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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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會林 |
이칭/별칭 | 송암(松巖)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민환 |
성격 | 기업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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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경력 | OCI 회장 |
출생 시기/일시 | 1917년 7월 9일 - 이회림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이회림 건복 상회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 이회림 개풍 상사 대표 취체역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58년 - 이회림 송암 장학회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68년 - 이회림 인천 소다회 공장 준공 |
활동 시기/일시 | 1982년 - 이회림 송도 학원 이사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81년 - 이회림 인천 상공 회의소 회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2005년 9월 30일 - 이회림 송암 미술관을 인천광역시에 기증 |
몰년 시기/일시 | 2007년 7월 18일 - 이회림 사망 |
활동지 | 인천 소다회 공장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
활동지 | 송암 미술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비류대로55번길 68[학익동 587-145]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위치한 송암 미술관의 설립자 겸 OCI 그룹의 창업자.
[가계]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박화실과 결혼하여 OCI[옛 동양 제철 화학] 대표 이사 이수영, 삼광 유리 대표 이사 이복영, 유니드 대표 이사 이화영을 비롯하여, 3남 3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이회림(李會林)[1917~2007]은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1937년 건복 상회를 설립하였고, 1951년 개풍 상사를 설립하여 대표 취재역을 지냈다. 1955년에는 대한 탄광을 인수하고, 1956년에 대한 양회를 설립한 데 이어 1959년 서울 은행 창립에 힘썼다.
이회림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의 바다를 매립하여 공단 부지를 조성하고, 1968년 소다회 공장을 지었다. 이후 화학 산업에 매진하여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과 인천광역시의 지역발전을 이끌었다.
이 밖에도 이회림은 전국 경제인 연합회 이사, 한국 경영자 총 협회 이사, 인천 상공 회의소 회장, 대한 체육회 이사, 대한 상공 회의소 부회장, 한국 무역 협회 이사, 중앙 노동 위원회 위원, 한국 중견 기업 연합회 고문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한편 이회림은 사업가로 활동하며 문화 예술 사업을 지원하였다. 1989년 송암 문화 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92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송암 미술관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회림은 1995년 송암 미술관과 그 건물 부지를 인천광역시에 무상으로 기증하여 시민에게 문화 예술 공간을 제공했다.
[저술 및 작품]
이회림은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을 남겼다.
[묘소]
이회림의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회림은 1971년 석탑 산업 훈장, 1977년 산업 포장, 1979년 은탑 산업 훈장, 1986년 금탑 산업 훈장을 받았으며 세 차례에 걸쳐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1989년에는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우리나라와 프랑스와의 경제 외교 활동을 활발히 펼친 공로로 이회림에게 기사 작위[1986년]와 국민 훈장[1991년]을 수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