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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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에 왜구의 침략을 피해 전라남도 진도지역 주민이 해남 금산(金山)으로 이주한 사건. 여말선초 왜구가 창궐했을 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진도 또한 끊임없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이에 진도군민의 생존대책의 자구책을 찾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1350년경 진도군민 전체가 해남 금산으로 이사하면서 군치소도 함께 옮겼다가, 1437년 진도로 다시 돌아온 사건이다. 고려 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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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개국공신. 본관은 진도. 진도김씨 시조 김국빈(金國儐)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강수(金康水), 어머니는 화산백(白)씨이다. 부인은 중원지(池)씨이고 아들은 김구석(金九碩)이다. 김경호는 왕건이 나주를 공략하기에 앞서 진도를 칠 때 왕건에 협력한 공으로 939년 옥주후(沃州侯)에 봉해졌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개경(開京)으로 이거하여 살게 되었다. 큰아들 김구석(金九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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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박봉석은 1903년 8월 24일(음력)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서 아버지 박동술(朴東述)과 어머니 김죽심(金竹心)의 3남 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박봉갑·박봉위가 있고, 조카로 박기영이 있다. 1919년 진도보통학교를 16세에 졸업하고, 1924년 21세로 광주숭일중학교를 졸업했다. 박봉석은 25세인 1928년 5월 같은 마을에 사는 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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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1255년(고종 42) 판사천국사(判司天局事) 안방열은 몽고군에게 파괴당한 지릉(智陵)[명종의 능, 경기도 장단군]을 수축하였다. 1259년(고종 46) 술사 백승현(白勝賢)이 강화의 삼랑성(三郎城)에 가궐(假闕)을 지으면 왕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진언하였다. 왕이 안방열에게 가궐 건축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해 묻자 “백승현의 말은 믿을 수는 없으나 한번 시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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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임회면을 관향으로 했던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성씨 시조와 입향 시조는 알 수 없으나,『증보문헌비고』에 진도의 속현이었던 임회면을 본관으로 한 임회박씨가 소개되어 있다. 『진도김씨세보』를 보면 진도김씨 38세 김형숙(金亨淑)[고려 창왕 때 서도병마원수]의 부인이 임회박씨로 나온다. 묘는 개성 남쪽 길구리에 있다 했다. 이를 보면 고려 때 임회면에는 박씨와 배씨가 살았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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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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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본관을 둔 성씨. 진도김씨의 시조 김국빈은 중국 후한(後漢) 사람으로 위·촉·오의 세 나라로 갈려 싸우던 건안(建安)의 난리를 피해 고국을 떠나 배를 타고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죽포(竹浦)에 도착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 미추왕(味鄒王)[262~284]의 부름을 받아 경주에서 군국정사(軍國政事)라는 벼슬을 살았다. 실제로 진도를 본관으로 득성(得姓)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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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몽고 승려. 진도에서 태어났으나 1271년(원종 12) 진도 삼별초 토평 때 몽고에 잡혀가 스님이 되어 원나라 황제의 스승이 되었다. 1294년(충렬왕 20) 7월 고국의 부모를 찾아 고려 개성에 왔을 때 고려 관리들이 조복을 갖추고 성문 밖에 나가 맞아들여 숙능사에 머물게 했다. 부모가 진도를 떠나 충청남도 서산에서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