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군 군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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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에서 일을 하면서 부르는 진도들노래의 하나. 전라남도 진도군에서는 목화밭을 미영밭이라고 한다. 미영밭노래는 부녀자들이 목화밭에서 잡초를 뽑으면서 부르는 노래이며, 진도다시래기에서 여흥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진도군 군내면의 진도들노래 중, 밭에서 김을 매며 부르는 들노래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진양조) 못다건내~ 못다건내~ 암만해도~ 못다건내~ 야애이야~ 에~이야 못다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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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불리는 잡가(雜歌). 육자배기는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보렴·화초사거리·흥타령·개구리타령·새타령·성주풀이 등과 함께 남도잡가에 포함된다. 육자배기라는 이름은 한 장단이 6박(진양조 장단)인데서 유래하였다. 현재는 민요 육자배기와 잡가 육자배기가 공존한다. 민요 육자배기의 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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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도군 향청(鄕廳)의 업무를 기록한 자료. 1796년(정조 20)부터 1808년(순조 8)까지 12년간 진도군 향청이 처리한 업무에 대한 자료이다. 진도군 군내면 김진용(金珍龍)이 소장 중인 것을 1992년 진도문화원이 『진도향토사자료』제1집 영인본으로 간행했다. 조선 후기 향청은 향임(鄕任)과 향리(鄕吏)의 이원화된 군 행정기구의 하나였다. 이런 특징을 가진 향청이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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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의 관인. 1803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내현(乃現), 호는 소매(小梅)이다. 진도군 군내면 집강(현재 면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집강을 지낸 후에는 향청에서 가장 높은 직임인 좌수를 두 차례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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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필요한 물을 농지로 끌어대기 위해 설치한 인공 시설. 농작물이 자라는 데는 물이 필요하며, 특히 벼의 생육에 있어 물의 공급은 필수적이다. 더구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일은 작물의 생육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농토를 기름지게 하거나, 또는 땅의 온도를 높여 작물의 냉해를 막거나 경운(耕耘) 또는 제초 등의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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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의 법정리이다. 또한 법정마을 덕병리의 행정리 명칭이기도 하다. 법정리인 덕병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용인리(龍仁里)와 한의리(寒衣里), 덕병리 일부를 합쳐 이루어진 마을이다. 행정구역 개편 때 자연마을 덕병리의 일부는 둔전리(屯田里)로 병합되기도 하였다. 덕병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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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에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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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광산.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으로부터 26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광선(金光善)이다. 부인은 장흥마(馬)씨이다. 동생은 김제성이다. 아들은 김여용(金汝龍)이다. 1624년에 태어났으며 해남군에서 진도군 군내면으로 들어와 정착하였고, 그의 증손 김덕기(金德起)[1701~?] 때 지산면 관마리에 옮겨 정착했다. 그의 동생 김제성은 진도군 의신면에 정착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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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나루. 1656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진도 우역(郵驛) 항목에 녹진나루 이용자들을 위한 녹진원(鹿津院)이라는 여행객 숙소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형이 사슴의 뿔처럼 생겨서 녹진리(鹿津里)라 하였으며, 녹진나루는 녹진리에서 유래하였다. 진도군 군내면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해남군과 마주보고 있다. 녹진나루 앞에는 물살이 거센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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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에서 용인리 사이에 있는 방조제. 1945년 광복 후 덕병리에서 용인리에 이르는 350m의 덕병방조제를 준공하였다. 용인리는 덕병방조제 축조 후 진도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이다. 주민들은 덕병방조제로 새로 생긴 간척지에서 천일염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 들어 멀리 나리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덕병방조제는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진도군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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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에 위치한 저수지. 조선 시대 이곳에 둔전(屯田)이 있었으므로 마을 이름을 둔전리라 하였으며, 둔전저수지는 둔전리에서 유래하였다. 1956년 둔전방조제를 막은 뒤 새로 생긴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8년 상류 해수면이던 간척지 약 40㏊에 담수를 채워 둔전저수지를 축조하였다. 담수와 갯벌이 만나면서 둔전저수지에는 물고기가 서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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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회복, 유지, 증진시키기 위하여 국가, 지방자치단체, 보건의료기관 또는 보건의료인이 행하는 여러 활동.