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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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市 |
영어공식명칭 | Miryang-s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경상남도에 속하는 법정시.
[개설]
경상남도를 남북으로 흐르는 밀양강의 유역에 입지하고 있다. 남쪽으로 부산광역시, 북으로 대구광역시, 동쪽으로 울산광역시와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어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을 흐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남도 김해시, 창원시와 마주보며 북으로는 경상북도 청도군에 접하여 있다. 동천, 단장천, 제대천 등의 물길이 밀양강과 합류하면서 유역에 시가지와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동래부와 한양을 잇는 영남로의 길목에 있는 데다가 경상도 감영인 대구부와 대일 교역의 관문인 동래부의 중간 지점에 있어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낙동강과 밀양강을 끼고 있어 예부터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밀양 영남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 중의 하나였다. 1989년 밀양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 밀양군과 밀양시가 통합되었다. 2021년 현재 내일동을 비롯한 5개 행정동과 2읍 9면을 관할하고 있다.
[지명과 연혁]
경상남도 밀양시의 옛 이름은 ‘미리벌’로 전한다. ‘미리’는 용(龍)과 함께 물의 어원이 되는 이름으로 ‘물벌’로도 해석된다. 신라 때의 이름인 ‘추화군(推火郡)’은 ‘미리[밀]→추(推)’와 ‘벌[불]→화(火)’로 훈차한 것에 비롯된 것이다. ‘밀성(密城)’, ‘밀주(密州)’로도 불렀으며 고려시대에 밀양부(密陽府)가 되었다.
밀양강 유역에 고을이 형성된 것은 역사가 오래되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기원 3세기경]에 수록된 변한 12국 중 하나인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은 지금 밀양시 일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이 되었다.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에 밀주(密州)로 승격되었다. 1276년(충렬왕 2) 삼별초에 호응하였다는 이유로 귀화부곡이 되어 계림부[경주]에 예속되었다. 이후 밀성현(密城縣)과 밀성군(密城郡)을 거쳐 밀양부(密陽府)가 되었다. 조선시대 들어 1415년(태종 15)에 경상도 밀양도호부가 되고, 1895년(고종 32)에 대구부 밀양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비월지였던 고이면(古厼面)이 청도군으로 이관되고, 1912년 청도군 외서면이 밀양부로 귀속되면서 청도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부내면, 부북면, 상동면을 비롯하여 13개 면이 되었으며 1933년 상서이동면(上西二同面)과 하서면(下西面)을 합쳐 무안면이 되면서 지금과 같은 12개 단위[동 지역, 2읍 9면]의 골격을 이루게 되었다.
1989년 밀양시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밀양군과 통합되었다. 내일동, 용평동, 활성동, 교동, 가곡동, 내이동, 삼문동, 남포동의 7개 법정동과 관할 5개 행정동이 있다. 삼랑진읍과 하남읍 2개 읍과 함께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산내면, 단장면, 초동면, 청도면, 상남면, 무안면의 9개 면이 있다.
[삶의 토대]
경상남도 밀양시 북쪽의 가지산[1,240m]과 운문산[1,188m] 줄기는 경상북도 청도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동쪽에는 능동산[983.1m]과 천황산[1,189m]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울산광역시와 분수계를 이룬다. 서쪽은 화악산(華岳山)[932m], 천왕산[619m]·화왕산[756m]을 경계로 창녕군과 접한다. 이러한 산지에서 발원한 물길들은 밀양강으로 유입하면서 곳곳에 삶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밀양강[유로연장 105.1㎞, 국가하천]은 청도군에서 발원한 청도천과 울주군에서 흘러오는 동창천이 상동면 옥산리에서 합류한 이후 밀양시로 유입한다. 남쪽으로 흐르다가 시가지를 휘돌아 흐르며 이룬다. 남쪽의 삼랑진에 이르러 낙동강 본류에 합류하기까지 곳곳에 충적지를 형성하여 밀양 농업의 토대를 이루었다. 동쪽의 가지산도립공원에서는 단장천이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상동면에 이르러 밀양강에 합류하기까지 곡저 분지를 이루면서 산지촌을 이루는 데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밀양의 중심지]
지금 밀양시청이 있는 곳은 교동 일대로, 1997년 삼문동에서 이전한 것이다.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읍치는 지금의 내일동(內一洞) 일대였다. 밀양부의 진산인 화악산으로부터 남쪽의 옥교산[538.4m]을 거쳐 아북산[118.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주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읍치는 산지의 남쪽 산록에 형성되어 있었다. 밀양 읍성은 주변의 산지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었다. 남쪽의 아동산 일대는 하천 곡류에 의한 침식사면을 이루고 침식사면에 밀양 영남루가 세워져 있다. 복원된 밀양 관아로부터 남쪽의 밀양교로 이어지는 도로가 과거 읍성의 중심 도로였다. 관아 남쪽의 아리랑시장은 조선시대 매 2일·9일 열리던 장시로 지금도 개시일이 유지되고 있다. 지금 밀양에서 열리는 장시는 삼랑진읍[4일, 9일], 청도면 구기장[4일, 9일], 무안장[1일, 6일], 산내장[5일, 10일]이 있다.
