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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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聖壽 |
영어공식명칭 | Kim Sungsoo |
이칭/별칭 | 김주열(金朱㤠),김지강(金之江),채천민(采天民)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7월 13일 - 김성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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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김성수 중국으로 망명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김성수 중국 광둥성의 황포군관학교 보병과 입학, 의열단 입단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김성수 중국 상하이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김성수 김좌진 등과 한족총연합회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김성수 중국 제19로군 입대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 김성수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 김성수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8년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7월 - 김성수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 |
몰년 시기/일시 | 1969년 4월 5일 - 김성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김성수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4월 6일 - 김성수 부북면 춘화리, 청운리, 덕곡리 주민들에 의해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주도 |
출생지 | 춘화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 |
활동지 | 중국 - 중국 광둥성 |
활동지 | 중국 - 중국 상하이시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국회의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국회의원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5대 국회의원.
[가계]
김성수(金聖壽)[1900~1969]의 호는 지강(芝江)이다. 일명 김주열(金朱烈)이라고도 하였고, 채천민(菜天民)이라는 이명도 사용하였다. 1900년 7월 13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에서 아버지 김응삼과 어머니 엄달초의 2남 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53년 최차자와 결혼하였고, 1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성수는 1919년 4월 6일 부북면 춘화리, 청운리, 덕곡리 주민들에 의하여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6일의 시위는 평양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온 사립 계성학교 교장 김래봉에 의하여 계획되었고, 문중 사람들을 중심으로 독립 만세 운동을 추진하였다. 계성학교에서 등사판을 가져다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학생들을 모아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당일 500여 명의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김성수는 독립 만세 운동 이후 검거를 피하여서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26년 광둥성의 황포군관학교 보병과에 입학하였고,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1928년 상하이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고 기관지 『남화통신』을 발간하였다. 1930년에는 김좌진 등과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였다. 1932년 일제가 상하이를 침략했을 때 중국 제19로군에 입대하여 항전하였고, 7월에 이회영이 일본 경찰에 잡히자 밀고자를 처단하였다.
1933년 3월 백정기 등과 함께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폭살하려던 육삼정(六三亭)의거와 5월 오면직, 안경근 등과 함께 일본영사관 밀정 이종홍을 처단한 사건 등으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쫓기다 결국 1936년에 체포되었다. 1938년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8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60년 7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소속으로 밀양에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으나,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씌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김성수는 1969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김성수에게는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