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읍성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사정리 망적산에 있는 용샘에 얽힌 이야기. 용샘은 진도읍의 주산인 망적산[철마산, 해발 295m] 산정에 있는데, 현재는 물이 나오지 않은 채 흔적만 남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일이었는데, 어느 날 망적산 산정에서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폭음이 들리더니, 순식간에 산등만큼 커다란 청룡 한 마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진도읍의 서북쪽으로 있는 부지...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고방리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에 삼별초군이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예전의 지명은 고방(古方)이었다고 하나, 석교리(石橋里) 동쪽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방(高方)이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창녕조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1895년 석교리에서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의 행정리이자 법정리. 고려 때 진도읍성이 있으므로 고성이라 하였다. 여러 기의 고인돌로 보아 신석기 또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을의 입향조는 장흥임씨로 이들이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고려 때 진도읍성이 있으므로 고성 또는 고성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
관원이 공무를 볼 수 있게 지은 다양한 종류의 건물. 관아는 크게 중앙관아와 지방관아로 나눌 수 있으며, 형성 시기는 건축지(建築址)와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인 관아 건축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방관아는 읍성 내에서 주로 북쪽에 위치하며, 그 중심에는 동헌과 객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제로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밑에 부(府), 대도호부(大都護府)...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공원. 군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각의 게이트볼장과 둘레의 조금한 여유 공간들이 있다. 군강공원 내에 충혼탑과 체육시설이 있다. 군강공원은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산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진도읍성의 망대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다. 진도초등학교 정문 오른쪽으로 난 길을 가다가 왼쪽 첫 골목으로 들어서 계속 길을 따라 가면 진도도서...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남동리(진도읍)는 진도읍성 남문이 있던 곳으로 남문거리 또는 남문동이라고 한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1400년 경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그 후 밀양박씨와 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남상리, 남하리, 남산리 일부를 병합...
-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식의 집.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누각(樓閣)은 성문 위에 지은 집이나 전망이 좋은 곳에 2층 형으로 지은 전망대를 이른다. 정자(亭子)는 휴게를 위해 지은 집이다. 누정 중에는 숙소인 원(院)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진도지역의 경우 1923년에 나온 『중증진도읍지』에 보면 11개의 누정 이...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속하는 행정리. 당동리 마을에 원당이 있어서 당골, 당동, 원당으로 부른 데서 당동리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1490년 경 밀양박씨가 처음 들어온 후, 무안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602년 진도읍성 북쪽에 있던 서원이 당동리 북쪽으로 옮겨지고, 1778년에 양사재(養士齋)가 세워지면서 번창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진도읍성의 동문 밖에 위치하므로 ‘동문 밖’ 또는 ‘동문외’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1440년(세종22년) 진도읍성이 축조되고 치소가 동외리로 옮겨진 후, 1500년 초 창녕조씨 조영건(曺永建)의 둘째 아들 조수기(曺壽期)가 고군면 오산리에서 동외리로 옮겨 왔으며, 무안박씨 일가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북상리(北上里)라 하였다. 조선 초기 경주박씨 35대손 박근무(朴根茂)[1405~1467]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상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동리에 병합되었다. 처음에는 박씨 집성촌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김해김씨·전주이씨 등 다른 성씨가 진도군청을 중심으로 들어와 살면...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의 서문 밖이라 하여 ‘섬밖에’로 부르다가 서외리(西外里)로 바뀌었다. 1460년경 창령조씨 윤문(胤文)이 오산에서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전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348세대 808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성씨는 박씨와 김씨이다. 주요 농작물은 벼, 구기자이다....