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의하면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다시 말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를 의미한다. 건강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통해 지난 세기 동안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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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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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손판기는 진도에서 손꼽히는 판소리 명창이면서, 진도의 대표적 마을의례인 덕병리 장승제와 덕병농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919년에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 800번지에서 아버지 손화남과 어머니 조심개 사이에서 태어난 손판기는 아내 이오덕과의 사이에 손국화·손향화·손지자·손성자·손영숙·손대형·손영찬 등을 두었다. 손판기 외에 국악분야에 종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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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있는 행정리. 장구포를 처음에는 ‘새터’라고 하다가 그 뒤에 하늘의 덕이 있다는 의미로 ‘천덕리’라고 하였으며, 소포만을 막기 전 긴 포구를 이루었다 하여 ‘장구포’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 뒷산이 장고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장고포’라 불리다가 와전되어 ‘장구포’라고도 한다. 1850년경 진도군 군내면에서 김해김씨가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그 뒤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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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58세손이다. 정효분은 경주정씨 문헌공파의 진도 입도조이다. 정효분은 본래 진도군 군내면이였던 북치(北峙)로 들어왔는데, 후일 정자리(亭子里)와 진도읍내로 자손이 번졌다. 정효분의 후손 중에서 미군정기 진도군수를 역임한 정승한(鄭承漢), 자생병원장 정중원 등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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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무신. 고려말 진도 입도조 조희직(曺希直)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조계상(曺繼商)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3남 중 장남으로 진도군 군내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며 아들은 네 명이다. 임진왜란 때에 왜적을 많이 참획하였다. 그 공을 높이 평가한 이순신이 건의하여 사헌부 장령(掌令)이라는 관직이 특별히 내려졌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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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창녕. 아버지는 조병정(曺秉埩)이다. 부인은 박영심이다. 자식으로 조석규(曺碩圭), 산부인과 의사 조석필(曺碩弼) 등 4남 3녀가 있다. 1916년 진도군 군내면에서 태어났고 1972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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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관광을 위한 계절별, 주제별, 권역별 경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조도면 일대 해역의 서남해 해상국립공원, 울돌목, 진도 용장성, 백조 도래지, 진도 첨찰산의 상록수림 등과 많은 민속무형문화재, 국립남도국악원, 향토문화회관, 기념관, 미술관 등과 아울러 진도개, 구기자, 대파, 검정 쌀, 진도 미역, ‘신비의 바닷길’ 까지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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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의 54소국(小國) 중 한 나라.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우리나라 고대 삼한의 여러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나라 이름은 당시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라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중국 고대의 북방음은 현행 우리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이들 나라의 위치 비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 초산도비리국의 ‘초(楚)’는 중국 고대음이 ‘tsi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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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포리와 남산리의 이름을 따서 포산리라 했다. 1480년경 창령조씨 조윤문의 둘째 아들 조극인(克仁)이 서외리에서 포산리로 분가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1500년경 밀양박씨·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엽리, 포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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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한의도(寒衣島)와 덕병리 사이에 위치한 방조제. 1963년 임회면 석교리 출신 박정준이 수류 지구 간척지 매립허가를 받아 한의도와 덕병리 학동 사이 1㎞에 제방을 축조한 후, 한의도와 전두리 사이 3.4㎞에 10년 동안 제방을 축조하였다. 진도군 군내면의 서남쪽에 위치한다. 803번 지방도에서 갈라진 4차선 도로가 한의방조제를 지난다. 한의방조제의 길이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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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일대의 지역에서 역대로 부모를 섬김에 있어 효를 극진히 한 자식. 유교를 이념으로 성립한 조선왕조는 지배체제와 사회질서의 요체를 예(禮)에 두었다. 예 중에서도 특히 자연적인 혈연관계에서의 효제(孝悌)를 기본 덕목으로 삼아 인위적인 정치체제에 중첩시킴으로서 치국(治國)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에 있어 효는 가정 질서의 기본이면서 사회 질서의 기둥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