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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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나 바닷가에 제방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 육지화하여 농토나 기타 산업부지로 만드는 일. 간척은 농경지 또는 염전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계획으로 방조제 공사를 시행하여 일정 수역을 설정하고 방조제 내부의 물을 배제시켜 토지로 조성하여 사용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결국, 간척이란 근해(近海)의 간석지 또는 호수에 제방의 축조 등 제반 공사를 한 다음 간만의 차를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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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행정리. 900년 경 지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현풍곽씨와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거제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거도(巨島)와 안치(鞍峙)를 병합하여 거제리가 되었다. 서쪽은 황해와 접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구릉성 산지이다. 구릉 아래 사이사이로 논과 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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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에 왜구의 침략을 피해 전라남도 진도지역 주민이 해남 금산(金山)으로 이주한 사건. 여말선초 왜구가 창궐했을 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진도 또한 끊임없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이에 진도군민의 생존대책의 자구책을 찾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1350년경 진도군민 전체가 해남 금산으로 이사하면서 군치소도 함께 옮겼다가, 1437년 진도로 다시 돌아온 사건이다. 고려 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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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茹峰老人). 우의정 노숭(盧嵩)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노경장(盧敬長)이고, 할아버지는 노후(盧珝)이고, 아버지는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 노홍(盧鴻)이다. 1531년 성리학자로 명망 높은 이연경(李延慶)의 딸과 혼인하고 장인의 문하생이 되었다. 노준명(盧峻命)의 증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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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지역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 개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 여왕벌이 다른 벌들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종은 동종 내에서도 이름을 짓고, 이종에 대해서도 이름을 짓는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인간의 문화에 속한 영역이며, 인간의 독특성을 발현하는 문화의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다. 침팬지의 행태를 연구하는 영장류학자들이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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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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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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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는 반개경정부(反開京政府) 그리고 반몽고(反蒙古)의 노선을 표방하며 거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앞서 같은 해 5월 23일에 재상들이 회의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하자 삼별초는 그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을 처음 드러냈었다. “재추(宰樞)가 모여 옛 서울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날을 정하여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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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인동장씨의 시조는 고려 초에 삼중대광 신호위상장군의 벼슬을 지내고 인동현의 옥산땅에 처음 복거한 장금용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 장백림은 진도에 귀양 왔다가 3년 만에 풀려나 함평에 정착해 함평파의 파조가 되었다. 진도에 들어온 것은 장백림의 7세손인 장을중(張乙仲)으로, 우수영절도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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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한 법정면. 지산면은 법정리 15개, 행정리 36개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로는 인지리(仁智里), 관마리(觀馬里), 삼당리(三堂里), 고야리(古野里), 앵무리(鸚鵡里), 길은리(吉隱里), 소포리(素浦里), 거제리(巨濟里), 보전리(寶田里), 와우리(臥牛里), 가치리(加峙里), 가학리(加鶴里), 심동리(深洞里), 오류리(五柳里), 송호리(松湖里)가 속해 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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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생. 1696년(숙종 22) 7월 21일 방찬(方燦) 등이 장형(張炯)의 묘에 목인(木人)을 묻어 서인을 모해하려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동궁(東宮, 후일의 경종)에게 불리하다 여긴 채제윤(蔡悌胤)은 강오장(姜五章)과 윤종서(尹宗緖)에게 그 부당함을 상소하기를 권하였다. 소초는 윤종서가 짓고 강오장은 상소문을 썼다. 이 사건은 역적 방찬에 윤종서가 연루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