-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진도읍성의 안쪽이 되므로 성안 또는 성내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상리·동중리·동하리·서상리·서하리를 병합하여 성내리라 하였다. 오늘날의 성내리는 동하리와 동중리에 해당한다. 철마산(鐵馬山)[304m] 수리봉[389m], 남산(南山)[243m]으로 둘러싸인 산릉의 완경사면에 입지...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인돌 1기가 진도읍에 소재한 진도중학교 뒤편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390×200×40㎝이며,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장축방향은 동-서이다. 하부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계단식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주변에 민가와 진도읍성이 자리하고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조선시대 진도군의 관아가 있던 성안을 법적으로 성내리라 하며, 성안을 동·서로 나누어 그 동쪽을 성동리(城東里)라 하였다. 1792년경 청주한씨의 입향 후 김해김씨·밀양박씨·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진도읍성 안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성동리는 1980년대까지 진도읍의 중심지였으나 남동리가 신흥시가지로 개발되면서 활기를 많이 잃었다. 옛날...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속하는 행정리. 성내리를 이분하여 성동리(城東里)와 성서리(城西里)라 하였을 때, 성내리 서쪽에 있다 하여 성서리라 하였다. 옛날에는 성안의 관아 땅으로만 활용하였다고 전해지는데, 1792년경에 전라남도 진도읍성 안의 서쪽으로 청주한씨가 입거한 이후 차츰 밀양박씨 등 다른 성씨가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북쪽에 철마산[304m]이 자리잡...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행정리. 당사골로 부르다가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고성보다 나중에 설립되었기에 신리라 하였다. 마을의 입향조는 현풍곽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리가 있는 고군면 고성리는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옛 진도읍성이 있어서 고성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와 모산리, 평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성리라...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행정리. 1437년(세종 19)에 왜적의 침입을 피하여 남해현으로 옮겼던 진도 고을을 이곳으로 옮기고 새성[新城]이라 하였다. 그 뒤 ‘무냄기’, ‘무넘기’, ‘무내기’로 변천되어오다가 오일시장이 열리면서 무내미는 사라지고 ‘닷새장터’로 불리다가 ‘오일시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437년에 왜적의 침입을 피하여 남해현으로 옮겼던 진도 고을을...
-
전라남도 진도읍 동외리 용두마을에서 매년 음력 2월 1일에 올리는 마을제사.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했는데, 진도읍성의 동문 밖이 되므로 동문밖, 또는 동문외라 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상리, 용하리, 당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외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읍성 축조 이후 장흥임씨가 입향한 후 밀양박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따르는 일체의 총체적인 행위. 종교는 오랜 옛날부터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인간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첨단과학이 종교적 현상을 부정하는 오늘날에도 종교는 많은 사람들의 내적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간은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힘을 빌려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불안, 죽음, 고민 등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에 의...
-
진도읍성은 1440년(세종22)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으로 진도군의 터전을 옮기면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성으로 치소를 옮기게 된 이유는 세종 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하 삼도를 비롯한 함경도, 평안도의 읍성축조를 관장한 최윤덕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진도군지』(미간행) 참고).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성으로 통일...
-
군강(郡岡)[산] 성안에 있는 산으로 공원이 되었는데, 성이 있다. 성내(城內)[마을] 성내리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성내리(城內里)[마을] 성안, 성내라고도 부르며 진도읍성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성안 또는 성내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마을 이름이 처음으로 명명되었다. 진도군청, 진도등기소, 농협중앙회, 진도교육청 등 행...
-
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
오랜 세월 동안 진도의 치소였던 진도읍성이 있던 곳이 성내리인 관계로 이곳에는 진도의 법과 행정, 그리고 공공기관들이 모여 있었다. 진도군의 발전과 더불어 진도읍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방기관들과 각종 공공기관들이 인근 마을인 쌍정리, 남동리, 교동리 등에 신 청사를 건립하여 이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내리에는 여전히 진도군의 법과 행정을 시행하는 다수의 공공기관...
