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연인의 생명을 구해냈다. 그로부터 30년 뒤(1811) 조정철은 제주목사로 도임하여 손수 이 무덤을 단장하고 애절한 시비를 세웠다. 1940년 무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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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의현감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홍범철(洪範喆)이며, 제주목 신촌에서 태어났다. 이우식(李友植)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부임하였다. 1898년(고종 35) 1월 방성칠(房星七)[1849~1898]이 화전세(火田稅)·장세(場稅)·호포(戶布)의 과다 징수와 환곡의 임의 징수 등의 폐단을 바로잡겠다고 1898년 제주민란(일명 무술 민요)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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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어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아버지는 황건(黃鍵)이며, 어머니는 이문행(李文行)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2년(숙종 38) 지평·사서를 지냈으며, 1713(숙종 39) 정언·부수찬·수찬을 거쳐 1716년(숙종 42) 교리를 지냈다. 교리 재임 중인 1716년 1월에 제주별견어사로 파견되어 여러 해 동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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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양백(良伯). 아버지는 황수태(黃壽泰)이며,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735년(영조 11)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3월 유혁(柳爀)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778년(정조 2) 12월에 떠났다. 함께 재임한 제주판관은 김광현(金光鉉)[1722~?], 경내운(慶來運)[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