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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33
한자 古代
영어공식명칭 Ancien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고대/고대
집필자 이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기원 전후~7세기 중·후반 - 세종특별자치시의 고대 시기

[정의]

기원 전후부터 7세기 중·후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 세종 지역의 역사.

[개설]

한국의 고대는 기원을 전후하여 고구려와 삼한의 여러 소국 정치체들이 정립한 시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이 형성·발전한 시기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문자기록 이전의 시기는 선사시대(先史時代), 문자기록 이후는 역사시대(歷史時代)로 구분한다. 고대는 선사시대 이후 다양한 소국 정치체가 큰 규모의 국가로 통합되어 발전하는 시기의 역사를 주로 나타낸다.

[원삼국시대]

원삼국시대는 기원을 전후하여 고구려·백제·신라가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라는 용어 이외에 삼국시대 전기, 삼한시대 등의 다양한 용어가 사용된다.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을 포함하여 70여 개의 소국이 있었으며,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진한·변한으로 구분되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마한에 54개 소국이 있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한의 소국은 각각 오늘날의 군(郡) 단위 크기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추정된다. 마한의 영역은 오늘날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서해안 일대에 해당한다. 세종특별자치시는 마한 54국 중 하나에 속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다만 천안 지역의 목지국(目支國)과 신운신국(臣雲新國), 공주 지역의 불운국(不雲國), 대전 지역의 신거국(臣苣國)과 인접해 있음을 살필 때 세종 지역도 함께 비교하여 검토할 수 있다.

최근 세종특별자치시 일대에서 조사된 유적으로는 주거지, 수혈유구, 토기가마, 환호, 매장유적 등이 있다. 주거지는 평면 방형의 네 모서리에 각각 기둥이 있는 4주식 주거지로, 내부에는 점토로 만든 부뚜막시설이 있다. 연동면 응암리 유적, 연기 대평리 유적, 석삼리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수혈유구는 남면 월산리 유적과 응암리 유적, 매장유적은 주구토광묘의 형태로 연동면 응암리 유적·용호리 유적·송담리 유적·대평리 유적 등에서 조사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는 고대 국가 체제를 완성하면서 주변 소국들을 병합해 고대 국가를 이룩하였으며, 이후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는 668년까지 병립하였다. 이 단계는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고대국가(古代國家)가 출현하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韓民族)의 형성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고대 세종특별자치시 일대는 백제의 행정구역에 포함되는 곳으로서 지금의 연기면 일대는 두잉지현(豆仍只縣), 북쪽의 전의면·전동면 일대는 구지현(仇知縣), 금강 이남의 금남면 일대는 소비포현(所比浦縣)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 세종 지역에서 조사된 백제시대유적은 주거지·고분군·성곽 등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주거지를 비롯한 생활유적과 성곽이 확인된다. 백제시대 주거지는 나성리 일대의 백제시대 ‘구획식저택’을 비롯하여 백제 중앙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널무덤[토광묘(土壙墓)], 독무덤[옹관묘(甕棺墓)] 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유적으로는 송원리 토기가마와 대평리 주거유적 등이 있다. 그리고 세종시에 인접한 청원 남성골유적에서 고구려 목책성곽과 관련주거지가 조사되는 등 세종특별자치시 일대의 지정학적 입지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고대부터 세종 지역은 차령의 이북과 이남으로 통하는 역사지리적 입지를 갖춘 곳으로, 특히 금강 이남의 청주-보은-상주-경주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해당한다. 특히 백제 멸망기 부흥운동군의 활동이 끝까지 이루어진 부흥운동의 전적지로서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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