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있는 법정리. 1500년(연산군 6)쯤 손(孫) 씨 몇 가구가 입향하였는데, 사람들이 없어 고독하다 하여 ‘고산(孤山)’이라 이름하였다.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가 1545년 사헌부 집의 시절 윤원형(尹元衡) 등의 비행(非行)을 탄핵하였다가 전라북도 고산(高山)으로 귀양을 갔는데, 이후 고향 집으로 돌아온 후 유배지에서 고독하게 지낸 시절을 잊고자 ‘외...
1895년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경상북도 성주는 고려 시대인 1308년(충렬왕 34) 성주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하면서 성주목(星州牧)이 되었다가, 2년만인 1310년(충선왕 2)에 이전의 경산부(京山府)로 환원되었다. 조선 시대인 1401년(태종 1)에 다시 성주목이 되면서 가리현(加利縣)·팔거현(八莒縣)·화원현(花園縣)을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김창숙(金昌淑) 등이 중심이 되어 작성한 파리 장서(巴里長書)[독립 청원서]에 유림 대표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여 파리 장서 운동[독립 청원 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1919년 신문을 통해 전국 각지의 3.1 운동 소식을 보고 있던 차에 고종 황제 국장에 참여하고 돌아온 이기원(李基元)으로부터 서...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자양동의 ‘자’ 자와 산지동의 ‘산’ 자를 따와 ‘자산(紫山)’이라 이름하였다. 본디 명칭인 성산(城山)의 우리말 ‘잣뫼’를 차용하여 자산으로 하였다는 설도 있다.자산1리의 자연 마을로 점복(占福)[전북·자산(紫山)·자양]과 율리(栗里)가 있고, 자산2리의 자연 마을로 영동(靈洞)[귀령골·귀령곡(貴靈谷)]과 사르...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와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를 연결하는 지방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양정 삼거리를 기점으로 성주군 대가면·벽진면·초전면, 김천시 농소면·남면·율곡동[김천 혁신 도시]·대신동·개령면·감문면을 거쳐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 원리 삼거리를 종점으로 한다....
근현대 일제 침략과 일제 강점에 항거한 성주 유림의 항일 독립운동. 1894년 갑오변란(甲午變亂)과 1895년 명성 황후(明成皇后) 시해 및 단발령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침략 앞에서 충청북도 제천의 의암(義菴)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나 안동의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1777~1861]을 잇는 정재 학맥의 유림이 ‘거의소청(擧義掃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의병 항쟁...