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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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仁善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150-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우 |
출생 시기/일시 | 1492년 - 류인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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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549년 - 류인선 정려 |
추모 시기/일시 | 1735년 - 류인선 효우 정려비 건립 |
출생지 | 류인선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
묘소|단소 | 류인선 묘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삼성당리 |
기타 | 류인선 효우 정려비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150-2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문화(文化)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공숙(公叔). 아버지는 진사 류연(柳演)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동생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류지선(柳智善)이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전(柳㙉; 동생 류예선의 아들)의 백부이다.
[활동 사항]
류인선(柳仁善)[1492~?]은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고 생활하였다. 5형제 중 맏이로, 동생인 류은선(柳恩善)·류예선(柳禮善)·류지선(柳智善)·류정선(柳貞善)과 한 집에 살면서 우애가 돈독하였다. 동생들을 자식처럼 돌보았으며, 노비와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 주어 고장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에 류인선 형제가 함께 마시는 우물을 효우정(孝友井)이라 하고, 이들 집안을 일컬어 효우문(孝友門)이라 하였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의현(李宜顯)은 이를 기려 “장공이 백 번이나 참아냄은 천고에 칭송되었는데, 다섯 명의 류씨 형제 함께 살면서 그 아름다움을 계승하였네[張公百忍 千古嗟稱 五柳同門 厥媺可承].”라고 하였다.
류인선은 천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3년간 시묘하였다. 1535년에 경기 관찰사 윤은필(尹殷弼)이 류인선의 효행을 상세히 보고하며 표창할 것을 건의하였고, 1540년에는 중종이 나라의 어진 인물을 구하고자 할 때 한성 판윤 김안국(金安國), 예조 판서 정옥형(鄭玉亨), 상호군 방호의(方好義) 등이 류인선을 추천하였다. 벼슬은 사산감역(四山監役)[서울 주변에 있는 네 산의 감독관]을 지냈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삼성당리 선영에 있으며, 부인 풍산 김씨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상훈과 추모]
1549년(명종 4)에 효우 정려문이 내려졌지만 소실되었고, 효우정이 있던 터도 현재 논으로 변하였다. 류인선의 6세손인 류세주(柳世冑)가 1735년에 세운 효우 정려비가 자작동 150-2번지에 전해지고 있다. 효우 정려비는 1986년 포천시 향토 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