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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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板伊 |
영어음역 | Jeon Pan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영배 |
[정의]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호남 농악의 명인.
[개설]
1869년 전라북도 진안 출생으로 한때 남원시 송동면에 거주했던 호남 농악의 명인이다. 전판이는 현재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호남 좌도 농악이라고 할 수 있는 임실 필봉 농악, 남원 농악, 곡성 농악 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또한 『호남농악』 인명록에 ‘우도 농악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아 전판이는 농악의 지역적 특성을 벗어나, 호남 농악의 중흥과 발전에 기여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전판이의 가락과 부포 놀음(일명 개꼬리 상모)은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활동사항]
전판이의 구체적인 활동 사항은 알 수 없으나, 그가 큰 영향을 미친 호남 좌도 농악의 계보설을 통해 전판이의 면모를 추적해 볼 수 있다. 먼저 전판이는 임실 필봉 농악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임실 필봉 농악의 계보는 전판이에서 이화춘, 박학삼, 송주호, 양순용, 양진성으로 이어지는데, 계보 상 최상위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양순용과 그 주변 사람들의 구술에 따른 것으로, 양순용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필봉 풍물굿의 상위 계보에 속하는 인물이다.
또한 전판이는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의 유한준 굿을 잇고 있는 남원 농악의 최상위 계보에 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남원 농악의 계보는 전판이, 류한준, 강태문, 류명철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판이가 보유했던 상쇠의 부포 놀음이 류한준과 강태문을 거쳐 류명철에게 전승되었다.
전판이는 전라남도 곡성 농악의 계보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곡성 농악의 뜬쇠인 기창수가 이화춘 밑에서 농구를 하면서 농악을 배운 점과 전판이와 이화춘이 재인 출신으로 함께 굿을 쳤다는 구술에 입각해 볼 때, 전판이, 이화춘, 기창수, 강순동, 박대업으로 이어지는 곡성 농악의 계보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 장수 출신의 소고잽이 홍유봉은 17살에 전판이의 공연을 임실 오수, 완주 상관, 남원 등지에서 세 차례 보았다고 한다. 홍유봉의 제보에 따르면 전판이는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굿을 쳤던 뜬쇠로서 호남 좌도 농악을 굿의 모태로 삼았으며, 장기는 부들 상모 놀이였다. 그 수하에서 류한준과 강태문이 함께 굿을 쳤다고 전한다.
또한 홍유봉의 제보에 따르면 원래 정읍, 이리 등지의 호남 우도 농악은 뻣상모를 쓰지 않고 부들 상모를 썼다고 하는데, 이러한 좌·우도 굿의 유사성은 양순용의 구술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전판이를 호남 농악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