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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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堂 |
이칭/별칭 | 성황당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집필자 | 박연호 |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神堂).
[개설]
서낭당은 진천군 일대에서 마을 입구나 고개에 위치한 큰 나무 밑에 돌무더기를 쌓거나 위패를 모신 건물을 지어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소원을 비는 장소이다. 이를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올리는 제사를 서낭제 또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한다. 그러나 성황(城隍)은 중국에서 성(城)을 보호하는 신으로, 우리나라의 서낭과는 다르다.
성황신앙은 중국 육조(六朝)시대에 발생하여 송(宋)나라 때 성황제가 크게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055년(고려 문종 9) 선덕진(宣德鎭)에 성을 쌓은 뒤 성황사(城隍祠)를 세워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고, 각 주현(州縣)에도 성황사를 세우게 하였다.
이처럼 서낭과 성황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발음이 비슷해서 같은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낭은 산신(山神)의 하나인 산왕(山王)에서 유래된 말로, 마을을 지켜주는 신이다. 서낭당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위치하며, 형태는 큰 나무 밑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거나 위패를 모신 건물[서낭당]을 지어 놓는다. 여기에는 왼새끼를 두르고 울긋불긋한 헝겊을 걸어 놓는다.
서낭제는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서 침입하는 악귀를 쫓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것으로, 산신제(山神祭)를 지낼 경우에는 산신제 다음날 아침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나 산신제를 안 지낼 경우는 10월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사를 지내는 날에는 제관(祭官)과 마을 사람들이 서낭당으로 가서 술·떡·돼지머리·과일 등을 차려 놓고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진천 지역의 서낭제는 원동 서낭제와 진천읍 교성리 서낭제가 있었다고 한다. 백곡면 대문리 수문골과 초평면 금곡리 등에도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거나 없어졌다. 진천읍 교성리에서는 서낭당 앞을 지날 때 소원성취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나 돌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기를 못 낳는 사람은 서낭 앞에 제상을 차려 놓고 빌기도 하고, 속옷을 걸어 놓으면 아기를 갖게 된다고 믿어서 속옷을 걸어 놓기도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아들을 잘 낳는 여자의 속옷을 훔쳐 입기도 하였다.
한편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진천 지역에도 고려시대부터 한일합방 이전까지 성황사가 있었다고 한다. 진천현 서남쪽 7리에 있는 성산(城山)에 성황사를 세우고 진천현감(鎭川縣監)이 매년 봄·가을로 성황제를 지내다가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성황제가 폐지되어 봉화산(烽火山)과 문안산(文案山) 사이에 있는 성황사도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