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와 그 과정. 전라남도 진도군에서는 조선 전기인 세종 20년에 공립중학교격인 진도향교가 처음으로 세워졌다. 물론 그 전에도 서당과 같은 교육기관이 마을이나 문중 단위로 운영되어 후학을 양성했을 것이다. 진도향교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는 했지만 임진왜란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그 기능을 유지했다. 1602년(선조 25년)에는 성북(城北)[현 북상리로 비...
(1) 서당 마을 단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은 조선 말기 3대 한학자이자 진도의 최후 유배자인 무정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소치 선생의 아들인 미산 선생의 청에 의해 훈장으로 부임하면서 개설되었다. 이 서당의 명칭은 관란제(觀瀾齊)라고 칭했는데, 이는 흐르는 물의 순리를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관란제는 현재의 서당골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며,...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조상의 슬기와 전통을 이어받아 조국의 선진화에 앞장서는 사람(애국인), 지식과 기능을 연마하여 새 시대의 지혜를 가꾸는 사람(실력인), 탐구하는 자세와 창의력을 길러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과학인), 민주 사회의 규범과 예절을 지켜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도덕인), 보건 위생과 체력 단련에 힘써 건전한 심신을 기르는 사람(건강인...
일제강점기 기업가. 1876년 진도읍 동외리에서 청주한씨 한용민(韓用珉)과 장성동(張星東)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옥초(玉樵)이다. 1946년 향년 71세로 타계하였다. 아들 한평교(韓平敎)는 서울대학교를 나와 진도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진도의 사립 광신(光信)학교를 나와 서울로 유학하여 양정의숙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호남측량학교를 나왔다.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진도군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