-
① 진도군청 진도군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시행하는 진도군청은 성내리 64-1번지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곳으로 진도군청이 신축, 이전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이전하기 전의 청사는 현 ‘소전미술관’이 있는 성내리 63-1번지에 있었다. 이곳에서 진도군의 자치 업무가 개시된 것은 1437년(세종 19)에 해진군(海珍郡)으로부터 진도군이 분리되고, 진도읍성으로 이전한...
-
성내리는‘진도읍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1900년대 초 진도읍성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관청 이외의 건물과 시설들이 하나둘 건립되었다. 물론 진도읍성 내에 관청 및 통치 기구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읍성들과 마찬가지로 관청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주택을 비롯하여 유지 및 상대적으로 신분과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이 입거하면서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성내리라는...
-
진도읍성은 1987년 1월 15일에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143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1440년(세종 22)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진도읍성은 성내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군면 고성리에 있었다. 고성리에 있던 진도읍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읍성이 조성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곳은 진도의 치소(治所)로서 기능을 했다...
-
조선 전기 진도군의 관부(官府)와 민거(民居)를 둘러서 쌓은 성. 1437년 해진군(海珍郡)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진도군은 3년간 고읍성을 치소로 삼고 있었다. 진도읍성은 1440년(세종 22)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으로 진도군의 터전을 옮기면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치소(읍성)의 입지 조건으로는 바다와 가까운 요해지로서 백성들의 생업을 편안히 하고 방어하기에 편리하고...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기관. 진도향교는 1438년(세종 20) 건립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진되었다가 1667년(현종 8)에 재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성전에는 5성 2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명륜당, 동무, 서무, 제관실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85년 지방문화재 127호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바탕 위에서 백성들...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 철마산에는 산성터가 있는데 옛날 『옥주지』 산천조에 의하면 “진도의 주산으로서 진도의 북쪽 2리 지점에 있는데 옛날 뇌산현(군) 때 산성을 쌓아서 관방처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곳은 지형이 북쪽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하단으로는 암벽이 곧추서 있다. 여기에서는 신안군의 여러 섬들뿐만이 아니라 진도군과 해남군의 북쪽 해안지역이 잘...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와 군내면 월가리의 경계를 이루는 철마산에 있는 산성. 진도읍의 진산(鎭山)은 본래 북산(北山) 또는 망적산(望敵山)이지만, 주민들은 철마산이라 한다. 이 산에서 고을 수령이 매년 정한 날짜에 철마신상(神像)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마조단(馬祖壇)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철마산성은 그 성의 규모나 중앙단으로 보아 마조단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438년부터 1440년까지 제2대 진도군수를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초대 군수 양경(梁瓊)의 뒤를 이어 부임한 최기는 전임 군수가 시작한 읍성 축조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준공은 보지 못한 채 1440년 3월 초에 진도를 떠났다. 진도읍성 공사는 같은 해인 1440년(세종 22) 3대 진도군수로 부임한 이순전(李純全) 재임 시에 완공되었다....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이 축조되면서 성 밖의 통샘이라는 샘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1450년경 전주이씨 일가가 입거하였고 1700년까지 타 성씨들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정리는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정리·원동리·동현리·남편리·통정리를 병합하여 ‘두정’과 ‘통...
-
전라남도 진도군에 있었던 특수 촌락 집단.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거주 이동에 제약을 받았고 신분도 세습되어 자연스럽게 같은 업종이나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특수촌락이 형성되었다. 진도군에는 군내면 벽파진, 임회면, 오일시, 십일시, 진도읍 성내리 등지에 특수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벽파진 근처에는 사공들이 모여 살던 진부리(津夫里)가 있었다. 임회면에는 어부촌(漁夫村...
-
음양오행설을 바탕삼아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진도는 울돌목이라고 불리는 명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부와 떨어진 섬이다. 이런 섬의 원격성이 진도의 고유한 문화적 속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한때 진도는 10만이 넘는 인구를 부양할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높았으며, 섬이면서도 유난히 농경문화의 요소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풍수지리 역시 농경문화의 한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