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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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墡 |
영어음역 | Min S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1739년(영조 15)~1740년(영조 16)까지 제186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초명은 민기(閔圻), 자는 국보(國輔)·군보(君輔). 아버지는 병마절제도위 민진환(閔震煥)이고, 할아버지는 민정백(閔挺栢), 증조부는 민위(閔湋)이다. 아들은 1738년(영조 14)에 문과급제한 민사홍(閔師弘)과 민사의(閔師毅)이다. 형은 민해(閔垓)·민연(閔埏)·민경(閔坰)이다. 나주인 임수(林滫)의 딸과 혼인하였다. 민진형(閔震炯)의 조카이다.
[생애]
1682년(숙종 8)에 태어났다. 1708년(숙종 34)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3년(경종 3) 문과에 급제한 후 지평, 장령, 정언, 진도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752년(영조 28)에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민선이 사헌부장령으로 있을 때 사간원헌납 채응복(蔡膺福)과 함께 상소를 올렸다. 영조는 그들이 올린 상소가 거만하고 불순한 것이 날로 심해지고 붕당을 감싸려 한다면서 크게 꾸짖었다. 민선을 진도군수로 좌천시키고, 채응복은 정의현감(旌義縣監)으로 좌천시켰다. 특히 민선의 경우 임지에 도착하면 관찰사로 하여금 장계를 올려 보고하도록 하였다.
민선은 1739년(영조 15) 5월 진도군수로 부임하였다. 진도군수 재임 중인 1740년(영조 16) 12월에 유배인 박사대(朴師大)가 배소를 떠나 멋대로 다닌 것을 방치하였다 하여 나주목사 이보욱과 함께 문초를 받고 다시 원지(遠地)에 정배되었다.
박사대는 멋대로 배소(配所)를 떠나 서울을 출입했기 때문에 제주로 이배(移配)되었고, 박사대의 장인인 참판 이춘제(李春躋)도 박사대를 머물게 하였다 하여 유배하였다. 민선은 1742년(영조 18) 5월 장령으로 복귀하여 거의 말년까지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