[밀양의 문화와 역사 경관]
“날 좀 보소”로 시작되는 「밀양아리랑」은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다른 아리랑이 구슬픈 곡조를 띠고 있는 데 반하여, 「밀양아리랑」은 놀라우리만큼 흥겹고 경쾌하다. 「아리랑」의 발원은 19세기 민중들의 아픔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에 대한 자기표현의 시초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불렀던 노래는 「밀양아리랑」의 곡조를 실려 불렸다. 당시 독립군 지도자들 가운데 경상도 출신의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추론되기도 한다. 「아리랑」에 담긴 이와 같은 밝고 흥겨운 가락은 밀양인들의 넉넉한 인심과 여유로움을 보여 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밀양] 형승 조에는 “부공장천 평탄광야 대강횡류 열수중위 원수부공 장강여련 무림소죽 연봉첩장(俯控長川 平呑曠野 大江橫流 列岫重圍 遠岫浮空 長江如練 茂林脩竹 連峯疊嶂)[긴 내를 굽어 당기고 넓은 들을 평평히 머금고 있다. 큰 강이 비껴 흐르고 늘어선 봉우리가 겹쳐 에워쌌다. 먼 봉우리는 하늘에 떠 있고, 긴 강은 뉘어 놓은 듯하다.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요, 잇닿으니 봉우리와 겹친 봉우리이다].”라는 기사가 수록되어 당시 밀양강 유역을 토대로 한 풍요롭고 아름다운 고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밀양의 성씨와 인물]
경상남도 밀양시는 물산이 풍부하고 취락 형성의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는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여러 성씨가 있다. 2015년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밀양 박씨(朴氏)[밀성 박씨]는 우리나라에서 김해김씨 다음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씨이다. 박씨 외에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주요 성씨로는 밀양손씨(密陽孫氏)와 밀양변씨(密陽卞氏)가 있으며, 내일동에는 밀양손씨 전통가옥이 보존되어 있다.
밀양의 인물로는 조선시대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1369~1430],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과 사명대사(泗溟大師)[1544~1610]가 있다. 변계량은 『태조실록(太祖實錄)』을 편찬하고 『고려사(高麗史)』 개수에 참여하였다. 초동면 신호리에 변계량과 아버지 변옥란, 친형인 변중량의 행적을 기린 비각이 세워져 있다. 김종직은 조선 전기 영남학파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편찬의 총재관 역할을 하였다. 부북면 제대리에서 태어났으며 예림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고승으로 승장(僧將)이다.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났으며, 무안리에 사명대사의 표충비각이 세워져 있다. 구한말에는 대눌(大訥) 노상익(盧相益)[1849~1941]과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이 밀양에서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이외에 현대에 들어서도 뛰어난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배출하였다.
[밀양의 정체성과 지향점]
경상남도 밀양시는 큰 산과 물줄기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진 고을로 조선시대 성리학 영남학파의 중심을 이루었고, 196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농업 근대화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2000년대 들어 밀양시를 무대로 한 영화 「밀양[Secret Sunshine]」은 프랑스 칸영화제[2007년]의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동쪽으로 울산광역시, 남쪽에 부산광역시와 창원시, 북쪽에 대구광역시가 있어 이런 도시들을 잇는 간선 교통망의 요지에 있다. 위의 대도시들과 밀양시 사이에 김해시, 양산시, 울주군, 청도군이 완충지 역할을 하고 있어 밀양은 대도시의 무차별적인 확장의 영향을 덜 받게 되었다. 대도시와의 접근성이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밀양은 대도시의 영향을 조절하면서 높은 산과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와 함께 더불어 사는 도시를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